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작가지만 글쓰기로 먹고삽니다 - 나는 이렇게 전업 작가가 되었다!
이지니 지음 / 세나북스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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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글을 쓰는 작가들은 가장 먼저 [등단]으로 데뷔를 해야지만 인정을 받았다. 그래서 작가들을 선생님 선생님 했던것 같다. 정식 등단을 하지 않으면 제대로 작가라는 이름을 내미는 것이 쉽진 않았던 모양이다. 그런데 이 책을 통해 등단을 위해 50권의 책을, 등단할 당사자가 사야 한다는 것은 처음 알게된 사실이다. 즉 결국은 자신이 당선되었음에도 등단 증서를 책 50권이란 별도의 이름으로 구매를 해야만 정식으로 등단이 되는 것이다. 수상을 한 것이 등단이 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럴것 같으면 뭐하러 대상이란 시스템을 만든걸까? 점점 장사치가 되는 것 같아 입안이 쓰다. 독자인 내가 몰랐을 뿐 본래부터 그랬던 것일까?

작가를 꿈꾸며 여러가지 좌절을 경험한 작가는 진솔하게 [제 글을 세상에 내놓고 싶었던 저는 이런 일들을 경험했습니다]. 하고 허심탄회하게 경험담을 알려주었다. 사실 직접 전쟁터에 가보지 않은 지망생들에게는 약간의 환상이 있다. (몰론 나는 지망생까지는 아니지만 글을 쓰는 것도 좋아해서 환상이 있다.)

이제 막 글을 내놓으려는 이에게 인지도부터 따지고 들면 인지도는 대체 어디에서 올리고 가야 할까.


게임에서 조차 레벨 1은 레벨 1에 맞는 필드에서 사냥을 시작하며 점차 레벨을 키워가는 법이다.

세렝게티 절벽에서 어린 새끼 사자를 떨어뜨려 살아남게 한다는 말도 이미 다 허황된 과장된 말이란 것도 우린 알지 않나. 한동안 논문에 자녀의 이름을 같이 올려서 난리가 났던 일이 있다. 솔직히 동종의 업종에 뛰어든 자녀의 길을 닦아주려 자신이 만든 예술품에 자녀의 이름을 붙여 내놓는 예술인도 있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런이들에게 따지는 인지도는 어쩌면 불가능한 일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런 사례들과 비교하면 정직하게 도전하는 많은 이들이 불평등한 대우를 받고 있는게 아닌가.


하지만 이제 대중들은 안다. 그런 인지도를 신뢰하지 않는다.

좀 지난 사건이지만 서점내 베스트 셀러 순위조작 문제로도 시끄러웠지 않나.

그러니 여러가지로 멍이 드는 지망생들이 있다면 힘내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

이지니 작가님은 북콘서트를 하셨다고 하는데 그러고보니 도서관에서 진행한 북토크에 몇번 참여한 적이 있다.

여러 작가님들을 만나 강의를 들었는데 책과 다른 이미지의 작가님도 책과 같은 이미지의 작가님들도 계셨다.

그 중 기억에 남는 작가님은 회색인간을 쓴 김동식 작가님이다.

북토크에 가기전 회색도시를 빌려 읽고 갔었는데 책과 작가님의 첫이미지가 달랐고, 강의하며 말씀하시는 작가님이 또 달라보여서 좋았던 기억이 있다.

여성스럽고 얌전한 이미지로 생각했는데 실제로 뵈니 무척 달랐다는 말, 작가님이 그리 신경 쓸 의미는 아니었을 것같다. 사실 독자들 중에는 작가라고 하면 뭔가 다 고상한 이미지부터 떠올리게 되는 경우가 있으니까.

그런 연장선상이 아니었을까.

글쓰기에도 미니멀리즘이 필요하다고 하셨는데....위에 글들을 보니..난 이미 틀린 것 같다. (하지만 정작 글을 쓰는 내가 재미있으니 이글은 이것으로 만족하자. 미니멀리즘이 아니면 어떠하리.)

