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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야욕 아베신조를 말하다 - 제2 메이지유신 꿈꾸는 아베 신조 책략 심층 분석
이춘규 지음 / 서교출판사 / 2017년 4월
평점 :
한 인간의 야욕은 그 사람 본인을 파멸에 이르게 할 수도 있고, 반대로 소속 집단과 개인을 질적으로 비약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보통 "야욕"이라고 하면 후자를 가리켜 쓰는 결과론적 용어이긴 한데, 전자의 경우에도 냉정한 현실주의 입장에서 무언가 교훈을 추출할 때 우리는 이런 "야욕"으로부터도 어떤 역사의 유익한 공식 비슷한 걸 끌어내려 애쓰기도 합니다.
아베 신조는 이미 젊은 시절 한 차례 총리직을 지내고 물러난 경력이 있는 사람입니다. 능력과 경륜을 겸비하여 무난히 중책을 수행하고, 국가를 이끈 실적이 있었다면 대개 연임에 연임을 거듭하여 자신의 치세로 상당 기간을 장식하는 게 보통이죠. 길지도 않은 임기가 한 번 끊어지고 정치 인생을 이어갔다면 (여튼 한 번 거치기도 힘든 총리대신직에 올랐다는 자체가 영광이긴 하겠어도) 첫 수행이 그리 성공적이지는 않았다는 뜻도 됩니다. 보통은 일본 역사(혹은 내각제를 채택한 여느 다른 나라에서도)에서 이런 정치인이 아주 높은 평가를 받는다고는 못 합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한 번 실각한 후에 다시 총리직에 올라, 두번째의 집권기를 꽤나 길게도 이어가는 매우 특이한 케이스입니다. 작년 말에 한국도 그랬지만 일본 역시 각종 정치 추문이 터지는 통에 드디어 이 장기집권자가 권력 기반을 잃는 줄 알았던 관측자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도 반 년 가까이 지난 지금, 이 사람은 여전히 권좌에 머물러 있습니다. 삼십 년 전 테플론 대통령이라 불렸던 로널드 레이건의 경우와도 비슷한데, 레이건 역시 국민들에게 워낙 인기가 좋아 웬만한 스캔들로는 기반이 흔들리지 않던 매우 특이한 케이스였죠.
이 책은 경위야 어찌되었든 간에, 두 번에 걸쳐 총리대신직이라는 중책을 맡아 이른바 "스트롱맨"의 한 사람으로 불리며 국제정치 무대에 주역으로 그 생명을 오래도 이어가는 정치인의 비결을 분석하고 있습니다. 정치는 누가 뭐래도 현실이기 때문에, 일본 정치판의 어떤 후진적 특성 같은 것을 아무리 감안하더라도, 자신보다 훨씬 노회하고 다양한 수완을 가친 고참 정치인들이 즐비한 일본(자민당 내부뿐 아니라, 야당에도 선배들이 많습니다)에서, 어떻게 이 사람이 갖가지 고비를 넘기고 생존했는지 그 숨은 사연을 분석하고 있습니다. 흔히 명문가의 자제, 세습 정치인의 일원이라는 이유를 들지만, 그런 사람은 일본 정가에 너무도 많아 딱히 장점이 될 수도 없습니다. 극우성향을 내세운 대중 영합이라면 이 사람보다 몇 술 더 뜨는 정치꾼들도 부지기수입니다. 이 사람만이 장기로 보유한 어떤 노하우가 있기에 지금 우리 눈 앞에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거죠.
요시다 쇼인 등 일본 근대화 과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굵직굵직한 생애를 산, 여튼 그들 입장에서는 거인이라 불려 마땅한 이름들이 있습니다. 이 책의 저자께서는 다소 뜻밖에도, 거의 백 오십 년도 넘은 역사의 먼 뿌리까지 더듬어 간 후, 이 현실정치인의 정신적 연원을 캐려 들더군요. 우리도 다양한 소스를 통해 지식을 갖춰 알듯, 동군에 패배한 후 근 삼백 년에 가까운 세월을 절치부심, 와신상담해 온 조슈, 사쓰마 등지의 오랜 정치 전통과 고유한 정서가 있었고, 그들이 일종의 캠페인과 정변을 통해 명치유신을 이끌었긴 했습니다. 이 사건은 일본역사뿐 아니라 세계사에 유례가 없을 만큼 단기간에 제도의 혁신과 교체가 이뤄진 성공사례라서, 그 이름의 근원이 된 주 문왕의 개혁이나 선정(삼경에 나오는 대로라면)보다 이 명치유신의 존재가 더 유명할 정도입니다.
저자는 저 명치유신이라는 지나간 역사의 토대 위에서 이 "야심"찬 정치인의 행태와 철학을 분석하고 있습니다. 저자의 관점에 동의할 수도, 반대로 거부감을 드러낼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일본 근현대사에 대해 흥미로운 지식 여러 줄기를 배울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정도의 단단한 개인적 기반을 여튼 갖춘 정치를 해 나가는 정치인이기 때문에, 웬만해선 그 전도가 쉽사리 방해 받기 어렵겠다는 점은 확실히 캐치할 수 있더군요. 관점이나 가치지향보다는, 객관적 분석과 냉철한 현실 파악의 방법론이 돋보이는 독서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