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이라도 끝까지 버텨본 적 있는가 - 승부는 폭발력이 아니라 버티는 힘에서 갈린다
웨이슈잉 지음, 하진이 옮김 / 센시오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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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m 달리기에서는 폭발적인 스타트와 짧은 순간의 스피드로 결승선을 통과해 승부를 가른다.

그렇다고 해서 그 승부는 순간의 폭발력만이 전부였다고 할 수 있을까.

그 순간을 위해 무던히 달리고 스타트 연습을 하고, 

다리의 힘을 키우는 트레이닝을 걸친 인고의 버팀 끝에

이루어진 노력들의 경기이기에 우리는 승자를 떠나 모든 선수에게 박수를 보내곤 한다.


어릴 때에는 막연히 그렇게 승부사였던 이들, 뭔가를 이루어 낸 이들을 부러워하던 마음이 컸다.

하지만 이제 나이를 먹으며 그 뒤에 숨겨졌을 많은 노력들을 먼저 떠올리게 된다.


세상살이

운명처럼 쉽게 얻어지는 것들도 있지만 대다수는

그렇게 쉽게 나타나주지 않는 결과들이란 것을 안다.

그럼에도 현재는 흙수저 금수저 다이아수저등을 언급하며 쉽사리 넘기 힘든 벽이

존재한다며 쉽게 포기하기도 한다. 

몰론 같은 곳을 가더라도 걸어서 가는 것과 비행기를 타고 가는 차이는 상당히 다르다.

그렇다고 목적지에 가는 것마저 포기해야 할까. 

이 책에서 말하는 것은 바로 이 점이란 생각이 든다.


삶이란 목적지에서 누군가를 보며 나는 왜 저렇게 타고나지 못했을까 

왜 나는 좋은 환경에 태어나지 못했을까.

그런 한탄을 하며 주저앉기보다 나 자신이 할수 있는 것들, 

시간이라는 누구나에게 주어지는 유일한 공평함 속에서 계속 나아가야 하는 점을 말해준다. 


삶의 가치는 누군가와 비교해서 저울질 하는 것이 아니다.

나 자신이라는 존재를 내 삶에 올리는 것, 내가 누구인지를, 어떤 사람인지를 결정하는 것,

나 자신을 내가 알아가는게 삶의 가치가 아닐까.


나는 연예인이 아니다. 그렇다고 성공한 사업가도 아니다.

그저 아주 평범한 사람이다.

그럼에도 나는 나 자신이다.

나는 부끄러운 사람인가?

부끄럽지 않은 사람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만족스럽지는 않다.

그렇기에 좀 더 만족스러워지고 싶다.

그리고 그 만족스러움을 위해 내가 해야 할 일을 해야 한다.

그 해야 할 일이 계속해서 무언가를 배우고 노력하고 버티며 걸어보는 것이다.


나에게도 아이돌을 좋아하던 시기가 있었지만 언젠가부터

역시 아이돌은 어린 사람들이 즐기는 전유물쯤으로 생각하게됐다.

그러다 최근 좋아하는 아이돌이 생겼다.

그런데 그 아이돌의 한 멤버는 누구나 인정하는

그래서 가장 선호하는 아이돌 1위에까지 이름이 올랐을 정도의 노력파였다.

뛰어난 인재였음에도 가수라는 벽에서는 그저 아무것도 아닐수도 있는

어중간함을 가진 자신이 늘 불안한 위치라는 것을 알아 그 불안함을 없애려

무던히 노력하고 또 노력했다는 멤버.


인이어가 부족해 라이브가 가장 불안한 멤버에게 주자고 했던 인이어가 자신에게 와서

혼자서 많이 울며 부족하지 않으려 노래연습을 했다는 멤버.

그래서 점점 더 많은 파트를 부르고 있는, 열정과 노력의 아이콘이 된 멤버.

무용과 수재였음에도 가수로서의 안무는 무용과 달라 처음에 안무 연습을 하며

많이 울었다고 한다.

안되는 안무를 어떻게든 되게 만들기 위해 잠을 줄여가며 연습했고

그 덕에 지금 그의 춤은 세계가 인정하는 돋보적인 실루엣을 자랑한다.

아마 그가 그렇게 견디고 버티며 노력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그는 없었을 것이다.

지금의 나는 이런 사람들을 보면서 그들의 자리를 부러워하지 않는다.

