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의 미래 - 팬데믹 이후 10년, 금융세계를 뒤흔들 기술과 트렌트
제이슨 솅커 지음, 최진선 옮김 / 리드리드출판(한국능률협회)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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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언가들은 다 가짜다. 정말 예언을 할 수 있다면 가장 먼저 코로나를 예언했어야 하지 않나?"

라는 말이 나돌 정도로 코로나 팬데믹이 심각하다.

작년 이 맘때쯤 시작되어 정확하게 1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코로나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되려 아직도 우리의 발목을 붙잡고 있다.

이 글을 쓰는 현재도 울산은 초등학생 확진자가 나오면서 유치.초.중.고등학교에서

1주일간 전체 휴교령이 내려졌다. 어느 교회에서도 대다수 확진자가 발생했다.

마스크없이 산책이나 운동을 한게 대체 언제였나 싶을 정도로 마스크가 일상적이게 되었다.

많은 전문가들이 코로나 이전으로 100% 돌아가는 것은 무리일 것이라 내다보고 있고

코로나 이후 많은 것들이 변화할 것임을 예상하고 있다.


일본과 우리나라의 경우는 황사 등으로 인해 마스크 사용이 대중적이었지만

그렇지 못했던 국가에서는 코로나 이후 마스크 문제로 골머리를 앓았다.

마스크 사용을 거부한 탓 때문이다.

하지만 코로나 이후 마스크는 일상적인 소지품으로 변화해갈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실제로 마스크 관련 주식이 예전보다 많이 높아졌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예전에는 총과 탱크 등으로 나라VS나라로 전쟁을 했다면 지금은 나라VS나라의 전쟁이 아닌

인류VS환경의 전쟁이 아닐까. 눈에 보이는 것들과 눈에 보이지 않는 많은 환경들과

우리는 이미 전쟁을 시작한 것 같다.


환경 속에서 박테리아 세균등이 공격해오면 인류는 기술과 의술의 발달로 방어하며

새로운 전쟁을 하고 있다. 그리고 이 전쟁에 눈에 보이지 않는 금융의 전쟁도 시작되고 있다.


바이러스 창궐은 사람들 간 물리적 접촉을 부담스럽게 만들고 있다.

대면 접촉을 피해 업무를 처리한다. 굳이 사람이 일하지 않아도 편리하다면

알고리즘이 업무를 신속하고 정확하게 처리해주기를 바란다.

개인 정보가 보장된다는 점도 이점이다.

이렇게 불쑥 로봇 시대가 다가왔다. 당신은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가.


요즘 코로나 문제 이외에도 우리나라를 시끄럽게 만들고 있는 문제가 있다.

바로 부동산정책의 문제다.

청정부지로 오르는 집값에 자살을 택하는 이들까지 나온다.

부라는 것이 무엇이기에 우리는 이토록 아둥바둥 하는 것일까.

행복을 돈으로 살수 있느냐는 질문에 살수 없다고 확답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돈이 행복의 전부는 아니지만 아무것도 아니라고는 말을 할수가 없다.

행복하기 위해서는 어느정도의 돈이 충족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점점 돈을 모으기는 어려워지는 상황에서 우리가 부를 축적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이 책은 그런 미래를 위한 금융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앞으로의 가능성을 이야기해주고 있다.

금융이나 주식 등 전문적인 지식이 없는 나에겐 다소 어려운 부분이 있기에

한번이 아닌 여러번 다시 읽어 이해를 해야 하는 부분들이 상당하지만 이런 쪽에 관심이 많은

미래지향적 지식인들에게는 좋은 지침이 되어줄 책이 아닐까.


인공지능이라는 양날의 검 위에 서지 마라. 당신의 안전은 보장받지 못한다.

발전된 금융 자동화 시스템은 절대 당신 편이 아니다.

투자안이나 정책 등의 의사결정을 할때 비용과 편익을 따져

여러 대안 중에 최적의 대안을 선정해 줄 뿐이다.


최근 차이나는 클래스라는 프로그램에서 AI에 관한 주제를 다룬 적이 있다.

인공지능으로 AI가 스스로 학습하고 답을 내놓을 수 있다고 한다.

스스로 학습을 하며 업그레이드가 되는 로봇.

좋은 방향으로는 멋지고 훌륭한 기술이지만 그것이 나쁜 방향으로 돌아섰을 때의

문제점도 생각해보아야 한다.

스스로 자료를 모아 학습을 하는 AI가 나쁜 자료들만 습득했을 때

상당히 부정적인 내용이 단어들만 열거하는 실험 결과가 나왔다고 한다.

