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신 - 한차현 장편소설
한차현 지음 / 문이당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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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연은 '변신'했다. 그리고 허무한다르아한다르와 펠라커닐링 행성 그리고 K성으로 떠났다. 변신을 거듭한 그는 완전히 지쳐버렸다. 여기서 '변신'의 의미는 무엇인가. 한차현의 소설 <변신>은 굉장히 특이한 소설이다. 이 소설이 얼마나 특이한가를 따지면,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수만가지의 소설을 드나들었다 라고 말할 수도 있다. 한국의 어느소설로부터 베르베르의 소설을 드나들다가도, 그저 흔한 종교 소설이 되기도 했고, 저멀리 내가 읽어보지 못한 안드로메다의 소설이 지구로 굴러떨어졌나 싶을 정도로 정신없이 진행되었다. 그러니깐 이 소설은 말이다.

 

나는 현실적인 모습을 가상으로 심도 있게 다룬 현대소설을 좋아한다. 그리고, 처음 보았던 한차현이라는 작가의 '장편소설'도 아주 평범한 문구로 맞이했다. 표지에 조금 특이한 외계인이 자리잡고 있었지만, 그저 특이한 일러스트겠거니, 하고 신경 쓰지 않았다. 다만, 주인공 부부인 차연과 소원에게 극도로 변화무쌍한 일이 일어났을 뿐이다. 그들의 시간은 소설이 진행될수록 골때리게 왜곡되고 있었다. 그의 소설은 말 그대로 '어느날, 외계인을 만나 우주로 떠날 수 있다면'이라는 SF적인 심심한 물음으로부터 시작한다. 하지만 '평범'을 가뿐히 뛰어넘어 시작하는 것이다. 어쩐지, 다른 그의 소설집인 '내가 꾸는 꿈의 잠은 미친 꿈이 잠든 꿈이고 네가 잠든 잠의 꿈은 죽은 잠이 꿈꾼 잠이다', '대답해 미친 게 아니라고', '사랑이라니 여름 씨는 미친 게 아닐까'와 같이  제목이 별나지 않다고 했다. '변신', 얼마나 심심한가. 그래서 이번엔 내용으로 이만큼이나 별난 것일까.

 

독특했다. 여느 소설처럼 캐릭터가 독특한 것도, 스토리가 다이나믹한 것도 아니었다. 그냥 독특했다. 평범한 목사인 차연은 아주 일상적이다 못해 지루한 인물이었고, 착하디 착한 K성의 촌장, 지구의 이야기를 궁금해 하는 다니엘 역시 그저 흔해빠진 이름을 가진 '출연진'일 뿐이다. 소설의 내용도 한 마디로 말하면 차연이 헤어진 아내를 찾는 이야기로 말할 수 있다. 얼마나 평범한가. 이 모든 게 그의 전혀 유치하지 않은 상상력으로 다시 태어난다. 베르베르의 '파피용'이 지구를 떠나는 것처럼 차연이 지구를 떠나니깐. 차연은 소원 없는 삶을 생각해 본 적이 없거든.

 

책 뒤쪽에 실린 인터뷰에서 소설가로서 목표가 있다면, 하는 질문에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내 글을 진정으로 이해하며 즐길 줄 아는 독자, 내 새로운 작품이 나오기를 기다려주는 독자를 갖는 일입니다.' 여기서 난 그가 참 말을 바로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해하며.' 그의 글은 진정으로 이해가 필요하다. 방민호 문학평론가는 이 책을 가까이 하려면, 원리를 버리고 길들여질 필요가 있다고 한다. 작가는 나를 자연스럽게 '변신'에 길들여지게 하였다. 근 450페이지에 달하는 소설의 내용이 방대한 것도, 나를 이렇게 길들여버릴려고 있었나 싶은 정도로. 그의 소설은 독특한만큼 뭔가, 길들여지고 싶은 매력이 있다. 나는 비록 <변신>을 진정으로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한차현씨의 새로운 소설이 나오기를 바라는 독자쯤으로는 머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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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극한기
이지민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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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한번은 꼭 '청춘'이란 단어가 제목에 들어간 소설을 쓰고 싶었다.'라고 작가는 말한다. 그녀가 생각하는 '청춘'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일단, 청춘의 사전적 의미부터 한 번 찾아보았다. 청춘이란, 새싹이 파랗게 돋아나는 봄철이라는 뜻으로, 젊은 나이 또는 그런 시절을 이르는 말이란다. 즉, 젊음이 아름답게 빛날 수 있는 시기라는 것이다. 나는 '청춘'이라는 말을 중학교 때 민태원의 '청춘예찬'이라는 글을 접하면서 알게 되었다. 민태원은 청춘을 듣기만 해도 설레는 말로, 소개한다. 어쨌든, 무지하게 멋지고 설레는 단어임에는 틀림없다. 그건, 요즘 방영하는 KBS '청춘불패'만 봐도 그렇다. 

