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투스는 베레니스를 사랑하지 않았다
나탈리 아줄레 지음, 백선희 옮김 / 무소의뿔 / 2017년 4월
평점 :
절판


고전에 대한 오마주랄까 현대판 재해석이 요즘 자주 나와서, 현대에는 이미 문학이 죽었거나 예전의 황금기보다 훨씬 못하다며 실망하는 분들의 눈을 크게 띄우는 실정입니다. 예전 학교 다닐 때 "라신, 몰리에르, 코르네유"라고 하면 17세기 프랑스 고전주의 사조를 이끈 3대가로 배우곤 했었죠("~곤 했었죠"라고 하면 프랑스어에서 반과거 시제입니다ㅎ). 마치 그보다 수천년 전 그리스에서 아이스킬로스,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 3대가가 있었듯이 말입니다.

비극과 희극이라는 전문(?) 분야의 차이가 있을망정 어쩌면 프랑스의 저 문호들도 시대와 공간을 건너뛰어 아득한 선배들에 대한 경의와 헌정의 마음가짐으로 그들의 재능을 더욱 갈고닦았는지도 모릅니다. 지금 이 책 저자인 나탈리 아줄레도 앞으로 그만큼 대성하실 작가가 될 지도 모르고요. 참고로 제가 몇 달 전에 읽은 <뫼르소, 살인 사건>의 저자 카멜 다우드도 북아프리카 출신으로서 알베르 카뮈의 대작에 대한 멋진 화답작을 발표해서 유명해졌는데, 이분 역시 (프랑스령 바르바리아 출신은 아니지만) 이집트 태생으로 프랑스어에 대한 각별한 애정과 탐구심으로 작가가 되었다는 점에서 닮아 있습니다.

티투스는 다른 누가 아닌, 우리가 고대사에서 예루살렘을 파괴한 로마 황제로 알고 있는 바로 그 사람입니다. 이 사람이 군사 원정을 떠나기 오래 전, 아직 비교적 평온한 위성 국가로 남아 있던 유대 지방의 왕녀 베레니케(베레니스)를 사랑해서 한때 결혼을 시도했었음은 역사적 사실입니다. 다만 백성들의 반대가 심하여 결국 혼인을 단념했는데, 이걸 두고 이 책에서는 "그의 합법적인 아내이자 자식들의 어머니인 로마를 떠나지 않기 위해..."라고 표현합니다. "나를 다시 받아 주오." 로마가 여기서 여성으로 의인화된 건 유럽 문학의 오랜 전통 그 일환이죠.

이런 근사한 표현들은 장 라신의 원전 <베레니스>에도 나옵니다. 라신은 셰익스피어보다 조금 후대에 활동했는데, 아무래도 당시 유럽을 휩쓸던 "고대의 재조명" 트렌드에 합류하여 이처럼 소재를 로마 시대에서 취했으나,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이 보다 장중하고 인간 보편 정신의 탐구, 회복을 지향했다면 라신의 그것은 이처럼 섬세하고 달달한 사랑, 감정에의 천착이 지배적이라 하겠습니다. 이 책에도 "이폴리트를 사랑한 페드라" 이야기가 잠시 언급되는데 역시 그의 희곡 <페드라>를 염두에 두었겠죠.

이 작품의 곳곳을 관통하는 심상은 "불"입니다. 코르넬리우스 얀센(신학자이며, 이후 프랑스 낭만주의 장편 소설에 배경으로 곧잘 나오는 "장세니스트(얀센주의자)"의 시조격입니다). 이 사람의 공모자(협력자, 동반자가 맞겠지만)인 생시랑의 말이 인용되는데, "...아담은... 다이아몬드였으나... 원죄 이후에는 석탄이 되고 말았다...."에서 금강석의 탄소분자 배열 구조를 바꾼 건 세월과 압력 외에도 "불"이 개재하는 게 자연의 이치이겠지요. 얀센주의자 중 한 명으로 알려진 파스칼도 이 소설 중 잠시 인용되는데, 장이 학교에서 "후작"과 즐거운 유희 끝에 그 흥분감으로 밤에 잠을 못 이루는(이상하게도 그 나이 때에는 다 이렇지요. 저도 이 대목을 읽으면서 그 비슷한 기억이 새로워졌습니다) 대목에서 "... 파스칼 역시 갈랑트리에 빠졌다..."고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밤에 잠을 못 이루는 건, 낮에 피운 불잉걸이 마음 속에서 채 꺼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나이 들어서 그런 체험이 뜸해지고 무덤덤해진다면 그게 바로 늙었다는 증거입니다. 그리고 지금 책 속에서 우리는 한창 팔팔한 나이때의 장과 만나고 있습니다.

