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로 떠나는 월가의 영웅 - 13년간 주식으로 단 한 해도 손실을 본 적이 없는 피터린치 투자, 2017 최신개정판
피터 린치.존 로스차일드 지음, 이건 옮김 / 국일증권경제연구소 / 2017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성장주 중심의 가치 투자"란 모든 투자자가 유념해야 할 교과서 같은 원칙입니다. 하지만 적어도 한국 증시에서 이 원칙을 금과옥조처럼 준수하며 실행에 옮기는 분들은 극히 찾아보기 힘든데요. 여러 이유가 있겠습니다만 아마도 시장이 원칙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든가(혹은 그렇다고 믿는 분들이 많다든가), 혹은 많은 이들이 그렇게 느긋한 분석을 한 후 투자하는 게 특히 한국의 실정에 잘 안 맞는 부분이 많다든가(급한 민족성), 정작 가치 투자를 하려니 해당 주식이 너무 고가로 형성되었다든가, "흙 속에 숨은 진주" 같은 가치주를 알아 보기가 너무 힘들다든가, 여러 이유가 있을 겁니다.

한국의 현실이 이런 데에는 애널리스트, 투자 전문가들의 잘못도 적지 않습니다. 분석과 예측 능력이 떨어진다든가, 정확한 정보를 알면서도 어떤 세력의 의도대로 움직이다든가, 시장을 면밀히 성실히 분석해서 유용한 틈새 정보를 생산, 제공하는 본분에 충실 못하고 남들(일반 투자자들) 다 하는 이야기만 내놓는다든가 말이죠. 반면 외국의 전문 방송을 보면 원칙에 어긋나지 않으면서도 꽤 정확히 시황을 내다보는 진단이 많습니다. 물론 아무리 정밀하고 건전한 예측이라 해도 일단 발설이 된 후엔 시황 형성의 작은 요인으로라도 작용하기 때문에 역시 엇나갈 수 있습니다만, 여튼 이런 작은 노력이 모이고 모여 시장이 원칙대로 나아가는 데 기여를 합니다. 반면 한국의 경우 불건전한 정보에 따라 개미들이 움직이고, 또 매번 "상투를 잡"다 보니 점점 더 불신 풍조가 확산되고, 잘못된 원칙에의 의존도가 높아지는 거죠.

이런 의미에서 이런 고전이 갖는 의의는 큽니다. 그새 런던 증시의 룰이 근원적으로 바뀌었다든가, 저축은행과 투자은행의 장벽이 사라지고 (그 부작용인지) 큰 파동의 시장 폭락이 발생했다든가, 중국 증시가 시장의 덩치 큰 멤버로 자리를 잡아 간다든가 하는, 상전벽해격의 변화가 일어났습니다만, 이상하게도(이상한 거죠) 투자의 근본 원칙, 룰은 변함이 없는 듯합니다. "크게 바뀐 바는 없다"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정석에 더욱 충실할 필요가 있다든지, 정석을 고지식하게 지킨 이들이 더 큰 재미를 보았다든지 하는 말들이 더 설득력을 가집니다. "단타 해서 그래도 꽤 재미를 봤어요!" 도박과도 같습니다. 도박도 그럴 때가 있어서, 초짜들에게 야 나는 알고 봤더니 재능과 감이 있었어! 같은 쾌감을 줄 때가 있습니다. 이런 이들이 그나마 푼돈만 따서 더 이상의 모험을 못 한 채(기분 내느라 다 써 버림) 판에서 물러났다면 그나마 다행인데, 그게 아니라서 결국은 탈탈 털린 후에야 하우스를 떠나게 됩니다.

잘나가던 펀드 매니저가 하루아침에 가진 돈을 다 날리고 고객들에게 쫓겨다니는 예는 픽션보다 차라리 현실에서 더 비일비재합니다. 말 안 듣는(혹은 더 이상 줄 대어 봐야 가망이 안 보이는) 고객을 현실에서 (고의로) 혼 내 준 후, 다시 이용 가치가 생기면 재미를 보게 해 주는 자유자재의 수완을 가진 천재 매니저는 말하자면 더글라스 케네디의 싸구려 펄프 픽션에나 나오는 존재입니다. 현실에서는 그런 마법사가 존재하지 않고, (워런 버핏의 책을 읽은 분들은 알겠지만) 회사를 현장에서 꼼꼼히 실사하고 자신이 세워 둔 원칙에만 곧이곧대로 충실한, 고지식한(통념과는 정반대인) 투자가가 결국 승리자입니다. 물론 시황의 급변에 따라 주도면밀하게 움직일 필요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큰 변수도 한국 같은불건전한 시장에서나 자주 발생하는 거고, 미국처럼 (그나마) 건전한 십장에선 뜨내기들이 마구 설레어할 만한 난리통이 잘 벌어지지 않습니다.