모든 씨앗이 틔운 첫 새싹은 연약하다.

한 사람이 한 명의 작가로서 틔운 싹이 첫 술에 거대한 나무일 수 는 없다.

작가님이 걸어온 길은 그 작은 싹이, 녹아 사라지지 않고 열심히 자라온 길이다.

누군가는 그 첫 싹에서 부터 함께 했는지도 모른다.

처음 피어난 새싹의 그 사랑스러움을 누구인지 모를 독자는 분명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많은 작가들이 책을 통해 타인이란 공간에 다양한 빛깔의 글을 던진다.

독자는 그 글들을 보며 마음에 드는 하나 하나를 주워, 가슴에 담고 가는 사람이다.

나는 오늘 '좋은 향이 나는 글'이라는 문장을 주워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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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 여름 - 류현재 장편소설
류현재 지음 / 마음서재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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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범죄 사건을 계기로 황금엉덩이라는 별명이 붙어버린 여성 검사 정해심은 요양병원측으로 연락을 받게 된다.

치매증세가 있으셔서 요양원에 계신 아버지, 그 아버지가 한 할머니를 범하려 했다는 요양원장의 연락이었다.

끈질기게 발뺌하며 엉덩이를 만진게 아니라 옷자락을 빼려고 했었다던가 휴대폰을 찾으려다 그랬다는 가해자의 태도에 내심 분노하던 정해심이지만 막상 아버지가 한 할머니를 범하려했다는 상황에서는 도저히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병원으로 향한 해심은 어떻게 된 상황인지 사건의 진실을 찾기 위해 하나 둘 사건을 파악해나가기 시작한다.

일제강점기의 말, 전쟁에 패한 일본이 한국을 떠나기 시작한 시기 남해의 작은 어촌에서도 한 일본인이 첫딸만 남겨두고 한국을 떠날 준비를 한다. 여지껏 (수탈로) 일구었던 어장을 두고 가기 아쉬움과 남겨둘 첫딸을 위해 그녀와 결혼할 사람에게는 어장을 주겠다고 했다. 그 일본 선주의 딸이 낳은 사람이 해심의 아버지 정만선이다.

아버지가 범하려던 것으로 추정된 사건의 피해자인 할머니 이름은 고해심이다. 딸인 정해심과 같은 이름이다.

그리고 해심의 아들은 1억이라는 거금의 합의금을 요구한다.

깊은 바다나 뻘의 진득함이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 이야기다.

애잔하기만 한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기괴하기만 한것도 아닌 묘한 분위기가 있다.

표지처럼 깊은 밤의 바다같은 딱 그런 느낌이다.

첫장의 분위기와 마지막 장의 분위기가 너무나 달라서

처음 읽던 시작의 마음과 다 읽은 마지막 마음이 달라지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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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곤소곤 1 - silent voice
후지타니 요코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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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만화책을 봤다.

요즘은 대부분 애니메이션을 통해 만화를 접하고 있어서 일부러 만화책을 접하는 일이 없어졌다.

그러다보니 예전처럼 다양한 만화를 접하기 보단 좋아하는 특정 만화영화에만 주력했다.

만화책은 랩핑이 되어 있기도 하고, 최근 동네의 서점에는 만화를 거의 들여놓고 있지 않아서

취향에 맞는 만화책을 찾기도 어려워져서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역시 만화동아리의 멤버였던 추억이 있어서인지 때때로 만화책이 읽고 싶어진다.

요즘은 이북으로 만화책을 손쉽게 구매해서 읽을수 있다.

