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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러 넥스트 도어
알렉스 마우드 지음, 이한이 옮김 / 레드박스 / 2016년 10월
평점 :
제목의 "킬러 넥스트 도어", 즉 "이웃에 사는 살인자"에 대해선, 사실 이 소설 속에서, 최소한 양적으로는 아주 큰 비중을 차지하진 않습니다. 보통 이런 소재를 선택한 장르 소설에선, 이유 없이 희생자들이 죽어나가고, 독자와 소설 속의 다른 인물들에게 아직은 그 정체가 숨겨진 "킬러"가 조용히 자신의 독백과 동선을 이어 가고, 그를 쫓는 경찰이나 탐정이 별개 공간에서 자신만의 탐색을 벌이고, 새로이 희생자가 될 누군가가 등장해서 안타까운 죽음에 이르는 장면이 제시되고, 이런 여러 시퀀스가 교차되어 독자의 마음을 졸이는 게 공식 비슷할 겁니다.
그런데 이 소설은, 여러 인물들, 같은 다세대 주택에 거주하는 각 세대의, 그 처지도 다양한 인물들이 한 번씩 돌아가며 시퀀스의 중심을 차지하지만, 킬러와 그의 희생자들 중심으로 스토리가 펼쳐지지는 않습니다. 킬러는 물론 여러 "껀"을 해 내고 전리품들을 자신의 집에 잘 간직해 둡니다. 그가 전리품을 간수하는 방식이 다른 문제를 야기하기도 하지만, 여튼 소설 막판에 다다를 때까지 킬러의 동선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건 없습니다. 이 점이 특이하더군요.
이 소설을 이끌어나가는 인물들은, 살인 사건이나 범죄와 얼핏 전혀 연관이 없어 보이는, 아주 평범하고 때로 선량한 데다(선량하지 못할 때가 제법 많습니다) 상황과 환경에 치이고 상처 받고, 당장 내일의 삶도 장담 못하는 절박한 처지에까지 몰립니다. 킬러보다는 이런 평범한 주변 인물들이, 자신들의 특별한 사정 때문에 이런저런 곤란을 당하고, 한 건물에 산다는 점 외에도 여러 국면에서 삶의 색깔이 비슷한 처지끼리 모여 하소연도 하고 도움(자질구레한)도 받고 상처를 달래는 모습이 부각됩니다. 이런 일상적인(?) 구질구질함 속에, 조용한 킬러가 조용하게 자기만의 열띤 작품을 완성하는 장면이 스리슬쩍 삽입되는데, 대부분의 독자는 이런 끔찍한 범죄자에 시선을 주기보다(작가가 혹 잊을까봐 독자에게 자주 찔러 주는데도) 이들의 수다와 좌절, 좌충우돌 소동에 더 몰입하게 됩니다.
이 건물에 거주하는 이들, 셰릴, 콜레뜨, 할머니, 망명자 호세인만 놓고 보면 3/4가 여성인데다(ㅎㅎ), 잘생긴 남성이긴 하지만 망명자라는 사실부터가 약자임을 드러내는, 뭔가 사회적 취약 구조가 어떤 식으로든 작용해서 그 열악한 위치를 마련한, 일종의 희생자들입니다. 그러니 작가는, 킬러가 소녀들을 죽이고 끔찍한 콜렉션을 만들듯, 영국이라는 웃기는 나라(작중에 실제로 그런 표현이 나옵니다)가 마치 저 음산한 킬러처럼, 이들 불쌍하고 비참한 이들을 양산해 내었다는 암시를 하는 셈입니다. 작가의 정치 성향이 대단히 리버럴, 진보 쪽임을 눈치챌 수 있죠.
킬러는 드러나지 않게(정말, 내내 존재감 없다가 마지막에 확 부각될 뿐입니다) 범죄를 저지르고, 범죄를 저지르는 바는 없으나 추한 모습 못된 마음을 만방에 전시하며 "못난 사회 구조"의 얼굴 노릇을 하는 로이 프리스는 킬러의 범죄 온상, 그리고 저 약한 여성들의 난관에 대해 발판을 마련하는 역할입니다. 독자는 킬러보다 이 120kg에 육박하는 탐욕스런, 버릇 없는 중년 남성에 대해 더 적의와 경멸을 보낼 만한데요. 이건 다분히 작가의 의도입니다. 드러난 나쁜 짓은 로이 프리스, 안 드러난 진짜 나쁜 짓은 "그 킬러".. 여기에, 작품 중간쯤에 역시 개기름이 번들거리는 중년 사내가 셰릴의 성을 사려다 지갑을 뺏기고 나중에 셰릴을 폭행하는 에피소드가 끼어드는데, 이 역시 사회의 무능하고 추악한 면을 중년 남성이란 배역을 빌려 표현하려는 작가(여성입니다)의 계산이죠.
영화로 잘 만들기만 하면 꽤나 신선한 충격을 줄 드라마가 될 것도 같습니다. 스티븐 킹이 "지옥과도 같은 무서움, 최고의 캐릭터"라고 평했다는데, 한 챕터에서 어느 캐릭터의 1인칭 시점으로 그의 생각을 독자 앞에 다 드러내고, 다음 챕터에서 철저히 객관화한 그 캐릭터의 행동 결과(대부분은 비참하게 실패한)를 충격적으로 제시하는 기법 등은 스티븐 킹이 애용하는 테크닉이기도 합니다. 저 말 중에 "지옥처럼 무섭다"는 건 좀 생각할 부분이 있는데요. 셰릴이나 콜레트가 이 소설 속에서 겪는 고통과 시련은, 현재 온갖 사회 문제와 경제난에 신음하는 런던 안에서 상당수 시민들이 실제로, 실제로 치러 내고 있는 삶의 모습이며, 이것 때문에 지난해에 폭동이 일어나기도 했다는 점입니다.
잘생긴 호세인을 두고 "목구멍에서 h발음을 하는 동양 남자"라는 구절이 있는데, 우리 동아시아인들은 물론 유럽인과 거의 차이 없는 음가의 h발음을 합니다. 이란과 아랍에선 가래침을 뱉어내듯 조음하는 [kh] 음소가 따로 있는데 이걸 지적한 거고요. "푸주한의 딸(캐릭터 본인의 표현)" 베스타 할머니가 돼지 로이 프리스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대목에서 이 자가 왜 비뚤어진 인성을 갖게 되었는지 배경이 나옵니다만 제 생각엔 느닷 재산을 상속받았다는 설명만으로도 충분했을 것 같습니다. 이런 사회의 모순상이 여전히 개선되지 않기 때문에 영국에서 진보 좌파 진영에 표가 몰릴 수밖에 없다는 점을, 스릴러 장르 특유의 박력이나 짜릿한 재미보다 더 마음 속에 상기시켜 주는 좀 특이한 독서였다고 개인적으론 평가하고 싶습니다. "에필로그" 장이 따로 마련되었는데 바로 뒤에 다시 "그 후의 이야기"를 배치한 것도 작가의 의도에 대해 곱씹게 하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