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코미디 - 유병재 농담집
유병재 지음 / 비채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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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적 나는 화가 많았다. 지금의 나는 눈물이 많다.

가끔은 어릴 적의 내가 부럽기도 하다. 원없이 화가 나면 화를 표출하고 심지어는 욕을 하기도 했고, 분노로 화를 내며 눈물을 펑펑 쏟아내기도 했다. 그래서였는지 어릴 적의 나는 정말 폭풍같았지만 그만큼 지나고 난 이후의 슬픔, 분노, 고통은 없었던 것 같다.

폭풍이 지나간 이후의 날씨처럼 평온해지곤 했다.


최근 회사일과 여러가지 인간관계에서 오는 마찰들로 나는 심각해져간다는 자각이 들 정도로 우울함에 빠져 있었다.

회사 업무와 상사와의 갈등, 주변인들과의 마찰 등 모든것이 힘에 겨운데 어릴 적 나처럼 어느곳에 하소연 하거나 화를 표출할 수가 없었다. 비단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사회생활을 하는 성인들이 겪어가는 하나의 통증일 것이다.


토요일, 도저히 이대로는 위험 신호가 뇌속에 울려 안되겠다는 생각에 무작정 부산행을 택했다.

가방 속에 이 책 한권을 넣은 채로 말이다.

버스 안에서 멀미도 느끼지 못한 채로 책을 읽어 나갔고 웃으면서도 어쩐지 울고 있는 나를 자각했다.

누구나 힘들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내 힘든 과정이 당연히 내가 이겨내기 만해야 하는 나만의 나약함이 아니구나 라는 일종의 위로를 받았다. 사실 성인이 된 이후에 가장 힘든건 힘든 것을 어딘가에 하소연하기가 힘들어지는 현실인지도 모른다.

힘들다. 짜증난다. 아프다 이 말을 한두번이 아닌 그 이상을 표시하는 순간 인간관계는 조금씩 틀어져간다.

' 저 사람은 늘 아프다고 한다. 늘 짜증만 부린다. 늘 우울하다. 나에게도 저런 감정이 전이되서 피곤해서 싫다 '

라고 상대가 느끼는 순간 관계는 끝이 난다.

그래서 성인이 된 이후에는 아픈걸 아프다고 말하기가 어려워진다. 아프다고 말하는 데에도 예의와 선이 필요하다.


아파야 청춘이다 라는 말에 아프면 환자지 그게 청춘이냐는 유병언의 멘트를 언제가 듣고 굉장히 웃었던 기억이 났다.

맞아 아픈데 자꾸 청춘이라고 당연히 그 나이때는 아파봐야 세상 이치가 얻어진다는건 너무 가학적이잖아. 라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힘든 순간 나에게 찾아와 나를 한바탕 웃음과 눈물로 위로해준 이 책이 고마웠다.



쿨한 거랑 싸가지 없는 거랑 구분 못하는 새끼들이 많은데, 영단어가 쓰고 싶어서 그러는 거라면 어울리는 말이 있다.

소시오패스 



꼭 누군가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지만 해줄수는 없다. 그러니 상상만 해볼까 한다.




사람들이 당신을 겁내는 건

당신에게 대단한 카리스마가 있어서가 아닙니다.


당신은 그냥 쉽게 상처를 주는 사람이기 때문에

상처받게될 나를 겁내는 것이지,

당신을 겁내는 것이 아닙니다.


당신에게 대단한 카리스마가 있어서가 아닙니다.


..



나는 가끔 내가 상처 준 사람보다 가장 화나 있는 사람에게 사과하는 것 같다.


..


자존감이 낮아서, 그럼에도 억울해서 나는 왜 이렇게 밖에 안되나. 당당하지 못한 내 자신에게 화가 나서 속상하기도 했는데

책을 읽어내리면서 그런 나를 꼭 안아주고 괜찮다해주는 책 같아서 많은 위로를 받았다.

그의 말처럼 그와 비슷한 아픔에 있을때 이 책을 읽어서가 아닐까.


책을 덮고 버스에서 내렸을 때는 좀더 마음이 가벼웠고 그 덕에 지인을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것 같다.

