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티에게 물어봐
서은영 지음 / 시공사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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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호. 그녀의 세련된 말투는 언제나 웃음이 나게 한다. 괜히 이 책을 읽으면 나도 세련된 여성이 된 것 같고, 잘나가는 커리어우먼이 된 듯 하다.그녀는 어떤 질문에도 친한 언니가 된 것처럼 센스있는 말투로 답변을 해준다. 그런데 그 답변이  그저 형식적인 답변이 아닌, 자신의 경험을 여저에서 끌어와 들어주고, 혹 그러지 못하더라도 책에서 보았던 구절이나 영화, 드라마에서 보았던 장면이나 구절을 끌어와 친근하고 정성들인 조언으로 끝마친다. 마치 내 고민에도 그녀가 바로 옆에서 얘기해 주는 듯 했는데, 사실 이 책은 2008년부터 패션 라이선스지 '엘르'에 연재해오던 'Ask Bettie' 코너의 글과 '올리브쇼'의 카운슬링 내용을 재구성한 책으로 이미 수많은 독자들과 많이 소통을 나누었던 책이다.

 

책을 보다보면, 그녀의 이야기가 참 많이 나온다. 베티는 정말 솔직하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의 수많은 고민이 자기의 과거이자 지금이자 미래의 일인양 그렇게 공감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마치 생각의 자석이 되어, 다른 사람들의 고민에 맞춰 자기 고민을 함께 상담한다. 그러니깐, 고민을 나누는 사람으로서 독자를 한 명 한 명 대하는 것이다. 그렇게 이야기 하다보면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하고 있는 수많은 고민을 발견할 수도 있고, 나와 함께 고민을 하고 있는 베티의 모습을 발견할 수도 있다. 그녀의 이야기 속엔, 그녀가 온전히 말을 꺼내고 있는데, 고민 상담 처음에 등장하는 그녀의 얼굴부터 그렇다. 그녀의 얼굴은 고민마다 귀엽게도, 엉뚱하게도, 단호하게도 변한다. 그녀는 표정으로도 말하는 사람이다.

 

내가 베티의 답변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느낀 것으로는, 그녀는 경험이 참 많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연애 경험은 물론, 여행지 추천, 책 추천 등 다양하게 베티는 언제나 말할 준비가 되어 있는 듯 했다. 경험과 자신만의 주관으로 똘똘 뭉친 사람이었다. 그러니깐 이러한 것이 꿈을 이룬 사람의 모습인지도 모르겠다. 확고한 자신의 주관에 따라, 정말 '똑똑한 카운슬링 북'이란 말이 딱맞게 재치있게 상대의 말을 들어준다. 단순한 Q&A의 구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정말 카운슬링을 해주고 있다. 여기서 더 놀라운 것은, 그녀의 세대를 넘나드는 젊은 감각이다. 사실 서평을 쓰기 직전에서야 그녀의 나이를 알게 되었는데, 정말 기껏해봐야 네다섯살 언니처럼 보이던 그녀의 동안 페이스는 나를 깜빡 속이고 있었다. 69년생. 어떻게 그녀가 이렇게 멋지고도 젊은 감각을 지니고 있는건지! 이제 막 사회생활에 접어든 나보다도 그녀는, 더 젊고 꿈에 대한 열망이 가득했다.

 

