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래량으로 투자하라 - 개정판
버프 도르마이어 지음, 신가을 옮김 / 이레미디어 / 2018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거래량으로 투자하라!" 무슨 뜻일까요?

현재 가장 많은 학부생들이 애독하는 투자론 교과서인 Bodie, Marcus 등의 책은 말할 것도 없고, 다른 대다수의 교재들도 "어디까지나 가치 투자"라는 모토 아래에서 모든 논의를 전개합니다. "무엇이 가치 투자"인지는 명확히 밝히지 않지만(불가능하죠), 회사의 참다운 가치와 시장이 매긴 가격 사이에 분명한 갭이 있을 수 있다는 전제를 깔고 이후의 그 방대하고 치밀한 분석과 논의를 시작하는 겁니다.

워런 버핏 역시 오늘의 자신이 있게 된 건 가치 투자에 철저하고도 일관되이 집중했기에 가능했다고 토로합니다. 요약적 결론만 (보기 좋게) 그리 내세운 게 아니라 <스노볼> 등의 자서전에서 생의 어느 대목(기로)에 성공적인 가치 투자의 결행을 이뤘는지 자세히 밝히고도 있습니다. 타인들이 간과한 알짜 기업을 미리 알아보고, (흔한 말이지만) 쌀 때 사서 비쌀 때 파는 전략을 유지한다는 주장은 논리적으로 흠 잡을 데가 하나도 없습니다.

저자가 말하는 "거래량 팩터"는 사실 따지고 보면 저 "가치 투자" 기조에 반드시 모순되는 건 아닙니다. 이 책을 (저 때문에) 읽은 제 주변 분들도 종종 오해를 하시던데 저자는 "가치 투자는 개에게나 줘 버리고, 거래량 분석에 올인하라"고 주장하는 게 아닙니다. 예를 들어 이런 말을 보세요. "기술적 분석가들은 펀더멘털 분석이 주가 분석에 있어 두드러진 역할을 한다는 걸 분명히 인정한다." 그러게요. 가치 투자와 (저자님의) 거래량 포커스 투자는 얼마든지 공존, 병행, 시너지가 가능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보다는, "왜 당신들은 가치 투자 같은 추상적 주관적 요소에만 주목하고, 보다 손쉬우며 객관적인 징후에는 눈을 감는가?" 같은 안타까움을 통해, 작심하고 자신만의 노하우를 이처럼 자세하게 풀어 놓은 의도로 받아들여야 할 것 같네요.

여튼 저자는 이런 말도 분명히 서문에서 하고는 있습니다. "앞으로의 시장이 1980년대나 1990년대처럼 그 탐색이 손쉬우리라고 기대하는가?" 확실히 판은 바뀌었습니다. 기존의 방식 중 맞는 건 살리고 틀린 건 버리자는 정도의 미적지근한 대응이 아니라, 아예 송두리째 폐기처분해야 한다는 파괴적 혁신론이 힘을 얻는 것도 무리가 아니게 말입니다.

저자는 이런 말도 합니다. "펀더멘털 분석은 가치가 어떻게 주가에 반영되는지를 분명히 주목한다. 그러나 매도 시기, 매수 시기에 대해서는 전혀 알려 주지 않는다." 사실 중요한 건 언제 치고들어갈지 언제 빠질지의 타이밍인데, 현재 펀더멘털 분석이 위주인 많은 정통파 스탠스의 교과서들에선 이런 언급이 상대적으로 (양, 질 모두) 빈약합니다. 이런 지적에 대해 속 시원히 받아칠 수 있는 전문가나 학자도 제 생각에 별로 없지 싶습니다.


잠시만 학계 주류 입장(을 넘어 거의 상식) 중 하나인 Treynor와 Mazuy의 분석틀에서 타이밍 팩터를 어떻게 다루는지 짚어 보겠습니다. 이분들은 상수항을 a, 시장포트폴리오와 안전자산 이자율 사이의 차에  붙은 계수를 b(젠슨의 식에서 베타로 취급되는), 그 이차항의 계수를 c(이 부분이 다른 학자들의 식에 없었죠)로 각각 두고 저 c를 "타이밍"으로 규정합니다. 알파와 베타 이야기는 자주 하는데, 학자는 물론 실무가와 애널리스트들도 저 Treynor의 c는 드물게 언급합니다. 타이밍은 그만큼 계량화하기 어려운 이슈라서입니다. 그리고 펀더멘털 분석의 "실속"을 가장 초라하게 만드는 요인이기도 합니다.

