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은 왜 실패하는가
일레인 카마르크 지음, 안세민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17년 4월
평점 :
절판


대통령이 국민을 걱정해 주는 사회가 아닌, 거꾸로 국민이 대통령을 걱정하고 우려 섞인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 사회가 안타까울 뿐입니다. 세계 각지에서 문제 있는 대통령들이 자국민뿐 아니라 다른 나라의 시민들로부터의 관심까지를 모으는 형편인데, 현재 독재 체제로의 개헌을 시도하며 정당치 못한 권력 기반을 굳혀 가는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 같은 이가 그 대표적 예입니다. 트럼프 역시 하필이면 역사상 가장 원성 높고 큰 실패를 저지른 예로 꼽히는 닉슨의 전례를 따라하다(따라한다는 의식도 없었겠지만) 지금 곤경에 처해 있습니다. 한국은 광복 당시 유진오 박사의 초안에 따라 의원내각제를 채택한 헌법을 마련했으나, 우여곡절 끝에 변형된 대통령제를 끌어들여 이후 많은 부작용을 겪었습니다. 그렇다고 지금 또 내각제 개헌을 하자는 분위기에 대해서는 많은 국민들이 거부감을 갖습니다. 버리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금지옥엽 보듬듯 안고가지도 못하는 이 대통령제의 딜레마, 우리뿐 아니라 전세계가 고민인 듯합니다.

저자는 그렇게 말합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제왕적 대통령이나 수사적 대통령이 아닌, 관리자형 대통령이다!" 느낌표까지 붙여 강조한 이 한 문장에는, 여튼 지양(止揚)되어야 할 두 가지 바람직하지 못한 유형까지 제시했다는 의의도 있습니다. 무엇을 향해 나아가야 할 지는 모두에게 분명한 건 아니지만, 무엇을 극력 회피해야 할 지는 어쩌면 더 많은 구성원들에게서 합의를 끌어내는 지도 모르기에, 이 의의는 생각보다 큰 것입니다. 바람직하지 못한 대통령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며 국민의 복지와 행복을 무시하는 폭군형 지도자이거나, 반대로 실천에 옮기는 바는 하나도 없으면서 듣기 좋은 말로 국민을 현혹하는 선동가이거나, 이 두 유형이 대표한다는 뜻도 되죠. 문제는, 이 두 유형이 지난 세계 역사 곳곳에 출현했고 지금도 횡행하면서도, 여전히 극복되지 못하거나 운명처럼 받아들여진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필리핀의 두테르테 같은 이가 또다시 권좌에 오른 걸 보면, 과연 역사에는 발전이나 진보의 희망이 남아 있는지 의심까지 생깁니다.

저자는 일단 "모든 대통령은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는 건지"의 의문부터 제기하며, 시스템 자체가 가진 필연의 재앙인지, 그렇지 않고 결함 많은 지도자 개인의 문제였는지부터 짚고 넘어갑니다. 만약 후자에 더 큰 책임이 있었다면, 이는 우리 국민이 시스템 개선을 통해 충분히 극복이 가능하다는 어떤 희망이 생기기에 좋습니다. 사실 대통령제는 몇몇 후진국에서 국민 기만의 수단으로 마련한 독재의 장막으로 시작한 게 아니라, 민주주의의 가장 아득한 시초, 원형 중 하나인 미국 독립 전쟁의 산물로서 그 당시 북미의 현명하고 사려 깊은 지도자들이 지혜를 애써 짜내 안출한 제도의 산물이기에, 대통령(제)의 위기는 곧 민주주의 자체의 위기라는 점에서, 여튼 우리 현대인들이 이 희망의 씨앗을 질식시키지 않고 끝까지 갖고 가야 할 중대하고 소중한 유산입니다.