아니 그런데,  난 '청춘불패'란 방송을 보면서 왜 청춘이라는 단어를 멋있게 생각하고 있었던 거지? '청춘불패'는 청춘이라고 할 수 있는 연예인들이 나와 산골 농가에서 이름하여 '아이돌 촌'을 일구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야말로 청춘들이 나와서 그들의 젊음의 열기를 내뿜는 현장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나는 그 젊음의 열기가 멋있었던 것일까. 도무지 나 또한 '청춘'이라는 단어에 왜 이렇게 열광하게 되었는지 그 이유를 잘 모르겠다. 난, 21세가 되는 지금 동안 청춘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살았는데 말이지. 이렇게 막연한 청춘을 오늘, '청춘극한기'로 다시 만나게 되었다.

 

소설의 내용이 매우 특이하다. 우리나라에 신종 플루가 유행할 즈음, 소설 속에선 희한한 러브 바이러스가 맴돌기 시작한다. 극성으로 나타날 경우, 걸린 사람이 죽을 수도 있는 그런 지독한 녀석이다. 기분이 최고조가 되고, 즐거웠거나 마음에 담아두었던 환상이 보이고, 내 눈앞에 있는 사람이 한없이 사랑스러워 '젠장, 사랑합니다.'라고 밖에 말을 내뱉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도래하는 그런 고약한 증상을 가져오는 질병인 것이다. 젠장, 내가 눈 앞의 이 사람을 방금 전까지 미워했더라도 말이다. 이 병이 여자의 소개팅남이었던 과학자 남수필을 앗아가고, 그의 소개팅녀였던 어줍잖은 작가인 '내'게 침투해올 무렵, '나'는 위의 말을 내뱉게 된다. 젠장, 사랑합니다. 정말 사랑하지도 않는 퉁명스런 과학자 이균한테 말이다. 그리고 나는 스스로 이 병을 나을 수 있는 치료약 개발을 위해 실험용 마우스 처지가 되고 만다.

 

"당신처럼 재수 없는 인간한테 사랑을 느껴야만 하는 어이없는 처지인데. 이런 저주받은 내 상황이 이해가 가요? 내 안의 정체 모를 병원균이 만든 질병 때문에 나는 지금 말도 안 되는 상대한테 마음을 뺏기고, 그런 내 마음을 전하고 싶어 땀을 뻘뻘 흘리고,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주제에 이렇게 행복을 느끼고 있다고요!"(187p)

 

