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달러의 기적 - 마케팅 천재 래리 라이트의 맥도날드 회생 스토리
래리 라이트 & 조안 키든 지음, 임지은 옮김 / 길벗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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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우리 동네엔 햄버거 가게가 둘 있었다. 그 중 하나가 맥도날드였다. 하지만 몇 년전, 숱하게 드나들었던 추억의 햄버거집은 중학생을 지나고 고등학생이 되니 사라져 버렸다. 자연히 나도 시간이 없는지라 햄버거집은 들리기는 커녕 점차 잊혀져 갔다. 그리고, 딱히 우리 동네뿐만 아니라 다른 곳의 맥도날드가 없어지고 다른 건물이 드러서고 있다는 것도 알았다. 어릴 때, 주위로 눈만 돌리면 있던 'M'자 모양의 노란 마크가 이젠 더이상 잘 보이지 않았다.

 

맥도날드와 관련되 추억이 참 많다. 집 근처에 있어 많이 가기도 했거니와 맥도날드는 초등학교 시절 나보다 세 살 어린 동생과 함께 백화점을 놀이터마냥 돌아다니고 배가 고플쯤 항상 마지막 코스로 가는 우리의 놀이터였다. 부모님이 함께 나가기 곤란할 땐 어머니께선 이렇게 내게 돈 만 원을 꼭 쥐여주고, 나와 동생은 집 근처인 백화점을 짧막한 여행처럼 돌아다닌 기억이 난다. 가끔은 영화를 보고, 예전에 좋아했던 만화로 된 고전문학시리즈를 사거나 구경하러 서점에 놀러가기도 했다. 어린이 대공원도 버스만 타고 가보고 가끔씩은 특별하게 동생과 스티커 사진도 찍기도 했다. 이런 웃음이 나는 추억의 종착지가 매번 맥도날드였던 것 같다.

 

한번은 어릴 때 정말 우리를 잘 돌보아 주고, 우리 남매를 잘 챙겨주시던 장원 한자 선생님과 즐겁게 딱 한 번 외출을 한 적이 있다. 한자 선생님이 워낙 우리를 예뻐해주셔 어머니께선 하루동안 우리를 데리고 부탁한다며 작은 돈과 함께 진심어린 마음으로 함께 보내셨다. 그 땐 그 선생님을 너무 좋아했던 나와 동생인지라, 오랜만에 떠나는 놀이마냥 정말 즐거워했다. 수영장에서 갖은 놀이를 하고, 재미난 영화를 보고 '배고프지? 뭐 먹을래?'하고 선생님이 물었을 때, 내가 간 곳도 '맥도날드'였다. 어쩌면 나는 다른 음식점은 잘 알지 못했는지도 모르겠다. 맥도날드는 그냥 그렇게 추억이 많이 담긴, 자주 가던 곳이었다.

 

지금 생각하니, 갑자기 맥도날드가 사라졌을 때 나는 이젠 필요 없었지만 꼬꼬마 시절의 추억의 장소가 사라지게 되었던 것이다. 어느 순간부터 로날드 맥도널드나 흰 복장에 배가 빵빵한 KFC할아버지나 별반 다를 바 없어 보일 무렵부터 난 어린 시절의 추억 또한 사그리 잊어버렸다. 그리고 오늘 '2달러의 기적'을 읽고 노란 마크를 본 순간부터, 잊고 있었던 추억이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아, 맥도날드.

