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권 한달 완성 러시아어 말하기 Lv.1 - 알파벳부터 기초 회화까지 한 달 완성 한권 한달 완성 러시아어 말하기 1
최수진 지음 / 시원스쿨닷컴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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Глаза́ боя́тся, а ру́ки де́лают. 이 책 p5 머리말에서 마샤샘이 인용하는 러시아 속담입니다. 그 뜻은 "눈은 무서워하지만 손은 일을 한다."라고 책에 나옵니다. 소리 내어 읽어 보면 "글라자 바얏샤, 아 루끼 젤라윳" 정도 되겠습니다. 이 말은 곱씹어 생각할수록 깊은 뜻을 갖는데, 다만 우리가 아무 각성을 이루지 않았는데 손만 알아서 부지런해질 리는 없습니다. 초보자에게 부담을 덜어 주고 가볍게 첫발을 떼게 돕는 데에 최우선적으로 노력했다는 말씀대로, 좋은 책이 있으면 학습자 역시 그에 상응하는 노력을 해야 하겠습니다.

(*책좋사의 소개로 출판사에서 제공한 교재를 공부하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처음에는 러시아어 알파벳부터 배웁니다. 어려운 글자도 보이는데, щ 같은 게 그 예입니다. 발음은 [시차] 비슷하다고 책에 나옵니다. 예시로는 비옷이라는 뜻의 плащ(쁠라시)가 책에 나옵니다. 그런데 책에도 나오지만, плащ에서도 벌써 시치가 아니라 시 비슷한 발음입니다. 시원스쿨 사이트 자료실에서 다운받은 음원(용량 2.27Mb)에서도, 여성 성우가 시차 아닌 샤, 쁠라시치 아닌 쁠라시로 읽습니다. 이건 세월이 지남에 따라 발음이 바뀌어서인데, 자세한 건 최수진 선생님 강의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초보자는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가도 됩니다.

ъ는 경음부호입니다. p17에 나오듯 이름은 러시아어로 твёрдый знак, 뜨보르지이 즈낙 비슷한 발음인데, 러시아어 특유의 경음, 연음 구분이 자음 대부분에서 이뤄진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이 역시 자세한 건 최수진쌤 본강의를 참조하면 됩니다. 초보자에게는 좀 어렵기는 하죠. 알고 나면 별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ь는 연음부호이며, мягкий знак, "먁끼 즈낙" 비슷하게 읽힙니다. е는 [예] 비슷하게 읽히고, 이에 대응하여 э는 [에]처럼 읽힙니다. 러시아어 알파벳(끼릴 문자)에만 있는 이런 특이한 글자에 대해 잘 알아야 하겠습니다.

Ма́ша хоро́шая преподава́тельница.라는 문장이, 이 책 3과(урок 03)의 제목입니다. 읽기로는 "마샤 허로샤야 쁘리빠다바쪨니짜" 비슷합니다. 그 뜻은 "마샤는 잘나가는 강사래."인데, 과연 그렇습니다. 시원스쿨 러시아어 대표강사시니 말입니다. 바로 옆 페이지에는 студент(스뚜졘뜨), студентка가 남녀 쌍을 이루는 단어라고 나옵니다. 인도유럽어족을 배울 때는 이런 점에 특히 유의해야 하겠습니다. 같은 페이지에는 коре́йцы라고 해서 "한국인들"이란 단어가 나오며, 발음은 책에 "까례이쯰" 비슷하다고 합니다. 경음/연음을 다 의식하며 발음하면 저렇게 되죠. 례(ре́)에 강세가 있습니다.

