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나는 여우, 스튜어디스의 해피플라이트
이향정 지음 / 열음사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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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처음 본 순간부터, 난 큰 실수를 했다. 잔뜩 읽어보고 싶다는 이유를 늘어놓으면서도 스튜어디스를 '스튜디어스'로 자꾸 발음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름에 대해서도 정확히 모르면서, 스튜어디스에 대한 막연한 선망은 가지고 있었지만 그 선망은 '꿈'에도 다다르지 못한 채, 그저 멋진 직업으로 생각이 그친 데 틀림없다. 직설적으로 말하면, 사실 난 스튜어디스에 전혀 관심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스튜어디스에 대한 얼마의 편견도 가지고 있었다. 키가 어느정도 크고, 얼굴이 이쁜 여성들만이 할 수 있는 먼세계의 직업이라고 생각했다. 고2때 수학여행을 가면서 처음 비행기를 타 보았는데, 그 곳에서 보았던 스튜어디스들은 하나같이 이쁘고 친절했다. 내미는 손길도 부드러웠고, 말투 하나하나가 조심스러웠다. 나는 그 때 원래 그런 여성들만, 스튜어디스가 되는구나, 하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부끄럽지만 얼마전까지도 그랬다.
 
이 책을 읽고 나는 내가 얼마나 스튜어디스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이 적고, 지독한 편견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생각하면서 아쉬운 점이 많았다. 그녀들은 사실 인정받아 마땅한 엄청난 노력꾼들이었던 것이다. 스튜어디스는 정말 '멋진' 여성들이었다. 그들을 대표하는 저자인 이향정씨 또한 그랬다. 물론, 직업 상 주어지는 자유 시간에 외국을 수시로 드나들 수 있고, 자신만의 추억도 남길 수 있으며, 페이도 자신의 노력 여하에 다르지만 여성의 직업으로 남부럽지 않게 받을 수 있다는 점만 보아도 스튜어디스는 한참 매력적인 직업이다. 하지만, 나는 그러한 직업상의 매력보다 스튜어디스에게 인간적인 매력을 느끼고 반하고 말았다.
 
스튜어디스가 되는 길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이향정씨는 스튜어디스를 준연예인이라고도 말하는데, 사실 비행기 내에서 그녀들은 노출된 상품이나 다름없다. 스튜어디스의 역할에 따라 비행사의 이미지도 많이 좌우될뿐더러, 장시간을 있어야 하는 비행기내에서 손님들의 편의를 봐줄 수 있는 건 스튜어디스밖에 없다. 그녀들의 그동안 언제나 완벽한 모습을 내보여야 했다. 구김이 없어야 되는 유니폼부터 깔끔해 보여야하는 머리에서 항상 밝고 생기 있게 보여야 하는 메이크업까지. 끊임없이 자신의 모습을 유지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이렇게 자기 관리는 물론이고, 밤이건 낮이건 항상 승객들보다 먼저와서 비행기 내의 서비스 준비를 깔끔하게 해야했다. 각 나라마다의 시차적응도 그녀들의 과제였다.
 