책과 사람은 언제나 치유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한다. 갑작스레 나타난 나를 안아준 지인에게도 작은 버스의자에서 나를 위로해준 이 책도 너무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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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비주얼 클래식 Visual Classic
헤르만 헤세 지음, 추혜연 그림, 서유리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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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을 읽어본 사람도 많겠지만데미안을 읽지 않았어도 그 이름을 들은 이들은 많을 겁니다.

중학생 필독서로 지정되어 있기도 하지만 사실 성인이 된 지금도 데미안은 저에게 어려운 책이였고마찬가지로 많은 이들에게 어려운 고전 중 하나 일 것입니다.

예전부터 고전이 어려운 이유를 생각해봤을 때 제가 느낀 점은 현대적 언어와는 많이 다른그 시대의 언어적 감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였습니다.

그래서 간혹 나이가 지긋하신 문학가들께서 현대문학은 너무 가볍다라고 평하는게 아닐까요.

우리나라의 창이나 판소리 등 고전적 문화가 현대적인 언어로 불려지면 어색한 것과 마찬가지일 겁니다난해하고 어렵고 생소한 단어들 문장들이 나열되지만 그것 하나가 멋으로 그 시대의 고풍적인 감각을 지닌 예술인 것처럼 고전문학 역시 어렵고 난해하지만 그 나름의 시대적 고풍을 가진 예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읽는 사람들에게 저는 말해주고 싶습니다.

어려워도 괜찮습니다고전이니까그 시대를 우리 시대는 잘 모르니까 그 시대의 언어적 감각을 조금은 이해 못해도 괜찮다고 말입니다.

 


예전 데미안을 읽었을 때 유달리 어려워했던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성경적인 부분들이였습니다교회를 다니지 않았던 시절이였기에 카인이 누구인지 아벨이 누구인지 이해하기가 어려웠죠그리고 친구에게 전해 들은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이해하긴 어려웠었습니다카인은 동생 아벨을 살해한 살인자인데 왜 데미안은 카인의 징표를 이야기하며 카인을 다르게 해석하는걸까라는 생각도 했었던 것 같습니다성경책을 읽게 된 성인이 된 지금 이 책을 읽었을 때에는 그 부분에선 아주 쉽게 이해가 되었기에 한고비를 넘겼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카인은 과연 왜곡된 평가를 받은 사람이였나라는 의구심이 드는 것은 사실입니다.

 


선과 악.

그 모든 것을 가지고 기울어질수 있는 존재인 인간에게 신은 의지자이자 용서자인지도 모릅니다그래서 더더욱 용서받기 위해 사람들은 치열하게 깨끗함을 강요하며 사는지도 모르죠.

선한 것들만 찬양받는 시대에 데미안은 인간 내면의 선과 악을 모두 인정하는 존재로

싱클레어에겐 꽤 신비롭고 매력적이며 또한 자신 내면의 현자적인 존재같습니다.

싱클레어의 내면을 인도하는 인도자이기도 하죠.

무엇보다 그는 싱클레어가 인정할수 있는 유일한 친구이기도 합니다.

 


새는 힘겹게 알을 깨고 나온다알은 세계다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해야 한다.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신의 이름은 아브락삭스다.

 


그저 단순히 멋진 문장이라다고 생각했던 이 문장이 지금은 조금 새롭게 보이기도 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각자 다르게 받아들이고 해석할 수 있겠지만 제가 읽어본 데미안 속에서 싱클레어가 가진 새와 알의 의미는 선과 악 그 중 하나의 세계를 파괴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닐까 합니다아브락삭스는 선과 악 모두를 가진 신이라는 의미에서 선과 악 모두를 포용하는 신이 아닐까요그리고 싱클레어는 빛과 어둠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카인의 징표이죠싱클레어는 두 세계에서 끝없이 기울어지며 아브락삭스를 향해 날아오르려 합니다.

어둠으로 아브락삭스에게 닿느냐 빛으로 아브락삭스에게 닿느냐.

그런 의미로 느껴졌습니다싱클레어의 내면은 언제나 선과 악이 공존하니까요.