나, 옥택선은 이균에게 말도 안되는 고백을 하고 나서 이렇게 말한다. 작가는 매사에 무심했던 '나'에게 OTS바이러스-주인공, 오택선의 이름을 딴 러브 바이러스-를 주입함으로써, 청춘의 극한을 맛보게 한 것이 아닐까. 아마 작가가 생각하는 청춘은 이런 것인 것 같다. 무엇을 보아도 사랑스럽고, 앞길이 어떻게 되던간에 그저 행복한 증상, 청춘은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니깐 청춘이라면 이 정도의 OTS 바이러스는 자동으로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그 순간 나는, 내가 이 OTS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는지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그러니깐, 내가 아직은 '청춘'인지. 나는 내 눈 앞의 것을 두고 호되지 아파 하는지 말이다. 다행히 자그마한 열정 하나는 지니고 있다. 그래서 청춘에 10%쯤은 닿고 있다고 생각을 한다. 그저 꿈이 하나 있는데, 지금으로는 그 꿈을 꼭 이루고 싶은 마음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꿈과 관련된 일이라면 무엇이든 재미있다. 이런 나를 비롯한, 이 시대의 모든 청춘들에게 <청춘극한기>는 OTS 바이러스를 전파할 독특한 매개체가 될 것 같다. 세상의 청춘들이 모두 두근거리는 마음을 안고 살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작가의 글은 내 마음 속에 소중하게 자리 잡혀 있다. 매우 독특한 옥택선, 남수필, 이균, 미리, 파워레인저, 상도의 모습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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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 일본의 알몸을 훔쳐보다 1.2 세트 - 전2권
시미즈 이사오 지음, 한일비교문화연구센터 옮김 / 어문학사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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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 일본의 알몸을 훔쳐보다'을 읽다가 선거를 하러 갔다. 노인정으로 투표장소가 배치되어, 한쪽에는 느긋한 할아버지들이 장기를 두고 있고, 한쪽에서는 6시 마감 직전의 분주한 사람들의 모습이 이색적으로 보였다. 바삐 사람들이 오가는 통에 처음 유권자로서 이 모든 모습을 지켜 본 나는 근대 일본의 모습을 세세하고도 재치있게 담아낸 프랑스인 풍자화가 조르주 비고였다면 분명 바쁜 손으로 그림을 그리느라 정신이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하얗고 작은 박스 안으로 들어갔다. 순식간에 훌훌 내 권리를 털어버리고 투표장을 나섰다. 그 사이 비고의 그림도 얼른 완성되었을 것이다. 만약 비고가 지금 우리나라의 모습을 슥삭 그려내고 있었다면 말이다.

 

비고의 그림을 보는 동안은 시간이 가는 줄 몰랐다. 무작정 그림만 보았다면 그림에 조예가 부족한 나로서는 오히려 지루하여 이 책을 다 보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비고가 그려낸 그림의 센스를 꼭꼭 집어낸 해석의 도움으로 난 재미나게 주제마다의 일본의 구석구석을 볼 수 있었다. 철도, 병사, 게이샤 등의 1등석부터 3등석이, 오전부터 오후가 한편의 이야기처럼 지나갔다. 또한 그림마다 비고가 짧게 남긴 문구도 재미있었다. 그래서 그림이 더 실감나게 보였는지도 모르겠다.

 


 

다음은 세 번째 이야기였던 '게이샤의 하루' 중 일부이다. '객실 대여업소에서 경관의 기습을 당하다.', '경찰서에서 "이 주 동안 두 번이나 걸리다니 너무많아." "이제 다시 그런 짓 안 할 테니 제발 용서해 주세요."', '여자 팔자 뒤웅박 팔자'' 그림에서 꼭 튀어날올 법한 대사를 비고는 그림처럼 재미나게 기록해 놓았다. 아무리 붙잡히더라도 몸을 팔지 않고는 먹고 살 도리가 없는 가엾은 여자의 이야기가 그림의 일부로 이어져 있다. 이야기 소개와 함께 그림을 보면 뒤의 시계가 새벽 네 시를 가르키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 시간까지 이런 모습을 보고 그림을 그릴 정도라면 그 무렵에 경찰관 중 아는 사람이 있었을 거라는 짐작도 넌지시 던져준다. 다방면으로 이야기를 짚어주는 해설이 재미나다. 또한 내용과 관련된 비고의 저서도 함께 소개해준다. 경찰관의 하루를 스케치한 화집으로 비고의 '다망한 경관'(1891)이 있다. 

 

다음 그림을 잘 살펴보면 비고는 재미난 문구뿐만 아니라 그림 또한 아주 개구지게 그려놓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사실적으로 묘사한 일본인의 얼굴에서도 드러난다.

