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완용을 쏴라 - 1925년 경성 그들의 슬픈 저격 사건 ㅣ 꿈꾸는 역사 팩션클럽 1
김상현 지음 / 우원북스 / 2010년 4월
평점 :
절판
너의 운명, 정말 딱 한발이면 될까. 이 말은 생각하기 나름이다. 여기서 너는 달래가 죽여야 했던 '상대'가 될 수도 있고, 달래 자신도 될 수도 있다. 즉, 자신의 운명이 지금 쏠 이 한방으로 모두 타-앙, 하고 끝날 수 있을까 하는 말이다. 그래서 김근옥의 말도, 조수윤의 말도 될 수 있다. 더 나아가 '너'는 우리민족 그 자체가 될 수도 있다. 우리 민족의 운명이 이렇게 수많은 독립 운동가들의 노력으로 과연 끝날 수 있을까, 하는 말이다. 그러한 근원적 물음이 1920년대 시작된다.
팩션, 이완용을 쏴라에서는 그러한 우리 민족의 심정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소설의 마지막 즈음 자신의 의견 없이 아버지를 따르기만 했던 달래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온다.
"하나만 약속해 주세요.(...) 이번 일 끝나면 저, 더 이상 사람을 쏘지 않게 해 주세요."
사냥에 능숙하고, 몇번이나 총을 쏘았을때도 담담했던 달래는 소설 속에서 내내 자신이 원하는 것이 뭔지, 정말 이렇게 사는 것이 자신이 바라는 바인지 고민한다. 22살의 그래도 어린 나이답지 않게 담담하게 사건에 임했던 달래는 남모를 아픈 과거도 가지고 있었다. 그런 과거는 귀가 멍멍하도록 울려퍼지는 총소리에 의해 되살아난다. 예전에, 무능하게 돈만 생기면 도박판에서 날리고, 자신과 노모를 때리던 남편을 타앙, 한발의 총성으로 그 기억을 날려버린 것이다. 그리고 총성은 더해간다. 그 때 달래는 위와 같은 말을 한다. 이젠 자신이 원하는 삶을 한번이라도 살고 싶은 것이다. 내겐 그 말이 더 이상 타인을 쏠 필요 없는 세상에 대한 바람으로 아스라하게 들려왔다.
예전에 읽었던 소현과 비교해서 볼 때, 나는 역사소설을 다른 면모를 볼 수 있었다. 문체가 너무 아름다워, 애처롭게 느껴졌던 소현세자와 달리 달래의 이야기는 흥미진진한 역사 속 한 장면으로 내게 다가왔다. 팩션 소설답게 소설에는 지난 20년대에 볼 수 있던 역사적 배경과 인물이 잘 드러나 있었다. 그 중 인상깊은 것 중 하나가 불과 서른셋에 사망했던 소파 방정환이 소설 속 감초로 등장한 것이다. 방정환은 소설 속에서 남다른 애국자의 면모를 지니며, 일본 순사의 길을 걸으려 했던 조선 순사 박을문에게 큰 영향을 끼치고는 지병으로 사망한다. 소설 속에서는 색동회의 회장으로 그가 지녔던 사고나 생각이 작가의 상상력으로 박을문과 연관하여 잘 드러나고, 또한 그가 소설의 중요한 역할을 한 점 또한 역사소설로서의 매력을 한층 더해준 것 같다. 후에, 박을문은 애국자로 전향하여 의열단에 입단한다.
중구난방으로 소설에 대한 이야기를 했지만 빠뜨릴 수 없는 것이 이 소설의 핵심 줄기인, 이완용 암살사건의 전말이다. 일단, 이완용의 공식적인 사인은 폐렴이다. 하지만 실제로 그가 어떻게 죽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 소설은 '이영구가 이완용을 암살하려 했다'는 역사적 사실로부터 시작된다. 소설 속 주인공도 이완용을 암살하려 했던 독립 운동가 중 한 사람이다. 그리고 두 사람, 세 사람 그리고 당시의 수많은 독립 운동가에게로 확산된다. 나는 이 소설의 결말이 가장 마음에 든다. 미리 말할 수는 없지만 현실적이면서도 역사적 흐름을 계속 지속시켜 준다는 점이 마음에 든다. 때문에 김근옥도, 달래도 소설 속 진부한 한 명의 인물이 아니라 모두 역사적 인물 중 한 사람이 될 수 있었다. 그래서 소설을 덮고 나서도 계속 30년대, 40년대의 슬픈 총소리가 연이어 들어왔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