만화책을 숨기며 봐야했던 나의 학창시절과 비교하면 요즘의 아이들은 핸드폰이라는 아주 좋은

저장고를 얻은 셈이다. 본래 주술회전이라는 만화책을 보려고 찾다가 우연히 표지가 마음에

들어서 1일 대여로 읽어본 '소근소근'. 힐링계이기도 하고 그림체도 마음에 들어 바로 2권을 구매했고 결국은 당일에 6권 모두 구매했다.(6권이 완결이다. 적당히 짧아서 좋다)

최근들어 이런 느낌의 책은 못본것 같다.

내 기억속에서 비슷한 치유계 만화는 [나츠메 우인장]이 끝이었으니까.

소곤소곤의 내용은 어릴적 어머니의 차가운 뿌리침을 트라우마로 간직하고 있는 소년 아사다 코우지가 집근처 공터에서 놀고 있는 어린 소년 다이치를 목격하며 시작한다. 코우지는 다이치가 신경이 쓰인다. 왜냐하면 그 소년에게선 자신과 비슷한 어떤한 모습이 보이기 때문이다.

코우지의 친구가 떨어뜨린 공을 주워주며 다이치는 '공에 손톱 좀 박지 말아줄래'라는 이상한 말을 남긴다. 코우지는 안다, 다이치의 비밀을. 그건 그 옛날 다이치 나이쯤일 때 자신도 가지고 있었던 비밀이니까. 바로 사물들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다.


사물들과의 대화에 익숙하지만 정작 (또래의) 사람과의 소통에는 익숙하지 않은 다이치와

다이치를 사랑하는 부모님, 그런 다이치와 친해지는 코우지와 코우지의 친구들이 그리는 일상 치유 만화다. 적당히 코믹하고 적당히 감동적이어서 가볍게 읽기에 좋았다.

다이치의 또래인 타쿠토라는 소년은 첫 이미지가 강해서 악역인가? 했는데

이 만화에선 딱히 악역이 존재하지는 않는 듯하다.

그리고 첫인상과 다르게 타쿠토가 사랑스러워서 좋았다.

(다이치와 타쿠토가 너무 사랑스럽다 둘의 우정 영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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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의 바다에 구명보트 띄우는 법 - 우울증을 겪고 있는 이와 그 가족들을 위한 실전 매뉴얼
오렌지나무 지음 / 혜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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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기로 마음 먹은 날, 문구점에 들려 점토를 샀다고 한다.

엄마를 위해 자신을 닮은 인형을 만들 생각이었다고...

작가의 엄마는 작가가 만든 건 뭐든 의미가 있다며 소중하게 간직한다고 한다.

그런 엄마를 위해 마지막이 될 선물인 자신을 닮은 점토 인형이라니

그 모든 것들이 실행되었다면 이 책은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사랑을 숨기지 않고 주는 엄마라는 존재가 있음에도 우울증이란 병이 

20년을 괴롭혔다니 지독한 병마임이 틀림없다.


자살로 떠난 가족을 둔 유가족이 세상에 내놓은 에세이 한 권이 작가를 살게 했다.

자신이 떠나면 그들과 같은 마음으로 세상에 남게 될 가족이 떠올랐을 것이다.

두고두고 자신을 책망하며 가슴 한가운데에 묘비를 얹고 살아야 할 가족을 생각하며

우울증에 맞서 싸웠을 것이다.


고등학교 시절, 시험이 시작된 어느날 갑자기 학교에 비보가 날아들었다.

같은 학년의 친구 한 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모두가 뒤늦게 알게 된 것이 

바로 그 친구가 우울증이 있어 약을 먹어왔다는 사실이다.

나와 같은 반에 그 친구와 상당히 친했던 동급생이 있어 시험 시작 전 많이 울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나는 스스로 생을 마감한 친구의 얼굴이 기억이 난다.

늘 웃고 있던 아이였고, 활발하진 않아도 친구가 꽤 있을 정도로 성격이 상냥하고 

온순하며 좋은 아이였다.

같은 중학교를 나왔고 그 친구의 중학교 시절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당시엔 우울증이 정확하게 뭔지 몰랐다. 성적 때문에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고 

들었는데 우울증이 병이 아닌 우을한 감정으로만 생각했던 때였다.