(1권, 93쪽)

 

기모노를 입고  있는 형사도 그 특유의 눈초리를 가지고 있고, 그 옆의 이 집의 하인인 듯한 여성은 '큰일 났다'는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다. 여러 그림에서 사람들의 위치나 상황에 따라 드러나는 실감나는 표정이 그림의 리얼리티를 높여준다. 실제로 비고의 스케치를 역동적이고도 높게 평가하는 이유도 이러한 리얼리티가 살아있는 얼굴을 구현하고, 실상의 묘사에 신경쓴 점이 크게 평가를 받고있다. 이러한 그의 풍자화는 당대의 모습을 쉽게 짐작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래서인지 저자의 말에 따르면 그의 풍자화, 보도화, 동판화는 일본의 역사책이나 교과서에도 자주 인용된다고 한다. 

 

 (2권, 210쪽)

 

비고의 스케치 중에는 자신의 삶의 흔적도 고스란히 담겨 있다. 다음은 그의 일본인 아내였던 사노 마스의 옆얼굴을 스케치한 것이다. 일본에서의 그의 생활에서는 그의 심정히 절절히 담긴 장문의 글은 거의 볼 수 없다. 그는 일기다운 것은 기록하지 않았다. 따라서 그의 일본에서의 생활은 수많은 그림 작품으로 밖에 확인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의 그림이 있는 한 100여년이 지난 그의 삶의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그 이유는 그림의 실상의 시선이 닿은 반대편에 비고가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그의 눈을 따라 그림을 보고, 더 깊숙히 그의 모습을 살펴볼 차례다. 그렇다면 그의 그림이 더 우스꽝스럽고도 진실되게 보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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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로 배우는 주식투자 - ‘300억 비밀 주식과외’편
윤재수 지음 / 길벗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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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펜서 존슨의 '선물'이 떠올랐다. 호아킴 대 포사다, 엘런 싱어의 '마시멜로 이야기'가 떠올랐다. 이처럼  '소설로 배우는 주식투자' 또한 중요한 이야기를 소설로 너무 재밌게 다루고 있었다. 위의 두 책처럼 훌훌, 소설치곤 가벼운 이야기가 재빠르게 다가왔다. 한없이 가벼운 이야기가 묵직한 단어를 쉽게 휙휙 넘겨버리는 게 아주 인상에 깊었다. 내가 '주식'을 이렇게 쉽게 읽어버리다니. 뭐, 정확한 '주식', 그 자체는 아니지만 말이다. 풋옵션, 콜옵션, ETE, 동시호가, 삐라, 데일리 등 알 수 없는 단어들이 순식간에 알고 있는 단어가 되어 머리에 콕 박혔다.

 

주식이 위아래를 마구잡이로 오르내리는 알 수 없는 그래프를 보이는 것 처럼 주인공 강준혁 또한 그렇게 다이나믹한 삶을 보내고 있었다. 다만, 상승 곡선을 기막히게 타고 하강 곡선이 90도를 넘어섰다는 점을 제외하고 말이다. 어디에서나 너무 지나쳐 좋을 건 없다. 없다. 정말 그의 삶은 온전한 주식세계만 반짝 남겨주곤 사라져버렸다. 그 때 내가 기억해야 할 것은 그가 알려준 수많은 주식 시장의 상황과 그에 대한 지식이었다. 박진감 넘치는 주식 시장은 책에서도 그대로 묘사되고 있었다.

 

일단 책에서 가장 먼저 눈이 갔던건 일러두기의 한 구절이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주가는 저자가 2015년도 예상치를 상정한 것이다.' 난 왠지 모르게 저자의 능력이 놀라웠다. 그래, 난 전문가의 글을 읽고 있었던 것이다. 그제서야 소설에 좀 더 눈이 갔다. 이는 그냥 강준혁의 대박 스토리가 아니고, 흥미진진하고도 실제와 같은 바쁘디 바쁜 주식 시장의 일부였다. 나는 강준혁이 대기발령을 받은 그 순간부터 강준혁과 함께 주식에 대해 배워나가기 시작했다. 실적 지상주의인 태양증권에서 이용만 당했던 강준혁의 주식으로 행한 통쾌한 복수극(?)이 이 이야기의 주된 흐름이다.

 

사실 이 소설의 내용의 흐름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이런 재미난 이야기를 통해 책을 덮고, 내가 얼마나 주식에 친숙해졌나 이다. 주위에 주식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아버지를 비롯한 어머니, 심지어는 친구까지 간단한 제태크를 하고 있었다. 내겐 그저 별세계나 다름 없던 주식이었는데, 그런 주식을 하는 부모님과 친구는 그저 대단해 보였다. 그저 다른 세계에서도 쌩쌩 숨쉬며 살고 있는 것에 대한 은연 중의 호기심이었는지도 모른다.