나는 그들의 그런 노력들이 부럽다. 어떻게 그렇게 노력할 수 있었을까.

노력도 재능이라는 말이 있다. 꾸준히 무언가를 한다는 것도 재능에 가까울 정도로 어렵다.

그 어려운 것을 버텨낸 이들이 갖는 영광의 열매가 달콤한 것은 당연한지도 모른다.


선한 영향력이라고 요즘 많이 표현하는데

세상에는 선한 영향력을 가진 이들이 많다.

과거에도 있었고 현재에도 있으며 미래에도 있을 것이다.

그런 선한 영향력을 일으키는 이들에게는 늘 열심히 계속해서 노력하는

자신의 믿음과 묵묵함이 있다.


우리가 완벽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완벽함처럼 보이는 노력들이 있다.

그들도 결코 완벽하지 않다.

그들은 그것을 알기에 누군가의 칭찬일색에도 묵묵히 스스로에게 최선을 다해 노력한다.


이 책의 저자 웨이슈잉은 하버드 새벽 4시 반이란 책으로 먼저 유명해졌었다.

예전에 서점에서 하버드 새벽 4시 반이란 책을 찾는 학생이 점원과 내옆을 스쳐 지나가며

책을 찾던 것을 계기로 기억하고 있던 책이다.

모두가 동경하는 하버드지만 그들에게 특별함이란 결국 철저한 시간관리와

자기 관리라는 점을 보면서 아주 평범한 것이 특별함을 만든다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그저 평범한 바위에 묵묵히 징을 대며 몇년에 걸쳐 돌을 깎는 사람이 있었기에

지금 세계 곳곳 돌에 세겨진 불상들이 존재하듯이 우리는 우리 자신을 깍아 다듬어 가야 한다.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멈추지 말자. 

남과 비교하기 이전에 나의 부족함을 알고 그 부분을 채워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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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 2019 제43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김초엽 지음 / 허블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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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에얼리언 영화를 보고 자란 세대다.

여주인공이 외계 생명체인 에얼리언과 우주선에서 싸우는 sf영화로

외계생명체는 무섭고 두렵고 흉칙한 존재로 생각하며 자랐다.

영화를 보는 것은 즐겼지만 sf장르의 소설은 즐겨하지 않았다.

읽으며 머릿속에 그려지는 상상력이 sf장르에서는 나에게 한계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은 읽기 전까지 고민을 좀 했었다. sf장르라는 말에 상상의 한계에 부딪혀

읽기 힘들었던 지난날 sf 소설들이 생각나서다.

하지만 많은 인지도를 얻고 있는 책이기에 혹시나 하는 생각에 읽어보게 되었는데

작가가 여성이여서인지 새로운 sf의 세계를 평화롭게 잘 묘사해준 것 같다.

지구와 우주, 떨어질 수 없는 공존의 공간에서 또 다른 행성에 대한 미지의 그리움을 잘 담아낸 것 같다.

생명을 다하고 눈을 감은 이들에게 우리는 흔히 돌아가셨다. 하늘나라로 갔다라는 표현을 많이 한다.

땅에 시신을 뭍지만 영혼은 하얀 구름과 파란 하늘을 이야기하며

저 멀리 영혼의 고향을 향해 날아갔다고 표현한다.

어쩌면 우리의 영혼은 정말 우주에서 오는게 아닐까.

이 책을 읽으며 그런 미지의 향수를 잠시나마 느낄수 있어서 좋았다.

침략과 전쟁이 아닌 평화와 공존, 그리고 우주를 향한 어떤 그리움의 sf 소설이다.

표지의 제목인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수 없다면'은 가족을 어느 행성에 이주시킨 뒤 함께 가려했지만

과학자라는 신분으로 타이밍을 놓치고 평생 가족을 그리워하며 백년을 살아온 여성 안나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정부 담당자의 제지를 뒤로한 채 만날수 있을 가능성이 희박함에도 불구하고

가족이 있을 행성을 향해 그 우주를 향해 나아가는 안나의 모습이 쓸쓸하면서도 비장하며 희망적이었다.

우리는 때때로 쓸쓸함을, 외로워질 것을, 뻔할것 같다는 불안감을 안고서도 굽히지 않고 가는 이들을 본다.

만류하는 이들의 사이에서도 가야하는 것은 그 사람의 견고한 믿음인지도 모른다.

