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의 탄생 - 마음을 사로잡는 것들의 비밀
톰 밴더빌트 지음, 박준형 옮김 / 토네이도 / 2016년 12월
평점 :
절판


어렸을 때 정평 있는 영어 참고서 류에서 "There is no accounting for taste."라는 격언을 배운 기억이 나실 겁니다. 그 당시만 해도 머리로 수긍은 했지만 피부로 공감까지 했던 기억은 없는데, 지금은 우리 식으로 적절히 변형되어 "취향입니다. 존중해 주시죠 ", "개취" 같은 유행어 표현 속에 너른 지지를 얻는 중인 사리, 이치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설명이 안 되는 취향이 있다면 이는 배척되고 비난 받을 가능성이 있겠으나, 어차피 취향이란 설명이 불가능한 법이니 남의 영역을 건드리지 말고 넘어가 주거나, 아예 적극적인 존중을 보내자는 취지이겠습니다. 그런데 영어권에서 저 말이 코인될 무렵만 해도 취향(어느 분야든 간에)이 아주 넓은 스펙트럼을 지니는 형편은 아니었겠습니다.

오늘날은 "결정 장애"란 말이 널리 입에 오르내릴 만큼, 시장과 개인으로부터 쏟아져 나오는 컨텐츠와 상품, 서비스의 홍수 속에 대체 뭘 골라야 할지 현기증이 생기는 다양성의 시대입니다. 케이블 채널(혹은 IPTV) 번호를 일일이 외우며 무슨 기획에 특화된 방송인지를 의식, 리모콘을 눌러대는 시청자는 (기억력이 특별히 좋지 않고서야) 드물 것입니다. 개별 시청자가 자기 집 TV에 채널이 몇 개나 수신되는지도 모르는 이런 와중에, 모 방송사는 "1인 제작에 특화된 채널"을 내년 초에 개국한다고 합니다. 이미 공급되는 컨텐츠를 소화하기도 힘든 판에, 어떤 사람들은 아예 자신이 직접 방송을 만들겠다고 나선 지 오래이며, 이게 모바일 플랫폼이나 1인 방송 전용 인터넷 사이트(XX리X 등) 외에, 이제 방송국을 통해서도 송출된다는 뜻입니다.

사물인터넷, 빅데이터의 시대에 기업들은 이미 시대에 뒤떨어진 대량 생산, 대량 소비의 양식을 일찌감치 포기했습니다. 세부화한 개인, 개인, 개인들의 취향을 얼마나 정확히 잡아 트렌드화하느냐의 능력이 기업의 사활을 결정하고, 이에 따라 "그들은 왜 그걸 좋아하며, 앞으로는 무엇을 좋아하게 될 것인가?"의 "취향 설명(accounting for taste)"이, 그저 장난이나 몽상이나 소프트 SF의 소재 아닌, 초미의 현실 과제로 다가왔습니다. 최소한 몇 개 집단의 도드라진 취향 부각에 대해서는 제대로 설명을 해 낼 수 있어야, 기획 담당자가 자기 회사 안에서 살아남는 시대가 된 겁니다. "그 어려운 걸..."이 아니라, 그 정도는 해 내야 밥값은 한다고 평가 받는 판이죠.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이 책의 저자는 실로 어려운 과제에 너무도 담대한 도전을 시도한 것 같습니다. "대체 왜 저 사람을 저런 걸 좋아하며, 어떤 선호는 끝까지 유지되며, 어떤 건 오래 못 버티고 다른 걸로 대체될까?"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혹은 남을 대상으로 제기해 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평범한 사람들이라 해도 여러 두뇌가 중지를 모으면 현자 한 사람의 지혜보다 나을 때가 많은데요, 이 난제는 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래 누구나 한 번쯤은 진지하게 골몰해 보지 않은 이가 없을 만큼 잘 알려진 토픽입니다. 평범한 사람은 물론 내로라할 똑똑한 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뛰어난 직관으로 정확한 결과를 도출("누가 무엇을 좋아할 것이다" 혹은 "많은 이들에게 이게 대세로 통할 것이다")해서 떼돈을 번 사람(들)이 있었을망정, 취향의 경로와 알고리즘을 이론적으로 설명(accounting for)해 낸 이는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만약 있다면 인공 지능 혁명의 완성과 더불어 진정한 매트릭스의 시대가 도래할 겁니다). 당대 아무리 인류를 괴롭혀 온 난제라 해도 먼 미래 언젠가는 해명이 이뤄질 수 있겠지만, 이 문제만큼은 지금껏 그토록 많은 시도, 전방위적인 접근이 이뤄졌음에도 여전히 난공불락이기에, 많은 이들로부터 회의적인 전망만 얻고 있습니다. 여튼,  "이 어려운 걸", 재치있고 통통 튀는 감각의 저널리스트 톰 벤더빌트가 책 한 권으로 해명해 보겠다고 나선 거죠.