 

2달러의 기적은 맥도날드가 갑자기 사라졌다가 요즘 드문드문 보이는 이유를 설명해주고 있었다. 이렇게 맥도날드를 되살리는 데 주역이었던 래리 라이트와 조안 키든이 저자로써 맥도날드에 대해 이야기해주고 있어 읽으면서 훨씬 신뢰감이 들었다. 그리고 들려주는 소소한  이야기들도 재미있었다. 책에서 가장 강조하고 있는 것은 맥도날드의 '브랜드' 가치였다. 개혁정신이 부족하여 추락하던 패티 한 조각은 맥카페, 드라이브스루 등으로 다시 고급 패티로 살아나기 시작한다. 래리 크룩은 한때 "햄버거 패티는 고기 조각이다. 하지만 맥도날드 햄버거는 캐릭터가 있는 고기 조각이다."고 말했는데, 이제서야 다시 맥도날드는 그 캐릭터를 찾은 것이다. 이 책을 계기로 내가 지녔던 맥도날드의 캐릭터 역시 찾게 되어 꽤나 즐거운 인상을 받은 것은 달리 말할 필요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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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용을 쏴라 - 1925년 경성 그들의 슬픈 저격 사건 꿈꾸는 역사 팩션클럽 1
김상현 지음 / 우원북스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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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너의 운명, 정말 딱 한발이면 될까. 이 말은 생각하기 나름이다. 여기서 너는 달래가 죽여야 했던 '상대'가 될 수도 있고, 달래 자신도 될 수도 있다. 즉, 자신의 운명이 지금 쏠 이 한방으로 모두 타-앙, 하고  끝날 수 있을까 하는 말이다. 그래서 김근옥의 말도, 조수윤의 말도 될 수 있다. 더 나아가 '너'는 우리민족 그 자체가 될 수도 있다. 우리 민족의 운명이 이렇게 수많은 독립 운동가들의 노력으로 과연 끝날 수 있을까, 하는 말이다. 그러한 근원적 물음이 1920년대 시작된다.


 


팩션, 이완용을 쏴라에서는 그러한 우리 민족의 심정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소설의 마지막 즈음 자신의 의견 없이 아버지를 따르기만 했던 달래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온다.

"하나만 약속해 주세요.(...) 이번 일 끝나면 저, 더 이상 사람을 쏘지 않게 해 주세요."

사냥에 능숙하고, 몇번이나 총을 쏘았을때도 담담했던 달래는 소설 속에서 내내 자신이 원하는 것이 뭔지, 정말 이렇게 사는 것이 자신이 바라는 바인지 고민한다. 22살의 그래도 어린 나이답지 않게 담담하게 사건에 임했던 달래는 남모를 아픈 과거도 가지고 있었다. 그런 과거는 귀가 멍멍하도록 울려퍼지는 총소리에 의해 되살아난다. 예전에, 무능하게 돈만 생기면 도박판에서 날리고, 자신과 노모를 때리던 남편을 타앙, 한발의 총성으로 그 기억을 날려버린 것이다. 그리고 총성은 더해간다. 그 때 달래는 위와 같은 말을 한다. 이젠 자신이 원하는 삶을 한번이라도 살고 싶은 것이다. 내겐 그 말이 더 이상 타인을 쏠 필요 없는 세상에 대한 바람으로 아스라하게 들려왔다.


 


예전에 읽었던 소현과 비교해서 볼 때, 나는 역사소설을 다른 면모를 볼 수 있었다. 문체가 너무 아름다워, 애처롭게 느껴졌던 소현세자와 달리 달래의 이야기는 흥미진진한 역사 속 한 장면으로 내게 다가왔다. 팩션 소설답게 소설에는 지난 20년대에 볼 수 있던 역사적 배경과 인물이 잘 드러나 있었다. 그 중 인상깊은 것 중 하나가 불과 서른셋에 사망했던 소파 방정환이 소설 속 감초로 등장한 것이다. 방정환은 소설 속에서 남다른 애국자의 면모를 지니며, 일본 순사의 길을 걸으려 했던 조선 순사 박을문에게 큰 영향을 끼치고는 지병으로 사망한다. 소설 속에서는 색동회의 회장으로 그가 지녔던 사고나 생각이 작가의 상상력으로 박을문과 연관하여 잘 드러나고, 또한 그가 소설의 중요한 역할을 한 점 또한 역사소설로서의 매력을 한층 더해준 것 같다. 후에, 박을문은 애국자로 전향하여 의열단에 입단한다.