만날지도 모른다 라는 믿음 말이다.

소수이기에 포기해야 한다는 개인의 아픔들.

그런 속에서 피는 그리움과 믿음을 우리는 너무 쉽게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소설 속의 인물이지만 안나의 우주비행이 무사히 마쳐 가족들 품에 잠들었기를 바래본다.

빛의 속도로 갈수 없다고 해서 갈수 없는 것이 아니라 그럼에도 가야하는 것,

망망대해같은 우주속에서 오랜 세월이 걸려서라도 가야 하는 길이 있다.

그 길을 가는 이들에게 우리가 던져야 할 것은 과연 비난일까, 제지일까, 아니면 무사를 향한 응원일까.

"나는 내가 가야 할 곳을 정확히 알고 있어"

소설 속 안나처럼 우리는 우리가 가야할 곳을 정확히 알고 있을까.

안나가 알았던 것 처럼 내가 가야할 곳을 알고 싶다.

어쩌면 우주에서 떠돌고 있는 것은 안나가 아니라 우리 자신인지도 모른다.

이런 류의 sf라면 sf가 힘든 나라도 얼마든지 또 만날 준비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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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을 만나 행복해졌다 - 복잡한 세상과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보는 심리법칙 75
장원청 지음, 김혜림 옮김 / 미디어숲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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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심리에 관한 책을 최근에 많이 읽는데 그런 책 어렵지 않느냐 또는 지루하지 않느냐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그리고 심리책의 경우 마음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하면서 위로를 받는 식의 책이 많다보니 뻔한 내용이 아니냐 그냥 아는 사실을 나열해주고 잠시 읽는 동안엔 위로가 되거나 다짐을 하게 만들지만 막상 읽고 나면 또 무감각해지는 그런 책이지 않느냐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어떤 책이든 에세이나 심리 분야는 마음을 울리지만 그 울림이 얼마나 가는지는 각자마다 다를 것이다.


이 책은 무조건적인 마음을 위로하는 심리서라기 보다는 이런 심리학 용어가 있고, 그와 함께 이 심리학 용어는 이런 사건을 계기로 생겨나 이런 의미가 있다라는 사전적 재미를 더했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어렵기만 할 수 있는 영어식 학명만 아니라 재미있거나 이게뭐야? 라며

눈이 휘둥그레질만한 용어도 나와서 지루하지 않았다.

걷어차인 고양이효과라던가 삶아 죽은 청개구리효과 같은 것들 말이다.


사람의 불만스럽고 불평스러운 감정은 사회관계에 따라 쇠사슬처럼 차례대로 전달된다.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이 낮은 사람에게 또는 강자가 약자에게 전달한다.

결국 감정을 발설할 곳이 없는 최약자가 희생자가 되는 셈이다.

[걷어차인 고양이 효과 중]


걷어차인 고양이 효과는 밖에서 화가난 일이 있었던 어느 기사가 집에 돌아와 아내를 때리고 그것으로 감정이 오염되어 똑같이 화가 나버린 아내가 아이를 때리고 그 아이가 다시 고양이를 걷어차는데서 얻어진 효과다.

바이러스나 질병처럼 오염된 감정이 옮겨진다는 본문처럼 나쁜 감정의 폭발은

주변을 삽시간에 불길이 치솟는 장소로 만들곤 한다. 감정 오염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고 작가는 말하고 있다. 간단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우리 대부분이 간단히 성공하지 못하는 하나가 아닐까.


간단한 논리가 간단하게 행동으로 옮겨진다고는 보장할 수 없는 점에서 우리는

행동으로 옮겨질때까지 아는 것이라 하더라도 배우고 또 배워야 하지 않을까.

한동안 정서적으로 많이 힘든 상황에 놓여있을 때, 그럼에도 나 자신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을 때 혼자 방안에서 이유없이 울었던 적이 있었다. 우는 자신이 참 우습기도 하고 어이가 없기도 하고 나약해보여 싫기도 했다.


호손 실험팀이 일본의 마쓰시타 기업에서 실험을 진행했듯이 사람은 부정적인 감정이 쌓이면 정신과 마음에 심각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것들이 모여 결국 몸까지 아프게 되기도 한다. 당시의 내가 그런 상황에 놓여있었던 모양이다.