урок 08(p85 이하)에서 장소 부사, 소유대명사 등을 배웁니다. сле́ва는 "왼쪽에"라는 뜻이며 그 반대는 спра́ва입니다.발음은 각각 슬례바, 스쁘라바 비슷하다고 책에 나옵니다. "이게 너의 가족이구나."라는 문장은 Э́то твоя́ семья́.(에따 뜨바야 씨먀)인데, 이런 경우에는 러시아어는 영어의 be동사 비슷한 것(계사)을 쓰지 않는다는 점이 좀 특이합니다.

p111에서는 의문소유대명사에 대해 배우는데, чей чья́ чьё 등 세 가지로 모양이 나뉜다는 게 다릅니다. 남성, 여성, 중성의 모양새인데, 책에 설명이 나오듯이 뒤에 따라오는 명사의 문법적 성(gender)과 일치시켜야 합니다.  문법적 성에 대해서는 p52 이하의 урок 08에서 자세히 다루는데, 러시아어뿐 아니라 프랑스어, 스페인어, 독일어 등도 다 같죠. p115에는 러시아 역사상 가장 위대한 황제로 꼽히는 예카테리나 2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예카테리나 2세 궁전은 Екатеринский дворец라고 쓴다고 하며, 간단한 설명이 나옵니다.

урок 16(p149)에는 1식 동사 변화형 어미가 나옵니다. p151을 보면 чита́ть(읽다)라는 동사의 변화표가 나옵니다. p154의 연습문제에서는 이 чита́ть를 변화시키게 하는데, 역시 쉽게, 학생들에게 부담을 안 주면서 머리에 잘 들어오는 듯합니다. 어서 lv.2도 열심히 공부해야 하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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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가 - 불안한 인생에 해답을 주는 칸트의 루틴 철학
강지은 지음 / 북다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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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는 러시아령인 쾨니히스베르크(칼리닌그라드)에 머물면서 항상 정해진 시각에 산책을 하여 주민들이 그를 보고 시각을 맞췄다는 일화가 남은 인물이 바로 철학자 이마누엘 칸트입니다. 칸트는 수공업자의 아들로 태어나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학업을 마치고 장래를 설계했습니다. 그런데 칸트가 특히 관심을 가졌던 과목은 지리학이었다고 합니다. 이무렵이면 유럽인들이 항해술을 발전시켜 세계 곳곳을 탐험할 때인데, 칸트 역시 최신 지식을 흡수하여 그의 지적 호기심을 채웠다고 합니다. 평생 한 장소에만 거주했다는 선입견과는 다소 대조되는 행적입니다.

(*책좋사의 소개로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저자는 젊었을 적 칸트의 이 행적에서 독자들에게 끊임없이 자신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지적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노력하라고 권합니다. 지리학은,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지속적으로 내용이 채워지고 개정되고 완성되어 가는 학문이었습니다. 하나의 정해진 텍스트만을 붙들고 암기하며 떠받드는 학문은 이런 젊은 지성의 갈증을 만족시킬 수 없고, 사회에 공헌하는 바도 적습니다. 또 칸트는 어떤 특별한 성취를 이루려고 강박에 시달리기보다, 매일 조금씩이라도 루틴을 만들어 발전을 이루자고 스스로에게 다짐했다고 합니다. 저자는 여기서 우리에게 교훈을 전달합니다. "무엇을 잘하기는 힘들어도 매일 꾸준히 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또 저자는 "루틴은 존재의 불안을 제거한다"는 멋진 말씀도 들려 줍니다. 사실상 이 책의 주제에 가까운 명언입니다.

이 세상에는 경험으로 아는 게 있고, 경험 이전에 우리가 아는 게 있습니다. 후자를 가리켜 선험적인 앎이라고 부릅니다. 또 칸트적 의미에서 "순수하다"는 건, 그 선험적 앎이 경험으로부터 완전히 분리되었음을 뜻합니다. 앞선 시대의 데카르트도 그러했지만, 철학의 가장 기초되는 바는 의심이라고 칸트도 보았습니다. 저자는 여기서 말합니다. "소셜 미디어를 보면 슬픔이라는 게 없다. 누구나 행복하고 풍요롭고 멋진 삶을 산다. 과연 이 모든 게 진실일까?" 소셜 미디어의 발전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간격을 줄이고 소통을 증진하는 게 아니라, 남과 나를 비교하고 더 불행해지는 게 역설이라면 역설입니다. 칸트의 비판 정신이 소셜미디어의 이런 환각과 허풍에 대해 의심해 보게 하는 순기능도 행하는 것 같네요.

