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의 바다에 구명보트 띄우는 법 - 우울증을 겪고 있는 이와 그 가족들을 위한 실전 매뉴얼
오렌지나무 지음 / 혜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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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기로 마음 먹은 날, 문구점에 들려 점토를 샀다고 한다.

엄마를 위해 자신을 닮은 인형을 만들 생각이었다고...

작가의 엄마는 작가가 만든 건 뭐든 의미가 있다며 소중하게 간직한다고 한다.

그런 엄마를 위해 마지막이 될 선물인 자신을 닮은 점토 인형이라니

그 모든 것들이 실행되었다면 이 책은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사랑을 숨기지 않고 주는 엄마라는 존재가 있음에도 우울증이란 병이 

20년을 괴롭혔다니 지독한 병마임이 틀림없다.


자살로 떠난 가족을 둔 유가족이 세상에 내놓은 에세이 한 권이 작가를 살게 했다.

자신이 떠나면 그들과 같은 마음으로 세상에 남게 될 가족이 떠올랐을 것이다.

두고두고 자신을 책망하며 가슴 한가운데에 묘비를 얹고 살아야 할 가족을 생각하며

우울증에 맞서 싸웠을 것이다.


고등학교 시절, 시험이 시작된 어느날 갑자기 학교에 비보가 날아들었다.

같은 학년의 친구 한 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모두가 뒤늦게 알게 된 것이 

바로 그 친구가 우울증이 있어 약을 먹어왔다는 사실이다.

나와 같은 반에 그 친구와 상당히 친했던 동급생이 있어 시험 시작 전 많이 울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나는 스스로 생을 마감한 친구의 얼굴이 기억이 난다.

늘 웃고 있던 아이였고, 활발하진 않아도 친구가 꽤 있을 정도로 성격이 상냥하고 

온순하며 좋은 아이였다.

같은 중학교를 나왔고 그 친구의 중학교 시절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당시엔 우울증이 정확하게 뭔지 몰랐다. 성적 때문에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고 

들었는데 우울증이 병이 아닌 우을한 감정으로만 생각했던 때였다.


지금은 여러 가지 매체를 통해 성적으로 인한 우울증이라고 하면 어느정도인지, 

어떤 심리의 병인지를 대충 짐작할수 있다. 하지만 그 전까지 우울증이란건 

단순히 우울한 감정 정도로만 생각했고 그 탓에 나 스스로도 우울증이 있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나 역시 우울증 진단을 받았었다. 

다들 이러고 사는 거 아니었나? 다들 이정도는 슬픈 거 아니었나?

다들 이렇게.. 억울하지만 어쩔수 없는 것 아니었나?

진단을 받고 나서는 적잖이 당황스럽고 놀랐었다. 

그전까지 내가 힘듦을 토로할 때마다 들어왔던 말들이 

“누구나 그 정도 힘든 것은 다 있어. 유달리 너가 마음이 약해 못 버티는 거야.”

“너가 힘든거면 다른 사람들은 이미 힘들어서 다 죽고 없다.”와 

비슷한 맥락의 말들이었기에

누구나 다 이정도 힘든 것은 감수하고 살아가고 있는 줄 알았으니까..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사람은 바로 ‘나’예요.


힘듦이나 고통을 이야기해도 그 정도는 다 힘들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말에 

휘둘리면 안된다. 나에게 있어 가장 고통스럽고 힘든 순간은 나만이 오롯이 

느낄 수 있는 것이기에 남들 기준에서 내 고통과 아픔에 눈을 감아선 안된다. 

나 자신이 인정해줘야만 한다.

그래 이렇게 아픈 나, 힘든 나, 아프구나. 슬프구나, 힘들구나.... 불쌍하구나..

내가 나를 꼭 안아줄게. 그렇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확실히 우울증이라는 큰 병마에 휩싸여 있긴 했던 것 같다.

당시에는 일상에서도 시시때때로 죽음을 생각했으니 말이다.

지금은 주변에서 힘들어서 죽고 싶다는 말을 해오면 되려 안심이 된다.

이렇게 이야기를 할 정도면 힘든 것을 들어주고 위로해주면 

어쩌면 괜찮을지도 모르겠구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들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쌓아온 상처를 쏟아내서 상대로부터

 ‘넌 항상 왜 이렇게 사람을 힘들게 해?’ 라는 말을 듣는

우울증 환자들이 많다는 부분을 읽으며 나 역시 그랬던 경험이 떠오른다.