호손 효과가 우리에게 말하는 것은 직장이나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많은 감정 중 일부 부정적인 감정을 절대 억눌러서는 안되고 갖은 방법을 써서 표출해야 한다는 점이다.


'화풀이 방' 처럼 난폭한 행동으로 표출을 하거나 타인과 이야기를 하며 하소연으로 표출을 하거나 그리고 목놓아 우는 것도 좋은 표출방법이라고 한다.

오랜 직장 생활과 여러가지 문제로 부정적 감정이 쌓여 나 자신을 갉아먹던 시기에 나는 스스로의 보호본능으로 이유없는 눈물이 났던 모양이다.

(그 후 상담을 통해서도 그런 답변을 들었다. )


지금은 화풀이 방 대신 코인노래방을 가고 하소연이 하고 싶으면 언제든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어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한다. 확실히 안정되는 듯하다.

스트레스 해소방이라고 해서 방안에 있는 유리나 물건들을 부쉬는 장소가 유행일 것을 보면 세상 어느곳, 우리나라 어디든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감정을 해소하는데에 어려움이 따르는 것 같다.


다양한 심리들을 보며 사람을 대함에 있어 좀 더 짧은 시간에도 신중함을 가질수 있을 것 같다. 사람은 아는만큼 보인다고 하지 않던가.

작년 하늘에 별이 된 故 설리의 경우, 어느 선배되는 연예인이 고인에 관해 인터뷰를 할 때 생전에 설리 그녀가 자신을 보면서 선배님 많이 외로우시죠? 눈빛을 보면 알아요 라는 식의 말을 했다고 한다.

자신이 우울증으로 외롭고 힘들다보니 누군가의 아픔이나 슬픔이 너무 잘 보였던게 아닐가.

느끼며 아는 그 차이가 작은 온도로도 많은 것을 전달할수 있는데 우리는 쉽게 놓치는게 아닐까.

꼭 경험해보지 않더라도 심리에 관해 조금 아는것이 생기면 모르던 자신보다는 좀더 타인을 대함에 있어 노하우가 생길 것이다.

어떤 이들에겐 그런 것들이 좀 더나은 비지니스로, 어떤 이들에겐 사람과의 관계에 좋은 영향을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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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한 사람은 성공했기에 자신감이 가득하고, 그 자신감 덕분에 더욱 성공한다. 그러나 실패한 사람들은 실패했기 때문에 열등감을 느끼고, 그 열등감으로 더욱 실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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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낯선 사람과 함께 있을 때 제일 중시하는 것은 처음 만났을 때 느끼는 감정이고, 친구와 헤어진 후 제일 그리워하는 것은 이별 직전의 모습이다.

-

자신을 좋은 사람으로 규정지어 방심해서는 안 된다.

좋은 사람일 수 밖에 없는 환경에서 좋은 사람일 뿐, 상황이 돌변하여

무자비하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손에 쥐면 당장이라도 악마같은 사람으로 바뀔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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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 대해서, 타인에 대해서 사람이라는 특별한 생명들이 가진 다양한 심리를 이해하기에 나쁘지 않은 책이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직장과 삶에서 가지게 되는 부정한 감정들을 잘 해소하고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게 자신의 마음을 이해하고 다잡으며 웃으며 걸을 수 있는 나 자신으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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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량한 차별주의자 (리커버)
김지혜 지음 / 창비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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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서점을 기웃거릴 때 표지가 재미있어서 눈길이 갔었는데, 

그 후 친구의 추천으로 읽게 된 책이다.

누군가를 차별 하는 것은 옳지 못한 행동이라고 익히 배워 알고 있지만

이 책의 제목처럼 선량한 사람이라 믿는 우리 자신들이 평소에 행동하는

작은 일들 속에도 차별이 숨어있음을 느낄 수 있게 하는 책이다.

그리고 차별이란 것이 우리의 생각과는 다르게 명확한 선에서 그어지는 것이

아님을 상기시켜준다.

손해와 이득, 불편과 불리의 상황에서 언제든 중심점이 이동할 수 있는 차별.


백조는 당연히 백조, 백색이어야 한다고 여겼지만 어느날 나타난 흑조로 인해 

사람들이 깜짝 놀라듯 우리에게도 우리가 당연히 여겼던 것들 속에 검은 차별들이

그림자처럼 숨어 있었던게 아닐까.


장애인을 위한 복지를 한다고 하지만 막상 길에서 장애인을 발견하는 일이 흔하지 않다.