그리고 악이란 것은 절대적인 악이 아니라 현실에서 과연 악이나 선이냐 미묘한 차이를 가지고 있습니다예를 들면 살인은 나쁜 것이 맞지만 정당방위에서 자신이 살기위해 일어난 살인의 경우도 과연 나쁜것인가 하는 그런 미묘한 경계선에 있는 악들그렇기에 아브락삭스라는 신의 존재가 더더욱 중요한 하나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데미안은 집중해서 생각하면 그것이 이루어지게 한다는 조금 신기한 이야기를 하는게 보이는데 그것은 다른 책들예를 들자면 [연금술사]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와서 그 책을 떠올리기도 했습니다간절히 소망하면 이루어진다는 말도 있듯이 어떠한 염원에 집중하면 길이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싱클레어가 데미안을 간절히 바랄 때 데미안은 싱클레어의 가까운곳에서 늘 나타나죠우연의 일치겠지만 저 역시 무언가 바라던 것이 가끔 정말 기막히게 저에게 오는 경우가 있습니다그리고 특정 친구를 만나고 싶다고 생각을 하고 있으면 연락이 오거나 만나게 되기도 하죠우연이라고는 하지만 그럼에도 해보는 것과 해보지 않는 것에는 차이가 있으니 전 바라는 것을 자주 염원해 볼 생각입니다.

 


나는 부주의하게 다소 무례를 범했고그것이 그에게는 심판이 되고 말았다.

 


피스토리우스에게 싱클레어가 무례를 범했을 때 그리고 그것이 그들 사이의 분위기를 바꿔 놓았을 때이 문장을 보며 언제나 나의 작은 행동이 상대에게는 나에 대한 심판을 내릴 수 있는 장치임을 가슴 깊이 느끼게 되었습니다나의 무례가 상대에겐 결국 나를 판단하는 하나의 잣대가 된다는 것그렇기에 더더욱 상대에 대한 무례를 범하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 같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정신분석가들이 판단한 이 책의 주인공들의 정신세계는 어떠한 진단이 내려질까라는 재밌는 생각이 살짝 들었습니다그만큼 그들의 세계는 독특하고 또한 신비롭습니다.

특히 카인의 징표를 가진 (사실 전 인류의 양면성을 카인과 아벨로 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싱클레어의 정신세계는 굉장히 불안정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 모두에겐 아브락삭스가 있고알이 있습니다알 속에는 새가 있을 것이고그 새는 언제나 알을 깨고 나올 날만을 기다립니다내 안의 아브락삭스가 속삭이는지도 모릅니다.

당신의 알이 깨고 나올 내면의 최종 세계는 선인가요 악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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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맞추다 - 딱 하나뿐인 것들에 대한 이야기
김미나 지음 / 특별한서재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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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내 안에 어릴 적 나 자신이, 가만히 나를 올려다 보고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눈을 맞추다라는 제목처럼 이 책은 내 속에 아직 사랑받길 바라는 나 자신과 눈을 맞추는 시간을 주었습니다.

에세이에서는 늘 자신을 사랑하라는 이야기들을 많이 전달하는데 이 책 역시 자신을 사랑하며 살아갈 것을 조곤 조곤 친구의 음성처럼 들려줍니다.

나를 사랑하게 되는 것에는 단순한듯 복잡한 많은 것들이 필요합니다. 그렇다고 준비물이 많을까봐 겁낼 필요는 없습니다. 일상 속에서 늘 준비되어 있는 것들이죠.

많은 사람들이 행복을 바라지만 사실 행복은 언제든 나에게 웃어줄 준비를 하고 주변에서 기다리는 것 같습니다.

나에게 따스한 곁을 내주는 반려동물과 나를 아낌없이 사랑해주는 부모님과 친구들,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조각 케잌 한 조각 역시 나에게 다가올 행복의 준비물들이죠.


늙어가는 것은 죽어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가는 것.


나이가 들어가는 것을 느끼고 한해가 지나 또 한 해가 다가올 때면 이제는 두려움이 먼저 앞서기도 합니다.

다시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삶이 허무하게 지나갔구나. 나이가 들어버렸구나.. 점점 나이가 드는 나는 이 세상이란 공간에서 얼마의 가치가 있을까.

특출나게 재능이 뛰어나지도, 외모가 아름답지도 그렇다고 부를 가진 것도 아닌 나 자신은 그저 한마리의 작은 개미 같다는 생각이 들곤 했습니다.

