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 차일드
김현영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4월
평점 :
절판


까르르, 하고 태아령이 웃었다. 이야기 내내 무뚝뚝하고 세상의 감정을 배우지 못한 듯 한없이 차갑기만 했던 녀석이었다. 한 명인지 두 명인지, 어쩌면 수 만개의 집단 태아령이었을 수도 있는 그런 존재가 소설을 읽는 내내 독자인 나를 뛰어넘어 저 멀리서 내게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었다. 너무 광범위한 '우리'는 나 또한 소설의 일부일 뿐인 그저 한 사람의 독자로 만들어버렸다. 그런 태아령이, 그제서야 웃었던 것이다. 진과 수가 또다시 율을 만나고, 마지막에 작가가 하고 싶었던 말을 인터뷰를 통해 툭 터놓은 이후에야 태아령은 드디어 가벼운 웃음을 챙길 수 있었다. 이렇게 웃을 수도 있는 녀석이었나. 이야기를 들려주는 태아령은 원래 웃음을 모르는 아이였다. 그러므로 소설도, 웃음없이 아슬아슬하게 전개되었다.

 

딸이 어미를 수거했다. 딸이 아비를 심사했다. 아들이 어미를 분류했다. 아들이 아비를 적재했다.

그리하여 자식이, 부모를 폐기했다.

어미의 뱃속에서 이미 난도질되었던 우리는, 그것을, 보았다. (129쪽)

 

작가 김현영씨의 <러브 차일드>를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주인공인 수도 폐기되고, 주인에 의해 한 팔이 잘려버린 진 또한 이제 쓸모 없는 존재가 되어 폐기된다. 마치 태어나지도 못한채 폐기되어버린 태아령처럼 말이다. 소설은 내내 이런 식으로 전개된다. 수와, 진과, 우리 동네와, 민간과, 지도 그룹, 251004231111의 이야기가 태아령의 시선에 부딪친다. 잊을만 하면 오싹하게 등장하는 여린 목소리가 소설이 진행되는 내내 들려온다. 작가가 뒤에 인터뷰에서 우려했던대로, 난 이 '우리'로 다가오는 태아령의 시선이 낯설었다. 처음엔 신선하여 신나서 좇던 시선이 계속, 소설 끝까지 따라왔다. 그리고 정말 유령처럼 조용히 사라졌다. 그제서야 소설을 덮는 내 마음이 편해졌다.

<러브 차일드>에서는 책을 읽으면서 인상 깊은 구절이 있으면 붙여두는 포스트잇을 붙일 기회가 없었다. 지금 간신히 매달려 있는 색색의 포스트잇도 딱 세개 뿐이다. 이는 좋은 구절이나 공감되는 구절이 없었다는 게 아니다. 단지, 작가가 내세워 놓은 세계가 현실과 닿아있으면서도 미래일 듯한 모습을 적나라하게 그려놓아 조금 무서웠기 때문이다. 어쩔 땐 너무 공감되어 후다닥 넘겨버린 구절도 많았다.

 

제도만 받쳐준다면, 전에 없던 정서도 만들어낼 수 있었다.(131쪽)

 

러브차일드의 세계는 늙어가면 갈수록 미안해지는 곳이였다. 오싹했다. 자녀를 위해 헌신적 사랑으로 쏟아부었던 부모의 정성은 조금도 존중되지 않았다. 그저 60세에 닿지 않으면 되는 그런 세계였다. 60세가 닿으면 이제 더이상 세상의 '짐'으로서 쓰레기 분류되듯, 폐기장으로 끌려갔다. 재활용 심사라는 것도 있었지만, 그렇게 심사되는 동안, 우리의 어머니와 아버지의 인권은 조금도 존중되지 않았다. 감정이 현실에 메몰되어 한방울까지 싹 메말라버린 시대가, 국가의 제도로 인해 도래되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런 세상이 낯설지가 않았다.

러브차일드의 내용뿐만 아니라 또 인상깊게 본 것은 소설의 전개 순서였다. 0.Intro 다음으로 나온 내용은 6.폐기물이었다. 처음엔 내가 잘못보았나 싶어 다시 보기도 하고, 잘못 프린트가 되었나 싶어 제일 앞장의 차례를 살피기도 했다. 바로 삭만한 현실을 읽어야 했던 내 마음은 그리 편하지만은 않았다. 다소 충격적이었고, 그래서 더 소설을 읽어내고 싶었다. 어떻게 이런 세계가 이야기 될 건지 수를 따라, 진을 따라, 한명한명씩 등장하는 인물에 따라 읽게 되었다. 작가는 조용히 세계를 카운트다운하듯, 654321 그리고 다시 0으로 이 무지막지한 세계를 이야기 했다. 이미 한 번 충격을 받은 난 이제 1234567의 제대로된 순서로 이 세계를 다시 고찰해 볼 수 있었다.

작가 또한 한없이 이성적인 시각을 고수하면서 많은 고통을 받은 듯 했다. 물론 러브차일드는 작가, 김현영이 만들어낸 허구적인 세계지만 소설을 쓰는 동안 만큼은 작가에게 가득 찬 자신의 세계가 되었을 것이다. 그리곤 조물주의 입장으로 고통받는 수와 진을 보았을 것이다. 뒤에, 작가의 인터뷰에서 김현영은 이렇게 말한다.

 

특히 그 챕터를 쓸 때는 내가 만든 세상이지만 너무 끔찍해서  보고 있기 힘들었거든요. 제가 저를 원망하며 썼습니다.

 그런 소설을 쓰는 제가 죽이고 싶을 만큼 싫었어요.

 

 

부드러운 도넛을 베어 물었을 뿐인데도 이가 부러지고 때로는 하혈이 이어졌지만 참혹한 세계에 던져진 내 인물들을 생각하면 겨우 그것밖에 아프지 못해 미안하고 또 미안했다. 하나의 장면을 쓰고 나서 곧바로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지 못할 때 (...) 이번엔 경우가 달랐다. 다음 장면은 잘도 떠올라주었다. 그래서 더더욱 질주할 수가, 없었다. 내 인물들이 가야할 곳이 점점 더 참혹해졌으므로. 어떻게든 그곳에 가야할 시간을 미루고 싶었다. 날 선 스케이트를 벗고 맨발로 걷기로 했던 처음 다짐이 겨우 나를 ,살렸다.

 

 

 그렇게 만들어낸 세계를 너무 잘 만들어진 소설로 볼 수 있었던 독자가 된 점이 또 하나의 '축복'을 만난 양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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