 


중구난방으로 소설에 대한 이야기를 했지만 빠뜨릴 수 없는 것이 이 소설의 핵심 줄기인, 이완용 암살사건의 전말이다. 일단, 이완용의 공식적인 사인은 폐렴이다. 하지만 실제로 그가 어떻게 죽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 소설은 '이영구가 이완용을 암살하려 했다'는 역사적 사실로부터 시작된다. 소설 속 주인공도 이완용을 암살하려 했던 독립 운동가 중 한 사람이다. 그리고 두 사람, 세 사람 그리고 당시의 수많은 독립 운동가에게로 확산된다. 나는 이 소설의 결말이 가장 마음에 든다. 미리 말할 수는 없지만 현실적이면서도 역사적 흐름을 계속 지속시켜 준다는 점이 마음에 든다. 때문에 김근옥도, 달래도 소설 속 진부한 한 명의 인물이 아니라 모두 역사적 인물 중 한 사람이 될 수 있었다. 그래서 소설을 덮고 나서도 계속 30년대, 40년대의 슬픈 총소리가 연이어 들어왔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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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인의 행복한 책읽기 - 독서의 즐거움
정제원 지음 / 베이직북스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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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을 때에도 자신에 대해 '나는 똑똑한 사람이므로 이 내용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져야 한다. (...) 이미 마음속으로 항복한 채 시작한 전쟁에서 전리품을 얻을 수 있는 병사는 없는 것이다. - <어느 독서광의 생산적 책읽기 50>, 안상헌.

 

다음 구절은 저자가 발췌한 어느 책의 한 구절이다. 편견을 가지고 어떤 책은 힘겹게, 어떤 책은 즐거워 읽으려 했던 내게 약간의 빗금을 가져다 주었다. 얼굴이 표면적으로 붉어진 건 아니었지만, 내 마음 속에 스크래치처럼 한줄의 빗금이 그어졌다. 그래, 책을 읽는 데 조차 필요했던 건 자신감이었던 것이다. 유독 '자신감'이란 단어에, 그가 내포하고 있는 의미에 민감한 나였다.

 

나는 자신감이 있기도, 없기도 했던 아이였다. 그러니깐 내가 자신있는 건 뻔뻔할 정도로 무작정 해내려 했지만, 해보지 않아 낯설었던 것은 한걸음 발 디디는 것조차 망설였다. 이런 생각이 거듭되어 어린날 무책임하게 지녔던 도전의식을 차차 잃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난 자신감이 있기도, 없기도 한 아이가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자신감의 유무'의 비중이 점차 달라지는 것이다. 도전하지 않으면 더이상 자신있어 할만한 것도 사라졌다. 그렇게 얕은 지식으로 아슬아슬하게 살아 오던게 바로 직전, 지난 나날이었다.

 

다행히, 이런 생각과 태도는 대학교에 와서 많이 나아졌다. 폐쇄된 공간에서 정해진 공부만 해야했던 고등학교 시절과 달리, 대학교는 일단 시작부터 새로운 모임이니, 활동이 많았다. 그리고 주위 친구들도 해외 봉사라던가, 소록도 봉사, 배낭 여행, 육상 선수권 대회 안내원 등 다양한 활동을 하려 했다. 이런 상황에서 가만히 있는 건 '외톨이'를 자청하는 것이였다. 바로 적신호가 삑삑- 울려왔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사람을 많이 만나보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일단, 서울이니 지방이니, 아니면 그대로 대구니 해서 멀어졌던 고등학교 친구들과 다시 만나고 그 관계를 지속시키려고 노력했다. 원래 사람을 만나는 것을 은연 중에 두려워하는 난데, 한달전 오랜만에 연락이 온 중학교 동창에게 일부러 전화를 걸었다. 첫 마디가 낯설었다. 그렇지만, 점심약속을 탁 잡고 나니 괜스레 마음이 편해졌다. 친했던 친구였는데, 방금 아쉬웠던 감정을 유쾌한 수다로 바꾸고 싶다. 그게 곧 있을 12시의 약속이다.