왜 선험적인 게 중요한가? 경험에 근거하여 판단한다면, 사람마다 모두 다른 경험에 바탕하여 판단을 내릴 건데 과연 누구의 경험을 기준으로 삼을지가 문제가 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p77). 양 당사자가 싸울 때 제3자를 불러 중재를 요청한다 해도, 그 3자가 누구 하나의 편을 들면 다음에 또 누군가(새로운 제3자)를 소환해야 합니다. 이런 제3자 퇴행논변의 무한연쇄를 막으려면 우리는 시비의 여지가 없는 연역적 진리, 선험적 앎의 중요성을 의식하고 연구할 필요가 절실합니다.

골목에서 주변이 뿌예지도록 담배 연기를 뿜어대는 중학생들을 보고서도 지나가던 어른들이 아무도 훈계를 하지 않는 게 요즘입니다(p102). 저자는 이런 현실이, 파편화한 개인주의 때문에 도덕과 윤리가 실종된 대한민국 사회의 위기를 나타내는 징표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저자는 칸트가 강조한, 윤리의 실천성을 강조합니다. 알면서도 실천을 하지 않는다면 그 지식은 이미 지식도 뭣도 아닙니다. 이렇게 비생산적이고 단절적인 개인주의가 극복되어야, 나의 자유도 역설적으로 최대한 신장된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사람은 본래 스스로 깨닫고 남의 강요가 없어도 자발적으로 실천하는 면이 있어서 존엄한 존재입니다. 그러나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모여사는 사회다 보니 아무 강제도 없이 모두가 잘 알아서 하리라 막연히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사회에는 법이라는 게 필요하고, 형벌의 위하(威嚇) 효과에 기대어 질서가 유지되기도 하는 것입니다(p117). 칸트가 말한 정의(正義)도 이렇게 해서 실현되겠는데, 언제나 필요한 건 우리 모두의 강력한 실천 의지라고 하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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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즈키 가의 상자 - 스튜디오 지브리 프로듀서 가족의 만화 영화 같은 일상
스즈키 마미코 지음, 전경아 옮김 / 니들북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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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이런 책이 다 나오나 싶어서 받아들고 너무나 반가웠습니다. 원제는 이 책 겉표지에도 나오듯이 <鈴木家の箱>이며 우리말 번역제목 그대로입니다. 스즈키 가문이라니 어떤 스즈키를 말하는가? 지브리 대표 스즈키 도시오의 큰따님 마미코[實子. 일본인이라서, 實이라는 글자가 우리와는 다른 모양입니다] 씨가 자신의 집안과 지브리에 대한 여러 사연을 솔직히 털어 놓은 책입니다. 저자는 지브리 컨텐츠 일부에 본인의 기여를 남기기도 했고, 과연 그 피가 어디 안 간다고 문화 관련 창의성이 필요한 영역에서 열심히 사는 분입니다.

(*책좋사의 소개로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우리가 궁금한 건 과연 스즈키 대표께서 집에서는 어떤 가장이고 아빠였을까 하는 점이죠. 책 앞부분에 자세히 나오고, p74에서는 어머니에 대한 언급이 잠시 나오는데 아빠와는 달리 엄격하고 지나치게 간섭하는 타입이라고 저자는 회고합니다. 사실 스즈키 대표가 지금 따님한테 받는 "같은 집에 사는 타인"은 스즈키 대표 또래의 일본 대부분 남성, 나아가 한국의 그 세대 가장들도 공유하는 이미지입니다. 지금보다는 훨씬 경제 성장이 가팔랐던 시기, 속한 회사의 과중한 업무와 책임감에 짓눌려 집에는 거의 들어오지도 못하고, 아이들에게는 거의 돈 벌어오는 기계로 인식이나 되고, 마음이야 굴뚝같지만 아이한테 다정한 말 한 마디 건네지 못하고 먼발치에서만 바라봐야 하는 국외자. 하지만 본심이야 어디 그렇겠습니까.

