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경의 아트 스피치 - 대한민국 말하기 교과서
김미경 지음 / 21세기북스 / 2010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대학교에 들어오니, 갑자기 내게 '말'을 요구하는 일들이 우수수 쏟아졌다. 처음보는 동기들과도, 낯선 선배들과도 나는 웃으며 말을 건네야 했다. 너무 낯설게 굴면, 일찍감치 도태된다는 듯이. 그리고, 어려운 말들이 이젠 쉬운 말이 되기도 했다. 우스꽝스럽게 농담도 건네고, 진정어린 말을 하게 되고, 그렇게 주고받았던 말들이 자꾸 쌓여갔다. 그만큼 시간이 지날수록, 저만침 가식적인 말들도 차곡차곡 쌓여갔다. 수업도 예외는 아니었다. 전공을 듣던 교양과목을 듣던, 어디서나 우리 과의 특성때문인지 발표를 요구했다. 직접 발표를 준비하고, 대략 30분 가량의 수업을 꼭 한 번은 해야했다. 그러니깐 두근두근 떨려 제대로 뱉지도 못하고, 준비한 발제지만 줄줄 읽어나가는 '가짜말'들이 난무했다.

 

발표를 계속 하면서, '친구의 말'과 '나의 말'을 비교하게 되었다. 우리는 모두 완벽한 스피커가 아니었기에(물론 걔 중에는 무척 발표를 잘해내는 동기도 있었지만) 장점이 있다면 단점도 꼭 한가지씩은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자주 있는 발표 수업 덕분에 우리는 서로에게 조언을 하기도 했다. 이런 부분만 고치면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넌 이번 발표로 자신감을 많이 얻은 것 같다고. 혹은 서로의 발표를 들어주기도 하고. 그런데 고만고만한 실력을 가진 우리의 진부한 발표의 치명적인 오류를 하나하나 깨알같이 지적해준 책이 바로 <김미경의 아트 스피치>, 이 책이었다. 그 중 ppt사용에 대해 무척 공감이 간 부분이다.

 

"대부분은 파워포인트에 적힌 순서대로 줄줄 읽는다. 그러나 청중은 듣지 않는다. 스피커가 도표를 읽는 것보다 청중의 눈이 훨씬 빠르기 때문이다. 5번째 줄을 이야기하는데 눈은 이미 10번째 줄에 가있다."(309쪽)

 

이제까지 발제지를 요약한 파워포인트 자료를 보면서 자신있게 설명하는 것을 목표롤 삼았던 나는, 꽤 큰 충격을 받았다. 뒤이은 에피소드와 위의 글을 보고 난 내가 이제까지 ppt를 잘못된 방법으로 만들고 있었구나, 하는 걸 깨닫게 된 것이다. 나는 청중의 눈보다 더 빨리, 스피치의 중심 내용을 설명할 필요가 있었다. 이에 대해 김미경씨가 제시한 방안은 이와 같다.

 

1단계 : 밑에서부터 거꾸로 읽기. 그러니깐 세부내용부터 시작해 내용을 설명하라는 것이다.

2단계 : 중간부터 읽기. 전략을 먼저 말하고 목표와 세부사항 사이를 자유자재로 넘나들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3단계 :  한 화면당 텍스트가 3~5줄을 넘지 않도록 파워포인트를 작성하는 것. 처음에는 5줄만 쓰고 나머지는 스토리를 만들어 설명하다가 나중에는  3줄로 줄인다. 이렇게 연습하다 보면 파워포인트에 스토리를 넣는 실력이 빠르게 발전할 것이라고 하고 있다.

 

이러한 간단한 요령과 함께 스티브 잡스의 이야기와 한국의 에피소드를 같이 넣어놓았다. 정말 고마운 강의가 아닐 수 없다. 책을 읽는 내내 지루할 틈이 없었는데, 모두 그녀의 다채로운 에피소드 덕분이다. 그렇다고 그녀의 에피소드가 모두 특별한 내용만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일상적인 내용을 다루었기에, 더 귀에 쏙쏙 들어왔다. 다만 힘들었던 것 단숨에 그녀의 수만 강의를 들어야 했던 것.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얼마나 많은 강의를 들었던 걸까. 그녀의 에피소드 꾸러미는 쉴 틈이 없었다. 나는 또 다른 에피소드로 훌쩍 빠져들고 말았다.