그 장면을 봤을 때 기억난 것이 '제 5원소'라는 아주 오래된 SF영화다.

고도로 발달한 외계생명체가 지구에서 죽음 위기에서 사람의 모습으로 재생되어 살아난다.

리루(밀라요보비치)라는 이 생명체는 지구의 재밌는 것들을 학습해 따라하지만

가장 중요한 순간 지구가 파괴되기 직전 인류의 가장 부정적인 자료들을 학습한다.

전쟁역사, 홀로코스트의 역사였다. 그래서 지구를 살리기 거부하지만 결국은

사랑이라는 인류의 가장 큰 희망 앞에서 지구를 구한다.


인공 지능이라는 양날의 검.

과학의 발달로 인공지능이 발달한 만큼 인류의 위협도 커질 수 밖에 없다.

몰론 이 책에서 말하는 인공지능의 양날은 다른 의미겠지만 말이다.

나에게는 좀 생소한 분야이기에 좀더 지식을 갖추어서 읽으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현재를 행복하게 보내는 것도 좋지만

미래를 쌓는 현재를 보내는 것은 더 좋은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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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 (라틴어 원전 완역본) - 최상의 공화국 형태와 유토피아라는 새로운 섬에 관하여 현대지성 클래식 33
토머스 모어 지음,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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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 통치하고 신분 계급이란 계단이 존재하던 사회에서 무엇이

나라를 존재하게 하고 이상적인 나라는 어떤 나라인지를 이야기 하는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


토머스 모어는 모를 수 있지만 유토피아라는 말은 누구나 들어봤을 것이다.

우리가 꿈꾸는 이상적인 세상.

사전적 의미에서 현실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문장이 가슴을 친다.

누구나의 가슴에는 존재하지만 어느곳에도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세상이다.


부자들이 모든 것을 마구잡이로 다 사들인 후에 시장을 독점하는 것을 규제해야 합니다.

일하지 않고 빈둥거리는 사람 수를 줄여야 합니다.

농업을 재건하고 모직업을 회복시켜 정직하게 돈을 버는 직종으로 육성하여

일이 없어 노는 많은 사람이 그런일에 종사하게 해야 합니다.

(중간 생략)

이 나라가 이러한 페단들을 고치지 않는 한, 절도로 벌하는 것이 정의라고

자랑해보아야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런 것은 겉보기에는 아주 정의로워 보이지만

실제로는 정의롭지도 않고 유익하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도시에서 절도범이 성행을 이루고 그 절도범들을 사형에 처하는 상황에서

더더욱 본보기로 무섭게 해야 한다는 정치인의 이야기에 근본적으로 절도를

하게 되는 이유를 언급하며 굶는 사람이 없어야 진정 정의롭게 절도가 줄어들 것임을

토로하는 모습은 당시를 생각해보면 꽤나 용감한 언사가 아닐 수 없다.

특히 다들 고개를 숙이며 칭송하는 추기경 앞에서 더더욱 말이다.

예나 지금이나 권력 앞에 고개 숙이지 않기는 어렵고 특히 정치를 할수록

국민의 대변인이 아닌 권력의 대변인이 되곤 하는 정치계를 보았을 때 더욱 그렇다.


많은 철학자가 이미 책을 써서 그런 조언(대중의 행복을 위해 왕에게 조언을 하는 것)

을 해왔는데, 단지 국가를 다스리는 권력을 쥔 사람들이 그들의 훌륭한 조언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을 뿐입니다.


1500년대에 쓰인 이 책의 내용이 2020년을 지나는 우리의 현실과 다름이 없고,

그들이 꿈꾸던 유토피아가 우리가 꿈꾸는 유토피아와 다른점이 없음에 놀랍다.

인간이 지닌 희망이란 것이 어느 시대건 똑같이 '공평하게 행복한 세상'인데

여전히 그들과 같은 꿈으로만 꾸고 있음에 슬프기 까지 하다.

유토피아가 유토피아인 이유는 이런 이유일까.

사전적 의미처럼 현실에서는 결코 존재할수가 없는 나라인 걸까.

아직 유토피아가 오지 않았음이 이 책이 여전히 존재하는 이유가 되는지도 모르겠다.


유토피아에서는 부모의 가업을 이어가는 경우가 많지만 그럼에도

부모의 직업과 다른 업에 관심을 가지면 관심을 가진 업의 집에 양자로 들어가

일을 배우도록 한다고 한다. 그때에는 친아버지 뿐 아니라 당국도 나서서

양아버지가 될 사람이 책임감 있고 정직한 사람인지를 철저하게 조사하고

살핀 후에 아이를 양자로 보낸다고 한다.