 

이젠 나도 주식이 무엇인지, 주식 시장은 어떻게 돌아가는지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고, 주식을 할 때 필요한 신중함과 가득 필요한 분석력이 어떤 것인지 소설에서 여실히 느꼈다. 그러니깐 단숨에 '300억 비밀 주식과외'를 들은 것이다. 감히 말할 수 있는 건 주식에 대한 인상은 엄청 좋아졌다는 점이다. 주식시장은 딱딱하고 복잡한 숫자들만 나올나올 떠다니는 그런 시끄러운 세계가 아니었다. 쾌감과 불쾌감이 사뭇 오갈 수 있는 날카롭지만 신속한 번뜩이는 재치의 공간이었다. 이 공간에서, 행복한 투자를 하라는 작가의 바람이 따뜻하게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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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지 마, 죽지 마, 사랑할 거야 - 지상에서 보낸 딸과의 마지막 시간
김효선 지음 / 21세기북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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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렇게 온종일 서연의 곁을 지켰던 적이 언제였던가. 단단히 걸치고 있는 사회적 외피를 다 벗어던지고 오로지 딸과 엄마라는 원형질로 다시 만났던 시간은. 어쩌면 영아기 이후 처음인지도 몰랐다. 오랜 세월이 지나서야 우린 다시 그렇게 만난 것이다. (55p.)

딸과 어머니는, 그렇게 만났다. 이 때  오롯히 마주잡은 손만이 서로를 지탱해주고 있었다. 갑작스런 백혈병 진단으로 이제까지 해왔던 삶의 짐을 놓고 외롭게 병원에 입원해야 했던 서연과, 드라마 작가에서 한 딸의, 서연만을 위한 어머니가 되어야만 했던 김효선 작가는 외롭지만 힘겨운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에겐 그 하루조차 너무 소중하게 흘러갔다.  

 

내게도, 그들의 마주잡은 두 손이 아찔하게 공감이 될 뻔한 적이 있다. 불과 반년 전의 일이다. 언젠가 어머니가 내게 이런 말을 하기 시작했다. 밥은 할 줄 알지. 반찬은 할 줄 아는게 뭐가 있어. 응? 엄마 왜그래. 아니. 이제 한두 개쯤은 할 줄 알아야지. 휙하고 고개를 돌리는 어머니가 수상했던 순간이었다. 자꾸 무슨 일이냐고 캐묻는 나를 보고, 아니, 이모들이랑 잠시 여행 좀 다녀오려구. 정말? 얼마나? 어머니는 이렇게 말을 얼버무리며 이어갔지만, 나는 걱정은 커녕 삶에 지친 어머니께서 이모들과 잠깐 여행을 다녀오신다는 점에 도리어 즐거웠다. 가끔은 어머니도 삶을 즐겼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으니깐.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 여행이 어머니께 어떤 의미의 여행이 될지는 전혀 생각지 못한 것 같다.

 

그러던 어느날이었다. 어머니께선 방학을 맞아 알바를 구하려했던 내게, 알바를 하지 말라고 넌지시 일렀다. 왜? 아, 엄마가 오늘 오후 5시 쯤 누가 좋은 알바자리 소개시켜준다고 했거든. 기다려봐. 그 때 난 왜 몰랐을까. 오후 5시가, 그 시간이 어머니가 병원(두 번째로 건강검진을 가신다고 하셨을 때. 나라에서 나오는 건강검진을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건강검진이 원래 두어번 쯤 가야하는 줄로만 알았다.)에 갔다가 나올 즈음이라는 것을. 마침 그날따라 어머니는 꽤나 수상했다. 학교가는 길에 어머니가 갈 병원이 있어 나도 태워줘, 하고 부탁을 하니 평소같으면 일부로라도 타고가 했을 어머니께서 미안해, 오늘은 버스타고가, 라고. 한동안 외갓집에 가 있을래. 라는 의미심장한 말도 내게 던지기도 했다. 또, 한동안 집에 못 올 사람처럼 저녁에 빨래는 걷어놓고, 좀 개어서 넣어 놓아. 이건 어쩌구 저건 어쩌구. 그래도 난 어머니께서 아프다거나 이런 것은 전혀 짐작하지도 못했다.