특히 내가 사는 곳은 지하철이 만들어진 지역이 아니기에 더더욱

장애인들의 이동 수단이 적다.

버스에 탑승하기 위해서는 장애인이 감수해야 할 일들이 많은데 장애인들을 위해

우리가 감수해야 했던 것들을 전혀 고려하지 않아서였다는 생각이 든다.

줄곧 고향을 떠나지 않았기에 늘 같은 공간속에서 살아가는 나지만

딱 한번 버스가 장애인을 태우기 위해 멈춘 것을 봤다.

그 일은 장애인 동승자가 먼저 탑승을 한 이후 장애인을 태우기 위한

보조장비를 내려달라고 요구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버스를 계속 앞뒤로 움직여 보도블럭에 맞추는 작업과 보도 블럭이 아슬아슬하게

버스에 맞춰지자 난생처음 보게된 버스 아래의 무언가가 움직이며 다리가 되어줬다.

그것을 밟고 넘으며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버스에 탑승하는 것을 이 나이 먹도록

처음 보게되면서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그러고보니 예산을 들여 장애인 탑승이 가능한 버스를 들여 운행하면서

왜 장애인들이 버스를 타는 일이 거의 없었을까. 

아마도 사람들의 눈총과 시간에 쫒겨 바쁜것을 먼저 떠올리며 장애인을 태우는 것을

어려워하는 버스측을 생각하며 자연스레 그렇게 되어버린 것이 아닐까.

(사실 버스기사분들도 정해진 시간안에 운행이 이루어져야 하기에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회사와 지역마다 다를 수 있겠지만 늦을수록 본인들이 쉬는 시간이나 배차간격이 줄어

연속 운행을 해야 하게 되면 화장실을 갈 시간도 부족해지는것도 사실이기에. 

평등을 위해 결국 또 다른 누군가의 희생이 필요해지는 상황이 생기게 된다.)


차별을 없애기 위해서는 모두의 의견이 존중되어야 하지만 모두를 존중하기 위한 

조율이 어려울 수 밖에 없고 어느 한쪽의 희생이 생기는 것은 아직은 해결하기

어려운 난제에 가까운 것 같다.

근처의 다른 지역에 지하철에서 자유롭게 이동하는 장애인분들을 보며 내가 사는 지역의

장애인 분들이 좀더 힘든 생활을 하고 있을거란 생각이 들어 안타까웠다.


그럼에도 사람은 늘 희망의 길을 찾아낸다.

대신 내가 사는 지역은 장애인을 위한 이동차가 있고 그런 자원봉사를 하는 분들도 있다.

장애인이 어디가기를 윈하면 그 근처에 계신 자원봉사자가 자동차로 찾아가

이동시켜주는 시스템이다.

'어쩔수 없는 일'이 아니라 '또 다른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 바로 우리가 가진 희망이 아닐까.


관광지에 살고 있기에 여행객 그리고 외국인이 곧잘 오는 지역인데

어느날 출근길에 재밌는 일을 겪었다.

백인의 노부부와 중동쪽의 젊은 남성 여행객이었는데 동양인인 나까지

4명이 나란히 버스에 탑승했다. 백인이 먼저 의자에 앉았는데 캐리어를 가지고 있던

중동쪽 여행객이 백인의 바로 뒷자리에 앉자마자 백인 남성이 벌떡 일어나 자리를 옮겨

아주 먼 쪽으로 가서 앉는 것이었다. 그것도 그가 보란듯이 말이다.

중동쪽 여행객이 당혹스러움으로 바라보고는 외국인 특우의 제스츄어로 한숨을

내쉬는 것을 봤다. 백인의 노부인은 조금 미안한 표정을 짓고는 남편과는 다르게

그대로 자리에 앉아 있었다.

외국여행을을 와서도 백인우월주의 사상으로 행동하는 백인남성을 보면서 그가 과연

동양의 나라인 우리나라를 여행하면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머릿속에 복잡했었다.

문화제 등을 좋은 의미로 멋지게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우리 동양인은

속으로 비하하고 있는게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니 복잡하고 화가 나면서 자연스레 백인들에 대한 미움도 생겼었다.


