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일상의 대단한 역사 - 하루 일과로 보는 100만 년 시간 여행
그레그 제너 지음, 서정아 옮김 / 와이즈베리 / 2017년 6월
평점 :
절판


알렉산더 대왕, 칭기즈칸, 나폴레옹 등이 언제 어디서 대단한 위업을 쌓고 유방백세의 이름을 남겼는지는 우리들 모두가 학교에서 사회, 역사 시간에 열심히 배워 왔더랬습니다. 위대한 선인들이 남긴 업적은 오늘날까지도 그 후손들인 우리가 풍족하고 편리한 생활을 누리는 데 큰 기여를 하는 중이니, 학창 시절 골머리를 싸매며 배운 노고란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헌데 위인들의 거창한 위업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닙니다. 우리들 평범한 소시민들이 매번 일상에서 접하는 지극히 평범한 하루 24시간을 알차게 보내고 사업상의 약속을 정확히 지키거나 연인과 함께 달콤한 추억을 만드는 일, 혹은 지친 몸의 활력을 목욕, 샤워를 통해 회복하는 일, 배고플 때 단돈 얼마로 간단히 해결할 수 있는 편익 등이, 정확히 언제부터 가능했고 "일상"이 되다시피했는지 역시 중요한 의의를 갖습니다. 하지만 이 소소하고도 고마운 혜택이 누구 덕분에 처음 가능했는지, 어떤 과정을 거쳐 사회 제도의 일부로 자리잡았는지는 교과서에서 배운 바도 없고, 어디 가서 알아봐야 하는지조차 우리가 모릅니다. 위인들의 업적에 기대는 건 우리 인생의 지극히 중요한 몇몇 순간뿐이지만, 의식주의 편리를 누리고 용변의 생리를 해결하는 건 매일매일 우리가 입은 혜택인데도 말입니다. 양쪽을 놓고 무게를 가늠하면 과연 저울 추가 어디로 기울지, 아무도 장담 못 합니다. 일상의 소소한 편의를 모조리 거부하고 살기란, 당장, 지금부터, 불가능해지기 때문이죠.



소소한 일상의 자그마한 편리함이 언제부터 가능했는지를 아는 건, 그저 호기심 해소에 그치는 게 아닙니다. 당연하다고 생각한 게 결코 당연하지 않았으며, 이처럼이나 많은 이들(그 중 상당수는 우리가 이름도 모릅니다)의 지혜와 공헌이 쌓이고 쌓여 비로소 가능했음을 아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마음이 숙연해지고 일상의 고마움에 대해 절감하게 됩니다. 소소한 일상의 고마움과 (알고보니) 매우 깊은 저 먼 연원을 깨닫게 되면, 위생과 기초 생존 욕구의 원활한 해결(남는 에너지로 다른 고차원적인 작업과 상념에 몰두할 수 있습니다)이 우리 생을 몇 배로 행복하게 해 줌을 알고, 나 자신의 마음부터를 평안히 다스릴 수 있습니다. 불과 몇십 년 전, 혹은 한 세기 전만으로 거슬러 올라가도 사람 사는 게 짐승이나 다름없었을 생각하면 아찔해지죠.

책은 여태 몸을 숨긴 채 눈에 띄지 않았던 정말로 소소한 일상의 역사를 자세히 다룹니다, 위인의 행적과 굵직굵직한 정치사는 권위 있는 문헌이 공인 과정을 거쳐 출간되었기에(역사가 최초 기록된 시점부터 이미), 정확한 분석과 탐구가 그리 어렵지 않을 수 있습니다. 허나 소소한 생활사는 파편적으로 흩어진 기록을 일일이 조사, 취합해야 하고, 기록자들이 농담, 여담처럼 남긴 흔적에서도 단서를 얻어야 하므로 너무도 어려운 과제일 수 있습니다. 이런 어려운 과업을 수행하면서도, 그 결과물은 재미있는 농담처럼 들려 주는 저자의 내공과 박학다식함에 독자로서 경의를 표하고 싶습니다.



시간이 오늘날처럼 12시간 60분 12개월 단위법으로 정착하여 널리 쓰이게 된 건 어떤 절대적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었음을 우리는 이 책을 통해 배울 수 있습니다. 특히 재미있는 건 프랑스 혁명 이후 지도층이 그저 정치적 세력 교체만을 이룬 게 아니라, 전근대성을 몰아내고 근대성, 합리주의 사상을 국가 지도 이념으로 정착시키려 든 노력이 자세히 소개되었다는 점입니다. 앙시엥 레짐의 진정한 붕괴는 비합리적인 제도의 전복과 대체에서 비롯했음을 우리는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다만 미터법 등 표준단위의 계산, 측정이 10진법에 기인하기에, 12월 체제인 역법도 10개월 단위로 바꾸는 등의 개혁을 시도한 건, 사회와 민중의 호응을 전혀 얻지 못했기에 실패했음을 저자는 지적합니다. 이 정보를 전하는 톤과 분위기가 대단히 유머러스하기에, 인간의 관습과 제도가 절대적인 듯 보여도 실제로는 사소한 우연들이 겹치듯 끼어든 결과인 점, 우리는 허탈하게 절감합니다. 저자는 그저 우리에게 쉽게 지식을 전달하기 위해 이런 캐주얼한 화법을 쓰는 게 아니라, 세상의 거대한 이치 배후에 어떤 필연성이 도도히 흐르는 것만은 아님을 소탈한 말투 속에서도 전달하는 거죠.



