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든 쓰게 된다 - 소설가 김중혁의 창작의 비밀
김중혁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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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다 읽은 사람이 무엇이든 쓰게 되었으면 좋겠다. 다 읽지 않더라도 갑자기 책을 덮고는 무엇이든 쓰게 되었으면 좋겠다"고 시작하는 작가의 멘트는 어쩌면 이 책의 모든 것을 담아낸 말인지도 모른다. 책 제목처럼 당신이 이 책 이후 무엇이든 자유롭게 글을 쓰며 즐겁길 바란다 라는게 작가의 마음이 아닐까. 대단한 것이 아니어도 좋다. 어차피 그런 대단함은 기존의 작가들이 충분히 내어주고 있고 우리는 소소한, 다듬어지지 않은 글들을 써내려가며 점점 스스로의 글솜씨를 늘려가기만 하는 것으로도 충분히 즐거울 수 있다.


일상에서 쓰는 작은 조각글, 다이어리 등도 모두가 글이고 나처럼 독서를 좋아해 읽은 책의 서평을 쓰는 것 역시 글인데 우리는 늘 글쓰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해서는 잘 다듬어지고 잘 쓰인 글이어야 한다는 일종의 고정관념 때문이 아닐까. 잘 다듬어지지 않은 글을 타인에게 공개했다가 자칫 두고두고 흑역사가 되어버리는 게 무서운지도 모른다. 
사실 난 가끔 말도 안 되는 유치한 글들을 적어서 친구에게 대뜸 보여줄 때가 있다.( 어찌보면 나름 일방적인 글 통보와 마찬가지다) 그때 만큼은 왜인지 글을 썼다는 약간의 의기양양한 자부심에 흐뭇해하다 나중엔 그저 실실 웃음을 건네며 좀 유치했지? 라고 말을 건넨다. 그 작은 일이 친구와 또하나의 연결된 추억고리를 만들어주기에 난 유치한 글이라도 친구에게 통보한 것에 그다지 후회를 하진 않는다.
어떤 날은 시를 썼다가, 어떤 날은 에세이 같은 글을 썼다가, 또 어떤 날은 캐릭터 설정에 관한 글을 쓰기도 한다. 이름과 외모 그리고 간간이 떠오르는 대사 등등을.. 하지만 쓰지 않는 날이 더 많다. 난 작가가 아니니 글을 써야 한다는 압박감이 없으니 말이다.


책 내용 중 글을 쓰는 것 만큼 중요한 것이 독서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어떤 취향의 독서를 많이 하느냐에 따라 글을 쓰는 취향이 달라진다는 말에는 꽤 공감했다. 내가 처음으로 어떠한 글. 정확하게는 [소설]을 썼던 기억은 고등학생 때였다. 당시에 판타지 문학이 붐을 일으켰고 당연하게도 나는 판타지 문학에 열을 올리며 읽었다. 자연스레 내가 쓰는 글들은 판타지와 밀접한 글들이었다. 그 때 떠올린 머릿속의 상상들, 캐릭터들 대사들.. 무엇이든 썼지만 그렇다고 단순히 그냥 무엇일 뿐인 것이 아니라 소중한 무언가가 되어버린 소중한 경험의 글들이다.


왕좌의 게임속 가문들의 가언을 보여주는 것이 있던데,
난 여러 가언들 중에 마르텔 가문의 굽히지 않고, 꺾이지 않고, 부러지지 않는다.가 마음에 들었다.
보통의 나는 이런 유형의 사람과는 거리가 먼데 어째서인지 이 가언에 매력을 느꼈다. 난 굽히는 사람이고 꺾이는 사람이며 부러지는 사람이다. 자주 좌절하고 안된다고 포기하고 체념하는 데에 익숙한 한 사람이다. 어쩌면 그렇기에 더 매력을 느끼는지도 모른다. 내가 해줄 수 없는 것을 이 가언을 가진 마르텔가문은 이루어주겠지.
그래서 소설을 좋아하는지도 모른다. 소설 속에는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성격을 드러내며 살아가니까. 그래서 상상하는 것은 즐겁고 창조한다는 행위는 예술이 되는가 보다. 다른 독자들은 과연 어떤 가문을 선택했을까?.


