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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로 읽는다 한눈에 꿰뚫는 전쟁사도감 ㅣ 지도로 읽는다
조 지무쇼 지음, 안정미 옮김 / 이다미디어 / 2017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안타까운
일이지만 인류 역사의 가장 결정적인 고비는 지난 과거만 돌이켜볼 때 대부분 전쟁을 통해 맞이한 게 사실입니다. 평생을 전쟁터에서
잔뼈가 굵은 명장들도 "가장 비싼 비즈니스가 전쟁이며, 전쟁은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가장 무익하고 무의미한 야만"이라며 입을
모읍니다. 앞으로 교육과 계몽을 통해 인간 정신이 더욱 순화되면 분명 시스템적으로 더 나은 해결책을 찾고, 또 그런 평화적인
수단에 의거해서 모든 문제를 풀어나가야 하겠고, 어쩌면 과거의 어리석음을 더 이상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전쟁사는 치열한 연구
대상이 되어야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전쟁사는
꼭 사관학교나 기타 체계적 무력행사를 본분으로 삼는 군대, 교전단체에서만 연구하는 건 아니고, 글로벌 시장에서 한 치의
영역이라도 더 개척하려 드는 기업 경영자라든가 외교무대에서 총성없는 전쟁을 벌이는 외교관들도 즐겨 탐구하는 테마입니다. 물론 우리
평범한 독자들도, 생사를 건 결전에서 교전 당사자 어느 쪽이 어느 시점에서 묘수를 두었다거나, 혹은 반대로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러 대국(大局)의 향방이 바뀌었는지 큰 관심을 갖고 파고드는 테마이기도 합니다. 이런 주제를 다룬 책은 무엇보다 깔끔한 지도,
그 중에서도 예리하고 날카로운 편집이 이뤄진 전황도의 수록이 필수 미덕입니다. 이 책에 실린 지도는 한 폭 한 폭이 다 참신하고
새로운 도구라곤 할 수 없어도, 특히 초심자들에게 광범위한 시야를 제공하는, 요령 있는 디자인이 돋보입니다.

책
제목이 "도감"이긴 해도 텍스트의 비중이 적지 않습니다. 인류 역사의 거대 방향을 가른 굵직굵직한 전쟁 33건을 선정하여,
대체로 중립적이긴 하나 저자의 관점이 어느 정도는 반영된 설명이 베풀어진 후, 관련 지도 네다섯 컷(모두 천연색도입니다)과 삽화,
자료 등의 컬러 사진 몇 점이 함께 실려 있습니다. 관점은 대개 중립적이고 건조하며, 분위기를 경쾌하게 이끌어가려는 듯 약간의
장난스런 표현이 가미되었지만 초보자들이 접하기에는 무난한 편입니다.
칸나에의
전투, 이후의 자마의 결전 등은 고대 지중해의 패권을 놓고 도시국가 vs 해양 세력의 결전에서 전자가 승리한 역사적
분기점입니다. 사실 저는 읽으면서 저자 특유의 "경쾌한 편집 태도(그래픽 도안 포함)" 이면에, 어떤... 뭐랄까 컴퓨터 게임
애호가들의 시선을 다소 의식한 듯한, 전황의 "포인트", 양 진영의 장점과 단점, 승리의 비결 분석 등등의 나열이 눈에
띄었습니다. 물론 전쟁사 지식을 요점만 추려 머리 속에 정리한다면 다양한 게임에 요긴히 응용할 수 있겠지만, 용도가 그런 쪽에만
한정되지는 않을 겁니다. 여태 깐깐하고 기품 있는 고급 텍스트 위주로 독서해 온 이들에게 이런 "실용적인" 편집이 큰 호감을 못
부를 수도 있지만, 반대로 한니발과 스키피오 두 명장의 역사적 대회전에 대해 전혀 선지식을 못 쌓은 독자들에게는 짧은 시간 안에
많은 지식을 섭취할 수 있는 매력적인 통로가 될 수도 있습니다.

십자군
전쟁에 대해선 "겉으로 내건 명분과 실제 목표가 따로 논 추악한 전쟁"이라는 현대적 관점을 대부분 수용한 서술입니다. 그러면서도
이슬람 진영 내부에 종족, 민족을 우선시한 불협화음이 존재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이는 라틴 인 위주의 십자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흔한 관점대로 "두 유일신교의 항쟁"이란 프레임으로만 분석하기엔 어려움이 따른다며 제법 날카로운 정리도
시도합니다. 이슬람과 기독교가 같은 아브라함 신조 계열임은 사실이지만, 두 종교가 "유대교"로부터 분리되어 나왔다는 서술은 자칫
오해를 부를 수도 있겠습니다.

