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을 팝니다 - 미시마 유키오의 마지막 고백
미시마 유키오 지음, 김난주 옮김 / 예문아카이브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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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아름다움과 죽음 두 개의 강박에만 평생 시달리다 정직하거나 과시적이거나 둘 중 하나인 장엄한 자살로 한 생을 마무리한 그의 작품이 과연 맞나 싶을 만큼 코믹하고 재기 넘치는 소설입니다. 내용은 제목 그대로 목숨을 팔려고 내놓았으나 도무지 죽어지질 않는 불운한 남자가 결국 사무치게 생에의 열정을 회복한다는 줄거리더군요. 살려고 발버둥치는 추한 잉여 인생들의 수중에는 잘 들어오지 않는 돈이, 목숨을 매물로 제쳐 둔 27세의 니힐리스트에겐 손사래를 쳐도 자석처럼 빨려듭니다.

구매자(?)들도 돈을 건네면서 "곧 죽을 사람이 돈은 왜 챙기냐?"고 묻곤 하지만 그때마다 주인공 하니오는 매섭고 빈틈없는 답을 준비했다가 경멸처럼 내뱉곤 합니다. 이런 질문을 하지 않는 구매자들에게는 거꾸로 하니오가 정말로 궁금해져서 묻곤 하는데, 그럴 때는 이들이 "말이 되는" 대답을 이미 준비했더군요. 어처구니없는 부조리 속에서 치열하게 의미를 찾으려 드는 인물들의 발버둥이 해학적이면서 숙연한 느낌을 주는데, 간결하면서도 결국은 심각한 고뇌와 날선 회의를 숨긴 문장들이 과연 그의 솜씨구나 싶었습니다.

하니오는 히트작을 여러 건 만들어낸 젊고 유능한 카피라이터입니다. 더 이상 일을 안 배워도 독립이 가능할 프로급이지만 본인은 조직 안에 계속 머물고 싶어합니다. 일 잘 하는 사람은 자기 살림을 따로 꾸리고 싶고 천하에 돈안되는 군식구는 구차하게 자리를 보전하려 드는 게 광고회사뿐 아니라 모든 현대 조직의 역설(이른바 역선택)인데, 하니오는 그 나이에 맛볼 수 있는 성공의 절정에서 질병과도 같은 허무주의에 빠져 모든 의욕을 느닷 잃습니다. "모든 활자가 바퀴벌레처럼 바뀌어 보인다"가 그의 고백인데, 사실 이는 지극히 세속적으로 맞은 일종의 해탈과도 같습니다. 불운이라면 본인이 준비 안 된 상태에서 맞았기에 대체 뭔지를 모른다는 건데, 본질적으로 무의미한 삶의 비의가 한눈에 엄습해 왔으므로 미약한 존재는 필연의 해답으로 죽음을 찾을 수밖에 없습니다.

한 번의 자살이 실패로 끝났더라도 기회가 없는 건 아니지만 하니오는 객관적으로 아까운 생(젊은 나이에 주위에서 인정 받은 광고인)의 마감에 보다 어울리는 방식으로 죽음을 맞기를 결심합니다. 그게 바로 이 소설의 제목인 "제값 받고 목숨 팔기"인데요. 많은 이들은 이런 기괴한 광고를 두고 "청부살인의 청약" 정도로만 받아들이나 봅니다. 하니오는 그러나 보다 다양한 상황과 제의를 염두에 두고 펼친 계획이었고, 세상은 그의 이런 상상력에 충분히 부응하려는 듯 다양한 구매자를 그의 앞으로 보내 옵니다. 모두 다섯 건의 계약이 이뤄지는데, 미시마 유키오의 기발한 천재적 상상력을 우리 독자들이 충분히 즐기고 감탄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이 작품은 1968년, 그가 실제로 죽기 2년 전에 부분부분이 지어졌는데(플레이보이誌 일본판에 연재), 이로부터 한참 후 유행할 미국 고딕 호러, 코믹 판타지 장르 영화에서 애용하던 전개와 착상이 많이 보여 확실히 시대를 앞서간 천재의 솜씨라고 생각했습니다. 제 목숨을 팔겠다며 광고를 낸 모습도 웃기지만, 그런 목숨을 사겠다고 찾아온 군상들의 사연이란 해학을 넘어 경악을 안기는 작태와 사연이 깃들어 있습니다. 세번째 고객인 가오루 군의 흡혈귀 모친 에피소드는 특히 아직 뱀파이어 장르가 세계적으로 유행하기 한참 전이라 더욱 눈길이 갔는데요. 이런 소재에 어디까지나 국외자일 뿐인 일본인 작가가 이만큼이나 잘 소화해서 멋진 마무리까지(사랑하는 하니오를 위해 결국 대신 죽음) 이루는 걸 보고 과연 천재작가가 틀림없다고 여겨졌습니다.

A국(은혜를 갚는다 어쩐다로 봐서 틀림없는 미국이죠)와 B국의 첩보전에 휘말려 골치 아픈 분쟁을 손쉽게 해결하는 모습은, 다른 에피소드들에서 포레스트 검프나 바우돌리노처럼 운 좋게 해결의 대세에 올라탄 모습과는 달리 하니오 본인의 번득이는 재치에 전적으로 기인한 해결이라 더욱 놀랍습니다. "특별한 당근인 양 트릭을 썼지만 사실 평범한 당근으로도 왜 문제가 안 풀리겠는가?" 쉬운 문제를 골치아프게 생각하는 게 미국인들의 병통이라며 마치 백치의 우연한 지혜인 양 교훈화를 시도하지만 현자의 눈에만 진리의 지름길이 한 줄기 빛처럼 직통으로 들어오는 법입니다. 한 줄짜리 소화(笑話)에 모티브로 쓰이고 말기엔 너무 아까운, 창의적인 장치여서, 아마 모르긴 해도 이후 어느 탐정물 장르에건 뻔뻔스레 도용되지 않았을까 추측되더군요.

이처럼 명랑한(외견상) 피카레스크풍의 깔끔한 작품을 쓴 이가 이후 세계를 충격에 몰아넣은 자살을 선택한 게 전율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어쩌면 그는 처음부터 죽으려 든 게 아니라, 세상의 괴기한 사건과 음모의 줄기를 맨몸으로 접하고 그로부터 (자신의 재치와 능력에만 의지해서) 큰 돈을 벌어 보려 거대한 쇼무대를 설치한 것 아닐까 생각도 해 보았지만, 사실상 자살을 주 소재로 삼은 소설의 작가가 실제로 요란한 퍼포먼스 속에 죽음을 택해 버렸으니 그런 해석은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유능한 직원이 퇴직하면 거액의 전별금까지 챙겨 주고, 무능한 자가 버티려 들면 제발 좀 나가라고 책상을 뺏는 게 비정하지만 공정한 세상의 이치겠으며, 하니오 같은 재주꾼이 험한 세상과 정면대결하여 더 큰 실속을 챙기고, 무능한 현실도피자가 새해 벽두에도 분수에 넘는 요행을 품다 꿈이 망상으로만 끝나는 것도 예나 지금이나 미래나 변함이 없는 희화적인 풍속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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