그래서 조금 부끄러워졌다. 중간중간에 어떤 질문에는 베티가 살짝 화를 내기도 했는데, 그러한 질문들은 내가 평소에 궁금하기도 했던 것을 이어서 나도 베티에게 같은 꾸중을 받았다. 그런데, 베티의 꾸중은 오히려 고마웠고, 단지 생각을 바꿔볼 수 있는 기회를 제시해 주는 것 같았다. 나도 이 책을 읽으면서 참으로 다양한 카운슬링을 받았다. 중간중간에 엇비슷한 질문도 꽤 보였지만, 배티는 그 때마다 최대한 개인의 사정에 맞는 적절한 답변을 제시해 주곤했다. 그런 세세한 부분에 나는 더욱 공감을 얻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번 책을 통해 가장 고마운 것은, 이토록 매력적인 사람을 또 한 명 알게 된 것이다. 베티는 그녀 스스로 무던한 노력으로 꿈을 이루었고, 노력하고 있었고, 나아가고 있었다. 이는 분명 다른 이의 꿈이 될 수 있는 지름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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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작 1 - 천하를 취하게 할 막걸리가 온다!
이종규 지음, 김용회 그림, 허시명 감수 / 북폴리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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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막걸리를 마주했다. 대작(對酌), 마주 대하여 술을 마신다는 의미의 제목이였다. 실제로도 책 속의 주인공은 매일매일 누군가와 마주 앉아 술을 마시는 게 일상일 정도로 애주가를 넘어선 소위 '개망나니'이다. 늙은 할머니를 두고, 매일 밤마다 술만 퍼마시기 때문에 남들이 보기엔 소위 불효자식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세 사람이 등장하는데, 그 중 한 사람이 방금 말한 그 주인공이다. 주인공의 할머니는 조문난 가양주 제조사인데, 늘 그녀만의 손맛으로 이미 입소문이 퍼진 막걸리를 무엇보다 맛깔나게 만들어낸다.

 

두번째 애주가인 강명민은 여기저기서 소문난 술을 안 먹고는 못베기는 유쾌한 기자이다. 전국 방방곡곡의 술만드는 사람을 찾아가 이야기를 듣고, 그 사람을 취재한다. 소문을 듣고 찾아가 태호네 할머니를 만나게 된다. 세번째 애주가는 청순의 대명사인 톱스타 한보미다. 방송이나 언론 상에서는 술이 약해, 술이 필요한 촬영에서는 겨우내 촬영을 끝내고 실신까지 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실상은 엄청난 술고래로 후에 주인공 태호의 할머니가 빚을 술을 맛보고는 몰래 탈출까지 해서 그 술을 꿀꺽꿀꺽 마셔낸다.

 

나는 평소에 술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목이 칼칼한 지금, 태호네 할머니의 막걸리를 맛보고 싶어서 안달이 났다. 그만큼 '대작'은 매혹적이었다. 정말 누구나 좋아할만한 할머니표 막걸리를 만들어 내더니, 모자라서 못 파는 할머니표 막걸리를 계속 들이민다. 우리 막걸리의 매력을 정말 제대로 짚어 놓았다. 이 책이 매력적인 것은 술술 책장을 넘기다가, 우리 술인 막걸리에 폭 빠지도록 한 것에 있다. 거기다가, 곳곳에 빼곡히 적힌 글을 보고 놀랐다. 만화책 아니었나? 막걸리, 탁주, 동동주, 누룩이 무엇인가, 어떤 막걸리가 좋은 막걸리인지, 어떻게 만드는지, 막걸리의 국가적 가치라던가, 마지막으로 그 참맛에 대해까지 만화로 다 표현해내지 못한 막걸리의 매력을 자세하게 언급하고 있다. 한 챕터마다 부록쯤으로 달린 설명이라 만화를 읽는 도중인데도 도무지 꺼림칙하거나 갑자기 큰 돌멩이를 받은 마냥 무겁지만은 않다. 도리어 막걸리에 대해 좀 더 정확히 알고 이 책을 읽을 수 있어 더욱 재미났다.

 