더 놀랐던 건 이렇게 스튜어디스가 되기까지의 과정이다. 스튜어디스는 기본 신체적 상황뿐만 아니라, 외국어 능력이나 체력 또한 어느 정도의 수준을 유지해야 했다. 수영도 잘해야하며, 치아와 덧니 등의 세세한 부분까지. 세상에 쉬운 직업이 없다고 하더니, 스튜어디스는 정말 엄청난 노력의 결과였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스튜어디스에겐 센스가 필요했다. 이는 세계의 각국의 사람들을 만나면서 돌방상황이 많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스튜어디스가 되려면, 각 나라마다의 문화나 주의해야 할 상황을 잘 알아 놓는 건 필수다. 이향정씨는 이 책을 통해 노련한 그녀의 경험으로 다양한 대처방법에 대해서도 잘 소개해 놓았다.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은 일반인이라도 정확히 알만큼 스튜어디스에 대해 정확히 소개한 부분을 바탕으로 스튜어디스를 꿈꾸는 지망생들에게 꼭 필요한 정보를 차근차근 잘 담아놓은 것이다. 예를 들어, 처음 비행을 하게 된 스튜어디스의 이야기라던가, 스튜어디스의 업무량, 스튜어디스에 걸맞는 신체 조건, 그들만의 헤어스타일과 메이크업 비법, 심지어는 항공사 면접에 대한 팁까지 고스란히 담고 있다. 또한 그녀만의 다양한 에피소드가 함께 하여 읽는 내내 지루할 틈이 없었다. 정말 내가 만약 스튜어디스가 되고 싶어, 한참 그에 대한 꿈을 꾸고 있었다면 이 책이 정말 반짝반짝 빛나는 천사처럼 보이지 않을까. 이 책은 스튜어디스 지망생에게 엄청난 참고서가 될 것 같다. 일반인에게도 멋진 스튜어디스 체험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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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 마음대로 - 나를 멋대로 조종하는 발칙한 뇌의 심리학
코델리아 파인 지음, 송정은 옮김 / 공존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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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뇌는 놀랍다. 내가 생각하는 그 모든 것을 고민할뿐만 아니라, 앞선 일도 뒤이어 일어날 일도, 심지어는 내 마음까지 홀로 관장하려 한다. 나도 모르는 '뇌'의 생각을 낱낱히 파헤쳐 본 게 바로 코델리아 파인이다. <뇌 마음대로>는 자만하고, 고집불통이고, 비밀스러운 우리 뇌를 갖은 실험을 통해서 독자의 정곡을 찌른다. 나만해도 이 책을 읽으면서 얼마나 많은 경험을 떠올리고, 공감하고, 한편으로는 의문을 품었는지 모른다. 뇌는 정말 신비롭다.

 

'우리는 시간만 허비하는 것이 아니라 자만하는 뇌의 속임수에도 직접 대가를 치르고 있는지 모른다.' (36쪽)

 

이 구절을 읽으면서 나의 뇌 또한 이제껏 얼마나 자만을 하고 있었는지 생각해 보았다. 실로, 그녀가 든 예시에 대해서도 나는 내가 나를 얼마나 믿고 있었는지 슬며시 웃음을 지을 수 있었다. 한 연구에서 대학생들에게 자신이 방금 받은 과제를 언제 끝낼 수 있을지 예상하게 하였더니 대개 그 예상 시간이 상당히 짧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과거에 비슷한 과제를 예상 시간 안에 끝내지 못한 경험을 상기시켜 줘도 대학생들은 그때의 경험은 이제는 결코 다시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의 실력 부족 탓은 전혀 하지 않았다. 순간, 나 역시 항상 생각보다 잘 나오지 않은 과제나 시험의 성적을 볼때면, 다음엔 잘할 수 있어, 하고 지치지도 않고 줄기차게 외쳤다. 내게 이러한 문제는 항상 실력의 문제가 아닌 노력의 문제였다. 그런데 이러한 점은 곧 자만하는 뇌의 매력이기도 했다.

 

'태양은 내일도 떠오른다고, 우리가 겪고 있는 실패는 단지 일시적인 것일 뿐 개인의 능력 부족과 관계없다고 자신을 설득함으로써 우리는 목표를 추구해 나갈 힘을 얻을 수 있다.' (39쪽)

 

실제로 Weiner(1935~)의 귀인이론을 참고하면, 교사는 학생에게 아무리 노력해도 성공할 수 없을 것이라고 느끼게 되는 학습된 무력감을 가지지 않도록, 성공할 수 있을 만큼의 적절한 노력을 기울였을 때 뭐든지 할 수 있다는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용기를 북돋아 주어야 한다고 했다. 자만하는 뇌가 그 가능성을 톡톡히 열어주는 셈이다. 이는 학생들이 모두 노력만 하면 학교 수업을 모두 따라갈 수 있다는 완전학습이론과도 연관이 된다. 나아가 시크릿의 긍정의 힘과도 연결될 수도 있다. 다른 파트인 '고집불통인 뇌'에서도 이러한 이야기가 계속 되었다.