우리의 임무는 세상을 정리 정돈하는게 아니다. 더 어지럽게, 더 헝클어뜨려서 더 많은 것들이 생겨나게 하는 것이다. 마음껏 어지르자.

헝클어뜨릴수록 더 생겨난다니 당장 두피에서 탈출해버린, 그래서 쓸모가 없게 되어버린 내 머리카락 한 올을 마구 헝클어뜨려본다. 과연 무엇이 생겨날까?. 둥글 둥글 말려버린 머리카락이 어쩐지 한 마리의 검은 양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과연 김중혁 당신의 말대로 헝클어 뜨리니 뭔가 나오긴 나오는군요.라고 중얼거려 본다.


마지막 대목을 교훈이나 반성으로 끝내는 글도 믿을 수 없다.
간단한 반성만큼 위험한 것이 없다. 세가지 기준 중에서 살마들이 가장 빠지기 쉬운 글쓰기의 함정은 세번째(위의 대목)일 것이다. 우리는 학교에서 그렇게 글쓰기를 배웠다. 우리는 글을 마칠 때 쯤이면 반드시 뭔가 깨달아야 하고,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 나는 내일부터 어찌어찌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라거나 나는 반성을 하면서 잠이 들었습니다. 라고 쓰도록 배웠다.
세상에, 반성과 후회가 그토록 쉬운 것이었나.

나와 같은 세대인 걸까? 하는 생각에 잠깐 그의 프로필을 검색해봤다.
같은 세대라고 하기엔 10살 가까운 나이 차이가 났지만 그럼에도 비슷한 교육의 시대를 살았는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 그리 배웠던 것으로 기억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우리는 책을 읽으며 같은 감정을 배우도록 강제교육을 받았는지도 모른다. 이 내용은 이러 이러하고 시대상은 이러했기에 여기에서 느끼는 감정은 바로 이것이다하고 말이다.

예전 어느 문학자가 자신의 글을 두고 강의를 하는 자리에 참석했는데, 강의자가 이 작가는 이런 상황 속에서 이러한 감정으로 글을 쓰셨을거다라는 말을 듣고는 긍정도 반박도 못하셨다는 일화가 있다. 난 아무 생각없이 그저 써지는 대로 썼는데... 라고 말을 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는 교육을 받은 대로 이 글에선 이런 감정을 느껴야 하는 것이라고 단정 지어 둔다. 사실 생각해보면 글을 쓴 이에게 이만한 실례도 없다..

어느 방송에서 김영학 작가는 "문학은 읽은 사람이 스스로 느끼는 감정이 정답이다. 열 사람이 있으면 열 사람이 다른 생각을 가질 수 있는 게 문학이다"라는 뉘앙스와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다.  상당히 공감이 되던 대목이었다. 글을 쓰는 것도 마찬가지다. 여러 가지 감정 속에서 사람들은 글을 쓴다. 슬플 때만 글이 써지는 게 아니고 즐거울 때만 글이 써지는 게 아니다. 다양한 감정 속에서 언제든 글을 쓰는게 중요한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글을 쓰는 사람에게 작가가 권하는 어떠한 디테일한 노하우라기 보다 작은 자신의 일상 속 글 쓰는 이야기를 해준 것 같은 글이었다. 글쓰기를 전문으로 하는 이들에겐 어떨지 모르지만 적어도 소소한 일상 속 인물인 나에게는 그렇게 다가왔다.
글을 쓰기 위해서 이런게 필요하고 이렇게 써야 한다는 글이 아니라 그냥 무엇이든 용감하게 써보라는 의미의 책인 것 같다.
그가 그린 그림들도 어쩐지 정감이 간다. 디테일하게 잘 그린 그림은 아닐지라도.. (사실 그랬다면 멀티플레이라는 점에서 좀 배 아팠을지도 모르겠다. 내 기준에서 두가지 다 잘하는 건 너무 반칙이다..)

뜬금없지만 나는 사실 이 책을 처음 받았을 때 종이질에 기분이 좋았다. 재생지 같은 느낌의 표지와 속지에는 실제로 회색의 갱지가 쓰였다. 게다가 문제 풀이 공간은 말 그대로 학교 다닐 시절 갱지로 치르던 시험이 떠올라서 위트 있는 구성 같아 좋았다. 

