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강한 미국을 꿈꾸다 - 트럼프가 직접 쓴 아메리카 퍼스트를 위한 제언
도널드 트럼프 지음, 이은주 외 옮김 / 미래의창 / 2017년 1월
평점 :
품절


미국의 대통령이란 확실히, 전세계 시민 누구에게나 크건 작건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매우 중차대한 직위임은 분명합니다. 이런 사람이 과연 세계와 미국의 비전에 대해 무슨 생각을 갖는지 우리가 좀 알아 볼 필요는 있습니다. 가능하면 그가 단문성이 아닌 격정도 깃든 좀 긴 어조로 말할 때 더 눈여겨 볼 만한 좋은 단서가 많이 발견된다고 생각합니다. 말하는 사람이 그 나름대로 논리를 갖춘다고 생각하며 길게 말을 할 때, 웬만해서는 거짓말을 꾸며 내기가 좀 힘들겠기 때문입니다. 혹 서두와 결론이 어떤 효과를 노리고 거짓으로 치장한 수사라고 해도, 중간에 끼어든 소소한 논거의 어느 한 구석등에서는 반드시 진심이 드러나게 마련이죠. 아까 고소 건 때문에 낮에도 경찰을 좀 만나고 왔는데 둘이서 약간 즐거운 여담으로 빠질 때 수사관도 이 비슷한 기법을 쓴다고도 하더라고요.

이 책에는 재미있는(?) 호언장담성 진술이 많았습니다. 트럼프를 두고 사업가라고만 알지만(혹은 저질 리얼리티쇼의 코미디언이라든가) 이 책을 읽어 보니 누구보다 "선동"하는 재주가 빼어난 정치인 자질이 다분하다는 걸 알았습니다. 이런 책은 부분적으로 읽을 때는 다 맞는 말처럼 느껴지지만, 모든 사태는 전체적인 맥락 안에서 고찰할 필요가 있습니다.

"석유를 확보하라"에서 트럼프는 이란, 그리고 몇 년 전에 망한 가다피 독재 정권에 대해 몇 마디를 꺼냅니다. 이란과 미국은 이 책이 쓰여지고 난 후 케리 국무장관이 최종 담판을 보았는데, 이미 그 세부적인 내용은 이처럼 일찍이 알려지고 있었나 봅니다. 이 책 쓸 당시에는 아흐마디네자드가 아직 권좌에 있을 때라는 게 책 곳곳에서 드러납니다. 며칠 전에는 라프산자니(실용파, 개혁개방파)가 죽었는데, 양쪽에서 대화가 통할 만한 합리적이고 온건한 세력이 설 땅이 넓어져야지 그 반대로 가면 정말 곤란하죠. 여기서 트럼프는 중동 분쟁에 개입은 하되 반대파를 밀면서 석유 이권 개입을 보장받아야 한다는 조로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바로 이런 속셈 때문에 십여 년 전 조지 W 부시도 비판받았던 거고(그나마 그 사람은 이런 말을 대놓고 하지는 않았는데), 옳고 그름을 떠나서 현지 문제가 그리 단순하지 않다는 걸 모르는 소치가 아닌가 싶었습니다. 전략 비축유의 금지 해제 문제는 결국 결론에 있어선 오바마과 의견이 같다는 것도 의아했습니다.

중국에 대해서는 생각보다 강경한 태도더군요. 이 책은 중국 당국을 칭찬하는 듯 하면서 사실은 앞으로 중국에 대해 보다 "터프(이 책 원제이기도 합니다)"해질 걸 촉구하는 기조입니다. 중국에선 미 대선 전 이 트럼프가 당선될 걸 바라는 성명을 여러 번 냈었는데, 이 6년 전에 나온 책을 읽고도 같은 결론이 나왔을지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책은 기본적으로 읽고 상대(적)를 분석해야 한다는 이유에서, 중국 당국의 판단 능력에 좀 의심이 가기도 했고요. 독자로서 제가 내린 결론은, 현 오바마 행정부가 러시아를 주적으로 삼았다면, 이 트럼프는 명백하게 중국을 메인 타겟으로 삼지 않겠냐는 것입니다. 6년 전에 이 사람이 이런 생각을 가졌고, 책의 다른 부분에 나온 주장들을 거의 지금도 그대로 되풀이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사람이 어떤 기조로 외교를 펼 것인지는 그림이 빤히 보이는 듯합니다.