세상 속 많은 사람들 중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을까요.

그래도 우리는 개미가 아니기에 좋아하는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거나 여행을 할 수 있습니다. 스스로 행복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 행복은 그리 크고 거대할 필요는 없습니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단순히 늙어간다는 것이 아니라 행복해질 시간이 더 주어진다는 것, 나의 삶의 행복이 더 영글어 갈 시간이 늘어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 하나 가슴에 와닿거나 내 속의 어린 내가 반응하는 글들이 많아서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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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로아 궁정일기 1 - 정치가의 꿈, Novel Engine
정연 지음, Mintaka.Kim 외 그림 / 데이즈엔터(주)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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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화사와 반월당의 기묘한 이야기로 나에게 이름을 알린 작가 정연의 책 벨로아 궁정일기.

최근 출간되어 새로 쓴 소설인가 했지만 이 책은 사실 10년전에 이미 한번 출간된 책이였다고 합니다. 
작가님의 데뷔작인 모양이에요. 유랑화사와 반월당의 인기에 힘입어 재 출간하게 된 경우인데 사실 구판의 경우 완결이 나지 않은 생태로 출판사 사정에 의해 연재가 무기한으로 연기되어 버린 상태였다고 합니다.
이번에는 완결까지 쭈욱 달릴 거라고 해서 신판을 구입한 사람으로서는 다행이 아닐수 없습니다.

동양풍 판타지이자 기담집 라노벨에 가까웠던 유랑화사와 반월당이 취향에 맞았기에 이 책도 혹시나 하는 생각으로 구매했습니다.
사실 한가지 책으로 그 작가에게 꽂히면 당분간은 그 작가의 책을 사는 버릇이 있는데, 이 책 역시 그렇게 해서 오게 된 경우로 개인적으로는 나름대로 괜찮은 책이라 생각합니다. 취향에 맞아서겠지요.

일단 배경은 동양풍이 아닌 서양풍의 판타지 배경입니다. 
용도 나오고 이상한 괴물도 나오고 마법사도 나옵니다. 에이~ 그럼 어렵겠다 혹은 내 취향엔 안 맞겠다 난 마법 용어같은거 모르니까! 라고 하는 분들..걱정 마세요. 이 책에서 나오는 마법사들은 그저 지나가는 노인 1, 노인 2 정도의 느낌으로만 나온다고 할수 있으니까요. 판타지 배경이지만 이 책은 정치를 풍자한 책으로 가볍게 읽기에 좋은 책입니다.  


전임 재상이였던 아버지 덕분에 제도(수도 왕궁)에는 가보지도 못하고 사회적 정치이야기는 들어본 적도 없는 주인공 데그는 동경하는 마음에 무작정 가출해서 수도로 옵니다. 그리고는 꿈꾸던 재상의 개인 비서로 들어가죠. 막상 수도에서 비서로 일하면서 보니 주변의 귀족들은 다 왜이리 무능하고 답답한 사람들 뿐인지요. 게다가 사회는 늘 문제 투성이를 껴안고 돌아가고 있습니다. 해결했다 싶었지만 2차적 문제가 발생하는 부분들을 보니 안타깝기도 하고 저런 사람들이 있긴 하지하고 수긍하게 되는 부분도 꽤 있었습니다.
자신에게 닥친 일들을 현명하게 하나하나 해결해 나가는 데그를 보는 재미가 있는 소설이였는데
막상 읽으면서 우리 사회랑 어쩜 이리 닮았나 싶기도 합니다. 10년 전에 쓰인 소설임에도 소설 속에 진보와 보수파가 대립하는 부분, 선동 신문 등이 현실과 닮아서 사실 놀랍기도 했어요. 아마 정치계는 늘 비슷한 일들로 골머리를 앓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 책의 끝은 어떻게 되는지 궁금해서 저는 완결까지 함께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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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든 쓰게 된다 - 소설가 김중혁의 창작의 비밀
김중혁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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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다 읽은 사람이 무엇이든 쓰게 되었으면 좋겠다. 다 읽지 않더라도 갑자기 책을 덮고는 무엇이든 쓰게 되었으면 좋겠다"고 시작하는 작가의 멘트는 어쩌면 이 책의 모든 것을 담아낸 말인지도 모른다. 책 제목처럼 당신이 이 책 이후 무엇이든 자유롭게 글을 쓰며 즐겁길 바란다 라는게 작가의 마음이 아닐까. 대단한 것이 아니어도 좋다. 어차피 그런 대단함은 기존의 작가들이 충분히 내어주고 있고 우리는 소소한, 다듬어지지 않은 글들을 써내려가며 점점 스스로의 글솜씨를 늘려가기만 하는 것으로도 충분히 즐거울 수 있다.


