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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에 관한 거의 모든 것 - 빅뱅부터 암흑 에너지까지, 우주를 이해하다
로베르토 트로타 지음, 이지연 옮김, 이충환 감수 / 교보문고(단행본) / 2015년 10월
평점 :
절판
우주는 광막한 공간입니다. 우리 태양계 주변의 우주가 어떤 모습이고 어떻게 전개되는지는 그간 많은 과학자들의 연구로 상당한 부분이 규명되었습니다만, 아직도 너무나 많은 비밀이 여전히 베일에 싸인 채 남아 있습니다. 이를 밝혀 내기 위해 전세계에서 최고의 두뇌들이 성실하고 치밀한 자세와 열의로 연구를 거듭하고 있으나, 그들이 애써 알아낸 성과들조차 너무도 난해하고 복잡한 내용이라서, 이를 일반인들이 쉽게 받아들이고 공감하거나 다른 이들에게 자신만의 언어로 가르쳐 주고 퍼뜨리기란 매우 힘든 형편이죠. 과학이 인간의 삶을 조건을 이만큼이나 바꿔 놓고, 보편 초중등 교육이 대중에게 무상으로 이뤄지는 지금에 이르러서도 말입니다.
저자는 우주를 연구하고 그 비의를 파헤치는 이름 높은 과학자이지만, 언제나 어린 학생들, 그리고 열성적인 대중과 격의 없이, 인터넷이나 기타 여러 매체를 통한 즐거운 대화를 시도하는 멋진 지성인입니다. 이 책은 서문부터 어려운 말 전혀 없이, 친근하게, 특히 과학에 대해 깊은 지식이 없거나 아직 낯설어하는 독자를 즐겁게 초대하는 듯 따뜻한 환영의 인사로 채워집니다. 어른들이 읽어도 물론 유익하지만, 막막하고 광활하며 끝도 없이 펼쳐진 우주에 대하여 막연한 동경을 품은 어린이들이, 아무 부담 없이 동화책처럼 읽어 나가면 딱이겠다 싶은 그런 책이에요.
우리 인간은 우주의 중심에 서서 모든 것을 자기 기준으로 판단할 자격이 있을까요? 아직 지식도 부족하고, 심지어 발을 디디고 사는 지구의 환경에조차 잘 적응 못하던 시절에도, 인간은 엄연히 우주의 한복판에 놓여, 태양과 달과 금성(베누스)과 화성(마르스)이 우리 주위를 돌며, 우리 인간의 장래 운명, 지난 과거 행적에 대한 평가와 예언, 심판을 한다고 믿었습니다. 신의 섭리에 복종하고 인간의 무력함을 인식하기는 하나, 모든 공간의 한복판에 자리하여 현상과 사건, 체험의 의미를 판단할 자격은 오롯이 인간에게 있다는 게 그들의 흔들리지 않는 믿음이었습니다.
인간들은 이런 생각에 바탕하여, 하늘에 수놓아진 별들을 (마음대로 상상대로) 이어붙여, 별자리를 설정하기도 하고 그 배경 설화, 전설을 창작하여 후대에 전하기도 했습니다. 이로써 인간은, 그저 무의미한 거대한 공간으로 인간의 의지를 짓누를 수도 있는 캄캄한 우주에 대해 자기 나름의 "질서와 희망"을 부여한 셈인데요. 과학자들은 전설이나 신화에 대해 전혀 관심 없을 것만 같아도, 고도로 발달한 천체 망원경으로 매일같이 우주를 들여다 보며 하는 일 역시 결국은 저런 고대인들의 작업, 노력과 크게 다를 바는 없습니다.
우리는 아직까지는, 가까운 미래에 우주로부터 어떤 재앙이 닥치리라는 위험으로부터 자유롭기에, 현실의 당면 과제인 지구에 터잡고 사는 문제에만 집중해도 무방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우리가 우주 중심에 자리하건 아니면 그저 머나먼 변방의 미미하게 떠도는 작은 행성에 붙어사는 초라한 처지건 간에(사실 우주에 중심이란 없습니다), 저 광활하고 캄캄하여 슬프기까지 한 공간을 향해 열심히 망원경의 초점을 맞추며 진리의 일단을 파헤치려 듭니다. 인간의 위대함은 이처럼, 일시적인 개체의 생물학적 번식과 존속에 얽매이지 않고 무한히 큰 존재를 향해 시선을 주고 정력을 기울일 수 있어서 존엄한 존재입니다.