영화 '그린북'에서도 백인이 흑인을 차별하는 것들을 잘 보여주는데 백인이

흑인을 차별하듯 흑인이 동양인을 또 비하하는 식으로 차별이 이루어지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그리고 우리나라도 베트남이나 필리핀인들을 백인보다는 무시하는 경향이

알게 모르게 있는 것을 보면 사람이란 참 기묘한 존재라는 생각이 든다.

그린북에서처럼 처음엔 당연시 되던 차별들도 사람 대 사람으로 만나면서

무너지는 장벽들이 있다.

장벽이 무너질때는 바로 차별을 일삼는 내 모습이 부끄러워지는 순간이 아닐까.

누군가의 행동을 보고 혐오스럽도록 잘못된 것임을 인식했는데 그 행동들이

나 역시 했던 행동일 때 사람은 수치심과 부끄러움을 느낀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순간 우리는 변할수 있는 계기를 맞이하는 것 같다.


우리사회는 점점 변화하고 있다.

아직은 서로를 혐오하는 모습도 보이지만 분명히 바뀌어가기 위한

일종의 혼란이라고 생각한다.


색이 전혀 다른 것들이 섞이기 위해서는 한참을 휘저어야 한다.

머랭을 만들기 위해서는 인고의 팔젓기가 필요하듯이 무언가를 얻기 위해

힘든 뒤섞임이 지나가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투명하고 미끄러운 계란 흰자가 하얗고 몽글몽글한 머랭을 위한 거품이 되듯이

사람은 내가 알던 모습만 있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모습일 수 있고

그 차이를 차별이 아닌 이해로 알아가야 하지 않을까.

흑인을 노예로 하던 시대, 인종차별이 만연하던 시대에서 점점 바뀌어 왔듯이

분명 우리는 찾아내어 해결해 나갈 것이다. 

우리에게 남아있는 '관심'과 '사랑' 그리고 '평등'이란 이름으로 말이다.


-------------- 본문 --------------


고정관념은 자신의 가치세계를 드러내는 일종의 자기고백인 셈이다.

-

의심이 필요하다. 세상은 정말 평등한가? 내 삶은 정말 차별과 상관없는가?

시야를 확장하기 위한 성찰은 모든 사람에게 필요하다.

(중간생략)

모든 일이 그러하듯 평등도 저절로 오지 않는다.

-

"차별은 단순히 지폐나 동전이나, 햄버거나 영화의 문제가 아니다.

누군가에게 인종이나 피부색을 이유로 그를 공공의 구성원으로서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할 때, 그가 당연히 느낄 모멸감, 좌절감, 

수치심의 문제이다."(아서 골드버그 대법관의 말)

바로, 인간의 존엄성에 관한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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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사랑하며 배우며
레오 버스카글리아 지음, 이은선 옮김 / 홍익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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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수업에 열정적이었던, 교감을 나누며 수업을 하고 있다고 

믿게 해준 아름다운 여학생의 자살로 버스카글리아 교수는 

교실과 학교라는 공간이 가장 중요한 '사랑'을 가르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며 사랑 강의를 시작했다고 한다.


우리가 쉽게 생각하는 연애 감정의 사랑뿐만 아니라

더 깊은 포괄적 의미의 사랑인 타인과의 사랑과 함께 더 나아가

바로 삶을 살아가는 '나 자신'이라는 존재를 사랑하는 법을 

가르치기 시작한 교수.

사랑이란 단어자체가 낭만인데 그의 강의는 

삶의 아름다운 낭만을 잃지 말라는 메세지를 준다.


교수의 강의라면 어려운 용어와 어려운 말들이 난무할것 같지만 

그의 강의는 전혀 그렇지 않다.

그 자신도 말하기를 괴짜이기 때문일수도 있겠지만 

그만큼 강의를 받을 상대를 배려한 부분이 아닐까.

내가 학교를 다니던 시절의 교사들은 의례 권위의식이 강해서 

교사는 어려운 말을 잘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교수들 사이에서도 가벼운 사람은 괴짜로 보이기가 일쑤였고 

권위가 떨어진다는 이야기도 서슴없이 입에서 나올 정도였다. 

그럼에도 이상하게 학교 시절을 지나면서 은사님들을 떠올리면

그런 권위적이었던 교사나 교수보다 인간적이었고 학생들과 잘

소통했던 친근한 분들이 더 기억에 남는다. 지금은 알 것 같다. 

그 소통과 친근함은 바로 사랑에서 비롯되어 우리에게

스며들었다는 것을 말이다.