순간, 태호와 명민과 보미가 만나면 어떤 장관을 이룰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애주가 셋이 모였으니 죽이 맞아, 술이 마구 오갈지도 모른다. 의외로 보미와 태호가 먼저 서로 대화를 건네고, 명민은 그들의 보며 지금 마시는 술에 대해 분석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술이 오가서 즐거운 자리일 텐데, 나 좀 끼워주면 안되나. 대작은, 즐거워 취하게 하는 승리한 월드컵 경기처럼 놀라운 효과를 지닌다. 그렇지만 치맥 대신 파전 곁들여 당신멋져(당당하게 살자, 신바람 나게 살자, 멋지게 살자, 져주고 살자)(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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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나는 여우, 스튜어디스의 해피플라이트
이향정 지음 / 열음사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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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처음 본 순간부터, 난 큰 실수를 했다. 잔뜩 읽어보고 싶다는 이유를 늘어놓으면서도 스튜어디스를 '스튜디어스'로 자꾸 발음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름에 대해서도 정확히 모르면서, 스튜어디스에 대한 막연한 선망은 가지고 있었지만 그 선망은 '꿈'에도 다다르지 못한 채, 그저 멋진 직업으로 생각이 그친 데 틀림없다. 직설적으로 말하면, 사실 난 스튜어디스에 전혀 관심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스튜어디스에 대한 얼마의 편견도 가지고 있었다. 키가 어느정도 크고, 얼굴이 이쁜 여성들만이 할 수 있는 먼세계의 직업이라고 생각했다. 고2때 수학여행을 가면서 처음 비행기를 타 보았는데, 그 곳에서 보았던 스튜어디스들은 하나같이 이쁘고 친절했다. 내미는 손길도 부드러웠고, 말투 하나하나가 조심스러웠다. 나는 그 때 원래 그런 여성들만, 스튜어디스가 되는구나, 하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부끄럽지만 얼마전까지도 그랬다.
 
이 책을 읽고 나는 내가 얼마나 스튜어디스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이 적고, 지독한 편견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생각하면서 아쉬운 점이 많았다. 그녀들은 사실 인정받아 마땅한 엄청난 노력꾼들이었던 것이다. 스튜어디스는 정말 '멋진' 여성들이었다. 그들을 대표하는 저자인 이향정씨 또한 그랬다. 물론, 직업 상 주어지는 자유 시간에 외국을 수시로 드나들 수 있고, 자신만의 추억도 남길 수 있으며, 페이도 자신의 노력 여하에 다르지만 여성의 직업으로 남부럽지 않게 받을 수 있다는 점만 보아도 스튜어디스는 한참 매력적인 직업이다. 하지만, 나는 그러한 직업상의 매력보다 스튜어디스에게 인간적인 매력을 느끼고 반하고 말았다.
 
스튜어디스가 되는 길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이향정씨는 스튜어디스를 준연예인이라고도 말하는데, 사실 비행기 내에서 그녀들은 노출된 상품이나 다름없다. 스튜어디스의 역할에 따라 비행사의 이미지도 많이 좌우될뿐더러, 장시간을 있어야 하는 비행기내에서 손님들의 편의를 봐줄 수 있는 건 스튜어디스밖에 없다. 그녀들의 그동안 언제나 완벽한 모습을 내보여야 했다. 구김이 없어야 되는 유니폼부터 깔끔해 보여야하는 머리에서 항상 밝고 생기 있게 보여야 하는 메이크업까지. 끊임없이 자신의 모습을 유지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이렇게 자기 관리는 물론이고, 밤이건 낮이건 항상 승객들보다 먼저와서 비행기 내의 서비스 준비를 깔끔하게 해야했다. 각 나라마다의 시차적응도 그녀들의 과제였다.
 