당장 부모를 잃거나 보살핌을 받지 못해 양자로 입양되는 현 시대의 아이들조차

입양전이나 후, 아이의 안전에 보장을 받지 못한다.

바로 얼마전 까지만해도 양부모의 학대로 짧은 생을 마감한 한 아기가 있었다.

그저 일을 배우기 위해서 양자가 되는 상황 속에서도 당국의 관찰과 보호아래 양자가 

되는데, 행복하고 안전하게 양육되기 위해 입양된 아이들의 안전조차 확보가 되지 

못하는 현시대가 날카롭게 반성해야 할 부분이 아닌가 싶다.


어릴적에는 고전을 잘 모르기도 했고 어렵기도 했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좀더 쉽게 재해석 되는 고전들도 많고,

방송을 통해 고전의 이야기를 듣고 배우며 좀더 친숙하게 다가갈수 있게 되었다.

아마 내가 십대가 아닌 어른이 된 이유도 있을 것이다.

왜 예전에 쓰여진 고전을 읽어야 할까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지만

요즘은 고전을 읽을수록 그 옛날부터 인간은 이런 생각을 하며

부지런히 성찰하려 살아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현재가 꿈꾸는 것들이 먼 과거에서부터 꿈꾸던 것이고

어쩌면 미래에서도 꿈꾸고 있을지도 모른다.

표지에 새로운 사회를 꿈꿀 때마다 다시 찾는 필독서라는 글귀가 있는데

책을 읽으며 정말 와 닿는 글귀인것 같다.

유토피아를 꿈꾼다.

그들이 꿈꾸던 유토피아를 지금 우리도 꿈꾸지만 미래에는

꿈이 아닌 현실의 유토피아가 꼭 존재하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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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이 필요할 때 수필 한 편
오덕렬 지음 / 풍백미디어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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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이 무언지 알면서도 잘은 알지 못한다.

문학의 한 종류인 것으로 알고는 있음에도 수필은 자주 접해보질 못했기에

언뜻 어떤장르인지 정의내리기가 어렵다.

수필의 사전적 의미는 일상 생활속에서 얻은 생각과 느낌을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쓴 글이라고 한다.


자유롭게 쓰인 글.

어렵게 생각할 필요없이 자유롭게 작가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찬찬히 듣는다고 생각하며 읽으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제목부터 꽤 마음에 든 책이었다. 수필 한 편.

그리고 표지가 깔끔하고 정갈해서 마음에 들었다.

잘 정돈된 느낌이 들어서 그만큼 책도

잘 정리되어 있을 것 같은 기대가 생긴 책이다.


책을 읽으며 상당히 깊은 시골에서 작가가 살았던 걸까? 생각하다

궁금해져 작가의 이름을 검색해봤다. 45년생. 우리 어머니의 연세와 비슷했다.

노작가의 책인만큼 고향을 그리는 글들에 고향의 해묵은 기억들이

흑백사진처럼 알알아 박혀있는 것 같다.


어머니와 동년배쯤 되시는 어느 분이 지역의 문학인이신데

그분께서 어머니께 책을 선물하셨다.

평소 책에 많은 관심을 가지는 편은 아니셨던 어머니가

밤새 책을 읽으셔서 신기해했더니 읽어보라고 엄마의 어릴적이 고스란히

들어있는 책이라고 하셨다. 지역은 달라도 우리 또래는 다 비슷했나봐

딱 내 이야기 같애. 라던 어머니. 가게에 놀러오시는 분들에게 책을 소개하셨다는데

읽으신분들이 똑같은 말들을 하셨단다. "이거 완전 내 이야기네?" 라고 말이다.

아마 이 책도 내가 읽고 난 후 엄마에게 권하면 읽으면서 똑같은 말을 하실것 같다.


그 옛날 이십대에 떠나와 간간히 들리셨을 엄마의 고향.

작가의 향수가 엄마의 향수와 같지 않을까.

노작가께서 초가집이 허물어진 것에 아쉬움을 느끼듯 엄마도 고향에 들릴때면

달라진 지붕들에 아쉬움이 넘치셨을까. 그런 생각이 든다.


소중한 것. 근원적인 것을 놔두고 우리는 지금 정신없이 어디로 가고 있다.

