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역 사기본기 - 오제부터 한무제까지 제왕의 역사 완역 사기 시리즈 (위즈덤하우스)
사마천 지음, 신동준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5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느 정사서(正史書)이건 본기(本紀)는 그 뼈대를 이루는 정수입 니다. 더군다나 사마천 저술 <사기>의 "본기"는, 본기 중에서도 가장 앞선 원형을 이루는 기록입니다. 이런 까닭에 사마천의 저작을 읽으며 <열전>만 편애하고 <본기>를 정작 빼먹는다면, 이는 용의 몸통을 근사하게 다 그리고서 눈동자만 비워 두는 우를 범함이나 마찬가지이겠습니다.

史記의 <본기>는 생각보다 재미 있습니다. 종래 한국어로 된 번역서는 대개 <열전>에만 관심을 두어, 정사서의 중핵인 <본기>는 정작 발췌역조차 드물게 출판되었습니다. 한문 독해가 안 되는 독서인들은 그저 아쉬운 대로 <초한연의>(소위 "초한지")등 통속 문학에 의지해 이 시절 역사를 탐독할 수밖에 없었죠. 제가 리뷰에서 자주 언급하는, 전 고대 교수 홍석보 선생님의 역본도 그나마 <열전>의 초역(抄譯)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것이 1990년대 후반에 들어서야 정범진 전 성대 총장님 외 중문과 교수님들의 귀한 노력으로 완역이 이뤄진 게 처음이고, 이후 좋은 역본들이 계속 나와 독자들로서 행복한 고민에 젖게 했죠. 사람들은 한국어 완역본을 읽고 나서야 이 <본기>가 기대보다 훨씬 흥미진진한 읽을거리가 될 수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물론 역사서는 진지하게, 공부하는 자세로 접근하는 게 원칙입니다만, 사마천의 작품은 언제나 그렇듯 "그저 재미로 읽어도" 독자를 끌어당기는 마력을 갖지요.

이 책의 시작은 <오제본기>입 니다. 우리 현대 독자들의 시각은 여전히 "오제 시대"나 "하 시대"를 두고 역사의 범주에 들어오긴 어려운, 신화나 전설의 영역으로 치부하기가 십상입니다. 하지만 "역사의 아버지"인 사마천이 그 까다로운 기준으로, "삼황"을 애써 논외 대상으로 삼음과 동시에 이 두 "시대"를 자신의 사서에 넣은 까닭이 무엇인지 정도는 겸손되이 곰곰 생각해 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최소한, 이를 신화라 쳐도 이후에 전개되는 중국 역사의 핵심 맥락을 잡기 위해 반드시 익혀야 하는 기초 개념 정도로는 여겨야 하죠. 예컨대 제곡이 누군지 모르면 秦 황실의 근원을 언급할 때 논의를 따라잡지 못합니다.

이 파트는 신화의 체계로 간주하더라도, 그 큰 줄거리를 잘 읽고 머리 속에 정리를 해 둬야 중국 역사 전반을 개관하는 교양의 기반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그 시작은 "학자들이 오제를 칭송한 지 오래되었다"라는 문장인데요. 아마도 "삼황은 사실무근이라 쳐도, 오제에 대한 행적은 학자들조차 가벼이 넘길 대상은 아니었다"는, 어떤 학문적 근거를 사마천이 애써 제시하고자 했던 의도는 아니었을지요. 원문(신동준 선생의 이 번역본은 한문 원문이 함께 실려 있다는 점에서 탁월합니다. 자세한 건 <사기 열전> 1권을 두고 쓴 제 리뷰를 참조해 주십시오)을 보면 學者多稱五帝 尙矣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문장을 두고 예컨대 김원중 교수님 같은 분은 "학자들이 대부분 오제를 칭찬한 지 오래되었다."라고 옮깁니다. 원문의 자를 살린 소치입니다.

p36을 보면 페이지 내내 "여와(女媧)"라는 신화적 존재가 언급됩니다. 삼황을 누구누구로 꼽는지에 대해 학자들 간 의견이 일치하지 않습니다. "춘추 오패"가 누군인지를 두고서도 여러 견해가 엇갈립니다. 복희씨, 신농씨에 이어 수인씨를 빼고 이 여와를 넣는 입장을 신동준 선생님은 소개합니다. 다만 딱 한 군데에서 "여화"로 오자가 난 게 있습니다. 아마 제 생각으로는 p173:4의 여화(女華)와 잠시 혼동하신 게 아닐까 합니다.