p102를 보면 저자의 사치스러운 고민(?) 이야기가 나옵니다. 독자인 저는 남자지만, 이 책을 읽을 여성 독자들도 아마 비슷한 느낌을 받을 텐데, 사실 이런 체형은 고민거리이기는커녕 오히려 자랑이자 축복이 아니겠습니까. 그렇다고 해서 저는 저자가 은근 "흘리기" 의도에서 이 이야기를 꺼내신 듯하지는 않고, 이 책 곳곳에서 알 수 있듯 꽤나 솔직한 성격이시기 때문에(저는 그렇게 느꼈습니다) 정말로 학생 시절 그런 고민이 가득했던 회고가 아닐까 하는 게 제 개인적 결론입니다. 궁금하신 지브리 팬들은 직접 읽어 보면 되겠습니다. 다음 챕터에 이어지는 (축소) 수술 이야기도 솔직하니까 이렇게 적을 수 있는 거겠고 말입니다.

아이들의 심리란 미묘합니다. 노부코(實名일까요? 한자로는 信子라고 쓸까요?) 이야기가 p164 이하에 나오는데, 이런 걸로 급우에게 시비를 건다는 게 우습지만, 애들이 못되게 군다는 게 대체는 이런 유치하고 안타깝기까지한 동기가 있다는 걸 알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불쌍하기도 합니다. p171에 보면 (어른이 된 지금도) 친하게 지낸다는데(사실일까요?), 그렇다해도 사춘기 당시에는 결코 그럴 수 없음을 단언하는 걸 보고 사람인 이상 생각은 서로 비슷할 수밖에 없음을 다시 확인하게도 되었습니다.

누구에게나 두 할머니가 있습니다. 재미있게도, 마미코 씨의 양친이 대조적인 성격이었듯(이렇게 만나는 커플들이 많죠), 마미코 씨의 두 조모도 대조적인 성격이었다고 합니다. 글쎄, 남자의 경우에는 조부와 특별한 감정적 유대를 언제나 형성하지는 않습니다. 치부라든가, 말못할 고민을 손자가 조부에게 털어놓는다거나 할 수는 있어도, 그 반대의 경우는 드뭅니다. 그러나 여성들에게는 이게 자주 가능한데... 외할머니는 쇼와 시대 조신한 여인의 대명사 같은 점잖은 분이었고(그러니까 엄마가 잔소리쟁이고 까탈스럽게 굴었겠죠?), 반면 친할머니는 괄괄하고 대단히 직설적인 스타일었나 봅니다. 싸움은 양쪽 말을 다 들어봐야 한다는 것, p215에서 확인 가능합니다.