일상에서 쓰는 작은 조각글, 다이어리 등도 모두가 글이고 나처럼 독서를 좋아해 읽은 책의 서평을 쓰는 것 역시 글인데 우리는 늘 글쓰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해서는 잘 다듬어지고 잘 쓰인 글이어야 한다는 일종의 고정관념 때문이 아닐까. 잘 다듬어지지 않은 글을 타인에게 공개했다가 자칫 두고두고 흑역사가 되어버리는 게 무서운지도 모른다. 
사실 난 가끔 말도 안 되는 유치한 글들을 적어서 친구에게 대뜸 보여줄 때가 있다.( 어찌보면 나름 일방적인 글 통보와 마찬가지다) 그때 만큼은 왜인지 글을 썼다는 약간의 의기양양한 자부심에 흐뭇해하다 나중엔 그저 실실 웃음을 건네며 좀 유치했지? 라고 말을 건넨다. 그 작은 일이 친구와 또하나의 연결된 추억고리를 만들어주기에 난 유치한 글이라도 친구에게 통보한 것에 그다지 후회를 하진 않는다.
어떤 날은 시를 썼다가, 어떤 날은 에세이 같은 글을 썼다가, 또 어떤 날은 캐릭터 설정에 관한 글을 쓰기도 한다. 이름과 외모 그리고 간간이 떠오르는 대사 등등을.. 하지만 쓰지 않는 날이 더 많다. 난 작가가 아니니 글을 써야 한다는 압박감이 없으니 말이다.


책 내용 중 글을 쓰는 것 만큼 중요한 것이 독서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어떤 취향의 독서를 많이 하느냐에 따라 글을 쓰는 취향이 달라진다는 말에는 꽤 공감했다. 내가 처음으로 어떠한 글. 정확하게는 [소설]을 썼던 기억은 고등학생 때였다. 당시에 판타지 문학이 붐을 일으켰고 당연하게도 나는 판타지 문학에 열을 올리며 읽었다. 자연스레 내가 쓰는 글들은 판타지와 밀접한 글들이었다. 그 때 떠올린 머릿속의 상상들, 캐릭터들 대사들.. 무엇이든 썼지만 그렇다고 단순히 그냥 무엇일 뿐인 것이 아니라 소중한 무언가가 되어버린 소중한 경험의 글들이다.


왕좌의 게임속 가문들의 가언을 보여주는 것이 있던데,
난 여러 가언들 중에 마르텔 가문의 굽히지 않고, 꺾이지 않고, 부러지지 않는다.가 마음에 들었다.
보통의 나는 이런 유형의 사람과는 거리가 먼데 어째서인지 이 가언에 매력을 느꼈다. 난 굽히는 사람이고 꺾이는 사람이며 부러지는 사람이다. 자주 좌절하고 안된다고 포기하고 체념하는 데에 익숙한 한 사람이다. 어쩌면 그렇기에 더 매력을 느끼는지도 모른다. 내가 해줄 수 없는 것을 이 가언을 가진 마르텔가문은 이루어주겠지.
그래서 소설을 좋아하는지도 모른다. 소설 속에는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성격을 드러내며 살아가니까. 그래서 상상하는 것은 즐겁고 창조한다는 행위는 예술이 되는가 보다. 다른 독자들은 과연 어떤 가문을 선택했을까?.


우리의 임무는 세상을 정리 정돈하는게 아니다. 더 어지럽게, 더 헝클어뜨려서 더 많은 것들이 생겨나게 하는 것이다. 마음껏 어지르자.