 

이번에는 교사의 학생에 대한 기대감과 연관 있는 실험이었는데, 가짜 시험지를 돌리고는 교사에게 조니, 에디, 샐리, 메리가 다음 몇 달 간 상당한 지적 성정을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교사의 단순한 기대에 부응해 이들은 지적 능력이 정말로 향상되었다. 사실 이들은 출석부에서 임의로 뽑힌 학생들인데도 말이다! 심리학자 로젠탈은 이에 대해 교사가 많은 기대를 거는 학생을 "더 많이 더 정성껏 가르친다."는 결론을 내렸다. 교사의 고집불통인 특별한 편견과 고정관념이 아이에게 꽤나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이다. 이번에는 믿음의 힘이었다. 뇌가 제시한 생각의 힘은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막강했다. 교사의 기대는 비교적 잘 알려져 있는 '플라시보 효과(placebo effect)'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플라시보 효과란 가짜 치료지만 그것이 자신의 증상에 효과가 있다고 받아들이기만 해도 증상이 호전되는 경우를 말한다. 뇌의 미묘한 기대감을 이용하는 것이다.

 

다른 실험으로 실제로 학교 수업 시간에 잠시 보았던 EBS방송의 내용이 책에 등장해서 더욱 반가웠다. 무척 신기하면서도 우리 뇌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담고 있는 실험이었는데, 그 순서는 아래와 같았다.

 

'피험자들은 순서가 뒤죽박죽인 단어들의 가지고 제대로 된 문장 몇 개를 만들어야 했다. (...) 노인과 관련있는 단어들을 재배열한 피험자들은 엘리베이터가 있는 곳까지 가는 동안 실제로 다른 피험자들보다 훨씬 느리게 걸으면서 허리 굽은 노인네처럼 행동했다.'(171쪽)

 

우리는 비밀스럽게 얽힌 스키마를 순식간에 떠올리는 것이다. 실험자들이 지속적으로 보았던 단어들이 그들의 몸을 순식간에 속여버리고 말았다.

 

솔직히 심리학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공부한 적이 없기 때문에, 책을 읽기가 그렇게 쉬웠던 것은 아니다. 다만, 전문용어가 다분히 나왔는데도 불구하고 그녀의 글에 대한 많은 공감은 할 수 있었다. 간혹 일반인들에게 일어날만한 흔한 하루의 일상을 실험으로 제시해 나의 경험도 떠올리기 쉬웠고, 그녀만의 딱 부러진 말투로 신뢰성 있게 소개해놓았게 때문에 이 책을 읽는 나로서는 처음보는 '뇌의 속성'이 전혀 부담스럽지 않았다. 나의 '뇌'의 이야기와도 다름없기 때문에 도리어 호기심이 생기곤 했다.  하나하나의 소주제도 미묘한 차이를 보이면서도 하나로 뭉쳐졌기 때문에 반복적으로 뇌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던 점도 좋았다. 지금 나의 뇌는 큰 만족을 느끼며, 빙글빙글 고민한다. 지금 내 뇌의 심리는 그녀가 소개한 어떤 뇌에 좀 더 가까운 것일까,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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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수업
아니샤 라카니 지음, 이원경 옮김 / 김영사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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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 곳, 학교에서"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 태거트 양의 하루는 나로서는 말도 안되, 라고 할만큼 당황스러운 것이었다. 교사가 이런 갈등도 할 수 있다니. 우리 나라에선 꿈도 못 꿀만한 일이었다. 비록 내가 잘 모르고 있는 걸지도 모르지만, 그녀의 삶은, 고민은 꽤 당황스러운 것이었다. 애나 태거트는 컬럼비아 대학을 나와 열정적인 새내기 선생님이 되어 뉴욕 맨해튼의 사립학교, 랭던홀의 아이들의 가르치게 되었다. 그리고, 비밀스럽게 아이비리그 출신 슈퍼 가정교사가 되어 말도 안되는 돈을 지급받고 다른 학교의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교사의 사명으로 말이다.

