1의 비극 노리즈키 린타로 탐정 시리즈
노리즈키 린타로 지음, 이기웅 옮김 / 포레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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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작가 후기에서도 밝히고 있듯이 이 소설의 미덕은 참신한 설정보다는 어디선가 본 듯한 사건의 씨줄과 날줄을 엮어 하나의 얼개를 완성하는 스타일에서 찾아야 할 것 같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가장 큰 증오와 분노를 느끼는 것은 당연한 듯하면서도 매번 안타깝고 충격적인 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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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쇼 - 경제현상을 이해하는 불변의 프레임
김광수경제연구소 지음 / 왕의서재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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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판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정부와 언론이 서로 주고받으면서 확대 재생산해온 경제 담론의 허구성을 드러내고 좀더 객관적인 시각에서 진실을 드러낸다. 수치와 통계의 장벽 때문에 번번이 속고 좌절하는 흑역사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지금 우리에게 경제 공부는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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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침대 위에 부는 바람 - 야하고 이상한 여행기
김얀 지음, 이병률 사진 / 달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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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금세 읽었지만 책을 읽는 동안 자주 멈칫거리게 하는, 내게는 문제작이었다.

 

'야하고 이상한 여행기'라는 부제에 공감한다.

야한 것은 사실이다.

이상하다는 것은 조금 다른 의미로 공감한다. 여행기라기보다는 일기에 가깝다.

여행하면서 남긴 기록이라는 점에서 여행기이지만

저자에게는 여행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낯선 공간에서 낯선 사람들과 만나면서 자아와 인생에 대한 고민의 답을 찾는 것이 목적이다.

하지만 그러한 과정은 일상의 공간에서도 충분히 가능할 것 같다.

책을 읽다보면 여행지에서의 생활이 서울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거나

자신이 어디에 머물러 있는지 혼란스러워하는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단지 공간이 바뀌었을 뿐 서울에서의 고민이 여행지에서도 연장되기 때문이리라.

 

낯선 나라에서 누군가를 만나는 건 자신도 모르게 평생 각인되어버리는 일이라 신중해야만 한다.

뉴스에서 혹은 신문이나 여행책에서 낯선 나라의 이름이 나오면 자연스럽게

그 나라의 공기와 냄새와 함께 그 사람이 떠올라버리기 때문이다. - 55쪽

책에는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을 만나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실제 경험이 아니라 창작이나 상상일 수도 있겠지만

그다지 신중함을 느끼지는 못했다. 주위의 시선이나 금기로부터 자유로운 타국에서는 좀더 쉽게 사랑이라는 감정이 싹틀 수 있을 것 같았을 뿐.

 

한때 나의 연인이었던 S는 '나의 문제'가 모든 남자와 섹스로 관계를 유지하려는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건 S의 오해였다. - 127쪽

저자가 평균적인(?) 사람들보다 쉽게 이성을 만나고 관계를 맺는 것처럼 느꼈다.

저자는 마음에 드는 이성을 만나면 만난 지 몇 시간 만에 관계를 맺기도 한다.

그리고 책에서 언급된 여행에서 적지 않은 시간을 숙박시설이 아닌 남성의 집에서 머무른다.

다소 무모하거나 즉흥적인 여행의 시작은 이런 여행의 방식과 무관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불편했던 것은 욕망 또는 욕구로 표현되어야 할 것들이 사랑이나 연애로 대체되는 부분이었다.

사랑과 연애의 다의성을 이해하지 못한 탓일지도 모르지만...

 

 

남자는 많았지만 다들 마음은 쏙 빼고 몸만 보여준 채 사라졌지. 아니, 사실 내가 먼저 그랬던 걸지도 몰라. - 172쪽

 

책에서 언급된 적지 않은 만남이 섹스로 시작해서 섹스로 끝을 맺는다.

몸으로 만남이 시작되었지만 몸이 가까워지다 보니 마음을 얻고 싶었는데, 서로 마음은 잘 맞지 않았고

헤어지고 나니 그 만남에서 섹스를 빼고 의미를 찾을 수 없어 공허했다, 정도로 해석했다.

남자의 시각에서 보면 자의적이거나 일방적인 문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김얀의 여행은 사랑만큼이나 즉흥적이다.

연인이 된 이후나 헤어진 이후를 생각하지 않고 사람에게 다가가듯

돌아온 후의 삶을 생각하지 않고 떠난다.

객기로 치부할 수도 있겠으나 쉽지 않은, 독창적인 삶의 방식이기도 하다.

이것저것 따지면서 좀처럼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즉흥적인 떠남과 돌아옴은 자유의 다른 이름이겠다.

하지만 자유에 부수되는 책임의 무게를 알기에 그 자유가 온전히 편안하지만은 않았다.

내심 개방적인 사고를 하고 있다고 자부했는데 아직도 보수적인 틀에 갇혀 있는 건지도...

 

내 단견이겠지만 이병률의 사진이 글과 겉돈다는 생각은 지울 수 없다.