 

다행히, 그날 밤 어머니는 나갈 때 그 모습 그대로 돌아오셨다. 함께 갔던 아버지의 표정도 굳어 있지 않았다. 평소에 모습과 다름 없어 바보같은 나는 엄마가 지난 날 왜 그런 말들을 했는지 전혀 생각지 않았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이었다. 눈을 뜨고 한참 엄마의 통화 소리를 듣고 나니, 온 몸에 힘이 쭉 빠지는 기분이었다. 한순간 몸이 뜨끈뜨끈한게 미열이 있는 것도 같았다. 그리고, 난 사건의 전말을 모두 들을 수 있었다. 그제서야 덜컥, 진짜로 그랬다면 하는 무서운 생각이 들었고 나는 엄마 몰래 내내 늦잠 자는 척하면서 훌쩍 울음을 살짝 훔쳤다. 그 때 아줌마들의 긴 통화시간이 조금은 도움되었다.

 

그러니깐, 어머니는 처음 건강검진을 받고, 배 근처에서 암과 비슷한 무언가가 발견되어 정밀 검사를 받게 된 것이다. 그리고 내게 알바를 하지 말라고 했던 그날은, 정밀 검사를 다시 받으러 가는 날이었다. 오후 5시면 바로 입원 치료를 하느냐 마느냐가 결정되는 시간이었다. 다행히(정밀 검사 결과) 그 자국은 예전 엄마도 기억하지 못했던 어린날의 맹장 수술에 의해 피가 뭉쳤기(?) 때문인 것으로 판정되었고, 엄마의 홀로 마음고생은 조금 싱겁게 끝나고 말았다. 그러나 나는 그 때 그 '싱거움'이 어찌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예전에도 두 달 정도 병원에 입원을 하여, 외갓집에 맡겨진 기억이 있는 나로서는 엄마가 아프다는 건 아직도 어린애마냥 울음이 나는 일이었다.

 

그 때의 울음이 서연의 어머니가 울컥, 하고 말을 잊지 못할 때나, 너무나 울고 싶지만 그 울음을 홀로 꾹 참고 있을 때 대신 내 눈물로 펑펑 나왔다. 때문에 내 얼굴은 못난 눈물로 조금 밉상맞게 변해버렸다. 그래도 책을 손에서 놓지 못했다. 그녀의 마음이 닿았는지(어찌 닿을 수 있겠냐마는) 책의 한 쪽, 한 쪽을 넘기기가 어려웠다. 이후 눈 앞의 거울과 눈을 닿았을 땐 나는 이 책을 나 홀로 그리고 집에서 읽기 시작하여 끝마쳤다는 데 무척 감사했다. 목이 따가울 정도로 울음이, 많이 나왔기 때문이다.

 

참을성이 없는 나는 서서로 앉아서도, 그리고 침대에 가만히 누워서도 책을 읽었다. 가만히 누워서 책을 읽었을 땐 눈 앞에 창 밖으로 보이는 빛나는 파란 하늘이 그렇게 슬퍼보일 수가 없었다. 가만히 있어도 녹색 잎 사이로 반짝이는 하얀 하늘이 병실에서 보이는 허무한 희망과 같아 보였다. 마지막 잎새가 뚝 떨어지는 것처럼 보였다. 가끔 이렇게 아프던지 나 홀로가 되던지 하며 혼자만 있었으면 좋겠다, 하고 무지막지하고도 나쁜 생각을 한 적이 있었는데, 책을 읽는 순간 나는 서연이 되어 창 밖을 바라보다가도, 서연에게 너무 미안해졌다. 삶은 이토록 소중한 것인데. 문득, 이 소설을 읽고 흘린 나의 눈물을 조심스레 모아보고 싶었다. 그것이 과연 서연이 참고 또 참아 마음속으로만 흘러내린 눈물의 강보다 더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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