p228을 보면 확실히 친할머니 성격에 문제가 있었나 봅니다. 그 며느님(즉 저자의 모친)에 대한 언행만 봐도 그렇습니다. 세상 어느 자녀라도 누가 자신의 엄마한테 저렇게 구는데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후... 그런데 따님께서 이런 난감한 이야기까지도 책에서 다 공개하시는데, 스즈키 대표가 혹시 개인적으로 난처한 일은 없었는지 걱정되기도 합니다. 판도라의 상자까지는 아니라도, 스즈키라는 예술 장인이자 위대한 프로듀서에게 이런 개인사(간접적으로 추론이 되죠)가 있었나 싶어서 흥미로웠던 이야기 보따리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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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튜디오 지브리 이야기
스즈키 도시오 지음, 오정화 옮김 / 대원씨아이(단행본)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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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브리스튜디오는 전 지구인들에게 따스하고 벅찬 감동을 주는, 멋진 컨텐츠를 여태 만들어 온 업적만으로도 세상에 끼친 공헌이 지대합니다. 당장, 오픈AI의 챗GPT만 해도 임의의 이미지를 지프리풍(風)으로 바꿔 주는 서비스를 통해 점유율을 크게 높였고, 한국인 상당수의 프사가 바뀐 걸 우리들도 지금 놀랍게 체감하는 중입니다. 뻔한 전략으로 전형적인 감정선 자극을 노린다는 비판 정도로는, 까다로워진 현대인의 마음을 어떻게 사로잡았는지에 대해 충분한 설명이 되지 못합니다. 스즈키 도지오[鈴木敏夫] 대표가 치밀하고 권위 있게, 자격을 갖추고 편집한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지브리가 꾸준히 명작을 만들어 온 지난 세월을 그윽히 돌아볼 수 있고, 아울러 (지브리 컨텐츠에 의해 건강해지고 따뜻해진) 우리 자신의 감정이 어떻게 생겼는지에 대해서도 잠시 생각할 시간을 갖습니다.

(*책좋사의 소개를 통해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이 책은 지브리 관계자 여러 명의 참여와 진술, 협조를 통해 집필되었습니다. 따라서 책임편집자 스즈키 도지오 대표도 3인칭으로 여기저기서 등장합니다. 일본에는 스즈키라는 성씨가 (저 한자 표기까지 동일한) 아주 많이 분포하므로 스즈키라고만 하면 혹시 다른 사람이 아닌가 생각할 수 있으나, 지브리 대표이사이자 사실상 이 책의 저자인 그분이 맞습니다. 저는 작년 12월에 픽사 CEO인 피트 닥터가 쓴 <인사이드 아웃 아트북>을 읽고 후기를 쓴 적 있는데, 우리가 아는 그 캐릭터 그 스토리가 사실은 기획 과정에서 얼마나 다른 모습으로 바뀔 뻔했는지 상상하며 제법 놀라기도 했습니다. 이 책도 스즈키 대표와 그의 동료들이, 세상 사람들과 관객들과 함께 더 밀도 높게 공감하기 위해 얼마나 치열하게 고민했는지를 잘 엿볼 수 있습니다.

p80을 보면 우리도 잘 아는 <추억은 방울방울>이, 제작 과정이 두 번이나 중단되고 심지어 aborted될 뻔했다는 사실이 나옵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그리고 그가 신임하는 다카하타 이사오[高畑 勳] 등이 일정이 맞지 않거나, 다른 의견을 가졌음이 확인되고 그 차이가 조정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대형 기획 하나를 발주하고, 재주꾼들의 열성과 창의를 모아 작품 하나를 대중 앞에 선보이는 게 어렵습니다. 한 사람의 추진력으로 기어이 극장에 무엇 하나를 걸 수야 있겠으나, 우리가 영화사(映畵史)에서 익히 봐 왔듯 심지어 당대 예술장인인 감독의 소신 그 결과물이라 해도 기록적인 실패(fiasco), 심지어 파산 사례는 그리 드물지도 않게 봅니다.

1983년에 미국 스필버그 감독의 <E.T>라는 저예산 SF물이 예상을 깨고 전세계적으로 인기를 끄는 기현상이 일어났습니다. 괴상하게 생긴 외계인 인형을 아이들마다 갖고 싶다고 부모님을 졸랐으며 어른들도 영화 안에 든 깊은 휴머니즘 메시지에 마음을 열었습니다. 이 책 p187을 보면 1997년에 지브리가 만든 <모노노케 히메>가 일본 안에서는 저 14년 전의 <E.T>를 능가하는 대성공을 거두었으며, 지브리의 소중한 심장이었던 미야자키 하야오의 은퇴 문제까지도 부수적으로 해결했다는 재미있는 평가도 책에 나옵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미야자키 하야오는 <센과 치히로의...>부터해서 그 후에도 여러 명작을 만들고 관객들을 만족시켰습니다.