지금은 여러 가지 매체를 통해 성적으로 인한 우울증이라고 하면 어느정도인지, 

어떤 심리의 병인지를 대충 짐작할수 있다. 하지만 그 전까지 우울증이란건 

단순히 우울한 감정 정도로만 생각했고 그 탓에 나 스스로도 우울증이 있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나 역시 우울증 진단을 받았었다. 

다들 이러고 사는 거 아니었나? 다들 이정도는 슬픈 거 아니었나?

다들 이렇게.. 억울하지만 어쩔수 없는 것 아니었나?

진단을 받고 나서는 적잖이 당황스럽고 놀랐었다. 

그전까지 내가 힘듦을 토로할 때마다 들어왔던 말들이 

“누구나 그 정도 힘든 것은 다 있어. 유달리 너가 마음이 약해 못 버티는 거야.”

“너가 힘든거면 다른 사람들은 이미 힘들어서 다 죽고 없다.”와 

비슷한 맥락의 말들이었기에

누구나 다 이정도 힘든 것은 감수하고 살아가고 있는 줄 알았으니까..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사람은 바로 ‘나’예요.


힘듦이나 고통을 이야기해도 그 정도는 다 힘들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말에 

휘둘리면 안된다. 나에게 있어 가장 고통스럽고 힘든 순간은 나만이 오롯이 

느낄 수 있는 것이기에 남들 기준에서 내 고통과 아픔에 눈을 감아선 안된다. 

나 자신이 인정해줘야만 한다.

그래 이렇게 아픈 나, 힘든 나, 아프구나. 슬프구나, 힘들구나.... 불쌍하구나..

내가 나를 꼭 안아줄게. 그렇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확실히 우울증이라는 큰 병마에 휩싸여 있긴 했던 것 같다.

당시에는 일상에서도 시시때때로 죽음을 생각했으니 말이다.

지금은 주변에서 힘들어서 죽고 싶다는 말을 해오면 되려 안심이 된다.

이렇게 이야기를 할 정도면 힘든 것을 들어주고 위로해주면 

어쩌면 괜찮을지도 모르겠구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들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쌓아온 상처를 쏟아내서 상대로부터

 ‘넌 항상 왜 이렇게 사람을 힘들게 해?’ 라는 말을 듣는

우울증 환자들이 많다는 부분을 읽으며 나 역시 그랬던 경험이 떠오른다.

나 역시도 그렇고 그 쏟아진 상처를 받아내는 가족 역시 힘든 것은 마찬가지라는 것,

그럼에도 나 자신이 나를 보호해야 한다는 부분에 공감이 많이 간다. 맞다.

나도 힘든 것이 사실이고 그런 내 고통에 찬 지난 상처를 받아내야 하는 가족들도 

힘든 것이 사실이다. 양쪽이 만들어온 시간의 체증이다.

묵힌다고 될 것이 아니라 서로가 그 체증을 풀어야만 한다.


책의 후반에는 우울증 탈출을 위한 실전 매뉴얼을 알려주는데, 다양한 방법이 있으니

우울증이 있는 사람이 본다면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방법을 찾아보는 것도 좋겠다.

나는 사실 책에 집착을 좀 했던 것 같다. 당시에 책을 굉장히 많이 사고 나눔이나 

선물을 받고 그랬던 것 같다. 지금도 역시 책을 좋아한다. 

기분이 우울할 때 타 지역에 있는 대형 서점에 일부러 혼자 훌쩍 버스를 타고 

다녀왔을 정도다. 책에 둘러 쌓여 있는 기분은 마치 나를 이해해주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위로받는 기분이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여서 그냥 책이 잔뜩 있는 

공간에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몰론 그 책들이 내가 가지고 있지 않은 새책들이라면 더더욱 기분이 붕 뜬다.