 

그녀가 제시한 스피치 방안 중 공감가는 것을 조금 옮겨 적어보자면, 다음과 같다.

 

"음악에서 A-B-A' 구조가 기본이듯 스피치에서도 A-B-A' 구조가 매우 중요하다. A에서 주제가 나오고 B에서 설명을 했으면 다시 본 주제로 돌아가야 한다. 그래야 '아, 이걸 강조하면서 끝내는구나.'하고 안심하면서 감동과 설득을 당할 마음의 준비를 한다."(96쪽)

 

"청중이 돼보니 강사가 나를 알아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스피커가 어떤 식으로든 내가 경험한 에피소드를 이야기해주면 저절로 신이 났다. '저 사람 참 재미있게 강의하네.'가 아니라 '나를 알아주네'라는 생각이 들면서 급속도로 친밀감이 생기는 것이다."(177쪽)

 

"내가 만난 청중 중 최대 규모는 5,000명이었다 .일산 킨텍스에서 강연하는데 마이크는 윙윙 울리고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이때는 마인드 컨트롤이 필요하다. 시야에 들어온 5,000명을 1명으로 보는 용기가 필요하다"(180쪽)

 

"자신이 어떤 목소리를 가졌든 목소리 탓은 그만하자. 요즘엔 목소리도 개성이 있어야 빛을 발하는 시대다. 방송인 박경림은 목소리가 잘 꺾이고 조금만 세게 발음해도 쉰 소리가 난다. 그러나 그녀가 30분 스피치를 하면 누구나 재미있게 듣는다. 콘텐츠가 괜찮으면 잘 들리게 돼 있다."(227쪽)

 

"스피커는 콘텐츠에 맞는 눈빛을 청중에게 보내야 한다. (...) 인간의 신체 기관 중 가장 많은 콘텐츠를 담고 있는 것이 눈이다."(251쪽)

 

또 한가지. 전하고 싶은 게 있다면 바로 다음 사진에서 볼 수 있는 리듬과 강약 그리고 템포를 중시하는 '뮤직 스피치'와 관련된 내용이다. 연세대 음대 작곡과를 전공했던 그녀만의 감각이 잘 담겨있었다. 신기하게도 그녀가 제시한 표시 그대로 책을 읽기만 해도, 그 순간만은 최고 강사가 된 것처럼 여유롭고 능숙한 말하기가 가능했다. (한번 따라 읽어보세요 *^^*)
 

  



평소에, 발표에 대한 고민이 많았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에게 스피치에 대한 조언을 많이 구했다. 책도 조금 읽어보았지만, 내가 듣고 볼 수 있는 것은 고작해야 자신감을 가져라, 말을 평소 빠르기보다 좀 더 빠르게 하면 청중들이 지루해하지 않는다, 정도였다. 모두 써먹어 봤지만, 나의 추상적인 기준으로는 그다지 효과가 있는 것이 없었다. 여전히 막막할 뿐. 이런 내게, 이 책을 만난 것은 막막한 갈래길에서 만난 길잡이와도 같았다. 그녀의 책은 '마지막에 나오는 해결책만 따르면 당신은 OK'라는 식의 무책임한 발언은 하지 않았다. 다만,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 줄 뿐이다. 그리고 그 가능성의 가장 기초가 되는 것은 바로 '노력'이었다. 실제로 그녀 자신도, 이렇게 달변의 강사가 되기까지 무단한 노력이 있었다. 다만 막연한 노력이 아닌 조금씩 조금씩 스피치 연습을 하면, 체계적인 틀과 조언은 아낌없이 나누어 주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정말 든든한 말하기 교과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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