당신의 결과물을 사랑할 준비가 되어 있다.

그렇게 용기를 내라는 듯 말해 준 작가의 결과물에 애정을 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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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이삼촌
현기영 지음 / 창비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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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매체의 힘은 꽤 영향력이 있다. 그리고 그 영향력을 갖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그 TV매체를 통하는 대중의 힘이다.

TV매체와 대중은 떨어질래야 떨어질수 없는 관계인 것이다.


순이삼촌이란 이 소설을 알게 된건 TV매체를 통해서였다.

제주도로 여행을 떠난 이들이 저녁에 모여 식사를 하며 이야기를 나눌때 언급된 이 책.

제주도의 참혹한 아픔을 고스란히 간직한 책. 


제주도민들이 말하는 뭍에 살고 있는 나는, 같은 나라의 사람이 맞나 싶을정도로 제주 4.3 사건에 무지했다.

그 옛날 5.18에 무지했듯이 말이다. 언뜻 언뜻 4.3이란 단어를 접했던 듯 했지만 그게 무슨 사건이였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고 그러했기에 무지한 채로 세월을 보냈다.

최근 5.18 민주항쟁에 관한 이야기들이 매체를 통해 터져나오며 역사가 재조명 되면서 그와 비슷한 이야기들이 하나 둘 터져나온다.

오랜 세월 봉인되어있던 것들이 드디어 세상에 그 진실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 동안 매체가 사실상으로는 얼마나 막혀있었는지를 깨닫는 순간과도 마찬가지였다.

그 시절은 그러했다고, 그럴수 밖에 없었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겠지만 그렇다고 지금 현 시대에 그 과거를 무조건 덮기만 하는 것 역시 역사가 아님을 이제는 알아야 하지 않을까.

일본의 잔학한 과거를 우리가 기억해야 하듯이 우리 국내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행한 잔혹한 아픔역시 기억해야 함을 너무 쉬이 잊고 가는게 아닐까.


갑작스레 섬이란 공간에 갇혀 오도가도 못하는 상황속에서 공비 뿐만 아니라 경찰과 군인이라는, 보호를 받아야 할 그들에게 민간인이 잔혹하게 학살당하고도 그 한스러움 그 원통함을 어디에 하소연 할수 없었을 우리의 역사.

경찰과 군인에게 행해진 상처이기에 더더욱 어디에 하소연할 수 없었으리라.. 누가 믿어줄 것이며 누가 알아줄 것일까.. 경찰과 군인이란 신분으로 그들을 폭도나 간첩으로 몰아세우면 그만이였을테니..

내전의 두려움 그리고 그 속에 일어나는 광기의 학살의 두려움을 너무 쉽게들 흙속에 파묻어버렸다. 그러고도 서로 타지역을 헐뜯고 비난하기에 바쁜게 아직 현실이다.



나이가 원수인 세상에 어른 되려고 하다니. 이 난세엔 아이는 자라서는 안된다. 나이 먹어서도 안되어 젊은 나이가 죄요 원수인지라 반드시 총 맞거나 죽창 맞아 죽는 날이 오는 법이다.


섬사람이라면 모조리 폭도로 보는 서청의 미친 백정은 왜 안 바꿔주나. 바꾸기는 커녕 서장자리까지 서청이 차지했고, 섬에 하나 있는 신문사도 빼앗았단다.


통틀어 이백도 안되는 무장폭도를 진압한다고 온 섬을 불지르다니, 그야말로 모기를 향해 칼을 빼어든 격이었다. 그래서 이백을 훨씬 넘어 5만이 죽었다.



바람부는 제주에는 돌도 많지만~ 인정 많고 마음씨 고운 아가씨도 많지요


흔히 삼다도 라고 해서 제주도는 돌과 바람과 여자가 많다고 알려져있다.

내가 어릴적 듣기로 제주도는 섬이기에 남자들이 배낚시를 나갔다 죽는 일이 많아서 여자가 많고 남자가 적다고 들었었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여자가 많은 이유 중 하나가 바로 4.3 사건과도 관련이 있음을 깨달았다.  