 

소설의 거진 끝자락에서도 애나는 그 엄청난 유혹의 구렁텅이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비록 과외해주는 아이의 과제를 대신해주고, 그런 아이들의 부모님을 상대하는 게 꽤 고달프긴 하지만, 몇 시간만 일하면 수많은 명품 가방이니 옷 따위를 쉽게 얻을 수 있는 유혹의 늪에 풍덩 빠져버린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애나의 고민은 한층 가중된다. 내가 정말 잘 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샤 라카니의 <화려한 수업>의 매력은 여기서 시작된다. 바로 애나의 고민에서 말이다. 분명 애나의 고민은 쉽사리 결정내릴 수 없는 솔직한 선택의 기로에서 이 책을 읽는 많은 예비교사와 현직교사들의 공감을 이끌어 낼 것이다.

 

랭던홀은 분명 겉으로는 '명문'임에 틀림없지만, 독자가 보기에는 골때리는 학교이다. 학부모들은 바쁜 자신의 아이들을 위해, 조금만이라도 많은 숙제를 내는 선생에게는 바로 전화를 걸고, 심지어는 단체로 싸인까지하여 명확하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한다. 우리는 전혀 아이들과 소통하지 못하는 이 교사에게 불만이 많습니다, 라고. 또, 가정교사가 대신 숙제를 할 수 없는 학교에서 치르는 과제에 대해서는 다시 전화 한통으로 대신한다. 두 번 말하기도 싫다는 듯이, 빽! 이런 학교에서 애나 역시 열심히 수업을 준비할수록 수많은 질타를 받고, 슬렁 슬렁 랭던홀의 대충 정신에 따라 수업을 하기 시작하자 최고의 인기쟁이에다, 인정받는 선생이 되는 아이러니를 겪는다. 무슨 놈의 학교가!

 

하지만, 나는 이러한 모습의 학교가 단지 '랭던홀'의 문제만의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학부모의 열성은 비록 남다를지라도, 랭던홀의 일부 교사들의 모습은 분명이 있을 좀 더 바른 의견보다는 학부모와 교장의 의견을 따르고, 나태하고 자신이 더 편한 수업에 찌들게되는 교사의 모습이 우리 교육의 현실과도 꽤 많이 맞닿아 있다고 생각했다. 우리나라의 새내기 교사들도 이러한 학교에 오게 되면 애나와 같은 고민을 백만번이라도 더 하게 되지 않을까. 그러다가 교사들이 내가 정말, 내 주관대로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을까 하는 무력감을 갖게 될 것이다. 그러다가는 학교가 교사들의 열정을 북돋아 주기는 커녕 삭히는 곳이 될 수도 있다. 놀랍게도, 랭던홀에 들어서기 전의 애나와 후의 애나의 열정 또한 많이 달라져 있었다. 애나가 유혹의 늪에 잠깐 빠져있을 동안은 정말, 선생으로서의 열정은 바람부는 곳에 홀로 서 있는 작은 불씨마냥 위태롭게 생명을 유지하고 있었다.

 

다행히도, 애나의 수많은 고민은 그녀를 바른 길로 인도한다. 한 순간 1시간에 250달러도 더 주던 과외를 모두 끊고 학생들에게 본래의 열정대로 바른 가르침을 주겠다고 선언한다. 교사로서 성숙한 그녀의 마음이 느껴졌다. 이미 아이들이 어떻게 숙제를 해오는지, 랭던홀의 어떤 교사들이 어떤 수업을 하는지 있는대로 부정적인 면모를 다 알고 있는 그녀는(자신이 모두 직접 겪었던 일이니깐) 훌쩍 커버린 교사가 되어 본래의 열정을 되찾는다. 이제 외모만 매력적인 교사가 아닌, 교사로서의 카리스마가 매력적인 애나의 화려한 수업을 기대하면서, 책을 읽는 내내 애나와 함께 하느라 진땀을 흘린 내게도 수고의 말을. '교사로서 지녀야할 가치관의 세계'는 정말 녹록치 않은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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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미술관 2 - 한 조각의 상상력 아침 미술관 시리즈 2
이명옥 지음 / 21세기북스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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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책을 펼쳤다. 생각대로 여느 미술책과 다름없는 그림이 있고, 해설이 있었다. 다만, 매일 하루하루 읽을 수 있도록 구성해놓은 나만의 작은 미술관을 방문할 수 있어 좋았다. 두, 세장을 읽을 때까진 그랬다. 그리고 한 폭의 그림을 감상하면서 점점 편안해지는 내 마음을 느끼고, 책의 매력을 알아가기 시작했다. 이 책은 알게 모르게 저만의 테마를 담고 있는 미술관이었다. 그러니깐, 장장 0701쪽부터 1231쪽까지 펼쳐지는 6개월간의 대 기획 전시관인 것이다. 만약, 여름, 가을과 그리고 겨울을 좀 더 고상하게 보내고 싶다면 한 번 읽어보기를 권한다. 당신은 저자 이명옥씨의 감각적인 도움으로 인해 여름의 가을의 겨울의 이야기를 품위있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에는 주제는 없다. 목차에 대문짝만하게 적어놓은 멋드러지는 문장들은 내 생각으로는 결코 그 한 장의 미술관을 거느릴 수 없다. 그러니깐 주제 없는 수많은 소재들이 난무하고 있는 것이다. 서양그림으로 시작해, 동양그림으로도 끝나고, 수영장이나 폭포로 시작해 자그마한 변기로 끝나기도 한다. 이렇게 분명 제멋대로인데, 여름은 시원하고 유쾌하고, 가을은 아늑하고 온화하고, 겨울은 고독하고 아름답다. 다르지만 비슷한 연이은 그림을 바라보면서 읽는 사람의 지식도 깊어진다. 비슷한 그림이 왜 비슷한지, 이 부분은 왜 변했는지, 작가는 설명을 곁들인다. 그렇게 세상의 수영장도 변해가더라.

