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에서 내리는 순간, 마치 지구의 반대편에 들어선 기분이 든다. 갑자기 영국에서와 같은 시원하고 달콤한 공기가 코로 들어온다. 주위에는 푸른 풀밭, 고사리, 전나무가 펼쳐져 있다. 뺨이 발그레한 고지의 여자들은 바구니에 담은 딸기를 판다. 전선에서 석 달 반을 보내고 바르셀로나로 돌아가자 그 기차 여행이 생각났다. 그때처럼 분위기가 놀랄 만큼 갑자기 바뀌어버린 것이다. 바르셀로나로 가는 기차 안에서는 줄곧 전선의 분위기가 유지되었다. 흙, 소음, 불편함, 넝마가 된 옷, 궁핍감, 동지애와 평등. 바르바스트로를 떠날 때부터 이미 의용군으로 만원이던 기차는 역에 설 때마다 농민을 더 태웠다. 어떤 농민은 야채 꾸러미를 들었고, 어떤 농민은 겁에 질린 닭의 발을 쥐었고, 어떤 농민은 배낭을 들고 탔다. 바닥에 놓인 배낭들은 둥글게 말리며 꿈틀거렸는데, 알고 보니 그 안에는 살아 있는 토끼들이 가득했다. 마지막에는 양 떼가 밀려 들어와 빈 공간으로 비집고 들어갔다. 의용병들은 혁명가를 소리 높여 불렀다. 노랫소리에 열차의 덜그덕거 리는 소리도 묻혀버렸다. 병사들은 또 철로가에 예쁜 여자들이 나타날 때마다 손으로 키스를 보내거나 검붉은 손수건을 흔들었다. 포도주 병이나 아라곤 산 독주인 아니스 병이 손에서 손으로 옮겨졌다. 스페인의 염소가죽 물통이 있으면 포도주를 분사하여 건너편에 있는 친구의 입안에까지 넣어줄 수 있어 매우 편리했다. 내 옆에 앉은 검은 눈의 열다섯 살짜리 소년은 가죽 같은 얼굴을 한 앞의 두 농부에게 깜짝 놀랄 만한 무용담을 늘어놓았다. 두 농부는 거짓말임에 틀림없는 그 이야기에 입을 벌리고 귀를 기울였다. 농부들은 곧 보따리를 풀더니 끈적끈적하고 검붉은 포도주를 꺼냈다. 모두들 매우 행복했다. 그 행복감은 말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