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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미술관 2 - 한 조각의 상상력 ㅣ 아침 미술관 시리즈 2
이명옥 지음 / 21세기북스 / 2010년 6월
평점 :
품절
책을 펼쳤다. 생각대로 여느 미술책과 다름없는 그림이 있고, 해설이 있었다. 다만, 매일 하루하루 읽을 수 있도록 구성해놓은 나만의 작은 미술관을 방문할 수 있어 좋았다. 두, 세장을 읽을 때까진 그랬다. 그리고 한 폭의 그림을 감상하면서 점점 편안해지는 내 마음을 느끼고, 책의 매력을 알아가기 시작했다. 이 책은 알게 모르게 저만의 테마를 담고 있는 미술관이었다. 그러니깐, 장장 0701쪽부터 1231쪽까지 펼쳐지는 6개월간의 대 기획 전시관인 것이다. 만약, 여름, 가을과 그리고 겨울을 좀 더 고상하게 보내고 싶다면 한 번 읽어보기를 권한다. 당신은 저자 이명옥씨의 감각적인 도움으로 인해 여름의 가을의 겨울의 이야기를 품위있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에는 주제는 없다. 목차에 대문짝만하게 적어놓은 멋드러지는 문장들은 내 생각으로는 결코 그 한 장의 미술관을 거느릴 수 없다. 그러니깐 주제 없는 수많은 소재들이 난무하고 있는 것이다. 서양그림으로 시작해, 동양그림으로도 끝나고, 수영장이나 폭포로 시작해 자그마한 변기로 끝나기도 한다. 이렇게 분명 제멋대로인데, 여름은 시원하고 유쾌하고, 가을은 아늑하고 온화하고, 겨울은 고독하고 아름답다. 다르지만 비슷한 연이은 그림을 바라보면서 읽는 사람의 지식도 깊어진다. 비슷한 그림이 왜 비슷한지, 이 부분은 왜 변했는지, 작가는 설명을 곁들인다. 그렇게 세상의 수영장도 변해가더라.
자꾸 수영장 이야기를 꺼내는데, 아마 그 부분을 내가 가장 인상깊게 보았기 때문일거다. 아니면 지금이 여름이라서, 첨벙첨벙 거리는 물살에 함께 내 생각도 휩쓸렸거나. 마르셀 뒤썅의 '샘'은 직접 창작하지도 않고 기성품을 선택해 사인만 하고 예술품으로 만들어버린 고정관념에 일침을 놓은 작품이다. 이러한 혁명적인 발상에 많은 논란이 일었는데, 그 중 임성희씨 또한 큰 감명을 얻은 게 틀림없다. 그녀의 '뒤샹의 낚시터'는 한마디로 소변기 그린 야외 수영장이다. 나 또한 그녀의 작품에 색다른 충격을 얻었는지, 아직도 머릿속에서 그 그림이 떠나질 않는다. 뒤이은 폭포 그림을 보면서 나는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그냥, 쏴아아아 하는 소리에 파묻힌 듯, 자연스래 입을 닫았다. 후덥지근한 내 몸 중 눈만이 홀로 한껏 시원했다. 책장은 신나게 넘어갔다.
또 너무 재밌게 본 그림이 윤병락씨의 '여름 향기'다. 그의 향기는 달콤한 수박을 제약없이 신나게 파먹으면서 시작된다. 떠오르는 게 많아서 그랬을까. 이명옥작가가 '몇 년 전부터 국내 미술 시장에서 극사실주의 그림들이 인기를 끌고 있어요.'라고 했는데, 그래서일까. 나도 요즘 유행을 따르는 무리에 합류해 이 극사실주의 그림에 빨려들어갔다. 우리 집에서는 저렇게 파먹으면 혼나는데, 하는 생각과 함께. 그리고 또 인상깊게 본 그림이 안윤모의 '튜리파'이다. 노란 튤립 사이에 고개를 내민 귀여운 호랑이들이 정말 앙증맞다. 으헝, 언제나 무시무시할 것만 같은 호랑이들이 이토록 귀엽다니, 이들은 슈렉에서 등장하는 장화신은 고양이가 된 것처럼 수줍게 웃고 있었다. 알고보니, 안윤모씨는 의인화된 동물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우화적인 그림을 즐겨 그리는 화가란다. 그의 위트가 우화와 얽혀 너무 따뜻하게 다가왔다.
이렇게 감상하기도 하고, 내 기억도 떠올리면서 그림을 볼 수 있었다. 내 기억이 많이 떠오를수록 그림이 좀 더 감명 깊게 다가왔고 오래 기억되었다. 두달 전, 어머니 친구의 소개로 한 사진전을 본 적이 있다. 현란한 자연을 그토록 아름답게 담은 작가의 사진전을 보고, 사진을 너무 좋아하게 되었는데, 이 책을 읽고는 있는 그대로의 사진보다 더 깊숙히 의미를 담고 있는 그림이 좋아질 것 같다. 이렇게 무언가 흥미를 가질 수 있는 기회를 만난 것에 가장 행복하다. 한 번 더 이젠 여유롭게 매일매일 미술관을 만날 차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