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점이 있다. 이 책 뒷편을 보면 ‘덕망 높은 지역 유지인 밴트리 대령의 서재에서 알몸의 미녀가 죽은 채로 발견되었다. 검시결과 순수한 처녀...’ 라고 되어 있는데, 밴트리 대령의 서재에서 발견된 시체는 미녀도 아니었고, 알몸은 더더군다나 아니었다. 밴트리 부인과 미스 마플이 시체를 보러 서재에 들어 갔을 때 ‘호리호리한 몸은 흰 금속 조각을 박아 넣고 등이 크게 패인 실크 이브닝 드레스에 싸여 있었다’라고 되어 있다. 나중에 이 실크 이브닝 드레스에 박혀 있는 금속 조각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데도 말이다. 그리고 왜 자꾸 뻐드렁니를 ‘뻐덩니’라고 써놓았는지.
‘맛있는 그림책’, ‘재밌는 그림책’ 이후에 세 번째로 본 책인데,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 이 ‘재미난 그림책’은 그 전에 보았던 책들에 비해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아마도 그전에 보았던 책들이 너무 훌륭해서 그렇게 생각되는 것 같다. 물론 나더러 이렇게 만들 자신 있느냐고 묻는다면 뭐 할말은 없지만서도… 앞서 언급한 다른 책들에 비해 눈에 확~ 띄지 않는 것도 있고, 달팽이나, 암탉을 만들 수 있는 재료들이 다 나와 있기는 하지만 좀 어려워서 쉽게 따라 하기가 힘들다.
언제봐도 보림에서 만든 책은 실망시키지 않는데, 굵은 빗줄기를 죽죽 그어 내린 그림체를 보는 것 만으로도 시원해 집니다. 이렇게 비오는 날 비구경을 하다가 ‘치타, 사자, 나비, 티라노사우르스, 용, 아빠는 무얼 할까?’ 라면서 동물들 그림이 차례대로 나오는데, 날개가 비에 젖을 까봐 살살 걷는 나비 모습이 가장 웃깁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동물들과 아빠가 큰 우산을 타고 하늘을 나는 것으로 끝나죠. 아무렇게나 죽죽 그어 내린듯한 빗줄기가 참 맘에 드는 책입니다.
책을 펼치면 ‘내 표범팬티 어디 있어? ‘라며 옷장 서랍을 뒤지는 어린아이의 하얀 엉덩이가 앙증스럽게 나타납니다. 그러면 ‘아기 사자가 아빠 흉내 낸다고 쓰고 다녔대’라는 대답이 들려 오죠. 이런 식으로 대화가 이어지는데, 여러 동물들이 등장해서 아이의 표범팬티를 머리에 쓰기도 하고 입어 보기도 하다가 마지막엔 ‘표범이 주인에게 돌려준다고 물고 갔대’ ‘ 아하, 그러니까... 바로 여기에 있었구나.’라며 끝나죠. 아빠가 자신의 아이를 위해 유화로 그림을 그리고 책으로 만들었다네요.
출생시에 뇌손상을 받은 강혁이는 장애아입니다. 몸이 아픈 아이가 그 아이가 원해서 아픈게 아니듯 이런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게 강혁이 잘못은 아니죠. 이 책이 장애를 가진 아이에 대한 아이들의 편견을 얼마만큼 없애줄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이런 책이 만들어 졌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대단한 발전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한쪽 페이지 전체를 차지한 강혁이의 우는 얼굴을 보니, 중학교 시절 옆 반에 있던 간질병을 앓던 아이가 생각나더군요. 그저 얼굴만 아는 정도인 아이였는데, 그때는 이런 책도 없었기 때문에 아이들은 그 애를 무서워했죠. 그 아이 잘못이 아닌데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