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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의 비밀 - 숨겨진 숫자의 비밀을 찾아서
마리안 프라이베르거.레이첼 토머스 지음, 이경희 외 옮김 / 한솔아카데미 / 2017년 4월
평점 :
절판
분명 우리의 손으로 만들어 놓고도 그 실체가 무엇인지, 어떻게 이런 고안과 발명이 가능했는지 궁금하거나 의아한 분야가 있습니다. 이를테면 "숫자, 수학" 같은 건데요. 외계의 우월한 관찰자나 더 나은 문명의 담지자가 아닌, 바로 우리 인류의 조상들이 생존을 위한 노력 끝에 얻어낸 기술과 지혜의 산물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는 신비와 경이의 눈으로 이를 지켜 봅니다. 저자들은 이를 "무에서 유를 만들어낸" 놀라운 업적 정도로까지 격상하는데, 물론 순수한 창조의 레벨이 아닌 줄이야 모두가 알고 있지만, 나날의 생존에 급급한 다른 피조물들과 인간의 지위를 결정적으로 차별짓는, 놀라운 징표와 기호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숫자라는 기호는 그 속에 특별한 비의가 숨어 있는 게 아니지만(그렇다고 믿은 학파가 아주 먼 과거 이를 가장 잘 다뤘던 이들 중심으로 실제 형성되었었고, 아직도 일부 종족은 자신들의 기호체계 전체에 이를 확산시켜 밀교 비슷한 신앙을 유지합니다), 중등교육이 세계적으로 보편화한 현대에 들어서도 이 기호는 여전히 많은 이들의 손쉬운 접근을 거부합니다. 물론 기호의 초급 단계에서야 그 이해가 어렵지 않지만, 기호가 모이고 모여 고차원의 지식을 표현하고부터는 더 이상 지사(指事)의 기능에 그치지 않기 때문에, 세계(추상적일망정)에 대한 정밀한 이해를 깨치지 못한 두뇌로서는 기호 자체가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 숫자나 수학은 일상의 사소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탄생했습니다. 예를 들어 이 책의 제5과 "타일 붙이기"를 보면, 똑같은 형태로 평면을 덮어 나가기를 원하는(실용적 욕구일수도 있고 미적 동기일 수도 있습니다) 사람들의 여러 차례 시도 끝에, 왜 어떤 도형(정다면체)로는 이것이 가능하고, 어떤 도형으로는 불가능한지 분명히 알 수 없는 일이 잦았죠. 본인이 못 하면 다른 누구도 할 수 없는 건지, 더 똑똑한(혹은 경험이 많은) 이들의 손에 의해 해결이 가능한 지조차 알 수 없는 상황에서, "해결가능성"과 "증명"의 문제가 제기되었습니다.
실제로 우리 나라의 수리 논술 평가에서, 이처럼 일상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상황을 두고(대략의 답도 대개 가르쳐 주면서) 학생들에게 왜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지 자신의 의견을 써 보라는 문제를 내곤 합니다. 이 책은 그런 문제만 받아들면 막막해지는 이들에게, 문제의 해결을 어디서부터 잡고 시작해야 할지 중요한 시사점을 가르쳐 줍니다. 즉, "내 집에 내가 타일을 붙인다고 생각하고, 내 집을 아름답게 꾸미기 위해 최대한 지혜를 짜 내어 보라"는 거죠. 그것이 어떻게 보면 수학적 사고의 첫걸음입니다. 숫자나 수학은 거칠고 마구잡이인 세상에 최소한의 질서를 부여하기 위한, 인간들의 필사적인 노력인지도 모릅니다. 질서가 혹 없다면, 질서를 만들어 내어야 직성이 풀리는, 선하고 지혜로운 인간 본성의 일부가 작동하는 증거이지요. 이 덕분에 우리는 인류 문명의 밝은 장래를 확신할 수 있습니다.
e는 2.7182... 로 전개되는, 분수로 표현할 수 없는 어떤 실숫값입니다. 이 책에도 잘 나와 있듯, 이 수는 베르누이의 표현에 따르면 "자기 자신을 닮아 가는" 아름다운 나선을 그리며 회전하는 도형의 기본 구조를 알려주기까지 하죠. 하지만 e의 근원을 알고 보면, 적당한 이율로 기간을 무한히 잡아 빌려 준 돈이, 나중(무한이니까 나중이란 말이 꽤 모호해집니다만)에 얼마가 되어 돌아올지 계산하는 과정에서 나온 숫자에 불과합니다. "자신을 무한히 닮는" 다른 모든 도형이나 구조의 원형이 되었다고 할 수 있는 이 e의 신비함에 대해, 사실 우리 모두는 충분히 매혹될 만합니다. 우리는 매혹될 자유가 있고, e에게는 그럴 자격이 있습니다. 심지어 이 매혹은 유익하기까지 한 게, 전혀 숫자나 수학에 대해 흥미와 관심을 못 갖던 이들(특히 학생들)에게 여튼 최초 접근 단계의 흥미를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죠.
"이 안에는 아무 신비도 없다. 다만 쓸모가 많고 오류가 없을 뿐이다." 하지만 고작 그런 이유만으로는 아무도 수학에 달려 들지 않고, 뛰어난 지성이 모여들어 불후의 업적을 남기지도 않았을 겁니다. 수학은 그저 그 모습 그대로인데 괜히 어리석은, 감정에 사로잡힌 인간들이 과대 의미를 부여하는지, 아니면 정말 기술적 지식 외에 모든 번민과 고뇌를 한 큐에 해결해 줄 궁극의 진리가 숨어 있는지, 아직은 그 여부조차 알 수 없습니다. 진리가 무엇인지 몰라서 괴로운 게 아니라, 그런 게 과연 있는지조차 알 수 없다는 게 사람을 답답하게 만드는 거죠.
이 책 저자들도, 숫자(혹은 수학)에 숫자 이상의 무엇이 숨겨져 있는지, 아니면 그저 정밀한 체계의 일환으로 파악해야 하는지는 딱부러진 답을 내어 놓지 않습니다. 물론 인간인 이상 저자들도 몰라서 말 못한다는 점은 우리 독자들도 다 알지만, "그래도 독자 여러분이 작은 지혜라도 보태어, 이 오래된 탐구의 과정에 마침내 끝을 보려는 노력에 동참하면 어떨지?" 라며 은근히 유혹하는 중임은 눈치챌 수 있습니다. 이런 건전한 의문과 동기가 사람의 마음 속에 자연히 생겨, 나도 행복하고 이웃도 풍요로이 만드는 쪽으로 작용했으면 참으로 바람직하겠습니다. 공학과 실용과는 아무 관계 없어 보이는 "아름다움"이, 알고 보면 모든 발전의 근본 이유가 되었다는 사실은 역설이자 경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