아인슈타인이 처음 "암흑 물질"의 존재에 대해 설명을 내어놓았을 때, 사람들은 이미 상대성이론으로 확고한 명성과 업적을 쌓은 그를 향해 비웃었습니다. 자신의 이론(중 방정식)으로 설명 안 되는 부분을 모두 "암흑 물질"이라는 모호한 변수로 뭉뚱그렸다면서, 학자로서 무책임한 처사라고까지 비판한 이들도 있었지요. 이 책에도 나오지만, 최근 관측 결과 중 하나가 다시 이 이론을 뒷받침하는 시사점을 제시하면서, 반 세기를 훌쩍 넘기는 통찰력을 보인 그의 혜안에 다시 감탄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추세입니다. 저자는 이를 두고 "초대칭 입자의 모임"으로 암흑 물질의 본질을 파악하는 일군의 과학자들 입장을 소개하며, 어린 독자들에게 초대칭 개념에 대한 설명을 쉽게 풀어줍니다. 암흑 물질과 초대칭 입자라는 두 가지 까다로운 개념을 독자는 직관적으로, 또 통합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죠. 마치 원시, 고대 신화를 읽는 듯한 느낌이라서, 지금 과학책을 읽는지 설화집을 읽는지 모를 만큼 집중하고, 또 마음에 오래 남길 수 있는 서술입니다.
일단 밤하늘(물론 공해로 인한 방해가 없어야 하겠지만)을 바라볼 때 인간들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건, "아름답다!"라는 탄성입니다. 정말 우주에 별들이 아름답게 수놓아져 아름다운 것인지, 그 광대한 무작위에 인간이 애써 의미를 부여하고 싶은 건지는 아직은 모릅니다. 각각 억만 년의 광년 거리에서 제각기 서로 모른 채로 뿜어내는 에너지의 기다란 자취가 이제서야 인간 눈에 도달한 게, 우연히 단일 평면에서 빛나는 듯 착시를 보일 뿐이라는 설명(맞긴 하죠)으로는 인간의 이 날개 돋친 인문적 상상력을 억누를 수 없습니다. 그런 건조한 설명과는 별개로, 인간은 우주를 관찰하고 수식을 풀며, 신이 숨긴(혹은 방치한) 섭리에 한 걸음 한 걸음 더디나마 접근해 나갑니다.
추운 밤 따스한 음료 한 잔을 마시며 하늘을 바라보는 여인의 그윽한 눈길이 아니라도, 별들은 알 수 없는 이유와 과정을 통해 다른 별을 잡아먹기도 하고, 덩치를 키워나가기도 하고, 태어날 때의 맹렬한 기세를 뒤로 한 채 초라히 사멸하기도 합니다. 한 여인(누구라도 무관합니다)이 커피를 음미하며 억지로 심어 넣고 꾸며 낸 사연이 아니라, 과학자들의 견해 또한 다르지 않습니다. 천체 과학에 무지하건 그렇지 않건 인간이 꾸는 꿈과 내린 결론은 누구에게나 결국 같은 셈입니다. 별의 탄생과 성장, 소멸에 대해 대단히 간명하면서도, 저자는 이처럼 시적인 문장과 발상으로 우리 독자에게, "겁 먹지 마, 네 생각이 어쨌든 맞았단 뜻이야!"를 속삭입니다.
방에 무작위로 뿌려진 수십, 아니 수백개의 동전이 있습니다. 이들이 모두 어김없이 앞면을 향할 확률은 얼마나 될까요? 우리 누구라도 이에 대해 대단히 회의적인 반응을 보일 겁니다. 학교에서 확률론을 깊이 있게 배웠건 아니건 말입니다. 오래 전 인간은 우리가 터잡아 사는 지구라는 행성 외에 다른 터전이 없고, 다른 고등생명체가 존재하지 않으리라는, 신의 유일한 피조물로서 자부심을 가졌고, 경우에 따라 광신으로까지 옮아가기도 했죠. 많은 과학자들은, 앞에서 든 동전들의 비유처럼, 확률적으로 그 무슨 존재이든 외계의 저편에서 우리와의 소통을 고대하리라고 전망합니다. 하지만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요? 저자는 이 민감하고도 여전히 난해한 문제에 대해, 반쯤은 과학자의 냉철한 시선으로, 반쯤은 꿈꾸는 소설가, 이야기꾼의 마음가짐으로, 독자들에게 "당신의 생각은 어떤지?"를 되묻습니다. 분명 정확하고 권위 있는 과학자의 상념인데, 따뜻한 동화 같은 거죽에 싸여 평범한 독자들의 눈높이에 맞춰, 대화하듯 전달되는 게 놀랍습니다. 과학이 여전히 부담스러운 독자들이라면, 이 동화책 같은 과학책을 예쁜 일러스트와 함께 읽으며, "우주 물리학은 곧 인간이 꾸어온 꿈"에 다를 바 없었음을 깨닫는 것만으로도 큰 소득일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