저자는, 성공하는, 적어도 실패는 하지 않는 대통령의 덕목으로 세 가지를 꼽습니다. 1) 정책 2) 소통 3) 실천력. 이 셋은 사실 대통령 뿐 아니라 어느 회사, 조직, 소집단의 리더에게도 공통적으로 꼽히고 요구되는 덕목인데요. 작든 크든 일국의 대통령에게라면 더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1) 정책은 다른 말로 바꾸면 일국의 국민들에게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느냐의 문제인데, 그저 듣기 좋고 마음만 놓이는 미사여구 정책집, 곧 공약(空約)이 되어 버릴 말의 성찬만 내어 놓느냐, 아니면 소박한 약속이라도 작은 것들이 서로 엮이고 모여 화학적 시너지를 발생시킬 총체적이도 단단한 실체를 구비했는가, 뭐 이런 차이가 있겠습니다. 정책이 없는 대통령은, "법의 지배(rule of law)"가 아닌, 그저 자신의 자의(恣意)로 대중 위에 군림하려는 원초적 욕구만 가득한 폭군에 다를 바 없습니다.

2) 소통은 특히 이 책에서도 여러 차례 사례가 언급되는 로널드 레이건이 종래 바람직한 모범으로 거론되기도 한 덕목이죠. 다만 이 책에서는 레이건 역시 신랄한 비판 대상으로 삼는데, 시대 환경이 크게 바뀐 현재에서는 당연한 태도라 하겠습니다. 이라크 전쟁은 조지 W 부시 뿐 아니라 영국의 당시 총리 토니 블레어까지도 실패의 구렁 속으로 몰아넣은 사태로 꼽힙니다. 이 책은 물론 미국 저자에 의해 쓰여진 책이고, 명실공히 대통령제를 채택, 운영하는 미국의 사례에 집중하기에 토니 블레어 이야기는 안 나옵니다만, 제가 해당 챕터를 읽고 느낀 건 결국 이 사태로부터 추출된 교훈은 영국의 이후 역사 진로에도 고스란히 적용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점이었습니다.

이 책은 특히, 대통령제는 대통령 개인의 판단이 제왕적으로 마구 실현, 적용되는 게 아니라, 엄연히 헌법적 정당성을 갖고 마련된 관료제, 자문기관, 기타 견제와 균형을 실천할 국가 기관에 의해 유기적으로 협력을 받아 가며 실천되어야 함을 지적합니다. 왜 부시는 이라크전에서 총체적 실패를 저지를 수밖에 없었는가? 답은 기관 사이의 협조가 부족했고, 그 방대한 조직이 생산하는 알토란 같은 정보가 윗선에 보고되어 정책 결정에 도움을 줄 경로가 심각한 장애를 일으켰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저자는, "유능한 관리자형 대통령"의 필요성을 다시 강조합니다. 관리자는 그저 시시콜콜하고 쫀쫀한 디테일에 집착하는 편집증 환자가 아니라, 존재하는 시스템의 미덕과 기능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이용할 줄 아는 영리한 운영자라야 한다는 이유에서입니다. 현대 국가는, 과거의 미비한 시스템에 어설프게 의존해서 아슬아슬하게 굴러가는 양상이 아니며, 얼마든지 든든하고 내실 갖춘 시스템으로부터 "최종 의사 결정권자"가 도움을 구할 수 있는 구조입니다. 왜 잘 하지도 못하면서, 남의 도움도 한사코 마다하다 재앙을 자초하는가? 이 통렬한 질문이야말로, "관리자형 대통령"이 차라리 제왕적 대통령보다 더 되기 힘든, 그러나 국민들이 가장 간절히 원하는 유형임을 잘 설명해 줍니다.

독재는 차라리 무능하고, 성과도 없으며, 독재자 자신까지 실패로 몰아넣는 환각적, 자폐적 몸짓에 지나지 않습니다. 유효한 충고를 잘 듣고, 다가오는 위험의 신호를 제때 파악하며, 혹 미처 방지하지 못한 재앙은 어디까지나 시스템이 마련한, 혹은 충분히 제공 가능한 도움에 의존해서 해결할 것, 이것이 바로 1) 정책적 준비가 잘 되어 있고, 2) 관료들과 국민과 잘 소통하며 3) 필요하고 적절한 집행 수단만 딱 골라 경제적으로 발휘하는 집행력, 실천력을 갖춘, 성공하는 대통령에게 요구되는 덕목이자 간절한 희망이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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