몽골의
진출은 이론의 여지가 없는 세계사적 사건이고, 특히 그 대대적인 향방이 주로 군사적 팩터에 의존한 패턴이었으므로 당연히 이런
류의 책에서 비중 있게 다뤄져야 하고, 이 책도 그런 스탠스입니다. 명장, 명전술가가 여럿 등장한 국면이지만 특히 이 책은
수부타이 장군에 초점을 맞춰 부각합니다. 발슈타트(직전 명칭은 레그니차) 전투 서술에서 저자(들)은 이 이름이 "시체의 땅"이란
어원을 가짐을 특히 지도 중에서 언급합니다. 발슈타트 전투(뿐 아니라 몽골이 대승을 거둔 어느 전역에서라도) 그 참상을 떠올릴 때
그런 이름이 붙고도 남을 이유가 물론 있겠습니다만, 독일어를 좀 하시는 분들은 도대체 Wahl과 Statt 어느 부분에
"시체"와 "땅"이란 뜻이 깃들었는지 의아해할 수 있습니다. 혹시 일본 호사가들 사이에 떠도는 오래된 틀린 속설이 아닐지 의심하는
분도 봤는데요.
결론적으로 이 정보는
틀린 게 아닙니다. 게르만 고어(古語) Wa(a)l에는 "전쟁, 시체" 등의 뜻이 담겨 있고, 저 Wahl은 현대어처럼 "선거"
같은 뜻이 아니라 모습과 뜻이 변한 과거의 잔재입니다. Statt를 놓고 국내 인터넷 어느 정보는 "도시"라고 써 놓았던데,
Staat: 국가
Stadt: 도시
Statt: (명사로 쓰일 때) 지역(문어투)
이렇게 다 쓰임이 다릅니다. 발슈타트라고 할 때는 위 중 세번째에 해당함은 더 강조할 필요도 없겠습니다.
하나
덧붙일 건, 최근의 독어학자들 사이에선 고어근 Wal에 대해 과연 저런 뜻을 지녔었는지 더 이상 완전한 합의가 이뤄지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한때 "프로이센" 국명을 놓고도 v(러시아어에서 "~로" 등 방향을 지시하는 전치사. "브나로드" 등의
예처럼)+러시아 라는 설이 유력했는데("러시아 쪽에 있는 나라", 이게 사실이라면 참 맥빠지는 어원이죠) 요즘은 이 설이 완전히
폐기되고 고 부족 "프루사"의 이름에서 왔다는 설이 유력합니다. 벨지움, 벨기에의 어원인 "벨기카"라든가, 네덜란드의 옛 명칭
"바타비아" 등도 다 그 땅에 살던 선주민 부족명에서 온 것처럼 말입니다.

그냥
저 개인적으로 요즘 미국 독립전쟁사에 관심이 좀 있는 편인데요, 이 책은 식민지 초기 13주의 형세를 잘 잡아낸 지도를 싣고
있어서 보기에 반가웠습니다. 바로 뒤의 챕터에 실린 남북 전쟁 관련 지도도, 어느 대목에서 전쟁의 성패가 갈렸는지 인포그래픽
테크닉으로 깔끔히 잡아낸 설명이 돋보였습니다.

일본인들로서도 별로 자랑스럽지 않을, 뤼순 일대에서 육군을 지휘한 노기 마레스케의 엄청난 삽질이 특히 유명한 러일 전쟁의 요약 설명이 잘 담겨진 편입니다.
책은
전체 5부로 이뤄져 있는데, 제5부는 2차대전 종전 후의 사건들(총 8건)로만 따로 엮었다는 점이 특이합니다. 이 중 한 꼭지는
911테러, 한 꼭지는 (비판적 의도에서) 이라크 전쟁에 할애했습니다. 4부와 5부에 실린 유럽지도 대부분이 (아주 희미하게)
오데르-나이세 선 등 현대 국경도 표시하는데, 이는 메인 라인이 당대 국경, 은선이 현대 국경, 이런 식으로 과거와 현재를
대조시키려는 편집 의도로 보이므로 저는 오히려 평가를 해 주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