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지 일본의 알몸을 훔쳐보다 1.2 세트 - 전2권
시미즈 이사오 지음, 한일비교문화연구센터 옮김 / 어문학사 / 2008년 4월
평점 :
품절



 

'메이지 일본의 알몸을 훔쳐보다'을 읽다가 선거를 하러 갔다. 노인정으로 투표장소가 배치되어, 한쪽에는 느긋한 할아버지들이 장기를 두고 있고, 한쪽에서는 6시 마감 직전의 분주한 사람들의 모습이 이색적으로 보였다. 바삐 사람들이 오가는 통에 처음 유권자로서 이 모든 모습을 지켜 본 나는 근대 일본의 모습을 세세하고도 재치있게 담아낸 프랑스인 풍자화가 조르주 비고였다면 분명 바쁜 손으로 그림을 그리느라 정신이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하얗고 작은 박스 안으로 들어갔다. 순식간에 훌훌 내 권리를 털어버리고 투표장을 나섰다. 그 사이 비고의 그림도 얼른 완성되었을 것이다. 만약 비고가 지금 우리나라의 모습을 슥삭 그려내고 있었다면 말이다.

 

비고의 그림을 보는 동안은 시간이 가는 줄 몰랐다. 무작정 그림만 보았다면 그림에 조예가 부족한 나로서는 오히려 지루하여 이 책을 다 보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비고가 그려낸 그림의 센스를 꼭꼭 집어낸 해석의 도움으로 난 재미나게 주제마다의 일본의 구석구석을 볼 수 있었다. 철도, 병사, 게이샤 등의 1등석부터 3등석이, 오전부터 오후가 한편의 이야기처럼 지나갔다. 또한 그림마다 비고가 짧게 남긴 문구도 재미있었다. 그래서 그림이 더 실감나게 보였는지도 모르겠다.

 


 

다음은 세 번째 이야기였던 '게이샤의 하루' 중 일부이다. '객실 대여업소에서 경관의 기습을 당하다.', '경찰서에서 "이 주 동안 두 번이나 걸리다니 너무많아." "이제 다시 그런 짓 안 할 테니 제발 용서해 주세요."', '여자 팔자 뒤웅박 팔자'' 그림에서 꼭 튀어날올 법한 대사를 비고는 그림처럼 재미나게 기록해 놓았다. 아무리 붙잡히더라도 몸을 팔지 않고는 먹고 살 도리가 없는 가엾은 여자의 이야기가 그림의 일부로 이어져 있다. 이야기 소개와 함께 그림을 보면 뒤의 시계가 새벽 네 시를 가르키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 시간까지 이런 모습을 보고 그림을 그릴 정도라면 그 무렵에 경찰관 중 아는 사람이 있었을 거라는 짐작도 넌지시 던져준다. 다방면으로 이야기를 짚어주는 해설이 재미나다. 또한 내용과 관련된 비고의 저서도 함께 소개해준다. 경찰관의 하루를 스케치한 화집으로 비고의 '다망한 경관'(1891)이 있다. 

 

다음 그림을 잘 살펴보면 비고는 재미난 문구뿐만 아니라 그림 또한 아주 개구지게 그려놓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사실적으로 묘사한 일본인의 얼굴에서도 드러난다.

(1권, 93쪽)

 

기모노를 입고  있는 형사도 그 특유의 눈초리를 가지고 있고, 그 옆의 이 집의 하인인 듯한 여성은 '큰일 났다'는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다. 여러 그림에서 사람들의 위치나 상황에 따라 드러나는 실감나는 표정이 그림의 리얼리티를 높여준다. 실제로 비고의 스케치를 역동적이고도 높게 평가하는 이유도 이러한 리얼리티가 살아있는 얼굴을 구현하고, 실상의 묘사에 신경쓴 점이 크게 평가를 받고있다. 이러한 그의 풍자화는 당대의 모습을 쉽게 짐작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래서인지 저자의 말에 따르면 그의 풍자화, 보도화, 동판화는 일본의 역사책이나 교과서에도 자주 인용된다고 한다. 

 

 (2권, 210쪽)

 

비고의 스케치 중에는 자신의 삶의 흔적도 고스란히 담겨 있다. 다음은 그의 일본인 아내였던 사노 마스의 옆얼굴을 스케치한 것이다. 일본에서의 그의 생활에서는 그의 심정히 절절히 담긴 장문의 글은 거의 볼 수 없다. 그는 일기다운 것은 기록하지 않았다. 따라서 그의 일본에서의 생활은 수많은 그림 작품으로 밖에 확인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의 그림이 있는 한 100여년이 지난 그의 삶의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그 이유는 그림의 실상의 시선이 닿은 반대편에 비고가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그의 눈을 따라 그림을 보고, 더 깊숙히 그의 모습을 살펴볼 차례다. 그렇다면 그의 그림이 더 우스꽝스럽고도 진실되게 보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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