공비를 잡기 위한 목적으로 조금만 의심이 가도 남자들을 데려가 죽이기 일쑤였고, 가족들까지 죽는 일은 예삿일이였으니 자손을 귀하게 여기는 제사문화가 있는 한국에서 어린 아이들을 살리기 위해 이리저리 흩어지게 했을 그 어미들의 심정은 오죽할까.


일제 시대에 일제 아래에서 빌붙어 산 이들이 경찰이 되었으니 오죽할까라는 대목도 그렇거니와 일제시대에 일본순사들이 쓰던 일본도를 들고 다닌 경찰이라니.. 지금의 우리가 생각하기엔 이처럼 기가막힌 아이러니도 없을 터였다.

겨우 일본에서 해방이 되었더니 일본 아래에서 배운 이들이 위에서 국민들을 찍어누른 격이니 말이다.. 해방되었음에도 진정 해방된 것이 아닌 상황이 슬펐다. 

지금 우리에게 제주도는 관광도시 이전에 일단 부의 상징과 같은 섬이기도 하다. 제주도에 땅이나 사둘껄 하는 말이 있을 정도로...하지만 그렇게 누리게 된 것이 불과 얼마 안된다는 사실을 누가 알까..

지금의 모습이 되기까지 그들이 겪은 끔찍한 오랜 고통들.. 


푸른 바다의 제주도에 가면 이젠 관광지만 아니라 이런 역사적인 공간도 가볼수 있도록 교육적인 현장이 많이 준비되어있다면 좋겠다.

올바르게 역사를 직시하고 배워야 미래를 향한 방향을 잡을 수 있지 않을까? 

잊어버리면 반복될수 밖에 없을 테니 말이다. 


이런 역사적 사실을 뭍어두기 보다 잘 알려주고 그 안에서 많은 것들을 배울수 있는 계기를 위해서도 이런 책들이 많이 필요함을 느끼게 된다. 
쉬~쉬 입을 모아 바람소리를 내며 과거를 바람에 실어 보내지 말고, 아아 울음섞인 소리라도 좋으니 우리 참담한 역사를 함께 목놓아 울고 알아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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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처럼 신화 - 스토리텔링 세계신화 아시아클래식 7
김남일 지음 / 도서출판 아시아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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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나이에(누가보면 정말 나이 많은 노년인줄 알겠지만) 새로운 것이 해보고 싶어진 나는 스페인어에 관심을 두고 있다. 
그래서 이런 저런 것들을 찾아보다 최근에 한국외국어대학교라는 대학이름을 참 많이 접했다. 그래서 책 날개에 있던 지은이 소개글에 한국외국어대학교 네덜란드어과가 참 눈에 또렷이 들어왔다.
글을 쓰는 사람은 의례 국문학이거나 그와 관련된 전공일거라 막연히 생각한 적이 많은데 외국어 중에서도 조금은 생소한 네덜란드어라니.. 묘한 캐릭터를 가진 분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한 특정 나라가 아니라 작가는 다양한 문화권에 두루두루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 같고 그래서 아마 이 책이 쓰여진 것인지도 모르겠다.
작가처럼 나 역시 신화에 관심이 많다. 아마 나이와 성별, 나라를 막론하고 신화라는 것에 관심을 가지는 건 인류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 책에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그리스로마신화와 함께 한국의 전통 신화와 다른 여러나라의 신화들이 조금씩 조금씩 같은 주제로 묶여 이야기 된다. 
그 덕에 정말 생소한 이름의 신 이름을 들을때면 저절로 아이가 되듯 천천히 이름을 다시금 몇번이나 읽어야 했다. 외국어는 역시 신기하구나 이런 발음을 용케도 하는구나 생각하다가도 외국인에게있어 우리나라의 이름이나 단어 역시 다르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든다.
머나멀리 떨어진 뉴질랜드와 하와이쪽에 전해지는 마우이 신화가 우리나라 주몽의 신화와 닮은 점처럼 신화라는 것이 문화마다 다르지만 묘하게 비슷하게 닮아있는 구석도 참 많다. 그런 면에서 가까우면서도 서로 다른 신화를 가진 일본을 생각해보면 인류의 역사와 문화는 기이하다.
우리나라에 잘 알려져 있는 모노노케 히메(원령공주)처럼 원령신화가 일본에서는 원래부터 토대가 되어있는 줄 알았는데 중세시대부터 원령신화가 정착되었다는 점을 새로이 알게되었다. 그렇게 두고 보면 신화라는 것은 늘 고전적인 옛과거의 유물같지만 사실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끝없이 이어지며 재 탄생되는 것 같다.
주말에 보았던 탈북자들이 전해주는 북한에 대한 이야기에서도 김일성과 김정일을 신격화 하는 이야기들이 나왔다. 김정일의 어머니인 여인이 김일성을 도운 일화라며 이야기해주는(북한에선 실제로 교육되어지고 있는) 내용이다.
6.25 전쟁 당시 김일성을 도우며 전장을 누빈 그녀가 등에 짊어진 세숫대야로 총알을 막아 김일성을 살렸다는 이야기를 신격화하며 교육을 시킨다고 한다.실제 북한 박물관에는 그 때 총탄을 막아낸 세숫대야라며 녹슨 세숫대야가 전시되어있단다.
이처럼 신화라는 것은 단순히 과거에만 머물러있지 않는다. 죽지 않는데 새로이 생겨나기까지 한다. 