더 놀랐던 건 이렇게 스튜어디스가 되기까지의 과정이다. 스튜어디스는 기본 신체적 상황뿐만 아니라, 외국어 능력이나 체력 또한 어느 정도의 수준을 유지해야 했다. 수영도 잘해야하며, 치아와 덧니 등의 세세한 부분까지. 세상에 쉬운 직업이 없다고 하더니, 스튜어디스는 정말 엄청난 노력의 결과였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스튜어디스에겐 센스가 필요했다. 이는 세계의 각국의 사람들을 만나면서 돌방상황이 많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스튜어디스가 되려면, 각 나라마다의 문화나 주의해야 할 상황을 잘 알아 놓는 건 필수다. 이향정씨는 이 책을 통해 노련한 그녀의 경험으로 다양한 대처방법에 대해서도 잘 소개해 놓았다.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은 일반인이라도 정확히 알만큼 스튜어디스에 대해 정확히 소개한 부분을 바탕으로 스튜어디스를 꿈꾸는 지망생들에게 꼭 필요한 정보를 차근차근 잘 담아놓은 것이다. 예를 들어, 처음 비행을 하게 된 스튜어디스의 이야기라던가, 스튜어디스의 업무량, 스튜어디스에 걸맞는 신체 조건, 그들만의 헤어스타일과 메이크업 비법, 심지어는 항공사 면접에 대한 팁까지 고스란히 담고 있다. 또한 그녀만의 다양한 에피소드가 함께 하여 읽는 내내 지루할 틈이 없었다. 정말 내가 만약 스튜어디스가 되고 싶어, 한참 그에 대한 꿈을 꾸고 있었다면 이 책이 정말 반짝반짝 빛나는 천사처럼 보이지 않을까. 이 책은 스튜어디스 지망생에게 엄청난 참고서가 될 것 같다. 일반인에게도 멋진 스튜어디스 체험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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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 마음대로 - 나를 멋대로 조종하는 발칙한 뇌의 심리학
코델리아 파인 지음, 송정은 옮김 / 공존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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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뇌는 놀랍다. 내가 생각하는 그 모든 것을 고민할뿐만 아니라, 앞선 일도 뒤이어 일어날 일도, 심지어는 내 마음까지 홀로 관장하려 한다. 나도 모르는 '뇌'의 생각을 낱낱히 파헤쳐 본 게 바로 코델리아 파인이다. <뇌 마음대로>는 자만하고, 고집불통이고, 비밀스러운 우리 뇌를 갖은 실험을 통해서 독자의 정곡을 찌른다. 나만해도 이 책을 읽으면서 얼마나 많은 경험을 떠올리고, 공감하고, 한편으로는 의문을 품었는지 모른다. 뇌는 정말 신비롭다.

 

'우리는 시간만 허비하는 것이 아니라 자만하는 뇌의 속임수에도 직접 대가를 치르고 있는지 모른다.' (36쪽)

 

이 구절을 읽으면서 나의 뇌 또한 이제껏 얼마나 자만을 하고 있었는지 생각해 보았다. 실로, 그녀가 든 예시에 대해서도 나는 내가 나를 얼마나 믿고 있었는지 슬며시 웃음을 지을 수 있었다. 한 연구에서 대학생들에게 자신이 방금 받은 과제를 언제 끝낼 수 있을지 예상하게 하였더니 대개 그 예상 시간이 상당히 짧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과거에 비슷한 과제를 예상 시간 안에 끝내지 못한 경험을 상기시켜 줘도 대학생들은 그때의 경험은 이제는 결코 다시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의 실력 부족 탓은 전혀 하지 않았다. 순간, 나 역시 항상 생각보다 잘 나오지 않은 과제나 시험의 성적을 볼때면, 다음엔 잘할 수 있어, 하고 지치지도 않고 줄기차게 외쳤다. 내게 이러한 문제는 항상 실력의 문제가 아닌 노력의 문제였다. 그런데 이러한 점은 곧 자만하는 뇌의 매력이기도 했다.

 

'태양은 내일도 떠오른다고, 우리가 겪고 있는 실패는 단지 일시적인 것일 뿐 개인의 능력 부족과 관계없다고 자신을 설득함으로써 우리는 목표를 추구해 나갈 힘을 얻을 수 있다.' (39쪽)

 

실제로 Weiner(1935~)의 귀인이론을 참고하면, 교사는 학생에게 아무리 노력해도 성공할 수 없을 것이라고 느끼게 되는 학습된 무력감을 가지지 않도록, 성공할 수 있을 만큼의 적절한 노력을 기울였을 때 뭐든지 할 수 있다는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용기를 북돋아 주어야 한다고 했다. 자만하는 뇌가 그 가능성을 톡톡히 열어주는 셈이다. 이는 학생들이 모두 노력만 하면 학교 수업을 모두 따라갈 수 있다는 완전학습이론과도 연관이 된다. 나아가 시크릿의 긍정의 힘과도 연결될 수도 있다. 다른 파트인 '고집불통인 뇌'에서도 이러한 이야기가 계속 되었다.

