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량한 차별주의자 (리커버)
김지혜 지음 / 창비 / 2019년 7월
평점 :
품절



한동안 서점을 기웃거릴 때 표지가 재미있어서 눈길이 갔었는데, 

그 후 친구의 추천으로 읽게 된 책이다.

누군가를 차별 하는 것은 옳지 못한 행동이라고 익히 배워 알고 있지만

이 책의 제목처럼 선량한 사람이라 믿는 우리 자신들이 평소에 행동하는

작은 일들 속에도 차별이 숨어있음을 느낄 수 있게 하는 책이다.

그리고 차별이란 것이 우리의 생각과는 다르게 명확한 선에서 그어지는 것이

아님을 상기시켜준다.

손해와 이득, 불편과 불리의 상황에서 언제든 중심점이 이동할 수 있는 차별.


백조는 당연히 백조, 백색이어야 한다고 여겼지만 어느날 나타난 흑조로 인해 

사람들이 깜짝 놀라듯 우리에게도 우리가 당연히 여겼던 것들 속에 검은 차별들이

그림자처럼 숨어 있었던게 아닐까.


장애인을 위한 복지를 한다고 하지만 막상 길에서 장애인을 발견하는 일이 흔하지 않다.

특히 내가 사는 곳은 지하철이 만들어진 지역이 아니기에 더더욱

장애인들의 이동 수단이 적다.

버스에 탑승하기 위해서는 장애인이 감수해야 할 일들이 많은데 장애인들을 위해

우리가 감수해야 했던 것들을 전혀 고려하지 않아서였다는 생각이 든다.

줄곧 고향을 떠나지 않았기에 늘 같은 공간속에서 살아가는 나지만

딱 한번 버스가 장애인을 태우기 위해 멈춘 것을 봤다.

그 일은 장애인 동승자가 먼저 탑승을 한 이후 장애인을 태우기 위한

보조장비를 내려달라고 요구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버스를 계속 앞뒤로 움직여 보도블럭에 맞추는 작업과 보도 블럭이 아슬아슬하게

버스에 맞춰지자 난생처음 보게된 버스 아래의 무언가가 움직이며 다리가 되어줬다.

그것을 밟고 넘으며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버스에 탑승하는 것을 이 나이 먹도록

처음 보게되면서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그러고보니 예산을 들여 장애인 탑승이 가능한 버스를 들여 운행하면서

왜 장애인들이 버스를 타는 일이 거의 없었을까. 

아마도 사람들의 눈총과 시간에 쫒겨 바쁜것을 먼저 떠올리며 장애인을 태우는 것을

어려워하는 버스측을 생각하며 자연스레 그렇게 되어버린 것이 아닐까.

(사실 버스기사분들도 정해진 시간안에 운행이 이루어져야 하기에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회사와 지역마다 다를 수 있겠지만 늦을수록 본인들이 쉬는 시간이나 배차간격이 줄어

연속 운행을 해야 하게 되면 화장실을 갈 시간도 부족해지는것도 사실이기에. 

평등을 위해 결국 또 다른 누군가의 희생이 필요해지는 상황이 생기게 된다.)


차별을 없애기 위해서는 모두의 의견이 존중되어야 하지만 모두를 존중하기 위한 

조율이 어려울 수 밖에 없고 어느 한쪽의 희생이 생기는 것은 아직은 해결하기

어려운 난제에 가까운 것 같다.

근처의 다른 지역에 지하철에서 자유롭게 이동하는 장애인분들을 보며 내가 사는 지역의

장애인 분들이 좀더 힘든 생활을 하고 있을거란 생각이 들어 안타까웠다.


그럼에도 사람은 늘 희망의 길을 찾아낸다.

대신 내가 사는 지역은 장애인을 위한 이동차가 있고 그런 자원봉사를 하는 분들도 있다.

장애인이 어디가기를 윈하면 그 근처에 계신 자원봉사자가 자동차로 찾아가

이동시켜주는 시스템이다.

'어쩔수 없는 일'이 아니라 '또 다른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 바로 우리가 가진 희망이 아닐까.