삶의 모태인 시골을 떠나 빠른 속도만 추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워낭소리는 그런 속도와는 무관하다.

노인과 누렁이의 느리게 걷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모처럼

읽어버린 시간을 찾는 기분이었다.

앞만보며 달리느라 지친 영혼을 일깨워 주고 있었다.

---본문 워낭소리 中---


빠른 도시지만 그럼에도 더 빠르게를 외친다.

걷기보다 버스를 버스보다 지하철을, 택시를..

하루종일 그런 빠른 소음들에 지쳐 점점 생겨난 것이

명상, 요가가 아닐까. 최근에는 모 연예인이 하는 것을 보고

싱잉볼이라는 것도 꽤나 유행했다.

워낭소리편을 읽다가 싱잉볼이 떠올랐다.

소리를 내는 종이란 것은 한번 타작을 해 소리를 울리게 하고

스스로 소리가 끊어질때까지 듣는게 미덕이다.

종이 울리고있는 와중에 종을 잡아 소리를 끊으면 이상한 불쾌함이 서린다.

추억을 걷는 시간들이 그렇다.

천천히 추억속을 걸으며 힐링을 하는 시간에 다급함, 재촉은 어울리지 않는다.

워낭소리를 듣듯 싱잉볼의 울림이 끝날때까지 그저 가만히 듣고 쉬면 되는 것이다.


작가의 글 속에 방언들이 자주 나오는데 나는 지방에서 나고 자라서인지

간혹 아는 방언이 나오면 특유의 발음이나 억양이 자동생성되곤 했다.

아 광주에서도 이런 말을 썼나보다싶어 놀라기도 했다.


'12월의 달력 앞에서' 에서는

마치, '너, 뭘했지?' 하는 것도 같고, '참 빠르다.' 하는 것도 같다는 글에

70이 넘은 노작가의 12월이나 30대의 내가 맞이하는 12월이나

다를 것 없이 애처롭고 허망한 일년의 마지막 달이란 생각이 들었다.

세월 앞에 노작가나 독자인 나나 모두 그저 쫒기는 가련한 사슴인가보다.


어이, <수필문학>, 자네는 영원한 내 친구네.

변심할 일 없는 영원한 친구 한명을 단단히 곁에 두고 있는 작가의 마음이 든든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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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좀 칭찬해줄래? - 칭찬과 인정, 관심과 무시는 어떻게 우리를 움직이는가
이동귀.이성직.안하얀 지음 / 타인의사유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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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가 참 익살스럽다. 하지만 내용은 익살스럽지 않은 진중한 책이다.

중간 중간 귀여운 삽지가 들어가 있어 읽고 쉬어갈 타이밍을 찾을 수 있어 편한 책이었다.

요즘의 학생들이 어떤가를 생각해볼 때, 좀더 쉽게 쓰였다면 좀 더 낮게 어린 학생층에서도

읽기에 좋을 책이란 생각이 든다. 몰론 지금의 학생들이 나의 학창시절과 비교하면 한층 더

지식적이고 논리적이니 어렵지 않을지도 모른다.

학생들이 읽기에는 좀 진지한 면이 많은 책이라 조금만 진지해도 진지충을 연발하는 이들을

생각해봤을때의 내 개인적 견해다.

세분의 심리학 교수님들이 함께 집필한 책이기에 심리학적으로 꽤 탄탄한 책이고

중간 중간 유명한 외국의 심리학자들의 이름도 곧잘 거론이 된다.

심리학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에게 특히나 좋을 책인 것 같다.

지식과 지능적으로는 높아진 지금 시대이지만 심리적으로는 예전보다 퇴화된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예전에도 이렇게 이해불가의 막무가내가 많았던가?

현시대를 살고 있지만 내 어린시절을 떠올려보면 그 짧은 시간동안 참 많이 변화했다는 생각이 든다.


높게 솟은 건물만큼 우리의 마음은 곤두박질 쳐서 땅속까지 기어들어갈 태세로 퇴화한 느낌이다.

책을 읽어가면서 우리모두에게 '인정받는 욕구와 같이 가장 기본적인 심리적 안정욕구'가

충족되어 지지 않다보니 지금의 현상황이 되어버린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쁘게 연애를 하다가도 헤어질때는 돌변해 무서운 살인자나 데이트폭력, 스토킹으로 변질되어

버리는 마음들, 사랑이 이어져야 할 가정사에서 일어나는 폭력들, 여러가지 부분에서

우리들의 마음에는 안정된 사랑이 사라져가고 있다.


