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침대 위에 부는 바람 - 야하고 이상한 여행기
김얀 지음, 이병률 사진 / 달 / 2013년 7월
평점 :
절판


금세 읽었지만 책을 읽는 동안 자주 멈칫거리게 하는, 내게는 문제작이었다.

 

'야하고 이상한 여행기'라는 부제에 공감한다.

야한 것은 사실이다.

이상하다는 것은 조금 다른 의미로 공감한다. 여행기라기보다는 일기에 가깝다.

여행하면서 남긴 기록이라는 점에서 여행기이지만

저자에게는 여행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낯선 공간에서 낯선 사람들과 만나면서 자아와 인생에 대한 고민의 답을 찾는 것이 목적이다.

하지만 그러한 과정은 일상의 공간에서도 충분히 가능할 것 같다.

책을 읽다보면 여행지에서의 생활이 서울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거나

자신이 어디에 머물러 있는지 혼란스러워하는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단지 공간이 바뀌었을 뿐 서울에서의 고민이 여행지에서도 연장되기 때문이리라.

 

낯선 나라에서 누군가를 만나는 건 자신도 모르게 평생 각인되어버리는 일이라 신중해야만 한다.

뉴스에서 혹은 신문이나 여행책에서 낯선 나라의 이름이 나오면 자연스럽게

그 나라의 공기와 냄새와 함께 그 사람이 떠올라버리기 때문이다. - 55쪽

책에는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을 만나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실제 경험이 아니라 창작이나 상상일 수도 있겠지만

그다지 신중함을 느끼지는 못했다. 주위의 시선이나 금기로부터 자유로운 타국에서는 좀더 쉽게 사랑이라는 감정이 싹틀 수 있을 것 같았을 뿐.

 

한때 나의 연인이었던 S는 '나의 문제'가 모든 남자와 섹스로 관계를 유지하려는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건 S의 오해였다. - 127쪽

저자가 평균적인(?) 사람들보다 쉽게 이성을 만나고 관계를 맺는 것처럼 느꼈다.

저자는 마음에 드는 이성을 만나면 만난 지 몇 시간 만에 관계를 맺기도 한다.

그리고 책에서 언급된 여행에서 적지 않은 시간을 숙박시설이 아닌 남성의 집에서 머무른다.

다소 무모하거나 즉흥적인 여행의 시작은 이런 여행의 방식과 무관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불편했던 것은 욕망 또는 욕구로 표현되어야 할 것들이 사랑이나 연애로 대체되는 부분이었다.

사랑과 연애의 다의성을 이해하지 못한 탓일지도 모르지만...

 

 

남자는 많았지만 다들 마음은 쏙 빼고 몸만 보여준 채 사라졌지. 아니, 사실 내가 먼저 그랬던 걸지도 몰라. - 172쪽

 

책에서 언급된 적지 않은 만남이 섹스로 시작해서 섹스로 끝을 맺는다.

몸으로 만남이 시작되었지만 몸이 가까워지다 보니 마음을 얻고 싶었는데, 서로 마음은 잘 맞지 않았고

헤어지고 나니 그 만남에서 섹스를 빼고 의미를 찾을 수 없어 공허했다, 정도로 해석했다.

남자의 시각에서 보면 자의적이거나 일방적인 문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김얀의 여행은 사랑만큼이나 즉흥적이다.

연인이 된 이후나 헤어진 이후를 생각하지 않고 사람에게 다가가듯

돌아온 후의 삶을 생각하지 않고 떠난다.

객기로 치부할 수도 있겠으나 쉽지 않은, 독창적인 삶의 방식이기도 하다.

이것저것 따지면서 좀처럼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즉흥적인 떠남과 돌아옴은 자유의 다른 이름이겠다.

하지만 자유에 부수되는 책임의 무게를 알기에 그 자유가 온전히 편안하지만은 않았다.

내심 개방적인 사고를 하고 있다고 자부했는데 아직도 보수적인 틀에 갇혀 있는 건지도...

 

내 단견이겠지만 이병률의 사진이 글과 겉돈다는 생각은 지울 수 없다.

책 속에 수록된 삽화나 사진이 반드시 글의 내용과 연관될 필요는 없겠지만

이 책의 사진들은 몇몇을 제외하곤 글의 느낌과도 왠지 이질감이 느껴졌다.

그래서 글은 글대로 읽고 사진은 사진대로 따로 감상하는 느낌이 들었다.

뮌헨 편에 수록된 사진에, 잘은 모르지만 독일어 대신 영어와 스페인어가 등장해서일지도...

 

책은 베이징에서 '너'에게 보내는 편지로 끝난다.

여행의 끝, 자신을 찾아 떠난 여정의 끝은 다시 '너'일까?

이제서야 몸과 마음이 하나 되는 진정한 사랑을 찾은 걸까?

공감하고 싶지만 공감할 수 없어서 책장을 덮는 마음이 쓸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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