 

이번에는 교사의 학생에 대한 기대감과 연관 있는 실험이었는데, 가짜 시험지를 돌리고는 교사에게 조니, 에디, 샐리, 메리가 다음 몇 달 간 상당한 지적 성정을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교사의 단순한 기대에 부응해 이들은 지적 능력이 정말로 향상되었다. 사실 이들은 출석부에서 임의로 뽑힌 학생들인데도 말이다! 심리학자 로젠탈은 이에 대해 교사가 많은 기대를 거는 학생을 "더 많이 더 정성껏 가르친다."는 결론을 내렸다. 교사의 고집불통인 특별한 편견과 고정관념이 아이에게 꽤나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이다. 이번에는 믿음의 힘이었다. 뇌가 제시한 생각의 힘은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막강했다. 교사의 기대는 비교적 잘 알려져 있는 '플라시보 효과(placebo effect)'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플라시보 효과란 가짜 치료지만 그것이 자신의 증상에 효과가 있다고 받아들이기만 해도 증상이 호전되는 경우를 말한다. 뇌의 미묘한 기대감을 이용하는 것이다.

 

다른 실험으로 실제로 학교 수업 시간에 잠시 보았던 EBS방송의 내용이 책에 등장해서 더욱 반가웠다. 무척 신기하면서도 우리 뇌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담고 있는 실험이었는데, 그 순서는 아래와 같았다.

 

'피험자들은 순서가 뒤죽박죽인 단어들의 가지고 제대로 된 문장 몇 개를 만들어야 했다. (...) 노인과 관련있는 단어들을 재배열한 피험자들은 엘리베이터가 있는 곳까지 가는 동안 실제로 다른 피험자들보다 훨씬 느리게 걸으면서 허리 굽은 노인네처럼 행동했다.'(171쪽)

 

우리는 비밀스럽게 얽힌 스키마를 순식간에 떠올리는 것이다. 실험자들이 지속적으로 보았던 단어들이 그들의 몸을 순식간에 속여버리고 말았다.

 

솔직히 심리학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공부한 적이 없기 때문에, 책을 읽기가 그렇게 쉬웠던 것은 아니다. 다만, 전문용어가 다분히 나왔는데도 불구하고 그녀의 글에 대한 많은 공감은 할 수 있었다. 간혹 일반인들에게 일어날만한 흔한 하루의 일상을 실험으로 제시해 나의 경험도 떠올리기 쉬웠고, 그녀만의 딱 부러진 말투로 신뢰성 있게 소개해놓았게 때문에 이 책을 읽는 나로서는 처음보는 '뇌의 속성'이 전혀 부담스럽지 않았다. 나의 '뇌'의 이야기와도 다름없기 때문에 도리어 호기심이 생기곤 했다.  하나하나의 소주제도 미묘한 차이를 보이면서도 하나로 뭉쳐졌기 때문에 반복적으로 뇌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던 점도 좋았다. 지금 나의 뇌는 큰 만족을 느끼며, 빙글빙글 고민한다. 지금 내 뇌의 심리는 그녀가 소개한 어떤 뇌에 좀 더 가까운 것일까,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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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수업
아니샤 라카니 지음, 이원경 옮김 / 김영사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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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 곳, 학교에서"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 태거트 양의 하루는 나로서는 말도 안되, 라고 할만큼 당황스러운 것이었다. 교사가 이런 갈등도 할 수 있다니. 우리 나라에선 꿈도 못 꿀만한 일이었다. 비록 내가 잘 모르고 있는 걸지도 모르지만, 그녀의 삶은, 고민은 꽤 당황스러운 것이었다. 애나 태거트는 컬럼비아 대학을 나와 열정적인 새내기 선생님이 되어 뉴욕 맨해튼의 사립학교, 랭던홀의 아이들의 가르치게 되었다. 그리고, 비밀스럽게 아이비리그 출신 슈퍼 가정교사가 되어 말도 안되는 돈을 지급받고 다른 학교의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교사의 사명으로 말이다.