작가는 20년을 우울증이란 병과 싸운 사람답게 우울증 환자가 있는 ‘가족’에게도

 ‘매뉴얼’을 주었다.

사실 우울증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은 우울증을 앓는 사람들을 잘 이해하기가 어렵다.

그러다보면 섯투르게 돕는다는 것이 되려 악화의 버튼을 누르기도 한다.

그리고 어떤 이들은 우울증이란 병을 이해하려고도, 

인정하려고도 하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다.


우리아이가 달라졌어요. 금쪽같은 내새끼의 프로그램에서 아이들을 변화시키기 

위해선 보호자인 부모들부터 변화해야 한다. 우울증도 그렇다.

주변에서 변화해줘야 우울증 환자도 함께 우울증을 이겨내고 온전히 ‘나’로서

변화할 수 있다.


정말 오래된 기억인데 이십대 초반 할머니의 입원으로 병원에서 생활한 적이 있다.

그 병원은 대학병원으로 맨 위층이 정신과 격리병동이었다.

낮 동안은 내가 할머니를 보살피고 저녁에는 엄마와 교대를 했었는데 버스를 타러

승강장에 나왔을 때 어느 아주머니가 울고 계셨다.

생면 부지의 아주머니는 얼마나 힘드셨으면 처음 보는 나에게 자신의 딸이 

우울증으로 여기 병원에 입원해있는데 자신을 만나주지 않는다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소연을 하셨다.

정확한 가정사를 알 수 없는 나에겐 당황스러운 일이었지만 따님이 만나주지 

않는다면 아주머니의 진솔한 마음을 담아 편지를 써 전해보라고 권했던 적이 있다.

그 분들은 잘 지내고 계실까. 그 아주머니는 이제 노년이 되셨을 것 같다.

지금은 그런 분들에게 이 책을 읽어보라 권하고 싶다.

그리고 오렌지나무 작가께서 죽음을 생각하던 그날 읽었다는

유가족의 에세이 책도 말이다.


나에게 우울증은 생각하지도 못했던, 다른 누군가의 이야기인 줄로만 생각했던 일이다.

하지만 내 이야기가 되는 날이 오더라.

그리고 또 누군가, 생각하지 못하는 누군가에게 찾아가고야 말 것이다.

우리 마음에 숨겨둔 멍들이 하나 둘씩은 있기 마련이니까.

내 마음은 먹물이 찍혀 물들어버린 실패한 흰 백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점점이 번져나간 선들로 인해 올곧은 난을 치는 중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일직선이 아니라서 불안했던 선이 사실은 난의 아름다운 휘어짐이었음을 깨닫는 순간

우리는 괜찮아진다.

괜찮다. 이리저리 휘어서 아름답게 계속 피어나기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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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의 기쁨과 슬픔 - 너무 열심인 ‘나’를 위한 애쓰기의 기술
올리비에 푸리올 지음, 조윤진 옮김 / 다른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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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어서일까, 가장 먼저 ‘글쓰기’를 통해 노력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다.

그래서 무엇보다 나에게는 좋았다. 글쓰기 영감이 오길 바라며 10년을 허비한

스탈당을 통해, 글을 쓰기 위한 영감을 얻기 위해 준비만 할 것이 아니라 

우선 무엇이든 쓰기 시작하라는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다.

사실 내심 찔리는 부분이기도 했다. 글을 쓰려면 좋은 생각이 우선 나와야 쓰지

하고 생각하는 나 자신, 그리고 일단 아무거나 써보라던 주변의 지인들. 

뭘 써야 할지 모르겠는데 아무거나 써보라니 

그게 무슨 말인가라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자전거를 배울 때 머릿속으로만 페달을 밟고 발을 구른다는 상상만

몇 년을 한다고 해서 자전거를 탈 수 있게 되진 않는다. 