 

자꾸 수영장 이야기를 꺼내는데, 아마 그 부분을 내가 가장 인상깊게 보았기 때문일거다. 아니면 지금이 여름이라서, 첨벙첨벙 거리는 물살에 함께 내 생각도 휩쓸렸거나. 마르셀 뒤썅의 '샘'은 직접 창작하지도 않고 기성품을 선택해 사인만 하고 예술품으로 만들어버린 고정관념에 일침을 놓은 작품이다. 이러한 혁명적인 발상에 많은 논란이 일었는데, 그 중 임성희씨 또한 큰 감명을 얻은 게 틀림없다. 그녀의 '뒤샹의 낚시터'는 한마디로 소변기 그린 야외 수영장이다. 나 또한 그녀의 작품에 색다른 충격을 얻었는지, 아직도 머릿속에서 그 그림이 떠나질 않는다. 뒤이은 폭포 그림을 보면서 나는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그냥, 쏴아아아 하는 소리에 파묻힌 듯, 자연스래 입을 닫았다. 후덥지근한 내 몸 중 눈만이 홀로 한껏 시원했다. 책장은 신나게 넘어갔다.

 

또 너무 재밌게 본 그림이 윤병락씨의 '여름 향기'다. 그의 향기는 달콤한 수박을 제약없이 신나게 파먹으면서 시작된다. 떠오르는 게 많아서 그랬을까. 이명옥작가가 '몇 년 전부터 국내 미술 시장에서 극사실주의 그림들이 인기를 끌고 있어요.'라고 했는데, 그래서일까. 나도 요즘 유행을 따르는 무리에 합류해 이 극사실주의 그림에 빨려들어갔다. 우리 집에서는 저렇게 파먹으면 혼나는데, 하는 생각과 함께. 그리고 또 인상깊게 본 그림이 안윤모의 '튜리파'이다. 노란 튤립 사이에 고개를 내민 귀여운 호랑이들이 정말 앙증맞다. 으헝, 언제나 무시무시할 것만 같은 호랑이들이 이토록 귀엽다니, 이들은 슈렉에서 등장하는 장화신은 고양이가 된 것처럼 수줍게 웃고 있었다. 알고보니, 안윤모씨는 의인화된 동물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우화적인 그림을 즐겨 그리는 화가란다. 그의 위트가 우화와 얽혀 너무 따뜻하게 다가왔다.