신화는 정보가 아니라 이야기이다. 데이터의 메마른 육체가 아니라 은유와 알레고리의 풍부한 정신이다.
이야기이므로 죽음도 없다. 이야기 속에서 죽은 자는 다시 산다. 영원히 산다.이야기의 '바깥' 같은 것은 없다. 그러므로 신들의 황혼 이후에도 이야기는 계속된다.



대홍수라고 하면 노아의 방주를 떠올리는게 당연했는데 홍수신화가 다른 여러나라에서도 전해지고 있다는 점에서는 꽤나 흥미로웠다. 인간의 잘못에 분노한 신이 인간들을 모두 홍수로 씻어내버린 신화.. 그들 중 몇명이 살아남아 현재의 인류를 이어갔다고 보통은 알고 있다.
그런데 어느 나라든 2명의 인류가 남는 다는 건 대체 어디에서 오는 일치감일까?. 참 신기하다.  그 중에서도 중국의 이족에게 전해져오는 창세서사시 메이커는 참으로 흥미롭다 못해 웃음이 나왔다.
살아남은 단 두명의 인류가 오누이였는데, 신이 나서서 이 둘의 결합을 종용한다. 맷돌이 아랫돌과 윗돌이 있듯이 라던가 여라가지 비유를 들며 두 사람이 결혼해 인류를 이루라고 말한다. 

인간은 인간이고 맷돌은 맷돌입니다. 저희는 한 부모 밑에서 태어났으니 결혼할 수 없습니다.
사람은 사람이고 나무는 나무입니다.
천신이 애가 달아 오리와 거위까지 동원하여 설득하지만 남매는 끝끝내 거부한다. 

결국 울상이 되다시피한 신에게 되려 남매가 해결책을 제시해 신을 가르친 부분을 보며 신화긴 하지만 역시 배운 인류는 남다르구나 싶어 웃음이 절로 나왔다. 
그러고 보면 신도 참 힘들겠다. 자연의 섭리도 그렇거니와 인류의 배움 이란 지혜 앞에서 신도 누군가를 이해시키려면 적잖이 골치 아픈게 아니겠구나.
그럼에도 어쩐지 "잘 배웠구나 이녀석들" 하고 웃음이 터지는데는 인류로서 뿌듯함이 아닐까? 신의 이기로 인류를 다 쓸어버리고 재창조시키려다 너무 잘 배운 똑똑한 오누이 덕분에 계획이 실현되지 못할까봐 전전긍긍했을 신을 생각해보면 결국 제 꾀에 제가 넘어갔다는 말이 생각난다.
신의 이기심에 인류의 대표로서 한방 제대로 날려준 후련함도 든다.

