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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동 한 그릇
구리 료헤이 지음, 최영혁 옮김 / 청조사 / 2010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우동 한그릇’은 이와 비슷한 내용들이 너무 많아서 이제는 조금 식상함을 느끼고 감동보다는 일본과 우리나라와의 문화와 정서의 차이를 느꼈습니다. 어디까지나 제 생각입니다만,
먼저 ‘우동 한그릇’에서 아버지의 빚을 갚기 위해 고생하고 있는 어머니말입니다. 그 어머니는 섣달 그믐에 아이들을 위해 뭔가 특별한 걸 먹이고 싶은 맘에 우동가게에 들어와 세 명이서 우동 한릇을 시켜먹죠. 이때 어머니가 정말 아이들을 위한다면 집에서 그 우동 한그릇을 배달해 먹어야 하지 않을까요?? 가게에서 한그릇의 우동을 나눠먹을 때 아이들은 맛있는 우동을 먹을 수 있어서 좋다고 생각하기 보다는 주변 사람들의 시선에 창피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까요? 한창 민감한때니까요. 그리고 우동집 주인을 보자면, 세모자를 생각하는 맘에 우동하나+반개를 한그릇이라고 내놓죠. 이런 같은 상황에 같은 맘을 가진 우리나라 우동가게 주인 같으면 세그릇이 아닌 몇그릇이라도 내놓았을 겁니다. 섣달 그믐이니까 공짜다 혹은 서비스다. 뭐 이런 핑계를 댈 수도 있겠죠. 그리고 받는 사람도 그걸 동정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우리네 정(情)이라고 생각하죠.
두번째 이야기 ‘마지막 손님’은 더합니다. 얼굴도 모르는 손님의 장례식에까지 찾아가는 게이꼬를 보면서 감동보다는 무섭다고나 할까요?? 전여옥의 '일본은 없다'에 보면 일본인은 늘 보이지 않는 혼네(속마음) 로 움직이면서 언제나 다테마에(겉치레)를 보여주고 있다 하는데 그 말이 다시금 떠오르더군요. ‘춘추암’의 다른 점원들도 마찬가집니다. 저는 오히려 여기 나오는 게이꼬를 좋아하는 남자(이름은 잊었습니다.)의 생각이 더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결국 그 남자도 마지막에 돌아서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