헝클어뜨릴수록 더 생겨난다니 당장 두피에서 탈출해버린, 그래서 쓸모가 없게 되어버린 내 머리카락 한 올을 마구 헝클어뜨려본다. 과연 무엇이 생겨날까?. 둥글 둥글 말려버린 머리카락이 어쩐지 한 마리의 검은 양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과연 김중혁 당신의 말대로 헝클어 뜨리니 뭔가 나오긴 나오는군요.라고 중얼거려 본다.


마지막 대목을 교훈이나 반성으로 끝내는 글도 믿을 수 없다.
간단한 반성만큼 위험한 것이 없다. 세가지 기준 중에서 살마들이 가장 빠지기 쉬운 글쓰기의 함정은 세번째(위의 대목)일 것이다. 우리는 학교에서 그렇게 글쓰기를 배웠다. 우리는 글을 마칠 때 쯤이면 반드시 뭔가 깨달아야 하고,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 나는 내일부터 어찌어찌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라거나 나는 반성을 하면서 잠이 들었습니다. 라고 쓰도록 배웠다.
세상에, 반성과 후회가 그토록 쉬운 것이었나.

나와 같은 세대인 걸까? 하는 생각에 잠깐 그의 프로필을 검색해봤다.
같은 세대라고 하기엔 10살 가까운 나이 차이가 났지만 그럼에도 비슷한 교육의 시대를 살았는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 그리 배웠던 것으로 기억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우리는 책을 읽으며 같은 감정을 배우도록 강제교육을 받았는지도 모른다. 이 내용은 이러 이러하고 시대상은 이러했기에 여기에서 느끼는 감정은 바로 이것이다하고 말이다.

예전 어느 문학자가 자신의 글을 두고 강의를 하는 자리에 참석했는데, 강의자가 이 작가는 이런 상황 속에서 이러한 감정으로 글을 쓰셨을거다라는 말을 듣고는 긍정도 반박도 못하셨다는 일화가 있다. 난 아무 생각없이 그저 써지는 대로 썼는데... 라고 말을 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는 교육을 받은 대로 이 글에선 이런 감정을 느껴야 하는 것이라고 단정 지어 둔다. 사실 생각해보면 글을 쓴 이에게 이만한 실례도 없다..

어느 방송에서 김영학 작가는 "문학은 읽은 사람이 스스로 느끼는 감정이 정답이다. 열 사람이 있으면 열 사람이 다른 생각을 가질 수 있는 게 문학이다"라는 뉘앙스와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다.  상당히 공감이 되던 대목이었다. 글을 쓰는 것도 마찬가지다. 여러 가지 감정 속에서 사람들은 글을 쓴다. 슬플 때만 글이 써지는 게 아니고 즐거울 때만 글이 써지는 게 아니다. 다양한 감정 속에서 언제든 글을 쓰는게 중요한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글을 쓰는 사람에게 작가가 권하는 어떠한 디테일한 노하우라기 보다 작은 자신의 일상 속 글 쓰는 이야기를 해준 것 같은 글이었다. 글쓰기를 전문으로 하는 이들에겐 어떨지 모르지만 적어도 소소한 일상 속 인물인 나에게는 그렇게 다가왔다.
글을 쓰기 위해서 이런게 필요하고 이렇게 써야 한다는 글이 아니라 그냥 무엇이든 용감하게 써보라는 의미의 책인 것 같다.
그가 그린 그림들도 어쩐지 정감이 간다. 디테일하게 잘 그린 그림은 아닐지라도.. (사실 그랬다면 멀티플레이라는 점에서 좀 배 아팠을지도 모르겠다. 내 기준에서 두가지 다 잘하는 건 너무 반칙이다..)

뜬금없지만 나는 사실 이 책을 처음 받았을 때 종이질에 기분이 좋았다. 재생지 같은 느낌의 표지와 속지에는 실제로 회색의 갱지가 쓰였다. 게다가 문제 풀이 공간은 말 그대로 학교 다닐 시절 갱지로 치르던 시험이 떠올라서 위트 있는 구성 같아 좋았다. 

당신의 결과물을 사랑할 준비가 되어 있다.

그렇게 용기를 내라는 듯 말해 준 작가의 결과물에 애정을 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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