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들은 멜로드라마를 통해 순정을 꿈꾸며 큰다고 한다. 나도 그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기에 불멸의 사랑, 영원한 사랑 뭐 이런 것만이 진정한 사랑이라고 믿었고, 일부일처제의 제도적 합당성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영화 봄날은 간다에서 상우가 했던 대사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에 나도 공감했었다. 물론 그 후에 점점 나이를 먹어가면서 일부일처제라는 제도가 남자들을 위해 만든 제도이며, 산업화시대에 여자들을 이데올로기적으로 묶어 놓기 위해 만든제도라는 걸 알게 되었고, 사랑도 생로병사를 겪는다는 걸 인정하게 되었지만, 결혼하고 아이까지 낳은 지금 시절인연이 끝이나서 사랑도 소멸되게 되면 그 다음에 내가 고미숙선생님 말처럼 내 운명의 변곡점이 왔구나하고 다른 리듬을 탈 수 있을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아내가 결혼했다'는 결혼생활에서 나만 희생하고 있다는 피해의식이 극에 달한 날 혼자 보게 된 영화였다. 원작이 워낙 재미있어서 어느 정도의 기대치가 있었고, 김주혁이 나온다는 사실만으로 보고 싶던 영화였다.
그날 영화를 보면서 느꼈던 점은 "남편 두명 거느리기 정말 피곤하구나", "사회가 만들어 놓은 이데올로기(일부일처제)를 벗어나지 못한 사람이 이데올로기를 벗어난 상황을 겪을 때 느끼는 심적고통은 대단하구나"=>"사고체계를 바꿔서 남자 2명이 아이 하나를 키우면 얼마나 행복해?ㅋㅋ 서로 훨씬 도움이 될텐데..." 뭐 이런 거였다.
특히 인아(손예진)가 남편 두명을 두기 위해 고군분투-살림 잘 하지, 돈 벌지, 시댁에서 싹싹하게 행동하지-하는 장면에서는 나는 내 자신 저렇게 피곤하게 사느니, 내 남편이 나 이외이 다른 아내를 두고 인아처럼 나한테 잘한다면 오히려 그게 더 행복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아에겐 자기시간이 너무 없잖아....친구 만날 시간도 공부할 시간도~~
영화라서 감독이 어느 정도 타협할 수 밖에 없었겠지만, 인아가 남편을 하나 더 두었다는 이유로 너무 완벽하고 너무 피곤한 삶(가사노동은 왜 무조건 인아몫인건지...)을 감당하게 하는 바람에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남편을 두명을 거느린 여성을 보며 대리만족이나 혹은 여성의 판타지를 느낄 수 없었다. 오히려 인아를 연기한 손예진이 너무 예뻐서 남자들의 판타지를 충족시켜 주는 듯한 느낌이었다.
아, 극에 달한 나의 피해의식은 어떻게 되었냐고? 뭐 아직도 일정정도는 가지고 있다. 그건 남편의 문제라기 보다는 나의 몫이라는 걸 안다. 내가 겪고 있는 현실에 대하여 희생이라는 해석을 가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는 것 만으로도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계속 내공을 쌓다보면 언젠가는 나도 서사적 능력으로 가득찬 사랑을 하게 되고 그 사랑은 나를 이전과는 전혀 다른 지평으로 인도해 주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