스즈키 대표와 미야자키 감독은 지브리 미술관을 건립하여 보다 안정적으로 팬들과 함께 호흡하고 그간 이 회사가 쌓은 금자탑들을 더 체계적이고 장엄하게 감상, 평가할 공간을 마련합니다. 이 역시도 예삿일이 아닌 게, 부지 확보부터 해서 그저 자금이나 아이디어, 그간의 넉넉한 성과물만으로 커버할 수 없는 현실적인 문제들이 산적했기 때문입니다. 미타카[三薦] 시(市)라고 해서 도쿄 인근의 지방자치단체에서 전향적으로 협조 의사를 밝혔고, 부담 조건부 기부 형식으로 해서(우리식으로는 기부채납) 미술관을 시유(市有)로 두되, 그 운영은 지브리 측이 주도하는 공익재단이 맡는 형식이었습니다. 이게 1998년~2001년 사이에 모두 마쳐졌는데, 일본의 행정 그 청렴성과 도타운 문화 풍토에 부러움을 느끼게도 되었습니다.

1937년 중일전쟁이 본격적으로 노구교 사건(일본의 자작극)을 기회로 터지고, 장개석 정부는 패퇴를 거듭하여 중경(충칭)까지 쫓겨갑니다. 일본은 당시 엄청난 폭격을 임시수도 충칭에 퍼부었는데 이때의 참상을 담은 사진이 인터넷에서도 많이 유통되어 우리 눈에 익습니다. 이처럼 적어도 동아시아에서 제국주의 일본이 우월한 항공 전력을 보유하게 된 데에는 비행기 설계자들의 노력이 큰 몫을 차지했는데, <바람이 분다>(이 책 p384 이하)에서는 이것 관련한 이야기가 주요 배경을 이룹니다(원작 소설이 있습니다). 일본과 미국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으나, 중국(피해자 측)과의 관계를 세심하게 고려하는 등 여러 애로가 있었음이 술회됩니다.

무려 스즈키 대표가 직접 저작명의를 올린 책이니만큼 지브리 팬들에게는 머스트해브 아이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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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윤석열 탄핵 사건 선고 결정문 읽기와 필사 -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 사건 파면 결정문 전문 수록
대한민국.헌법재판소 지음 / 시원북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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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4일 헌법재판소에서 최종적으로 대통령(권한 정지 상태였던)에 대한 파면 결정이 내려졌습니다. 국회는, 12월 3일 비상계엄을 선포했던 대통령의 행위를 내란으로 보고 같은 달 14일에 탄핵소추를 의결했었는데 4개월 정도만에 사법적으로 결론이 난 것입니다. 이 책은 110페이지 정도의 분량인데, 그 절반이 우리 독자의 필사를 위한 공란(20줄 노트)이긴 해도 여튼 적다고는 할 수 없는 볼륨입니다.

(*책좋사의 소개로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이 결정문은 심판 대상이 무엇인지 우선 밝히고, 그 적법 요건을 판단하는데, 여기서 적법 요건이란 대통령에 대한 국회의 탄핵이 적법했는지를 먼저 따지는 것입니다. 만약 여기서 부적법하다는 판단이 나오면 본안에 더 들어갈 것도 없이 각하(却下) 결정이 내려집니다. 일단 헌재는 대통령의 12.3 계엄 선포에 대해 사법심사가 가능한지를 먼저 살핍니다. 저는 작년 7월 7일, 8월 31일에 썼던 책프 리뷰에서, 이른바 통치행위(act of state)라는 것에 대해, 한상범 동국대 교수가 1995년 그 불법성을 논한 대목을 인용하고 제 나름대로 분석했었습니다.