 

이처럼 나는, 독서의 즐거움이 내세운 한마디 한마디에 자극을 받으면서 책을 읽었다. 책에서 <책은 도리어 '생각하는' 도구다.>라고 소개해 주었는데, 그게 마음에 꼭 닿아 내 생각이나 옛 기억으로 떠올랐다. 그리고 이렇게 내 기억으로 닿은 책들이 다른 책보다 훨씬 더 깊게 읽었다는 만족감까지 따라왔다. 정말, 독서의 '처음'을 도와주는 작가의 목적이 내겐 대성공으로, 그래서 나는 이 책의 최고의 독자가 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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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 차일드
김현영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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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르르, 하고 태아령이 웃었다. 이야기 내내 무뚝뚝하고 세상의 감정을 배우지 못한 듯 한없이 차갑기만 했던 녀석이었다. 한 명인지 두 명인지, 어쩌면 수 만개의 집단 태아령이었을 수도 있는 그런 존재가 소설을 읽는 내내 독자인 나를 뛰어넘어 저 멀리서 내게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었다. 너무 광범위한 '우리'는 나 또한 소설의 일부일 뿐인 그저 한 사람의 독자로 만들어버렸다. 그런 태아령이, 그제서야 웃었던 것이다. 진과 수가 또다시 율을 만나고, 마지막에 작가가 하고 싶었던 말을 인터뷰를 통해 툭 터놓은 이후에야 태아령은 드디어 가벼운 웃음을 챙길 수 있었다. 이렇게 웃을 수도 있는 녀석이었나. 이야기를 들려주는 태아령은 원래 웃음을 모르는 아이였다. 그러므로 소설도, 웃음없이 아슬아슬하게 전개되었다.

 

딸이 어미를 수거했다. 딸이 아비를 심사했다. 아들이 어미를 분류했다. 아들이 아비를 적재했다.

그리하여 자식이, 부모를 폐기했다.

어미의 뱃속에서 이미 난도질되었던 우리는, 그것을, 보았다. (129쪽)

 

작가 김현영씨의 <러브 차일드>를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주인공인 수도 폐기되고, 주인에 의해 한 팔이 잘려버린 진 또한 이제 쓸모 없는 존재가 되어 폐기된다. 마치 태어나지도 못한채 폐기되어버린 태아령처럼 말이다. 소설은 내내 이런 식으로 전개된다. 수와, 진과, 우리 동네와, 민간과, 지도 그룹, 251004231111의 이야기가 태아령의 시선에 부딪친다. 잊을만 하면 오싹하게 등장하는 여린 목소리가 소설이 진행되는 내내 들려온다. 작가가 뒤에 인터뷰에서 우려했던대로, 난 이 '우리'로 다가오는 태아령의 시선이 낯설었다. 처음엔 신선하여 신나서 좇던 시선이 계속, 소설 끝까지 따라왔다. 그리고 정말 유령처럼 조용히 사라졌다. 그제서야 소설을 덮는 내 마음이 편해졌다.

<러브 차일드>에서는 책을 읽으면서 인상 깊은 구절이 있으면 붙여두는 포스트잇을 붙일 기회가 없었다. 지금 간신히 매달려 있는 색색의 포스트잇도 딱 세개 뿐이다. 이는 좋은 구절이나 공감되는 구절이 없었다는 게 아니다. 단지, 작가가 내세워 놓은 세계가 현실과 닿아있으면서도 미래일 듯한 모습을 적나라하게 그려놓아 조금 무서웠기 때문이다. 어쩔 땐 너무 공감되어 후다닥 넘겨버린 구절도 많았다.