관광지에 살고 있기에 여행객 그리고 외국인이 곧잘 오는 지역인데

어느날 출근길에 재밌는 일을 겪었다.

백인의 노부부와 중동쪽의 젊은 남성 여행객이었는데 동양인인 나까지

4명이 나란히 버스에 탑승했다. 백인이 먼저 의자에 앉았는데 캐리어를 가지고 있던

중동쪽 여행객이 백인의 바로 뒷자리에 앉자마자 백인 남성이 벌떡 일어나 자리를 옮겨

아주 먼 쪽으로 가서 앉는 것이었다. 그것도 그가 보란듯이 말이다.

중동쪽 여행객이 당혹스러움으로 바라보고는 외국인 특우의 제스츄어로 한숨을

내쉬는 것을 봤다. 백인의 노부인은 조금 미안한 표정을 짓고는 남편과는 다르게

그대로 자리에 앉아 있었다.

외국여행을을 와서도 백인우월주의 사상으로 행동하는 백인남성을 보면서 그가 과연

동양의 나라인 우리나라를 여행하면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머릿속에 복잡했었다.

문화제 등을 좋은 의미로 멋지게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우리 동양인은

속으로 비하하고 있는게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니 복잡하고 화가 나면서 자연스레 백인들에 대한 미움도 생겼었다.


영화 '그린북'에서도 백인이 흑인을 차별하는 것들을 잘 보여주는데 백인이

흑인을 차별하듯 흑인이 동양인을 또 비하하는 식으로 차별이 이루어지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그리고 우리나라도 베트남이나 필리핀인들을 백인보다는 무시하는 경향이

알게 모르게 있는 것을 보면 사람이란 참 기묘한 존재라는 생각이 든다.

그린북에서처럼 처음엔 당연시 되던 차별들도 사람 대 사람으로 만나면서

무너지는 장벽들이 있다.

장벽이 무너질때는 바로 차별을 일삼는 내 모습이 부끄러워지는 순간이 아닐까.

누군가의 행동을 보고 혐오스럽도록 잘못된 것임을 인식했는데 그 행동들이

나 역시 했던 행동일 때 사람은 수치심과 부끄러움을 느낀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순간 우리는 변할수 있는 계기를 맞이하는 것 같다.


우리사회는 점점 변화하고 있다.

아직은 서로를 혐오하는 모습도 보이지만 분명히 바뀌어가기 위한

일종의 혼란이라고 생각한다.


색이 전혀 다른 것들이 섞이기 위해서는 한참을 휘저어야 한다.

머랭을 만들기 위해서는 인고의 팔젓기가 필요하듯이 무언가를 얻기 위해

힘든 뒤섞임이 지나가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투명하고 미끄러운 계란 흰자가 하얗고 몽글몽글한 머랭을 위한 거품이 되듯이

사람은 내가 알던 모습만 있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모습일 수 있고

그 차이를 차별이 아닌 이해로 알아가야 하지 않을까.

흑인을 노예로 하던 시대, 인종차별이 만연하던 시대에서 점점 바뀌어 왔듯이

분명 우리는 찾아내어 해결해 나갈 것이다. 

우리에게 남아있는 '관심'과 '사랑' 그리고 '평등'이란 이름으로 말이다.


-------------- 본문 --------------


고정관념은 자신의 가치세계를 드러내는 일종의 자기고백인 셈이다.

-

의심이 필요하다. 세상은 정말 평등한가? 내 삶은 정말 차별과 상관없는가?

시야를 확장하기 위한 성찰은 모든 사람에게 필요하다.

(중간생략)

모든 일이 그러하듯 평등도 저절로 오지 않는다.

-

"차별은 단순히 지폐나 동전이나, 햄버거나 영화의 문제가 아니다.

누군가에게 인종이나 피부색을 이유로 그를 공공의 구성원으로서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할 때, 그가 당연히 느낄 모멸감, 좌절감, 

수치심의 문제이다."(아서 골드버그 대법관의 말)

바로, 인간의 존엄성에 관한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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