"상속세" 폐지는 이미 조지 W 부시 때부터 "우리는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재산을 물려줄 권리가 있습니다"란 멋진 말로 정책공약화한 이슈입니다. 당시 한시적으로 시행되다 지금 원위치되었는데, 이걸 트럼프는 다시 부활하겠다는 거죠. 오늘 취임식장에도 부인보다 더 부각된 이가 이반카였는데, 그로서는 이 아끼는 딸에게 자신이 일군 부동산 제국을 반드시 물려주고 싶을 겁니다. 왜 이미 세금은 물린 돈에 또 세금을 물리느냐가 강력한 논거인데, 사실 이건 트럼프가 처음 한 주장도 아니고 조지 W 부시가 원조도 아닙니다. 거의 백 년 전(적게 잡아도)부터 논쟁이 있었고, 이미 어느 정도는 결론이 난 문제죠.

이중 과세가 아니라, (죽은 사람한테 무슨 세금을 물립니까) 재산을 물려받는 상속자(아들, 배우자 등)에게 물리는 세금이니 최초 과세가 맞습니다. 기본 전제부터 잘못된 주장이고요. 우리가 부동산 양도소득세를 낼 때, 직전 보유자가 지불한 부분(취득 원가)은 무슨 면제를 받는다든가 하는 게 아닌 이치와 같습니다. 소득세나 상속세, 증여세는 부가가치세와는 다른 구조 다른 목적일 뿐입니다. 이 사람이 와튼 스쿨을 나왔다고는 하나 과연 실력으로 들어갔는지 의문이고, 이런 주장은 못 배운 사람들한테서나 나오는 소립니다. 상속세가 어제오늘 생긴 것도 아니고 수백 년 동안 게임의 룰이었는데 무슨 헛소린지. 근본 없는 졸부 티를 내는 거죠. 어떤 사람은 자칭 좌파라면서 상속세를 반대한다고도 하던데, 세금으로 낼 돈을 가져 본 적도 없는 주제에 무슨 정신분열 망상인지 기가 찰 노릇입니다.

오바마케어에 반대하는 이유는 기존 의료 관련 (보험업이라든가) 업종의 입지가 좁아지고, 여태 자영업으로 환자로부터 직불 체제를 취해 온 병원 등이 이제 새삼 국가 관리를 받는 식이면 당연히 반발이 클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서 만약 권위주의 정권 시절 억지로 이게 도입이 안 되었다면 아마 지금까지도 반대가 심해 못하고 있었을지 모릅니다. 무작정 민영화로 방치하기보다, 적절히 손을 봐서 점진적으로 공영성을 확대해 나가는 쪽으로 장기 과제 추진이 합당하리라 봅니다.

마지막 10장에서는 특정 언론사와 진행자들을 일일이 거론하며 자신이 받아온 냉대에 대해 아주 격정어린 태도로 성토하더군요. 특히 오바마 당시 대통령에 대해선 그가 모 파티석상(트럼프도 동석)에서 긴 시간을 들여 트럼프를 비꼰 걸 두고 원한이 크게 남은 것 같았습니다. 당치도 않은 출생문제를 두고 팩트를 날조해서 지가 먼저 시비를 걸었으니 감옥에 안 간 걸 다행으로 여겨야 맞겠는데도 말입니다.

이 책에서 하나 건질 게 있다면, 이 사람은 무식할망정 어쩄든 자기 주장에 별 변화도 안 주고 뭘 끈덕지게 밀고나가는 면은 있다는 겁니다. 일이 잘 안되면 크게 욕을 먹고 곤경에 빠질 건데, 그 생각은 안 하고 여튼 지 소신을 밀어붙이긴 합니다. 복잡한 수사를 안 붙이니 책임 소재도 아주 빤하게 드러날 텐데 그런 점에서 정직하긴 합니다. 밑바닥 최하층 실업자도 말이 오락가락 사기를 치는 게 흔히 보는 행태인데도 말이죠. 좌건 우건 정치인들은 빠져 나갈 구멍을 교활하게 마련하는 게 참 싫은데, 이 사람이 과연 앞으로 자기 말에 어떻게 책임을 질지,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 주겠다는데 그건 또 어떻게 될지, 최소한 연막 전술을 안 피우는 건 어느 나라 정치인이건 좀 배워야 하겠더군요. 지지자에게 떳떳하기 위해서라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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