다양한 문화의 신화 속 인물들을 보여주어 신화에 대해 좀 더 다양한 재미를 얻을수 있었던 것 같다. 생소한 이름의 신화일수록 접해보지 못했던 신화였기에 더 알찬던 것 같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신화도 좀더 우리곁으로 가까이 다가올수 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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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사는 게 쉽지 않을 때 - 나 지금 잘 살고 있는 걸까? 고민하는 당신을 위한 인생 조언
우만란쟝 지음, 오하나 옮김 / 스마트북스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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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라고 하면 공자나 맹자 순자그리고 삼국지와 초한지 같은 소설들이 떠오른다.
공자가 남긴 많은 인생의 지침을 알려주는 명언들을 보며 이 사람은 정말 시대를 앞서갔구나 생각했었는데 어떤 강의에서 듣기를당시 사람의 평균 수명이 40이 넘지 못하던 시대에 70세 이상을 사셨다고 한다남들보다 2배가량이나 되는 삶의 지혜들을 겪었으니 그 삶 동안 많은 사람을 떠나보내며 하나하나 깨우쳐간 지식들이 얼마나 많았을까그런 한편에선 사실 외롭기도 많이 외로운 노장이었을 거란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사는 게 쉽지 않을 때이 책에는 중국 저자답게 중국의 소설 속혹여는 과거의 인물들에 관해 예시를 들어주며 이야기를 풀어주는 부분이 많다사실 나에겐 이해가 되기도 하지만 이해가 조금 잘 되지 않는 부분도 있다나에게 생소한 인간관계도 분명히 있을 테니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지식이란 무엇일까?
지식이란 세상에 대한 기본적 인지이다배운 것을 깨우친다는 말이다.
배운다는 것은 그저 한가지 행위에 불과하다그러나 깨우친다는 것은 깊은 곳에까지 닿는다는 말이다따라서 중요한 것은 지()보다 식()이다.
배움만 있다면 책을 아무리 많이 읽어도 어리석음을 벗어나지 못한다깨달음을 얻지 못하는 배움은 죽은 지식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우린 삶에서 많은 공부들을 한다그럼에도 늘 제자리걸음인 경우가 많다영어 학습률이 높음에도 정작 영어를 외국인과 자연스레 소통하는 확률은 낮은 무늬만 교육이라는 오명까지 가지고 있을 정도로 우리의 지식은 배움만 있는 경우가 많다
책을 아무리 많이 읽어도 어리석음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말은 지금의 우리에게 딱 맞는지도 모른다나이가 아무리 많이 먹었어도 타인과의 문제에 이기적인 노인이 있는가 하면 어린데도 불구하고 어른 뺨치는 아이들도 있다이건 모두 배움만 있고 깨달음이 있고 없는 차이의 결과물이 아닐까영어나 다른 배움뿐 아니라 우린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늘 배움의 연속이지만 깨우치지 못한다배움보다 앞서 시대의 이기심이 깨우침을 막고 있는지도 모른다.
  
토론은 말이 통하는 상대와 비로소 가능한 것이다.
당신보다 수준이 높으면 한수 배우면 되고 수준이 낮으면 웃어주며 된다.
  
상대와 의견이 맞지 않는다고 무턱대고 화를 나거나 무시하기 보다 상대의 기준에서 그 이야기가 맞을 수도 있다는 것을 인지하는 것도 삶의 필요한 미덕이겠지만 이것이 또한 그리 쉽지 않다나보다 못하면 알려주고 싶다는 욕구와 나보다 뛰어나면 인정하기 싫은 욕구 때문은 아닐까.. 수준이 높다고 질투하지 말고 수준이 낮다고 무시할 필요 없이 다 함께 생각을 공유한다는 것이 가장 쉬우면서도 또한 어려운 토론이다그래서 늘 사람의 마음이 가장 어렵다고 하는지도 모르겠다
  