어지지 않을까하는 불안감을 안고서도 그저 발을 떼고 페달을 밝는 시작을 

진행해야 한다. 첫 시도에 운이 좋게도 그대로 달려 나갈 수도 있지만, 

대부분은 넘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시도하고 계속 밟아나가야지만 

기어코 자전거를 탈 수 있는 내가 된다.

그리고 어느새 익숙해지면 그저 자동반사적으로 발을 굴려 

자전거를 쌩쌩 달릴 수 있게 된다.

글쓰기나 다른 모든 노력도 결국은 자전거 타기와 같은 것이 아닐까.


책에 일만 시간의 법칙이 나온다. 이 책 이전에도 들어서 이미 알고 있는 법칙이다.

정말 일만 시간을 들이면 될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한 켠에서는 난 남들보다 

느려서라는 생각을 종종 해왔다. 일만시간을 투자해서 천재가 될수는 없지만

어느 한 분야의 전문가 정도는 될수 있지 않을까라는 본문 내용을 보며

전문가까지는 아니더라도 내가 스스로를 자랑스러워 할 수 있는 정도의 

수준이 된다면 기쁠 것 같다.


세계에서 가장 큰 성당인 뉴욕의 세인트존 더 디바인 대성당에서 

공중 줄타기 곡예를 무단으로 진행한 프티라는 인물이 책에 소개되어 있다. 

불법이었기에 당연히 경찰에 잡힌 프티를 대성당 신부는 석방해줄 것을

요청했다고 한다.


프티가 가톨릭 신자가 아니라는 사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자, 

사제는 미소를 머금고 이렇게 답했다.

“신을 믿을 필요가 없지요. 신이 그를 믿고 있는데요.”


순간적이었을 질문에 답한 사제의 모습도 멋있지만, 사제의 답변이 꽤 인상 깊었다.

신을 믿는 사제가 신을 믿을 필요가 없다고 답을 할 수 있다는 것과 

신을 믿지 않는 자에게도 신은 믿고 삶을 맡긴다는 부분이 묘하게 감동적이었다.


나는 나 자신에게도 신에게도 믿음이 부족한 것 같다. 나 자신도 못미덥고, 

신이 나를 도와줄 만큼의 애정이 있지 않다는 생각도 했으니 말이다. 

신이 나를 믿고 돕기 이전에 우선, 나 자신이 나를 가장 먼저 믿어줘야 하는데

그것이 참 어려운 것 같다.


책을 읽으며 다시금 제목을 한번 들여다봤다.

노력의 기쁨과 슬픔.

우리는 스스로의 노력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사실은 노력을 하는 나 자신에 대한 믿음, 그리고 결과에 대한 만족이 

부족한 건 아닐까. 쉽게 시작하는 남들과 비교해서 주춤거리는 자신이

못 미더울수 있다.

똑같이 일만시간을 들였지만 남들보다 늦게 결승선에 도착하거나 

만족스런 결과를 얻지 못할 수도 있다. 

노력에는 만족이라는 기쁨과 실망이라는 슬픔이 모두 있다. 

그럼에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나는 했다.” 라는 노력의 과실이다. 

하지 않으면 절대 얻지 못하는 과실이다.


피겨선수들이 경연을 마치고 입장하는 [키스&크라이 존].

점수를 받고 난 후 기쁨의 키스를 받거나 실패의 눈물을 흘리는 공간이어서 

키스&크라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우리의 삶도 키스&크라이가 있다. 

그 도착점으로 가기 위해 우리는 노력이라는 경기에 임해야만 한다.


오늘 실패로 슬퍼도 괜찮다. 

다음 노력에는 한번쯤 기쁨의 키스를 받는 날이 올테니까.


“중요한 것은 생각이 아니라, 삶이 우리에게 길을 알려줄 수 있게끔 

그 다양한 면모를 받아들이는 일이다.”


노력, 그에 대한 실패와 성공 두가지 모두, 

삶이 우리에게 준비한 삶의 이정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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