나 역시도 그렇고 그 쏟아진 상처를 받아내는 가족 역시 힘든 것은 마찬가지라는 것,

그럼에도 나 자신이 나를 보호해야 한다는 부분에 공감이 많이 간다. 맞다.

나도 힘든 것이 사실이고 그런 내 고통에 찬 지난 상처를 받아내야 하는 가족들도 

힘든 것이 사실이다. 양쪽이 만들어온 시간의 체증이다.

묵힌다고 될 것이 아니라 서로가 그 체증을 풀어야만 한다.


책의 후반에는 우울증 탈출을 위한 실전 매뉴얼을 알려주는데, 다양한 방법이 있으니

우울증이 있는 사람이 본다면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방법을 찾아보는 것도 좋겠다.

나는 사실 책에 집착을 좀 했던 것 같다. 당시에 책을 굉장히 많이 사고 나눔이나 

선물을 받고 그랬던 것 같다. 지금도 역시 책을 좋아한다. 

기분이 우울할 때 타 지역에 있는 대형 서점에 일부러 혼자 훌쩍 버스를 타고 

다녀왔을 정도다. 책에 둘러 쌓여 있는 기분은 마치 나를 이해해주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위로받는 기분이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여서 그냥 책이 잔뜩 있는 

공간에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몰론 그 책들이 내가 가지고 있지 않은 새책들이라면 더더욱 기분이 붕 뜬다.


작가는 20년을 우울증이란 병과 싸운 사람답게 우울증 환자가 있는 ‘가족’에게도

 ‘매뉴얼’을 주었다.

사실 우울증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은 우울증을 앓는 사람들을 잘 이해하기가 어렵다.

그러다보면 섯투르게 돕는다는 것이 되려 악화의 버튼을 누르기도 한다.

그리고 어떤 이들은 우울증이란 병을 이해하려고도, 

인정하려고도 하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다.


우리아이가 달라졌어요. 금쪽같은 내새끼의 프로그램에서 아이들을 변화시키기 

위해선 보호자인 부모들부터 변화해야 한다. 우울증도 그렇다.

주변에서 변화해줘야 우울증 환자도 함께 우울증을 이겨내고 온전히 ‘나’로서

변화할 수 있다.


정말 오래된 기억인데 이십대 초반 할머니의 입원으로 병원에서 생활한 적이 있다.

그 병원은 대학병원으로 맨 위층이 정신과 격리병동이었다.

낮 동안은 내가 할머니를 보살피고 저녁에는 엄마와 교대를 했었는데 버스를 타러

승강장에 나왔을 때 어느 아주머니가 울고 계셨다.

생면 부지의 아주머니는 얼마나 힘드셨으면 처음 보는 나에게 자신의 딸이 

우울증으로 여기 병원에 입원해있는데 자신을 만나주지 않는다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소연을 하셨다.

정확한 가정사를 알 수 없는 나에겐 당황스러운 일이었지만 따님이 만나주지 

않는다면 아주머니의 진솔한 마음을 담아 편지를 써 전해보라고 권했던 적이 있다.

그 분들은 잘 지내고 계실까. 그 아주머니는 이제 노년이 되셨을 것 같다.

지금은 그런 분들에게 이 책을 읽어보라 권하고 싶다.

그리고 오렌지나무 작가께서 죽음을 생각하던 그날 읽었다는

유가족의 에세이 책도 말이다.


나에게 우울증은 생각하지도 못했던, 다른 누군가의 이야기인 줄로만 생각했던 일이다.

하지만 내 이야기가 되는 날이 오더라.

그리고 또 누군가, 생각하지 못하는 누군가에게 찾아가고야 말 것이다.

우리 마음에 숨겨둔 멍들이 하나 둘씩은 있기 마련이니까.

내 마음은 먹물이 찍혀 물들어버린 실패한 흰 백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점점이 번져나간 선들로 인해 올곧은 난을 치는 중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일직선이 아니라서 불안했던 선이 사실은 난의 아름다운 휘어짐이었음을 깨닫는 순간

우리는 괜찮아진다.

괜찮다. 이리저리 휘어서 아름답게 계속 피어나기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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