 

이렇게 감상하기도 하고, 내 기억도 떠올리면서 그림을 볼 수 있었다. 내 기억이 많이 떠오를수록 그림이 좀 더 감명 깊게 다가왔고 오래 기억되었다. 두달 전, 어머니 친구의 소개로 한 사진전을 본 적이 있다. 현란한 자연을 그토록 아름답게 담은 작가의 사진전을 보고, 사진을 너무 좋아하게 되었는데, 이 책을 읽고는 있는 그대로의 사진보다 더 깊숙히 의미를 담고 있는 그림이 좋아질 것 같다. 이렇게 무언가 흥미를 가질 수 있는 기회를 만난 것에 가장 행복하다. 한 번 더  이젠 여유롭게 매일매일 미술관을 만날 차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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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경의 아트 스피치 - 대한민국 말하기 교과서
김미경 지음 / 21세기북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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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에 들어오니, 갑자기 내게 '말'을 요구하는 일들이 우수수 쏟아졌다. 처음보는 동기들과도, 낯선 선배들과도 나는 웃으며 말을 건네야 했다. 너무 낯설게 굴면, 일찍감치 도태된다는 듯이. 그리고, 어려운 말들이 이젠 쉬운 말이 되기도 했다. 우스꽝스럽게 농담도 건네고, 진정어린 말을 하게 되고, 그렇게 주고받았던 말들이 자꾸 쌓여갔다. 그만큼 시간이 지날수록, 저만침 가식적인 말들도 차곡차곡 쌓여갔다. 수업도 예외는 아니었다. 전공을 듣던 교양과목을 듣던, 어디서나 우리 과의 특성때문인지 발표를 요구했다. 직접 발표를 준비하고, 대략 30분 가량의 수업을 꼭 한 번은 해야했다. 그러니깐 두근두근 떨려 제대로 뱉지도 못하고, 준비한 발제지만 줄줄 읽어나가는 '가짜말'들이 난무했다.

 

발표를 계속 하면서, '친구의 말'과 '나의 말'을 비교하게 되었다. 우리는 모두 완벽한 스피커가 아니었기에(물론 걔 중에는 무척 발표를 잘해내는 동기도 있었지만) 장점이 있다면 단점도 꼭 한가지씩은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자주 있는 발표 수업 덕분에 우리는 서로에게 조언을 하기도 했다. 이런 부분만 고치면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넌 이번 발표로 자신감을 많이 얻은 것 같다고. 혹은 서로의 발표를 들어주기도 하고. 그런데 고만고만한 실력을 가진 우리의 진부한 발표의 치명적인 오류를 하나하나 깨알같이 지적해준 책이 바로 <김미경의 아트 스피치>, 이 책이었다. 그 중 ppt사용에 대해 무척 공감이 간 부분이다.

 

"대부분은 파워포인트에 적힌 순서대로 줄줄 읽는다. 그러나 청중은 듣지 않는다. 스피커가 도표를 읽는 것보다 청중의 눈이 훨씬 빠르기 때문이다. 5번째 줄을 이야기하는데 눈은 이미 10번째 줄에 가있다."(309쪽)

 

이제까지 발제지를 요약한 파워포인트 자료를 보면서 자신있게 설명하는 것을 목표롤 삼았던 나는, 꽤 큰 충격을 받았다. 뒤이은 에피소드와 위의 글을 보고 난 내가 이제까지 ppt를 잘못된 방법으로 만들고 있었구나, 하는 걸 깨닫게 된 것이다. 나는 청중의 눈보다 더 빨리, 스피치의 중심 내용을 설명할 필요가 있었다. 이에 대해 김미경씨가 제시한 방안은 이와 같다.

 

1단계 : 밑에서부터 거꾸로 읽기. 그러니깐 세부내용부터 시작해 내용을 설명하라는 것이다.

2단계 : 중간부터 읽기. 전략을 먼저 말하고 목표와 세부사항 사이를 자유자재로 넘나들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3단계 :  한 화면당 텍스트가 3~5줄을 넘지 않도록 파워포인트를 작성하는 것. 처음에는 5줄만 쓰고 나머지는 스토리를 만들어 설명하다가 나중에는  3줄로 줄인다. 이렇게 연습하다 보면 파워포인트에 스토리를 넣는 실력이 빠르게 발전할 것이라고 하고 있다.