아무리 우량주라도 천년만년 끼고 있어야 어느 시점에서 궁극적 헤택을 준다면, 당장 돈이 아쉬운 사람에게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차입 투자를 해야만 하는 이들에게는 빛 좋은 개살구나 마찬가지인 충고지요. (과도한 레버리징은 절대 금물이며, 뭐 여튼 안정된 여윳돈으로 투자하는 게 정석임은 언제나 타당합니다만) "해당 주식이 장기 보유종목이라는 치욕스러운 이름으로 분류되어 그 업종 전체나 해당 기업이 상승할 때까지 손해를 보면서도 보유해야 하는" 결과를 통렬히 개탄하는 저자의 말 역시, 반박할 말이 좀처럼 떠오르지 않는 타당한 지적입니다. 추세가 이처럼이나 변덕스러운 시대에, 예를 들어 시스코 시스템즈 株를 거론하며 보유 기간에 따라 65%의 손실, 64%의 이익이라는 천국과 지옥을 오간다면 더욱 허무해지는 게 "가치 투자 예찬론"입니다.

번거로운 말 다 생략하고, 이 책 저자님이 주장하시는 요점이 뭔지 정리하겠습니다. 캔들 차트를 보되, 첫째 주가 변동 곡선이 어떤 모양을 띠는지에 주목해서, 둥근 바닥인지 둥근 천장인지, 다이아몬드 톱인지  역머리어깨형인지 그 심상치않은 모양에서 "징조"를 분명히 캐치하라는 겁니다. 조런 모양들이 나타나면 앞으로 어느 기간 안에 폭락이 발생할지, 상승이 갑자기 나타날지, 향후 상당 기간 동안은 가격의 회복을 기대하기 힘들지, 이 모든 걸 예측할 수 있다는 게 저자의 주장입니다. 둘째 거기만 봐서는 안 되고, (이 책 제목이 뭔지 다시 확인하십시오) 차트 하단의 거래량 부분을 들여다본 후, 거래량과 가격 등락이 어떤 패턴으로 상관하는지까지 함께 주목하라는 겁니다. 실제로 뭐가 강세깃발이고 뭐가 페넌트인지는 차트 상단만 봐선 쉽게 판별 안 됩니다. 아래의 거래량 패턴까지 함께 고려해야 지금 이게 저자의 분류 중 어느 타입에 해당하는지 가려낼 수 있습니다.

마치 관상이나 풍수지리와도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습니다. 무슨 상 무슨 상 하며 기본 카테고리는 명쾌히 나뉩니다만, 실제 인물의 상이나 지형이 그 중 어디에 정확히 포섭될지는 해당 분석을 행하는 이의 공력에 크게 좌우되는 겁니다. 어떤 사람은 전혀 그 형태가 안 보이는데도 용케 개형을 잡아내어 무슨무슨 분류에 집어넣는데, 이게 억지인지 핵심을 정확히 짚었는지는 오로지 결과가 말해 주는 거죠. 책을 보면서도 "왜 이게 손잡이가 있는 컵이지?"라며 고개를 갸우뚱하는 이들이 제법 있었습니다. 그림만 보지 말고 텍스트에서 저자가 말하고자는 의도를 면밀히 숙고해야 하며, 다시 말하지만 하단의 거래량 부분을 함께 봐야 합니다.

거래량도 그냥 거래량이 아닙니다. 일중 주가 변화(혹은 종가 변화)를 반영한 것, 틱 거래량, 거래량 토대 주가매집, 각종 지표에 의해 수정된 것, OVB, VZO, WAD 등 다양합니다(더 앞선 시기에 레전드들이 이미 개발해서 업계에서는 일상적으로 쓰이는 것들이죠). 왜 이렇게 저자는 거래량에 주목하라고 권하는 걸까요? 소박하게 말하면, 정확하게 국면을 본 큰손이나 기관이 움직이기 시작하는 게 여튼 개미 입장에서 무시할 수 있는 조짐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만 작전에 속는 건지 아니면 진정한 변화를 반영한 시그널을 캐치한 건지는 정말로 신중히 분별해야 하는데, 그에 도움을 주는 자료들, 기준들이 (저자의 말에 의하면) 차트의 저런 심상치 않은 조형들이란 거죠.

좀 어렵다는 반응이 제 주위엔 많았습니다. 공부할 때도 중간 진도에서 헤매는 건 기초 개념을 충실히 학습하지 않아서입니다. 저는 특히 pp. 98~113에서 저자가 잡아 준 기본꼴 바(bar)들이 갖는 함의, pp. 122~140의 "추세"에 대한 힘 있는 개념 제시를 정독하시길 권합니다. 후반부는 이 논의가 확실히 이해되면 큰 무리 없이 따라갈 수 있는 논의들입니다. 읽어 보면 너무 좋은 내용들이 많아서, 정말 차트만 보고(물론 아니지만) 기술적 분석만으로 실패 없는 투자가 가능할 수도 있갰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만화에서나 나올 법하던 게(아니면 룸쌀롱에서의 실없는 허풍) 현실에서도 진지한 논의가 슬슬 시도되는 셈인데, 대단히 흥미로운 게 사실입니다. 단, 거듭 말씀 드리지만 정석은 어디까지 가치 투자, 펀더멘털 분석임도 잊지 마시고요.


댓글(1)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8-01-26 0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사이트넘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