 

소설의 거진 끝자락에서도 애나는 그 엄청난 유혹의 구렁텅이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비록 과외해주는 아이의 과제를 대신해주고, 그런 아이들의 부모님을 상대하는 게 꽤 고달프긴 하지만, 몇 시간만 일하면 수많은 명품 가방이니 옷 따위를 쉽게 얻을 수 있는 유혹의 늪에 풍덩 빠져버린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애나의 고민은 한층 가중된다. 내가 정말 잘 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샤 라카니의 <화려한 수업>의 매력은 여기서 시작된다. 바로 애나의 고민에서 말이다. 분명 애나의 고민은 쉽사리 결정내릴 수 없는 솔직한 선택의 기로에서 이 책을 읽는 많은 예비교사와 현직교사들의 공감을 이끌어 낼 것이다.

 

랭던홀은 분명 겉으로는 '명문'임에 틀림없지만, 독자가 보기에는 골때리는 학교이다. 학부모들은 바쁜 자신의 아이들을 위해, 조금만이라도 많은 숙제를 내는 선생에게는 바로 전화를 걸고, 심지어는 단체로 싸인까지하여 명확하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한다. 우리는 전혀 아이들과 소통하지 못하는 이 교사에게 불만이 많습니다, 라고. 또, 가정교사가 대신 숙제를 할 수 없는 학교에서 치르는 과제에 대해서는 다시 전화 한통으로 대신한다. 두 번 말하기도 싫다는 듯이, 빽! 이런 학교에서 애나 역시 열심히 수업을 준비할수록 수많은 질타를 받고, 슬렁 슬렁 랭던홀의 대충 정신에 따라 수업을 하기 시작하자 최고의 인기쟁이에다, 인정받는 선생이 되는 아이러니를 겪는다. 무슨 놈의 학교가!

 

하지만, 나는 이러한 모습의 학교가 단지 '랭던홀'의 문제만의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학부모의 열성은 비록 남다를지라도, 랭던홀의 일부 교사들의 모습은 분명이 있을 좀 더 바른 의견보다는 학부모와 교장의 의견을 따르고, 나태하고 자신이 더 편한 수업에 찌들게되는 교사의 모습이 우리 교육의 현실과도 꽤 많이 맞닿아 있다고 생각했다. 우리나라의 새내기 교사들도 이러한 학교에 오게 되면 애나와 같은 고민을 백만번이라도 더 하게 되지 않을까. 그러다가 교사들이 내가 정말, 내 주관대로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을까 하는 무력감을 갖게 될 것이다. 그러다가는 학교가 교사들의 열정을 북돋아 주기는 커녕 삭히는 곳이 될 수도 있다. 놀랍게도, 랭던홀에 들어서기 전의 애나와 후의 애나의 열정 또한 많이 달라져 있었다. 애나가 유혹의 늪에 잠깐 빠져있을 동안은 정말, 선생으로서의 열정은 바람부는 곳에 홀로 서 있는 작은 불씨마냥 위태롭게 생명을 유지하고 있었다.

 

다행히도, 애나의 수많은 고민은 그녀를 바른 길로 인도한다. 한 순간 1시간에 250달러도 더 주던 과외를 모두 끊고 학생들에게 본래의 열정대로 바른 가르침을 주겠다고 선언한다. 교사로서 성숙한 그녀의 마음이 느껴졌다. 이미 아이들이 어떻게 숙제를 해오는지, 랭던홀의 어떤 교사들이 어떤 수업을 하는지 있는대로 부정적인 면모를 다 알고 있는 그녀는(자신이 모두 직접 겪었던 일이니깐) 훌쩍 커버린 교사가 되어 본래의 열정을 되찾는다. 이제 외모만 매력적인 교사가 아닌, 교사로서의 카리스마가 매력적인 애나의 화려한 수업을 기대하면서, 책을 읽는 내내 애나와 함께 하느라 진땀을 흘린 내게도 수고의 말을. '교사로서 지녀야할 가치관의 세계'는 정말 녹록치 않은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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