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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 마음대로 - 나를 멋대로 조종하는 발칙한 뇌의 심리학
코델리아 파인 지음, 송정은 옮김 / 공존 / 2010년 5월
평점 :
절판
우리의 뇌는 놀랍다. 내가 생각하는 그 모든 것을 고민할뿐만 아니라, 앞선 일도 뒤이어 일어날 일도, 심지어는 내 마음까지 홀로 관장하려 한다. 나도 모르는 '뇌'의 생각을 낱낱히 파헤쳐 본 게 바로 코델리아 파인이다. <뇌 마음대로>는 자만하고, 고집불통이고, 비밀스러운 우리 뇌를 갖은 실험을 통해서 독자의 정곡을 찌른다. 나만해도 이 책을 읽으면서 얼마나 많은 경험을 떠올리고, 공감하고, 한편으로는 의문을 품었는지 모른다. 뇌는 정말 신비롭다.
'우리는 시간만 허비하는 것이 아니라 자만하는 뇌의 속임수에도 직접 대가를 치르고 있는지 모른다.' (36쪽)
이 구절을 읽으면서 나의 뇌 또한 이제껏 얼마나 자만을 하고 있었는지 생각해 보았다. 실로, 그녀가 든 예시에 대해서도 나는 내가 나를 얼마나 믿고 있었는지 슬며시 웃음을 지을 수 있었다. 한 연구에서 대학생들에게 자신이 방금 받은 과제를 언제 끝낼 수 있을지 예상하게 하였더니 대개 그 예상 시간이 상당히 짧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과거에 비슷한 과제를 예상 시간 안에 끝내지 못한 경험을 상기시켜 줘도 대학생들은 그때의 경험은 이제는 결코 다시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의 실력 부족 탓은 전혀 하지 않았다. 순간, 나 역시 항상 생각보다 잘 나오지 않은 과제나 시험의 성적을 볼때면, 다음엔 잘할 수 있어, 하고 지치지도 않고 줄기차게 외쳤다. 내게 이러한 문제는 항상 실력의 문제가 아닌 노력의 문제였다. 그런데 이러한 점은 곧 자만하는 뇌의 매력이기도 했다.
'태양은 내일도 떠오른다고, 우리가 겪고 있는 실패는 단지 일시적인 것일 뿐 개인의 능력 부족과 관계없다고 자신을 설득함으로써 우리는 목표를 추구해 나갈 힘을 얻을 수 있다.' (39쪽)
실제로 Weiner(1935~)의 귀인이론을 참고하면, 교사는 학생에게 아무리 노력해도 성공할 수 없을 것이라고 느끼게 되는 학습된 무력감을 가지지 않도록, 성공할 수 있을 만큼의 적절한 노력을 기울였을 때 뭐든지 할 수 있다는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용기를 북돋아 주어야 한다고 했다. 자만하는 뇌가 그 가능성을 톡톡히 열어주는 셈이다. 이는 학생들이 모두 노력만 하면 학교 수업을 모두 따라갈 수 있다는 완전학습이론과도 연관이 된다. 나아가 시크릿의 긍정의 힘과도 연결될 수도 있다. 다른 파트인 '고집불통인 뇌'에서도 이러한 이야기가 계속 되었다.
이번에는 교사의 학생에 대한 기대감과 연관 있는 실험이었는데, 가짜 시험지를 돌리고는 교사에게 조니, 에디, 샐리, 메리가 다음 몇 달 간 상당한 지적 성정을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교사의 단순한 기대에 부응해 이들은 지적 능력이 정말로 향상되었다. 사실 이들은 출석부에서 임의로 뽑힌 학생들인데도 말이다! 심리학자 로젠탈은 이에 대해 교사가 많은 기대를 거는 학생을 "더 많이 더 정성껏 가르친다."는 결론을 내렸다. 교사의 고집불통인 특별한 편견과 고정관념이 아이에게 꽤나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이다. 이번에는 믿음의 힘이었다. 뇌가 제시한 생각의 힘은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막강했다. 교사의 기대는 비교적 잘 알려져 있는 '플라시보 효과(placebo effect)'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플라시보 효과란 가짜 치료지만 그것이 자신의 증상에 효과가 있다고 받아들이기만 해도 증상이 호전되는 경우를 말한다. 뇌의 미묘한 기대감을 이용하는 것이다.
다른 실험으로 실제로 학교 수업 시간에 잠시 보았던 EBS방송의 내용이 책에 등장해서 더욱 반가웠다. 무척 신기하면서도 우리 뇌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담고 있는 실험이었는데, 그 순서는 아래와 같았다.
'피험자들은 순서가 뒤죽박죽인 단어들의 가지고 제대로 된 문장 몇 개를 만들어야 했다. (...) 노인과 관련있는 단어들을 재배열한 피험자들은 엘리베이터가 있는 곳까지 가는 동안 실제로 다른 피험자들보다 훨씬 느리게 걸으면서 허리 굽은 노인네처럼 행동했다.'(171쪽)
우리는 비밀스럽게 얽힌 스키마를 순식간에 떠올리는 것이다. 실험자들이 지속적으로 보았던 단어들이 그들의 몸을 순식간에 속여버리고 말았다.
솔직히 심리학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공부한 적이 없기 때문에, 책을 읽기가 그렇게 쉬웠던 것은 아니다. 다만, 전문용어가 다분히 나왔는데도 불구하고 그녀의 글에 대한 많은 공감은 할 수 있었다. 간혹 일반인들에게 일어날만한 흔한 하루의 일상을 실험으로 제시해 나의 경험도 떠올리기 쉬웠고, 그녀만의 딱 부러진 말투로 신뢰성 있게 소개해놓았게 때문에 이 책을 읽는 나로서는 처음보는 '뇌의 속성'이 전혀 부담스럽지 않았다. 나의 '뇌'의 이야기와도 다름없기 때문에 도리어 호기심이 생기곤 했다. 하나하나의 소주제도 미묘한 차이를 보이면서도 하나로 뭉쳐졌기 때문에 반복적으로 뇌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던 점도 좋았다. 지금 나의 뇌는 큰 만족을 느끼며, 빙글빙글 고민한다. 지금 내 뇌의 심리는 그녀가 소개한 어떤 뇌에 좀 더 가까운 것일까,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