책 곳곳에 공감이 되는 부분들그렇구나 하고 수긍 긍정할 수 있는 부분들이 많았다.
삶의 지혜라는 것 이미 삶을 살아내고 사라져간 이들의 이야기들을 통해 우린 지식으로는 충분히 배우고 인지하고 있다그럼에도 아직 깨달음에 도달한 이들은 많지 않다그래서 우리는 늘 잡음에 시달린다잡음에 휘말리지 않는 것 또한 깨달음임을 잊지 말아야겠다.
난 사실 잡음에 잘 휘말리는 유형의 사람이기에 이런 깨달음은 꼭 필요할 것 같다.
천천히 반복해서 읽으며 삶의 지혜를 배우고 깨우쳐 가기에 좋은 지침이 될 것 같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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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술사 1 - 기억을 지우는 사람 아르테 미스터리 10
오리가미 교야 지음, 서혜영 옮김 / arte(아르테)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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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길이 두려워 늘 일찍 귀가하는 교코를 걱정하면서 한켠에선 관심의 마음을 두고 있는 료이치는 기억술사에 관해서 관심을 가진다. 도시괴담처럼 이야기로만 전해지는 기억술사.

어떠한 기억을 지우길 원하는 이를 만나 특정 부분의 기억을 지워준다는 기억술사에 관해서 료이치는 반은 허황된 이야기라고 생각하면서도 그 존재에 관해 꾸준히 찾아다닌다.

그러다 갑작스레 교코는 료이치의 존재에 관해 변화가 생기고 료이치는 기억술사가 교코의 기억을 지웠으리라 직감한다. 기억술사에 관해 반감이 플러스 되어버린 채로 료(료이치)는 자신과 같이 기억술사를 조사하는 이들을 알게된다.

그 중 한사람이 변호사 다카하라다.

사실 개인적으로 다카하라 변호사와 도노군의 이야기가 즐거웠다. 변호사라는 믿음직스러운 직업을 가진 사내가 음식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도노군에게 그것도 초면에 선뜻 같이 살자는 믿음직스럽지 못한 말을 던진 부분도 그렇거니와 조금 생각에 잠기다 게이는 아니죠? 라고 묻는 도노군의 모습을 상상하면 일본스럽다고 할지 혹여는 정상적인 반응이였다고 할지..

나에겐 두사람의 만남 자체가 썩 특이하고 유쾌했던 것 같다.

...이야기는 나의 예상과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지만 말이다.

 

창피한 일, 혹여는 무서웠던 일, 그리고 지우고 싶은 가슴 아픈 일..

지우고 싶은 기억은 참 많았고 또한 더욱 더 많아질 것이다. 내가 살아가는 동안에는 쌓일테니까. 기억을 지우는 것은 나쁘다고 말하는 쪽과 정말 괴로워서 지울 수밖에 없는 쪽..

사실 어느 쪽이 정답이랄 것은 없는 것 같다.

책 속의 이야기처럼 괴로워서, 무서워서 지웠지만 지워짐으로 기억하지 못하기에 같은 실수를 반복할수 있다는 점에서 기억의 소거가 무조건적으로 옳다고 할 수가 없기에 이 문제는 생각보다 난해하고 어려운 문제임이 틀림없다.

 

1권만으로도 많은 이야기들 끝맺음이 있는데 과연 2권은 어떤 이야기가 있을지 1권을 끝내면서 궁금해졌다. 1권에서 완결이 되었다고 해도 이상할게 없는 끝맺음이였다고 생각한다.

사실 예상치 못한 결말이였기에 나름 허를 찔렸다라는 느낌이 강했다. 추리소설에서 뒷통수를 맞은 느낌이였다고나 할까? 내가 생각한 기억술사와는 사뭇 달랐지만 그럼에도 참 사랑스러운 기억술사다.. 그리고 기억술사들이 가진 무수히 많은 아픔들, 말 못할 슬픔들이 그 작은 가슴에 들어차 뛰고 있다고 생각하니 기억술사도 이 세상에선 결국 평범한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기억을 지우고 싶은 사람이 지우고 싶다, 지우고 후회하면 어쩌지? 지우고 싶지 않은걸까? 하고 고민하듯이 기억을 지운 자 역시 지우는게 나을지 지우지 않는게 나을지 끝없이 고민하고 고민할지도 모른다. 특히 가장 가까이에 있는 이의 기억이라면 더더욱..

일본 스타일의 잔잔한 미스테리 로맨스이기에 그런 류를 좋아하는 이들에겐 괜찮을 소설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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