책 속에 수록된 삽화나 사진이 반드시 글의 내용과 연관될 필요는 없겠지만

이 책의 사진들은 몇몇을 제외하곤 글의 느낌과도 왠지 이질감이 느껴졌다.

그래서 글은 글대로 읽고 사진은 사진대로 따로 감상하는 느낌이 들었다.

뮌헨 편에 수록된 사진에, 잘은 모르지만 독일어 대신 영어와 스페인어가 등장해서일지도...

 

책은 베이징에서 '너'에게 보내는 편지로 끝난다.

여행의 끝, 자신을 찾아 떠난 여정의 끝은 다시 '너'일까?

이제서야 몸과 마음이 하나 되는 진정한 사랑을 찾은 걸까?

공감하고 싶지만 공감할 수 없어서 책장을 덮는 마음이 쓸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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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6일이다.

 

1996년 1월 6일.

이틀에 걸쳐 치러지는 본고사 첫날 시험을 마치고, 학교 기숙사에서 다음날 논술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다.

공부는 안 되고 마음은 들떠서 학교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 늦은 저녁을 먹었고 그의 소식을 들었다.

대학에 가면 공연장에서 꼭 만나고 싶었던 사람을 대학의 문턱에서 잃었다.

 

소설가 김소진을 처음 만난 책이 군 휴가에서 구입한 그의 유고집이었듯이

내가 처음으로 직접 본 김광석의 공연은 지금까지도 이어지는 그의 추모공연 '김광석 다시부르기'였다.

노래하는 권진원과 눈을 마주치면서 다시 볼 수 없는 김광석의 웃음을 떠올렸다.

 

그의 노래를 언제 처음 들었는지는 기억하지 못한다.

어렸을 때 나는 전형적인 라디오 키드였다.

학교에서 집에 돌아오자마자 라디오를 켜면 10~20년 전 유행했던 노래가 흘러나왔다. 

김민기의 '친구', 박경애의 '곡예사의 첫사랑' 같은 노래를 좋아하게 되었다.

초등학생 때 처음 좋아했던 대중가수는 이문세였는데,

당시 TV 출연은 잘 하지 않던 가수라 매일 밤 10시를 기다려 <별이 빛나는 밤에>를 들었다.

아마 별밤에서 동물원의 '거리에서'나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를 통해 김광석의 목소리를 처음 들었을 것이다.

사춘기였을까? 이문세의 부드러운 목소리보다는 김광석의 깊고 슬픈 목소리가 가슴에 깊이 남았다.

처음 구입한 그의 앨범은 3집이었다.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외사랑'은 누군가를 마음에 두고 있을 때 아프지만 따뜻한 위로가 되었다.

'나무'는 지금도 힘들 때마다 떠올리는, 삶의 버팀목이 되는 노래다.

 

세월은 그렇게 흘러 여기까지 왔다.

그가 세상에 살았던 것보다 몇 년 더 살았다.

외롭고 쓸쓸한 삶의 길목마다 그의 맑은 목소리와 노래가 함께할 것이라 믿고 힘을 낸다.

무성한 가지와 그늘을 드리우고 싶다.

광석이 형. 편히 쉬시길.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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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어간다는 징표는 요란하지는 않지만 도처에서 드러난다.

가는 해와 오는 해가 교차하는 지점의 아쉬움과 두근거림, 설렘이 확실히 덜하다는 것.

새해에 대한 계획이 갈수록 구체적이면서 단출해진다는 것.

 

연말에는 이제 그리 많이 남지 않은 친구들과 연락해 만났다.

12월 초에 1년 후배의 갑작스런 부음을 듣고

나도 너도 언제나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에 마음이 조급해졌다.

열심히 뛰는 사람도, 묵묵히 제 길을 걷는 사람도, 제자리를 맴도는 사람도 있었다.

 

한 해의 마지막 날인 어제도, 새해를 시작하는 첫날인 오늘도

누군가는 태어나고, 누군가는 죽는다. 누군가는 만나고, 누군가는 헤어진다.

어제는 서울역 고가도로에서 40줄에 막 들어선 한 남자가 자신의 몸에 불을 질렀다.

그의 죽음을 둘러싸고 이런저런 말이 많지만,

태어나서 한번도 제대로 주목을 받을 기회도, 세상을 향해 자신의 생각을 외칠 기회도 없었을지 모르는

처절한 외로움과 소외감이

자신이 죽을 자리를 그곳으로 택하게 하지 않았을까 짐작할 뿐이다.

 

르네상스보다는 고딕이, 모더니즘보다는 리얼리즘이 대개는 더 좋았다.

아직 인생을 통째로 운명의 손에 넘겨주기에는 많지 않은 나이지만

역리의 패기보다는 순리의 안온함이 내 몸과 마음에 더 어울린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그런 편안함은 세상의 이치가 수긍할 만한 것이라는 믿음을 전제로 한다.

내 방 안에 홀로 책을 펼치고 있어도 마음이 편안할 수 있도록

새해에는 세상이 순리대로 돌아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하지만 잠든 새벽과 눈뜬 아침이 전혀 다른 시공간이 아니라는 사실 정도는 잊지 않게 된 나이이다.

나잇값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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