이국의 영웅, 군주와 비련의 사랑에 빠지다 버림 받는 아득한 원형은 또 저 북아프리카의 여왕 디도(영어로는 "다이도"라 읽고, 1990년대 후반에 이 이름을 한 미국 가수가 낸 히트곡이 한국에서도 인기를 끌었죠)가 있습니다.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드>를 인용하며(당연히 원문은 라틴어) 장은 그 정확한 번역, 이해에 골몰합니다.

Caeco carpitur igni

문장은 짧아도 이게 엄청 어렵습니다. 우선 책 중에서 장은 형용사 caeco를, "숨겨진"으로 번역할 것인가, 아니면 "눈먼"으로 옮길 것인가를 놓고 고민합니다. 한 단어에 어떻게 이런 이질적인 뜻이 함께 들어있나 의아할 수 있는데, 만약 "주체"가 눈이 멀었으면 그건 "객체" 입장에서는 "숨겨진" 것입니다. 반대로, "객체" 역시 무정물이라면, 생각과 감정이 없으므로 (인간이 그걸 보기로는) 역시 눈이 먼 것이죠. 장은 지금 그녀(디도 여왕)가 눈이 멀었는지, 아니면 그녀를 집어삼킬 불이 눈먼 것인지를 놓고 고민하는 겁니다. 저 라틴어 문장은 주어가 생략되어 있는데, caeco igni가 (영어로 치면) by the blind fire입니다. carpitur는 한 단어여도 수동태꼴 동사인데, 영어로 옮기면 is seized입니다. carpi- 어근은 "오늘 하루를 놓치지 말라"는 경구 "카르페 디엠"이라고 할 때 그 "카르페"와 완전히 같은 겁니다.

장은 셰익스피어처럼 언어의 조율에 민감하고 까다롭습니다. 잠시 아르튀르 랭보도 언급이 되지만, 여기서 캐릭터 장은 실존하거나 픽션 속에서 등장한 모든 천재들의 개성을 다 조금씩 합친 듯합니다. 혹은 나이가 어려서인지 아직 서투른 모습도 보이는데, 아몽과의 관계에선 "데미안을 대하는 싱클레어"가 생각나기도 하고 말이죠. "...하지만 프랑스에서는 모든 명사에 관사를 붙여야 해." 마치 우리가 영어 시간에 "apple이란 없다. the apple이나 an apple이 있을뿐"이라고 배운 것과 같습니다. 이런 당연한 소리를 왜 하느냐면, 라틴어는 개체(특정/불특정)를 가리키건 보편을 지시하건 관사 일체가 없기 때문입니다. 더 오랜 고전어인 헬라어도 까다롭게 변화하는 관사류를 달고 있는 언어인데도 말이죠.

당신의 <베레니스>에 나오는 인물들이, 내 눈에는 한낱 잿더미로 보였어요.

생생한 감각에 대고 칼을 가는 장에게 어느 여성이 다가와 하는 말입니다(p199), 이런 말에 장은 무덤덤하니 동의합니다. 여성의 진의가 무엇이었건 어떤 의미에서는 타당하기 때문입니다. 아담 역시 하와에게 그 나름 신의의 표시로 금기에의 도전에 동참했다 그꼴이 되었고, 아이네이아스를 떠나보내는 디도 여왕은 자신을 장작더미 위에 올려 태우고는 순정을 증명합니다. 모든 사랑은 불장난이며, 사랑이 징벌처럼 휩쓸고 간 마음에는 새하얀 재만 남습니다. 과연 티투스가 베레니케 왕녀에 대한 사랑이 식어서 그녀를 버린 건지, 아니면 그 유명한 시쳇말대로 "사랑하기 때문에 헤어진 건지"는 여전히 논란의 대상이죠. 다만 베레니케(베레니스)는 미련 없이 쿨하게 티투스를 떠남으로 해서, 사랑하는 티투스의 자존과 위신을 완전하게 지켜 주었습니다. 속으로만 삭이고 상대의 발이 내 위를 사뿐히 즈려밟게 가도록 전송하는 사랑이란 역시 아무에게서나 빚어질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들불이 어디로 번질지 알 수 없듯, 사랑의 갈 길도 이처럼이나 종잡을 수 없으면서 동시에 다양한 방식으로 아름답고 숭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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