이 책 p5를 보면 그 맨하단에 적법요건에 대한 판단이 나옵니다. 피청구인 윤석열 측은 이 계엄 선포가 고도의 통치행위이므로 사법심사의 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고도의 정치적 결단을 요하는 행위라 하더라도" 계엄의 선포는 헌법과 법률에 정한 절차가 있으므로 그를 따라야 하며, 이런 이유 때문에 헌재는 얼마든지 그 행위의 당부를 심사할 수 있다고 판단합니다.

사실, 이른바 act of state라는 건 과거 왕정 시대에 국사행위로 이뤄진 행위에 대해 일일이 법원이 개입할 수 없다는 이론 체계의 잔재로서, 20세기 이후에는 헌법이건 행정법이건 거의 논거로 쓰이지 않는 편입니다. 벌써 저 한상범 교수도 1995년에, 통치행위라는 말 앞에 "불법"을 붙여 얼마든지 사법심사를 할 수 있다는 전제로 삼았습니다. 학계의 일반적인 분위기가 이와 같았습니다. 그 행위의 적법/불법만을 따지면 될 뿐 주체의 immunity를 들어 통치행위라는 합리화를 시도할 수 없다는 취지에서입니다.

적법요건 중 "반복발의이기 때문에 일사부재의(一事不再議)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피청구인의 주장에 대해 헌재는 "제418차 회기에서 일단 투표가 불성립"했음을 지적합니다. 이때 우원식 의장은 정족수 미달로 "부결"된 게 아니라 투표가 불성립했음을 강조했는데, 그게 알고보니 이처럼 깊은 포석이 깔렸던 것입니다. 또 그게 아니라도, 두번째 표결이 차수가 변경된 419차 회기 중 이뤄졌으므로 역시 일사부재의 요건을 충족하지 않는다고 헌재는 보았습니다. 구체적으로는 국회법 92조에 위반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p8).

피청구인 측은 이 사건 (국회의) 청구가 보호이익을 흠결했다고도 주장했습니다. 계엄이 몇 시간 만에 해제되었으므로 아무런 피해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주장입니다. 이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아마도 앞에 적힌 청구인(국회) 측의 청구 사유들을 지적하는 듯, "탄핵사유가 이미 발생했으므로 심판의 이익이 있다"고 설시합니다.

다음으로, 아마도 이번 사건에서 가장 핫하게(?) 조명되었던 게 청구사유의 일부 철회에 대한 지적이었는데, 일각에서는 이 부분 때문에 탄핵심판 청구 전체가 각하될 것이라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동일성이 인정되지 않을 정도의 변경은 허용되지 않음"이라는 기존 판례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의 문제인데, 사실 관계의 변경이 아니라 적용 법조문의 변경은 헌재의 판단 영역일 뿐 이를 두고 사유의 추가, 철회, 변경이라 볼 수 없다는 게 결론(p10)입니다. 피청구인의 이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순간 이미 본안 판단에서도 탄핵 인용의 가능성이 과반으로 치달았다고 저는 봤었습니다.

본안으로 들어가서, 병력 동원이 필요했냐를 두고 헌재는 헌법 77조를 들어, 정치적 혼란은 제도적 수단으로 해결해야지 병력을 동원할 일이 아니며, 국회만큼은 그 권한을 계속하여 행사할 것을 전제로 헌법 자신이 "해제요구권"을 자체 규정한 것이므로, 국회에 병력을 진입시킨 피청구인의 행위를 위헌으로 선언합니다. 정국경색을 타개하려면 대국민담화(사실행위)나 국민투표 부의(헌법 72조)로 해결할 수도 있었음에도, 최후 수단이 되어야 할 병력 동원이 먼저 이뤄진 점을 비판합니다(이 책 p32).

역사적인 탄핵 결정문을 많은 국민들이 읽고 그 헌법적 의미를 새길 수 있는 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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