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태초에 대칭성에 근거한 무의식이 있었다. 여기서 무의식은 고차원의 유동하는 에너지. 인간은 누구나 태과불급을 안고 태어난다.(왜곡의 지층) => 오행의 고립이나 불통을 안고 태어나며 그것으로 인해 괴로움이 발생한다. 그것이 존재의 기반이며 형식이다.
무의식에 대한 해석의 개념들 중 프로이트의 이론이 가장 널리 퍼졌으나 사실 프로이트의 이론은 억압의 담론을 제시함으로써 핑계거리를 제공하여 일종의 출구로서 기능하였다. 그러나 프로이트의 이론을 받으들인다 해도 우리가 얼마만큼 행복해졌는가?
2. 一의 原理 : 국가/일신교/자본주의는 무의식을 제어한다. 중세시대의 마녀사냥은 예측불가능한 힘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성령은 어떤 의미에서 야생성 또는 자연의 힘과 맞닿아 있으며 그것은 일의 원리에 부합하지 않아 두려움을 느꼈다. 자본주의하에서 물질적 부의 영역에서는 무한증식이 가능한 것처럼 느껴지고 이로 인해 욕망을 무한히 증식할 수 있다고 느끼게 만들었으나 무의식의 지성은 고갈되고 있다.
복논리의 활용 : 경제활동의 전체성은 증여와 교환의 복논리로 이루어져있다. 이 중에서 증여는 대칭성을 특징으로 하는 무의식과 깊은 관련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증여 현상이 제대로 된 형태로 발생하면 감정의 유동이 일어나 사람들은 행복감에 휩싸이게 된다.
3. 무의식은 나와 외부(자연과 연동) 어딘가의 "사이"에 존재한다. => 무의식을 통한 네트워킹을 통해 지성들의 네트워크가 가능하다. 때문에 동시성의 원리가 가능한 것이다.
무의식을 활용해야 자유를 얻을 수 있다. 무의식에서는 중층적인 것들이 섞여서 움직이는 데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순환"이다. 생사가 서로 하나인 세계/ 관계안에서 끊임없이 맞물려 돌아가는 세계/ 변화, 생성만이 있을 뿐. => 분별속에서 희노애락, 번뇌가 발생한다. 주체를 고정시키고 객체와의 대립과 갈등. 사실은 하나의 생명체에서 분화되어 나온 것이다. =>때문에 존재의 상호연관성을 터득하여 분별망상을 일으키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물질과 정신 나와 타자의 경계없음)
ps. 슬픔이 슬픔으로만 남아야 한다. 거기에 제2의 해석 " 왜 나만" 이 더해지는 것이 비대칭적 사유이다. "알면 자유로와진다"는 것은 은유가 아니라 말 그대로 물리적 에너지가 발생하여 그 만큼의 자유가 생긴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