피터 린치는 "상위 3~10% 정도의 투자자들이 성공한다"고 말합니다. 이 말은 본인 자신(무려, 인류 역사상 최고의 투자자로 평가받는 인물)도, 그리 지능이 남달리 빼어나다든가 하는 유형은 아님을 스스로 말하는 셈입니다. 마치 낚시와도 비슷한 면이 있어서, 예측(똑똑한 이들의 확신에 한해서)대로 안 된다고 혼자 급해져서 마구 지르는 식으로 나서서는 안 된다고 합니다. 린치의 말을 책에서 인용하면, "너무 똑똑한 이들은, 자신이 세워 놓은 완성도 높은 모형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실물 시장의 뜬금없는 흐름에 대해 무시하고 넘어가기 쉽다."라는 겁니다.

사실, 솔직히 말하면 진짜 똑똑한 이들은 자신의 실수도 "소름끼치는 냉혹함"으로 냉정히 분석하고, 같은 실수를 두 번 되풀이하지 않습니다. 이거는 제 생각에 타고난 머리보다는 성격 요인이라든가, 그리 급하게 나대어야 할 조급함이 없는 품성(여유 있게 자라난 이들이 이렇습니다)이고, IQ 인자와는 직접 관계가 없습니다. 다만, 머리가 빼어난 이들이 자기 도취에 빠지기 쉽고(기분이 좋아지거든요), 철석같이 믿었던 tool이 무너지면 (어차피 가진 게 없이 남의 말에 부화뇌동하는 이들과 달리) 회복하기가 더 힘듭니다. 똑똑하고 잘나가는 사람들이 (잃을 게 많기 때문에) 회복 탄력성이 더 떨어집니다.

한창 핫한 종목에 몰려드는 행태야말로 (저자 린치의 표현을 빌리면) 쪽박 차기 딱 좋은 바보짓입니다. 이거는 "남들 말에 솔깃하면 무조건 망한다" 같은, 어차피 투자에 들일 돈도 없는 처지라서 "모든 포도가 신포도"라고 우기는 빈털털이의 태도와는 틀립니다. 저자의 말은, 가치에 집중하여 남들이 채 못 보고 넘어간 가치주에 투자하라는 소리지, 이미 한물 간 종목이고 단지 요란한 입소문만 남은 곳에 아깝게 돈을 쏟아붓지 말라는 소리입니다. 바꿔 말하면, 소문은 안 났어도 (예컨대 이런 책에서 가르치는) 원칙에 딱 들어맞는, 교과서적인 종목이 눈에 띄면 주저없이 "사라"는 뜻입니다. 고기도 먹어 본 사람이 먹는다고, 이런 챈스가 나타나도 생전 뭘 해 본 구력이 없으면 손이 안 나갑니다. 남들이 우우 거려야 비로소 따라 나서는 사람은, 예컨대 이 책에서 말하는 "싸구려 카펫" 생산 업체에다 몰빵하다 망하게 마련입니다.

사실 너무 투자 자체에만 몰입(주식가격의 등락)하는 분들은, 정작 이 회사가 얼마나 알찬 배당을, 신의 있게 행하는지에 대해 눈을 감기도 합니다. 그러나 주주가 주식을 갖는 이유는, 회사의 주인으로서 마땅히 받아야 할 투자의 대가를 받아내는 데에 있습니다. 주주는, 객(客)에 불과한 채권자가 아니니만치, 당연히 회사의 수익을 정당히 챙길 권리가 있습니다(물론 채권자는 여러 경우에 우선변제권을 가집니다). 이 책의 한 챕터에도 잘 진술되었듯, 심지어 록펠러(라키펠러) 같은 이도 "가장 행복한 순간은 배당 받는 순간"이라고 고백했던 적 있습니다. 배당은 대개는 고액이고, 채권자가 아무리 고리로 돈을 빌려줬어도 못 받아낼 짭짤한 수익입니다. 문제는 이 책에서 누누이 강조하는 가치주, 성장주의 경우, 주주들이 너무 잦은 배당을 요구하면 회사가 크지를 못한다는 거죠. 이 문제는 투자자의 성향에 따라 다 달리 볼 일입니다. 린치 본인도, "어떤 상황에서도 배당을 충직히 실시할 회사를 따로 찾아 둘 필요가 있다"고 합니다. 단타 매매에만 몰두하는 뜨내기들에게는 이게 다 꿈같은 주문입니다.

비록 개정판이지만 이 책이 오래된 고전이다 보니 "파생상품, 공매도" 등 비교적 현대적 패턴과 추세에 대해서는 깊이 다루지 않습니다. 그런데, derivative에 몰입해서 그저 최신현황만 좇아대는 투자자들 중, 아무리 팁과 요령에 빠삭해도 꼭 망하는 분들에게 부족한 게, 바로 이런 (고리타분해 보이는) 책에서 가르치는 원칙의 숙지, 납득, 내면화입니다. 그런 이들도 스킬은 남 못지 않습니다. 거듭 말하지만 그들에게 부족한 바 2%가 바로, 이런 "기본에의 충실"입니다. 투자는 머리가 아니라, 어찌 보면 모럴과 끈기가 비결인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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