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탄의 도구들 - 1만 시간의 법칙을 깬 거인들의 61가지 전략
팀 페리스 지음, 박선령 외 옮김 / 토네이도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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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해야 내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하고, 주어진 시간을 낭비 없이 사용하며, 정신의 활력, 감정의 쾌감을 최고도로 유지할 수 있을까? 이는 반드시 주어진 과업의 완성도만 높이기 위해 염두에 둬야 할 과제가 아니라, 어찌 보면 내 자신이 그저 매 순간 행복해지기 위해서도 달성해야 할 목표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내 자신이 지금까지 겪어 온 주관적 경험에서만 참고 자료, 벤치 마킹 대상을 추출해서는 곤란하겠으며, 가능한 한 시야를 폭 넓게 잡은 후 배울 수 있는 모든 사례로부터 교훈을 삼아야 하겠습니다.

영어권에서는 뚜렷한 업적을 남긴 이들이라든가, 타인에게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꼭 좋은 의미에서만은 아닌) 굵직한 존재감을 남기는 "거인"들을 두고 "타이탄"이라고 흔히 부릅니다. 유럽권 신화에 흔히 등장하는 "우리보다 앞선 시대의 거인들" 운운할 때 대표로 불리는 종족들이 "티탄"들이죠. "거인들이 지상을 활보하던 때에 비하면 우리들의 체격이나 기량, 족적은 많이도 위축되었다" 같은 표현은 여러 고전 저자들이 흔히 쓰기도 합니다. 이럴 때의 "타이탄"은 분명 긍정적인 맥락이며, 우리 도양권에서 "성현, 군자"라고 할 때와도 비슷합니다. 이 책 역시, "왜 그들은 큰 업적을 남기고 뭇 대중에게 존경을 받지만, 우리들은 그렇지 못한가?" 같은 반성 혹은 모범의 지표로 삼기 위해, 많은 거물들을 인터뷰하고 저자만의 강렬한 영감, 분석의 결과를 잘 정리해 놓은 성격입니다. 목적은 뭐겠습니까? "좀 보고, 배우고, 따라해 보다가, 나만의 개성 있는 길도 함께 탐색해 보자." 정도겠지요.

영미권 책에서 항상 눈에 띄는 건, 일류 저자일수록 인터뷰 대상을 직접 만나고, 저자 자신이 궁금했던 바를 집요하게 물어 본 후, 비록 말은 인터뷰의 입에서 나오는 워딩이지만, 교훈만큼은 저자(인터뷰어)의 관점에서 철저히 뽑아낸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저자들의 기색을 살피면, 내가 이 정도의 거물들을 만나, 이만큼 생생한 증언을, 이 정도 분량으로 많이 거둬내 정리했다 같은 자부심이 가득합니다. 한국에서는 이런 기획도 드물고 시도 자체가 잘 없죠. 야심 있는 저자도 없고, 자기 책에서야 자기 말을 하려 들지 남의 말을 싣거나 옮기면 뭔가 없어 보인다는 풍조가 지배적이며, 기본적으로는 남의 말 자체를 잘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묻지도 않았는데 자기 충고를 들려 주겠다며 열을 내는 어처구니없는 착각에 빠지기도 합니다.

"타이탄의 도구들"은, 일단 "타이탄"들의 생생한 체험과 열정이 배어 있는 "대답, 증언들"이며, 그 대답들은 정말 인터뷰이 자신들이 생각하는 "성공에의 비결에 가까운 습관, 원칙"에 대한 것들입니다. 여기에, 저자의 객관적인 분석, 비평이 담겼으니 독자 입장에선 검증 장치랄까 메타적 프레임까지 안전 장치 삼아 주어진 셈입니다. 사실 이런 책에선(또, 특히 이 책에선) 저자가 치는 소스와 양념, 드레싱이 더 재미있습니다. 물론 요리의 본체인 육질은 "그 타이탄들이 제공하는 생생함, 선도, 개성"이겠고 말입니다. 모든 인터뷰나 증언이, 팀 페리스 본인이 직접 청취, 기록, 정리한 건 아니고, 제3의 소스를 거쳐 취합한 것들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근육 못지 않게 뇌마저 섹시하다는 평가를 여성들로부터 듣곤 합니다. 조시 웨이츠킨(이 책에서 여러 군데에 등장합니다)는 이름난 체스 챔피언이었지만, 나중에는 태극권까지 섭렵하여 일인자에 오른 특이한 경력을 지닌 인물입니다. "가장 독창적인 생각을 가장 독창적인 시간대에 떠올린다(p110)"는 습관은, 자신의 영역에서 자신만이 발휘할 수 있는 선도 높은 창의성을, 우연히 찾아왔다 구름처럼 떠나 보내지 않고 영원히 자기 역량으로 간직할 수 있게 돕는 중요한 "도구"입니다.