 

이러한 간단한 요령과 함께 스티브 잡스의 이야기와 한국의 에피소드를 같이 넣어놓았다. 정말 고마운 강의가 아닐 수 없다. 책을 읽는 내내 지루할 틈이 없었는데, 모두 그녀의 다채로운 에피소드 덕분이다. 그렇다고 그녀의 에피소드가 모두 특별한 내용만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일상적인 내용을 다루었기에, 더 귀에 쏙쏙 들어왔다. 다만 힘들었던 것 단숨에 그녀의 수만 강의를 들어야 했던 것.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얼마나 많은 강의를 들었던 걸까. 그녀의 에피소드 꾸러미는 쉴 틈이 없었다. 나는 또 다른 에피소드로 훌쩍 빠져들고 말았다.

 

그녀가 제시한 스피치 방안 중 공감가는 것을 조금 옮겨 적어보자면, 다음과 같다.

 

"음악에서 A-B-A' 구조가 기본이듯 스피치에서도 A-B-A' 구조가 매우 중요하다. A에서 주제가 나오고 B에서 설명을 했으면 다시 본 주제로 돌아가야 한다. 그래야 '아, 이걸 강조하면서 끝내는구나.'하고 안심하면서 감동과 설득을 당할 마음의 준비를 한다."(96쪽)

 

"청중이 돼보니 강사가 나를 알아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스피커가 어떤 식으로든 내가 경험한 에피소드를 이야기해주면 저절로 신이 났다. '저 사람 참 재미있게 강의하네.'가 아니라 '나를 알아주네'라는 생각이 들면서 급속도로 친밀감이 생기는 것이다."(177쪽)

 

"내가 만난 청중 중 최대 규모는 5,000명이었다 .일산 킨텍스에서 강연하는데 마이크는 윙윙 울리고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이때는 마인드 컨트롤이 필요하다. 시야에 들어온 5,000명을 1명으로 보는 용기가 필요하다"(180쪽)

 

"자신이 어떤 목소리를 가졌든 목소리 탓은 그만하자. 요즘엔 목소리도 개성이 있어야 빛을 발하는 시대다. 방송인 박경림은 목소리가 잘 꺾이고 조금만 세게 발음해도 쉰 소리가 난다. 그러나 그녀가 30분 스피치를 하면 누구나 재미있게 듣는다. 콘텐츠가 괜찮으면 잘 들리게 돼 있다."(227쪽)

 

"스피커는 콘텐츠에 맞는 눈빛을 청중에게 보내야 한다. (...) 인간의 신체 기관 중 가장 많은 콘텐츠를 담고 있는 것이 눈이다."(251쪽)

 

또 한가지. 전하고 싶은 게 있다면 바로 다음 사진에서 볼 수 있는 리듬과 강약 그리고 템포를 중시하는 '뮤직 스피치'와 관련된 내용이다. 연세대 음대 작곡과를 전공했던 그녀만의 감각이 잘 담겨있었다. 신기하게도 그녀가 제시한 표시 그대로 책을 읽기만 해도, 그 순간만은 최고 강사가 된 것처럼 여유롭고 능숙한 말하기가 가능했다. (한번 따라 읽어보세요 *^^*)
 

  



평소에, 발표에 대한 고민이 많았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에게 스피치에 대한 조언을 많이 구했다. 책도 조금 읽어보았지만, 내가 듣고 볼 수 있는 것은 고작해야 자신감을 가져라, 말을 평소 빠르기보다 좀 더 빠르게 하면 청중들이 지루해하지 않는다, 정도였다. 모두 써먹어 봤지만, 나의 추상적인 기준으로는 그다지 효과가 있는 것이 없었다. 여전히 막막할 뿐. 이런 내게, 이 책을 만난 것은 막막한 갈래길에서 만난 길잡이와도 같았다. 그녀의 책은 '마지막에 나오는 해결책만 따르면 당신은 OK'라는 식의 무책임한 발언은 하지 않았다. 다만,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 줄 뿐이다. 그리고 그 가능성의 가장 기초가 되는 것은 바로 '노력'이었다. 실제로 그녀 자신도, 이렇게 달변의 강사가 되기까지 무단한 노력이 있었다. 다만 막연한 노력이 아닌 조금씩 조금씩 스피치 연습을 하면, 체계적인 틀과 조언은 아낌없이 나누어 주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정말 든든한 말하기 교과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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