나 자신부터 '사랑받는 나', '인정받는 나'를 외면하며 타인의 기준에서 집착한다.

나를 가장 먼저 사랑해야 하는 사람은 나자신이어야 하는데 우리는 늘 남에게서 사랑과 인정을

요구하고 채워지지 못해 괴로워한다. 이 책은 그런 사랑받는 나, 인정받는 나에 관해 다루고 있다.

살아오면서 나는 아직 어른으로서 미흡한 '어린 어른'이었을때,

기존의 어른들에게 억울한 일들을 참 많이 겪었다. 그럼에도 그것은 오롯이 내가 못나서라는

이야기를 듣곤했다. 몰론 내가 어리숙했을 것이다. 말그대로 '어린 어른'이었으니까.

하지만 어리숙했다고 해서 당해도 된다는 것은 어디에서 나온 결론일까?

일을 하고도 월급을 떼이는 데에 어리숙함이 왜 무기가 되어야 했을까.

지금은 그런 생각들이 든다.


당시에는 몰론 억울하면서도 그런 내 자신 탓을 많이 했다. 멍청했다. 바보 같았다라고 말이다.

그것이 결국은 나에게 독이 되었음을 나는 알고 있다. 사람에 대한 믿음이 부족해진 것이다.

사람을 믿지 못하다보니 늘 외롭다. 그래서 그것이 결국 마음의 병이 되곤 한다.

심리적 용어에 '정서적 타당화'라는 것이 있다고 한다.

너의 억울함, 슬픔, 분노는 정당한 것이야 라는 적극적인 공감을 뜻하는 것이라고 하는데

이 정서적 타당화라는 것이 아주 단순해 보이면서도 아주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가장 기본적인 억울한 분노나 슬픔을 인정하고 나 자신을 위로할 시간이 분명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부분이 약하다. 어릴적부터 듣는 말이

"뭘 잘했다고 울어!"라는 소리를 곧 잘 듣고 자라니 말이다.

내가 잘못한 부분을 인정할 시간이 필요하고, 그 잘못을 깨우치며 반성할 시간도 필요하다.

그리고 분명 그 잘못된 부분중에서도 억울한 부분들도 존재할 것이다.

억울한 부분에 대해서는 공감받아야 할 필요성도 있다.

그런데 그러기가 참 쉽지 않다.


심리학 저서들을 읽어보면 아이들도 아이들이지만 어른들 중 말도 안되는 행동을 하는 이들의 경우

어릴적 환경이 주요 원인으로 꼽히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 어린이를 거쳐 어른이 되어야만 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원치 않더라도 겪게 되는 일들이 우리를 '그런 어른'으로 만든다.

그래서 아이때부터의 심리적 안정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심리학에서는 많이 다루고 있다.

요즘은 아이때 받지 못한 심리적 안정을 '저서나 심리상담'으로 치료받는 어른들이 꽤 많다.

나 자신을 이해하고 내 정서적 타당성을 인정하기 위해서다.

내가 이만큼 마음이 아팠구나. 슬펐구나를 이해하기 위해서다.


안정감을 찾아주는 아주 소소한 것들로 7가지 항목이 소개되어 있는데,

최근 마음이 힘들 때 해보려 노력했던 것들이다. 그중에는 해본 것도 마음만 먹어본 것도 있다.

그래도 가장 어찌보면 마음 먹기 어려운 심리상담 받아보기를 해봤기에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나머지 항목은 혼자서도 잘 해볼수 있을 것 같아서다.

옛날의 내가 해보고 싶었던 것이 뭐였던가 생각해봐야겠다.


최근 생각한 것이

내가 행복한 사람이면 주변에 그런 행복한 나를 보고 웃으며 다가서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내가 우울해하면 내 우울함에 위로하려 다가오는 사람들이 있을테지만 그런 이들을 위해

더더욱 우울을 빨리 벗어던지고 내 우울함을 위로해줘서 고마워라며 말할 수 있는 내가 되어야한다.

계속해서 우울하고 예민한 나를 언제까지 받아주며 남아줄 사람은 없다.

우울하고 예민한 나 자신은 분명 나를 도와주려 오는 이들에게도 칼날을 세울 것이니 말이다.

칼을 계속해서 휘두르는 사람 곁에 남아 줄 사람은 없다. 그것을 인정해야만 한다.


내가 쥐고 있는 칼을 내려놓고 내 마음의 안정을 찾은 후에야 우린 누군가의 손을 맞잡을 수 있다.