독자들은 특히, 일광절약 시간제라 부르는 서머타임 제도가 어떤 과정을 거쳐 미국과 서유럽에 정착했는지, 저자의 너무나도 재미난 설명을 통해 배울 수 있습니다. 책 전체를 통틀어 저는 이 대목이 가장 신나게 읽힌 것으로 기억합니다. 한국도 1988 서울 올림픽 전후로 이 시스템이 도입되었다가 현재는 거의 언급도 안 되는데, NBC사와의 방송 중계권 협상 과정에서 그리 되었다는 재미있는(좀 창피한) 일화가 있죠. 저자 그레그 제너 님께 이 사실을 알려주면 아마 귀를 쫑긋 세우고 들을 것 같습니다.

인류는 체내에서 동화 이화 작용을 반복하며 생명을 유지하는 개체이기에, 이 부분 한정해서 여타의 하등 동물과 운명이 다를 바 없습니다. 문제는 정착하여 군집 시스템을 일구고 사는 처지이기에, 적 아닌 동료 거주자들의 "배설물"을 어떻게 처리할 지의 문제가 실로 난감하다는 거죠(아니, 자기 자신의 것이라도요). 감정적인 불쾌감도 불쾌감이지만, 위생상의 문제가 더욱 절실합니다. 폼페이우스 마그누스의 부친 스트라보 장군도 이 문제 때문에 전황을 크게 그르칠 뻔했다는 역사가 전할 정도이니 배설 이슈는 더 이상 "소소"하지도 않은 셈입니다. 여기 대해서는 많은 대중서들이 이미 재미있는 정보로 독자들과 만난 바 있지만, 제가 여태 읽은 중에서는 이 그레그 제너의 책이 가장 재미있으면서도 포괄적이었습니다. 조선에서도 시비법이 고안된 후 수확량이 비약적으로 증가했지만, 유럽 역시 강물을 더럽히는 수세식이 아닌 저장식으로 농사에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한때 더 우세했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합니다. 6.25 당시 파병되고 이후에도 주둔한 미군들이, 논밭에 배설물을 비료로 주는 우리 농촌의 관행을 보고 몸서리를 쳤다는데, 이 책을 읽으면 그들 역시 소위 "문명"의 관점, 기준이 바뀐 지 그리 오래지 않다는 점을 알고 부끄러워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속옷 파트 역시 독자가 한번 펼쳐들면 끝까지 읽어내야 직성이 풀릴 만큼 재미있습니다. 원더브라가 이미 고대에도 그 원형이 존재했다는데, 속옷(특히 기능성)의 착용이야말로 우아한 현대인의 표징이라 알아 온 우리들로서는 맥이 빠지기까지 합니다. 한편으로, 이미 신석기 시대부터 문자 기호의 아득한 원형이 존재했으며, 표음 문자가 진일보한 수단으로 오해하기 쉽지만 오히려 현대에 들어 픽토그램이 다시 널리 쓰인다거나, 메신저 등에서 애용하는 이모티콘, 스티커 등의 인기는 우리에게 사물과 현상을 다른 각도에서 관찰할 필요가 있음을 깨우칩니다. 한자(漢字)만 해도 전산화 시대에 대체 어떻게 활용하겠냐며 중국을 두고 불쌍하다는 시선으로 본 게 몇십 년 전인데, 지금은 다양한 입력 방식을 지원하는 앱의 개발로 중국인들도 무리 없이 의사소통을 합니다. 당연한 상식이 반드시 절대적 타당성을 갖고 받아들여져야 할 이유는 없음을 저자는 여러 고찰을 통해 깨우칩니다.

미국 대중 문화에 익숙한 독자들에게는 저자의 상큼하고 기발한 비유가 매우 재밌게 와 닿을 것입니다(정작 저자는 영국 분인데). 표준 시간제 도입을 설명하며 저자는 "돌리 파튼의 나인 투 파이브가 혹여 '밤9시부터 새벽 5시'로 이해될 뻔했다"며, 대중들의 생활 습관에 맞지 않는 무리한 기준의 도입이 얼마나 우스운 결과를 낳을 뻔했는지 실감시켜 줍니다. 그런가 하면 만약 에디슨이 "헬로"라는 통화상의 표준 인삿말을 "어호이(ahoy)" 등으로 고안했다면, 라이오넬 리치의 대 히트곡 "헬로"도 "어호이"가 그 제목, 가사 후크가 되었겠다며 독자의 웃음을 유도합니다. 이뿐 아니라 브래지어(혹은 비키니 탑)의 유래를 설명하는 중, <공룡 백만년>의 여우주연 라켈 웰치(이 포스터가 너무 유명해서 사회학 서적에도 도판으로 실릴 정도죠)가 "원시인 브라"를 입는 모습은 결코 영화 속에서의 과장이 아니었음을 증명하여 독자를 놀라게 합니다(아마 반 세기 전 영화 제작자들도 몰랐을 듯요).



번역도 참 깔끔한데요. 마치 한국 저자가 처음부터 한국어로 책을 쓴 것처럼 자연스럽게 읽힙니다. 역주(본문 중 삽입)도 많이 달려 있어서 저자가 어떤 대목에서 위트, 말장난(pun)을 시도했는지 우리는 놓치지 않고 웃으며 감탄할 수 있는데, 이런 대중서에서는 반드시 필요한 도구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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