 

제도만 받쳐준다면, 전에 없던 정서도 만들어낼 수 있었다.(131쪽)

 

러브차일드의 세계는 늙어가면 갈수록 미안해지는 곳이였다. 오싹했다. 자녀를 위해 헌신적 사랑으로 쏟아부었던 부모의 정성은 조금도 존중되지 않았다. 그저 60세에 닿지 않으면 되는 그런 세계였다. 60세가 닿으면 이제 더이상 세상의 '짐'으로서 쓰레기 분류되듯, 폐기장으로 끌려갔다. 재활용 심사라는 것도 있었지만, 그렇게 심사되는 동안, 우리의 어머니와 아버지의 인권은 조금도 존중되지 않았다. 감정이 현실에 메몰되어 한방울까지 싹 메말라버린 시대가, 국가의 제도로 인해 도래되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런 세상이 낯설지가 않았다.

러브차일드의 내용뿐만 아니라 또 인상깊게 본 것은 소설의 전개 순서였다. 0.Intro 다음으로 나온 내용은 6.폐기물이었다. 처음엔 내가 잘못보았나 싶어 다시 보기도 하고, 잘못 프린트가 되었나 싶어 제일 앞장의 차례를 살피기도 했다. 바로 삭만한 현실을 읽어야 했던 내 마음은 그리 편하지만은 않았다. 다소 충격적이었고, 그래서 더 소설을 읽어내고 싶었다. 어떻게 이런 세계가 이야기 될 건지 수를 따라, 진을 따라, 한명한명씩 등장하는 인물에 따라 읽게 되었다. 작가는 조용히 세계를 카운트다운하듯, 654321 그리고 다시 0으로 이 무지막지한 세계를 이야기 했다. 이미 한 번 충격을 받은 난 이제 1234567의 제대로된 순서로 이 세계를 다시 고찰해 볼 수 있었다.

작가 또한 한없이 이성적인 시각을 고수하면서 많은 고통을 받은 듯 했다. 물론 러브차일드는 작가, 김현영이 만들어낸 허구적인 세계지만 소설을 쓰는 동안 만큼은 작가에게 가득 찬 자신의 세계가 되었을 것이다. 그리곤 조물주의 입장으로 고통받는 수와 진을 보았을 것이다. 뒤에, 작가의 인터뷰에서 김현영은 이렇게 말한다.

 

특히 그 챕터를 쓸 때는 내가 만든 세상이지만 너무 끔찍해서  보고 있기 힘들었거든요. 제가 저를 원망하며 썼습니다.

 그런 소설을 쓰는 제가 죽이고 싶을 만큼 싫었어요.

 

 

부드러운 도넛을 베어 물었을 뿐인데도 이가 부러지고 때로는 하혈이 이어졌지만 참혹한 세계에 던져진 내 인물들을 생각하면 겨우 그것밖에 아프지 못해 미안하고 또 미안했다. 하나의 장면을 쓰고 나서 곧바로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지 못할 때 (...) 이번엔 경우가 달랐다. 다음 장면은 잘도 떠올라주었다. 그래서 더더욱 질주할 수가, 없었다. 내 인물들이 가야할 곳이 점점 더 참혹해졌으므로. 어떻게든 그곳에 가야할 시간을 미루고 싶었다. 날 선 스케이트를 벗고 맨발로 걷기로 했던 처음 다짐이 겨우 나를 ,살렸다.

 

 