인정받고 싶은 마음도, 사랑받고 싶은 마음도 그리고 두려움도

우리 모두 그럴수 있다. 그런 마음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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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하이츠의 신 1
츠지무라 미즈키 지음, 이정민 옮김 / 몽실북스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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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띠지에 나온 내용이 눈길이 먼저 갔다.

사람이 죽어나가는 소설이거나 그런 상황으로 내치닫는 이야기인가?

1권을 읽은 소감은 띠지의 분위기와는 다르게 '따뜻한 듯 조금은 슬프기도 한 분위기의 책'으로

소설이나 그림을 지망하는 이들과 이미 성공의 반열에 오른 이들이 슬로하이츠라는 건물에 모여

그들 각자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각자 너무나 다른 성격의 사람들이 모여 그들만의 색채로 움직이며

한편의 드라마 혹은 영화를 보여주는 듯하다. 특히 성공과는 다르게 소심하고 소박해 보이는

고키와 현실적이며 강한 보스캐릭터인 다마키, 그리고 스-라고 불리는 귀여운 듯 착한 스미레 등

눈길이 가는 캐릭터들이 많다.


몇달전에 우연히 보게 되었던 만화 원작의 일본 드라마 '중쇄를 찍자'가 떠오르기도 했다.

만화출판사의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인데 만화가를 꿈꾸는 지망생부터 유명 만화가 그리고

그런 만화가를 케어해주는 출판사 직원과 편집자들의 이야기였다.

유명한 만화가의 집에서 문하생들(지망생들)이 만화를 배우며 돕는 모습이 생각이 났다.

슬로하이츠의 신에서의 모습은 그것과 조금 다른 것이 그들의 사적인 배경과 이야기들에

집중해있다. 성공을 하게 된 배경이라거나 인간관계 등 말이다.


자극적이지 않으면서도 눈이 쉬이 멈춰지는 책은 아니었다.

이 페이지만 보고 쉬어야지하면서 어느새 뒷장을 넘기고 있어 타이밍을 매번 놓치고 말았다.


"이 집은 심심할 틈이 없어."

라는 본문 중 대사처럼 묘하게 심심하지 않아서 집중하게 된 책이다.


츠지무라 미즈키의 책을 많이 접해본 결과 그것이 그녀 소설의 강점이자 특징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특별해보이지 않는 소소함 속에서도 눈길을 떼지못하게 만드는 특별함이 깃들어 있다.


1권만 읽은 상태라 2권을 읽어야만 모든 것을 다 이해하겠지만

1권만 읽은 현재의 느낌은 미즈키 작가의 느낌 그대로 '추리인 듯 하면서도 인간적인 이야기'라

어딘가 인간愛적인 감성, 감동이 물들어 있는 느낌이다.

특히 지요다 고키의 '모방 집단 자살사건' 의 추락 이후 나타난 '고키의 천사'의 편지 내용이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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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지도 않고서 책을 나쁘게 말하는 사람도 있을 테고,

읽어도 마음이 울리지 않은 사람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제 마음에는 울렸습니다.

그 시기에 지요다 선생님의 책을 읽지 않았더라면 저는 지금 이곳에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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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도 마음이 울리지 않는다. 하지만 내 마음에는 울렸다.

책을 좋아하게되면서 느꼈던 마음이기에 공감이 되어 울컥했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그런 책이었을지라도 누군가에게는 마음 깊이

내 마음을 알아주는 듯한 책인 경우가 있다.

나는 적어도 그렇게 마음이 울려본적 있다. 그런 책이 있었다.

누군가에게는 엥? 하는 의문이 생길수도 있을지 모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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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의 생명을 소중히 아끼고 더 관심을 가져 주세요.

외로워서 함께 죽길 원하는 나약한 마음보다 혼자라도 살아야겠다고 생각하는 쪽이

훨씬 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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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워서 죽길 바라는 마음이 나약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혼자라도 살아가려는 마음이

그 마음보다 강하다는 데에는 부정할 수가 없다.

죽길 바라는 마음은 모든것을 체념하고 벗어버리며 자유로워지고 싶다는 마음이다.

어떻게든 살아가겠다는 것은 그런 자유를 대신해 고통스러워도 견뎌내 보겠다는 용기다.

죽음에도 용기가 필요하지만 살아감에도 용기가 필요하다.


고키의 천사로 추측되는 여인의 정체는 뭘까.

이 책은 대체 어떤 형태로 끝나기 위해 쓰여졌을까.

2권을 어서 읽어봐야겠다. 퇴근하면 곧장 집에 가서 2권을 집어 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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