"오 캡틴 마이 캡틴"


책을 읽으면서 로빈윌리엄스가 열연한 유명한 영화 

죽은시인의 사회 속 키팅 선생님이 떠올랐다.

이 책을 소재로 영화화가 되었다면 아마 사랑을 전하는 교수는

키팅 선생님같은 분이 아니었을까.

지식만을 가르치는 학교와 교사가 아니라 진정으로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지를 알아야한다고 고민하고 또 생각하며

바뀌어야 가야하는게 맞는 것이 아니겠느냐고

사랑이 데우고 간 자리에 자리 잡은 지혜가 가장 뜨겁게

타오르는 것이란 걸 알려준다.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


책을 다 읽고나니 제목이 더 멋지게 보인다.

삶에서 배움이 먼저가 아니라 사랑 이후 배움이 오는 것과

삶 자체가 끝없이 나를 찾아가는 배움의 항해다.

배움, 지식이 사랑보다 우선이었던 세상의 시대에서 많은 것을 잃었다.

끝없이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들과 스스로 생을 마감하거나

누군가를 해치는 일들이 세계 곳곳에서 아무렇지 않게

하루에도 수없이 일어난다. 그것은 사랑을 먼저 가르치지 않은

지난날의 참혹한 슬픔의 값들이다.


이책을 읽고 있던 때에 우연히 tv에 방영된 영화

[나는 부정한다]를 봤다.

독일 나치의 만행을 부정하는 역사학자와 그 역사학자에게

고소를 당한 홀로코스트 역사학자와의 법정공방 영화다. 

홀로코스트와 일본이 전쟁에서 행한 많은 과오들 역시

사람으로서 사랑을 없앤 결과이기도 하다.

사랑을 잃은 시대의 가장 슬픈 첫 표본인지도 모른다. 

여전히 사랑의 부재는 많은 삶들을 앗아가고 있다.


영화속 홀로코스트를 반대하며 나치 만행을 부정하는 역사학자는

배우지 못해서 그러는 것이 아니다.

그는 자신의 어린딸에게 노래를 가르쳤는데 인종차별적인 시를

외워 부르게 했다. 잘못된 배움이 본인의 대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후세에 자연스레 되물림 되고 그것이 믿음이 되는 것은

등골이 오싹할만큼 무서운 일인 것이다.


얼마나 잘 배운 지식인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얼마나 사랑으로 가득찬 지혜인지가 더 중요하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내일이 아니라 지금 당장 실천해야 한다.

우리는 매일 매일 죽음을 향해 항해하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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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살아가면서 걱정하는 일 중 90퍼센트가 

단지 상상으로 끝난다는 말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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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은 나중이 아니라 지금 당장 즐겨야 하는 거예요. 

지금은 우리가 행복해야 할 시간이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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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모든 걸 알고 싶어. 모든 걸 느끼고, 만지고, 맛보고 싶어

그걸 모두 다 하려면 시간이 없으니 당장 시작해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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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란 선택하기 나름입니다.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기쁨이 되기도 하고

분노가 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우리는 매일 행복해야할 시간을 충전받고 있다. 

죽기 직전까지는 무상으로 주어지는 시간들이다.

당연히 분노나 슬픔, 좌절보다 우리가 더 많이 채워야 할 것은

행복이지 않은가.


기회만 주어진다면 저는 여러분 모두를 똑같이 사랑하겠습니다.

그렇게 한다고 해도 지금 이 순간 제가 갖고 있는 

사랑의 양과 사랑할 수 있는 힘에는

조금도 변함이 없을 것입니다.


남녀간의 사랑도 그 이외의 사랑도 모두 똑같이 

우리는 무한의 양으로 사랑할수 있다.

왜 이 당연한 사실을 그렇게도 자주 잊어버리고 사는걸까.

삶에서 사랑을 가득 채우고 그 사랑만큼 많은 것들을 

몸으로 마음으로 배우며 행복하자.

그것으로 이룬 모든 것들이 바로 나 자신이 된다.


'내가 행복했으면 좋겠다'가 아니라 지금 당장

'행복한 나 자신'이 되자.

나의 행복은 분명 좋은 삶의 유품이 되어주고

유산이 되어 줄 것이다.


버스카글리아 교수의 부모님이 그들의 자녀들에게

가난하지만 행복을 남겨주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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