 그렇게 만들어낸 세계를 너무 잘 만들어진 소설로 볼 수 있었던 독자가 된 점이 또 하나의 '축복'을 만난 양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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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현
김인숙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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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아주 느리게 지나갔다. 물론 이는 내가 사흘에 걸쳐 느릿느릿 읽은 탓도 있겠지만, 이와는 별다른 문제였다. 세자 소현의 이야기는 아주 조심스럽게 지나갔다. 그래서 나도 조심스럽게 그 날의 이야기를 읽었다. 그래서 나는 누가 그만 읽어, 라고 한 것도 아닌데 소설을 마치 역사 드라마를 기다리는 양 슬쩍슬쩍 보았다. 그래서 '소현'은 여러 편의 이야기로 나뉘어 띄엄띄엄, 자신의 심정을 읊어나갔다. 나는 매번 소현의 다음 화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노루는 세자였다. 구왕이 그걸 알았고, 세자가 그걸 모르지 않았다. 청의 살을 맞고 지금 볼모로 끌려가고 있으나, 세자는 이미 죽은 노루가 아니라 앞으로 죽어가야 할 노루였다. 그러니깐 아직은 살아 있는 노루인 것이다. … 세자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적의 화살뿐만 아니라, 적에게 살을 맞도록 내몬 조선의 몰이꾼들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을 구왕은 이미 그 때 알고 있었을까."(37p)
 

 이처럼 세자 '소현'은 한 마리의 노루였다. 적의 화살뿐만 아니라, 제 나라의 몰이꾼 또한 조심해야 하는 한없이 불안한 노루였다. 소설에서도 이러한 세자의 괴로운 심정과 심란한 마음이 잘 묘사되어 있다. 소현은 어느 곳에서도 편안히 있을 수 없었다. 4년 만에 잠깐 오게 된 조국에서조차, 이미 세자를 세자로서 기억하고 있지 않았다. 작가 김인숙은 334쪽에 달하는 이야기 내내, 소현의 안타까운 아픔을 절절히 읊어주었다. 너무나 아름다운 언어로 말이다. 
 

나는 작가의 이러한 언어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다. 원래 이 책을 읽고 싶었던 목적도 그것이었다. 작가가 소현에 관한 역사적 사실을 어떻게 풀어낼 것인가. 솔직히 '소현'이란 인물에 대해 -책에 대한 예의도 없이- 난 아무 것도 모른 체 이 책을 읽어 나갔다. 그래서 처음엔 소현이 어떤 처지에 처했는지, 세자의 마음이 어떠한지, 여기 나오는 인물들은 누군지 파악하는 데 꽤 오래 걸렸다. 그냥, 작가의 문장에 매료되어 소설을 읽어나갔다.

 
그런데 난 소설을 읽는 내내 섬뜩하여 쉽게 소현의 이야기에 동참할 수가 없었다. 왠지 소현 세자와 조금이라도 관여가 된다면 금세 내 목이 숭강, 하고 달아나 버릴 것 같았다. 섬뜩했다. 내 목숨은 하난데, 소현에겐 수만개의 목숨이 주어진 것 같았다. 그는 임금에 대한 '충'을 잘 모르는 내게도 자신이 고귀한 존재인 것을 힘들게 알려주고 있었다. 그는 너무 힘들었다. 고귀한 소현은 목숨을 위태롭게 연명하고 있었다.


"내가 쉬어야겠다……내가 이제 쉬어야 할 것이다……."(278p)


홀로된 소현의 간절한 마음을 보였다.
그리고 내 목은 소현의 목이 되었다가, 흔의 목이 되었다가, 막금의 목이 되었다가 하였다. 그렇게 내 목숨 또한 오갔다. 목숨이 오가는 이야기였다.
 

"여인은 다시 고개를 숙이고, 죽어야 한다면 죽겠다는 듯이 흰 모가지를 늘어뜨리고 있었다." (260p)
 

그러니깐 나는 '소현'에서 묘사된 역사적 현실에 무작정 겁을 먹었던 것이다. 읽는 내내 내 가슴은 콩닥콩닥 했다. 내가 소현의 마음을 감당하기에는 아직 그처럼 굳지 못하였다. 이렇게, 나는 작가의 언어로 '소현'을 읽고 있었다. 책의 모든 구절을 여기 옮기고 싶을 정도로 여운이 깊게 남았다. 또한 아직도 몸에 남아있는 이 여운에 대해 좀 더 생각해 볼 필요도 있을 것 같다. 막 '소현'에서 벗어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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