해결이 어려울 뿐 문제의 구조(최소한 겉으로 드러나기로는)가 매우 단순하기 때문에, 예컨대 "몬티 홀 프라블럼"처럼 누구나 한 번쯤은 풀어보겠다고 나설 수 있는 게 "취향"이라는 이슈입니다(그까짓것 나도 한 번 해 보지 뭐). 그래서, 비록 풀기가 어려울지언정, 이 문제 풀기를 시도하는 다양한 접근법들에 대해 시시콜콜히도 수다, 때로는 진지한 이론적 접근 들을 정리해 둔 이 책은, 정말 누구라도 쉽게 읽을 수 있습니다. "(저자처럼)그런 식으로 설명하는 게 타당할까?"라며 진지한 의문을 제기하는(그래서 매 장 매 문단에 피력된 주장에 대한 동의를 유보하는) 독자도 있을 수 있겠는데, 그렇다 쳐도 최소한 이 책이 어려워서 못 읽겠다는 독자는 아마 한 사람도 없을 겁니다. 정말 누구나, 한 번쯤은 골똘히 생각에 잠겨 봤을 문제와 (미완의) 풀이, 설명 등이 다양한 사례(잘 알려진 사례를 망라하여 제시한 후, 하나하나에 의미를 두어 가며 그저 "취향이 무엇이란 말인가 과연?"이란 질문 하나에 집요하게도 귀납해 가는 게 가장 큰 매력입니다)와 함께 제시되었기 때문에, 막히는 부분이 하나도 없이, 자기 취향 남 취향에 대해 어리둥절해한 경험이 한 번쯤은 있을 누구(이걸 안 해 본 사람이 과연 있겠습니까?)라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습니다.

저자는 치밀한 논리보다는 발랄한 감성으로, 무수한 사례를 들어 가며 "그런 적 있으시죠?"를 연발합니다. 이들 중 어떤 것은 서로 모순됩니다. 사례에 대한 저자의 설명 역시 앞에서는 이랬다가, 뒤에서는 다른 설명을 하며 모순을 빚는 대목이 한둘이 아닙니다. 간격이 서로 멀리나 떨어져 있다면 그새 잊어버렸나 보다 하고 이해를 하겠는데, 한 문단(패러그래프) 안에서 앞뒤가 안 맞는 구석조차 자주 눈에 띕니다. 일반적인 이론서가 이런 태도였다면 불만이 생겼겠지만, 도대체 다루는 주제가 "취향"이다 보니 오히려 진실된 설명처럼 느껴집니다(어차피 일관된 해명이 아직은 불가능한 대상에 대해 너무 정연한 해명이 이뤄져도, 뭔가 오류가 있었거나 실용성이 떨어지는 결과였을 겁니다). 당신은 대체 왜 쓰디쓴 맥주, 담배, 펑크 밴드의 미친 음악의 첫맛에 경악했으면서도 이후 서서히 중독되어 가는가? 반대로, 날카로운 첫 키스의 달콤함, 황홀함에 그처럼 정복되어 놓고서도, 왜 시간이 지난 후 그녀를 버리게 되었는가? 이처럼 취향이란 과연 단일한 주제, 대상이기나 한지가 의문스러울 만큼 갈피가 안 잡히는 녀석입니다. 저자 역시 해명을 완성했다며 오만한 쾌재를 부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저자가 별스럽고 유난스럽다 싶을 만큼 다각도로 파헤쳐 놓은 취향의 숨겨진 모습들을 감상하며, 최소한 내 자신의 취향이 무슨 빛깔인지에 대해서는 종전보다 선명한 감각으로 바라볼 수 있겠습니다. 먼 훗날 혹 이 난제에 대해 이론적 규명이라도 이뤄진다면, 아마 이 센스 있는 책 한 권에 대해 신세진 바가 클 것 같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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