저자가 아무래도 작가다 보니 세계인들로부터 사랑받는 이야기꾼의 비결이, 아마도 본인부터가 궁금했을 만합니다. 이 책에 처음 나오는 말은 아니지만, 코엘료는 이런 명언으로도 유명하죠. "서점에 나온 모든 책은 단 네 가지 얘기만을 담고 있다.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 세 사람의 사랑 이야기, 권력 투쟁, 그리고 여행." 인간사가 이처럼 네 마디 키워드로 요약될 뿐이라면 참 허탈하지만, "타이탄"은 그런 뻔한 인간사의 요체를 꿰뚫어 보고 상업적으로 활용할 뿐 아니라(?), 그런 비결을 결국은 다른 이에게 들려 주고 그 허망하고 빤한 실체를 함께 직시하자고 권하기까지 합니다. 그래서 그가 거인이라는 거죠. 반면, 우리처럼 작은 일상인들은 이처럼 거인의 충고까지 들었음에도 불구, 결국은 빈약한 키워드의 새장에서 못 벗어나고 "일상, 정상"의 틀에 자신을 길들일 뿐 아니라, 속보이는 자기기만까지 즐깁니다. 이런 책을 읽는 보람이랄까 이유는, 타이탄의 "성공" 도구로 나 자신의 틀을 깨 부순 후 새로운 트랙, 필드를 마련하는 데에 있겠건만 말이죠. (그 외에도 소설가 알랭 드 보통[미국 저자로서는 떠올리기 쉽지 않았을 텐데요], 말콤 글래드웰[자계서의 거장이니]) 등의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영화 좋아하시는 분들은 황당한 B급 저예산 상상의 대명사인 로버트 로드리게스에 대한 여러 분석과 말, 말, 말이 재미있을 법합니다. 영화 <아이언맨>에 보면 악당이 연구진을 다그치면서 "토니 스타크는 아무 자원도 없이(from scratch) 수트를 만들었어!"라고 하자, "저는 토니 스타크가 아닌걸요."라고 대답하는 장면이 있죠. 이 책에도 로드리게스 감독(저자는 이미 잘 안다는 친근감의 표현, 혹은 독자 당신들도 이 타이탄들을 지인처럼 참고하고 가까이하라는 뜻으로 퍼스트네임으로 내내 부릅니다)은, 예산도 없고 가용 자원도 없어서 그냥 키우던 가축, 애완동물을 잔뜩 자기 영화에 등장시킨(대신, 할 일은 창의적으로 마련한) 게 의외의 대히트를 친 사실을 상기시킵니다. 말 그대로, from scratch에서 업적을 이룬 창의적인 타이탄의 좋은 예입니다.

비트겐슈타인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내가 사용하는 언어의 한계가 내가 사는 세상의 한계를 규정한다." 아무리 천재였다지만 그런 그라고 해서 없는 말을 마구 만들어내거나 억지를 부리는 식으로 "자기 세상의 한계"를 넓히지는 않았을 겁니다. 남들은 그저 무심히 갖고 놀거나(그냥 노는 데 그침), 혹은 아깝게 낭비할 뿐인 도구를 두고서도, "타이탄"들은 자신만의 의미를 부여하고, 혹은 전 우주(다름 아닌 자신의 정신세계인데, 이는 누구에게나 공평히 주어져 있죠)를 그 안에 밀도 있게 채워 넣습니다. 이래서 그저 평범한 일상의 도구일 뿐인 게, 타이탄의 손에 들어가면 "타이탄의 도구"가 되는 겁니다. 책에 재인용된, <스타 워즈> 캐릭터 요다의 말엔 이런 게 있죠. "두려움을 극복하는 방법은 그에 이름을 붙이는 것이다." 꼭 두려움에 한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일상의 범속함과 질식할 듯한 지겨움을 이겨내려면, 그 흔한 일상의 풍경에 이름을 붙이고 이를 "타이탄의 도구"로 재활용, 격상시키는 겁니다. 아마도 모든 창조, 시작, 혁신의 단초가 이러했지 않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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