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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코미디 - 유병재 농담집
유병재 지음 / 비채 / 2017년 11월
평점 :
어릴적 나는 화가 많았다. 지금의 나는 눈물이 많다.
가끔은 어릴 적의 내가 부럽기도 하다. 원없이 화가 나면 화를 표출하고 심지어는 욕을 하기도 했고, 분노로 화를 내며 눈물을 펑펑 쏟아내기도 했다. 그래서였는지 어릴 적의 나는 정말 폭풍같았지만 그만큼 지나고 난 이후의 슬픔, 분노, 고통은 없었던 것 같다.
폭풍이 지나간 이후의 날씨처럼 평온해지곤 했다.
최근 회사일과 여러가지 인간관계에서 오는 마찰들로 나는 심각해져간다는 자각이 들 정도로 우울함에 빠져 있었다.
회사 업무와 상사와의 갈등, 주변인들과의 마찰 등 모든것이 힘에 겨운데 어릴 적 나처럼 어느곳에 하소연 하거나 화를 표출할 수가 없었다. 비단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사회생활을 하는 성인들이 겪어가는 하나의 통증일 것이다.
토요일, 도저히 이대로는 위험 신호가 뇌속에 울려 안되겠다는 생각에 무작정 부산행을 택했다.
가방 속에 이 책 한권을 넣은 채로 말이다.
버스 안에서 멀미도 느끼지 못한 채로 책을 읽어 나갔고 웃으면서도 어쩐지 울고 있는 나를 자각했다.
누구나 힘들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내 힘든 과정이 당연히 내가 이겨내기 만해야 하는 나만의 나약함이 아니구나 라는 일종의 위로를 받았다. 사실 성인이 된 이후에 가장 힘든건 힘든 것을 어딘가에 하소연하기가 힘들어지는 현실인지도 모른다.
힘들다. 짜증난다. 아프다 이 말을 한두번이 아닌 그 이상을 표시하는 순간 인간관계는 조금씩 틀어져간다.
' 저 사람은 늘 아프다고 한다. 늘 짜증만 부린다. 늘 우울하다. 나에게도 저런 감정이 전이되서 피곤해서 싫다 '
라고 상대가 느끼는 순간 관계는 끝이 난다.
그래서 성인이 된 이후에는 아픈걸 아프다고 말하기가 어려워진다. 아프다고 말하는 데에도 예의와 선이 필요하다.
아파야 청춘이다 라는 말에 아프면 환자지 그게 청춘이냐는 유병언의 멘트를 언제가 듣고 굉장히 웃었던 기억이 났다.
맞아 아픈데 자꾸 청춘이라고 당연히 그 나이때는 아파봐야 세상 이치가 얻어진다는건 너무 가학적이잖아. 라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힘든 순간 나에게 찾아와 나를 한바탕 웃음과 눈물로 위로해준 이 책이 고마웠다.
쿨한 거랑 싸가지 없는 거랑 구분 못하는 새끼들이 많은데, 영단어가 쓰고 싶어서 그러는 거라면 어울리는 말이 있다.
소시오패스
꼭 누군가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지만 해줄수는 없다. 그러니 상상만 해볼까 한다.
사람들이 당신을 겁내는 건
당신에게 대단한 카리스마가 있어서가 아닙니다.
당신은 그냥 쉽게 상처를 주는 사람이기 때문에
상처받게될 나를 겁내는 것이지,
당신을 겁내는 것이 아닙니다.
당신에게 대단한 카리스마가 있어서가 아닙니다.
..
나는 가끔 내가 상처 준 사람보다 가장 화나 있는 사람에게 사과하는 것 같다.
..
자존감이 낮아서, 그럼에도 억울해서 나는 왜 이렇게 밖에 안되나. 당당하지 못한 내 자신에게 화가 나서 속상하기도 했는데
책을 읽어내리면서 그런 나를 꼭 안아주고 괜찮다해주는 책 같아서 많은 위로를 받았다.
그의 말처럼 그와 비슷한 아픔에 있을때 이 책을 읽어서가 아닐까.
책을 덮고 버스에서 내렸을 때는 좀더 마음이 가벼웠고 그 덕에 지인을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것 같다.
책과 사람은 언제나 치유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한다. 갑작스레 나타난 나를 안아준 지인에게도 작은 버스의자에서 나를 위로해준 이 책도 너무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