<하 본기>에서 우리가 잘 아는 우왕이 "백우"라는 이름으로 등장합니다. 이때의 "백"은, 당요, 우순 할 때처럼 성씨라기보다, 方伯이라고 할때의 백이라는 설명이 p151에 친절히 제시됩니다. 신동준 선생님의 역본은 이처럼, <삼가주> 등 다양한 문헌을 동원한 철저한 비교, 비평적 분석에 기반하 기 때문에, 심도 있는 공부를 원하는 독자에게 아주 유용합니다. 다만 이 대목 관련해서는 김원중 교수님 판에도  p156(<주 본기>) 후주26번에 비슷한 언급이 있긴 하더군요. 우왕의 성은 似씨라고 이 파트 맨 뒤에 태사공이 직접 설명합니다.

하 본기 끝에 은의 사실상의 시조 탕이 언급되는데, 탕의 뜻에 대해, 김 원중 교수님 책은 "폭군을 방벌함"이란 뜻이 포함된다고 하나(p86 각주 7) 신동준 선생님은 이에 대해 딱히 언급하시지 않습니다. 이런 대목이 차라리 좀 이례적으로 다가올 만큼, 신동준 선생님의 책에는 역주가 많이 실려 있죠. 이 부분에서, 말을 교묘히 하고 낯빛을 꾸미는 자를 어찌 두려워하겠는가? 라고 하는 탕왕 측의 말이 나오는데, <논어>에서 "교언영색"으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표현이지만, 이 <사기>의 구절은  巧言色(교언색)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뜻은 서로 통합니다. 제가 좀 궁금했던 건 畏 자를 과연 "두려워하다"로 새겨야 하느냐였는데, 신동준 선생님이나 김원중 교수님이나 태도가 같았습니다.

p80 중간쯤 吉哉라는 원문을 두고, 신동준 선생님은 "모든 일이 잘 처리된다."고 옮기시고, 김 교수님은 간략하게 "길하다"로 번역합니다. 그 바로 다음에 이어지는 문장 日宣三德에서, 원문에는 주어가 없으나, 신동준선생님은 "경대부(경+대부)"라는 주어를 삽입합니다. 이렇게 주어를 넣으니 독자 입장에선 문장의 뜻이 훨씬 잘 통하더군요.

하나라를 망하게 한 妹姬(매 희, 정확하게는 계집 녀 변에 끝 말 자를 쓰는데 일단 이 글자로 적겠습니다), 혹은 말희라고 다들 들어 보셨을 텐데요. <사기 본기>에는 이 인물이 언급되지 않습니다. 신동준 선생님도 언급하시는 좌구명의 <국어>라든가, <죽서기년>에 나오는 인물이죠.

<은 본기> 이어지는데, 신동준 선생님 책에는 "탕왕 본기+ 은왕 본기" 두 파트로 나뉘어진 체제입니다. "은왕"이라는 군주가 따로 있었던 게 아니라, 은나라의 여러 왕에 대한 기사를 그 제목 아래 다 포괄하는 태도입니다. 끝에는 우리가 잘 아는 요녀 달기, 그리고 주지육림의 고사가 나오는 건 물론이죠. 은 시대부터 우리 현대인도 모두 동의하는 본격 "역사 시대"가 열려집니다.

<주 본기>로 넘어가면, 이 책은 후직 본기, 주성왕 본기, 주목왕 본기, 주유왕 본기, 주여왕 본기, 동주 본기, 난왕 본기 등으로 소제목을 나눕니다. 물론 주나라에 이들 임금만 있었던 건 아니고, 각각의 시기를 대표할 만한 임금을 뽑아 이름을 붙이신 것 같습니다. 김 교수님 책에는 꺾은 괄호를 써서 군명과 통치 연도를 표기하는데(p157 이하부터 진 본기까지 내내 이렇습니다), 이는 <표>의 태도와 일치합니다. 신동준 선생님은 그렇게 하지 않고, 한문 원문에 충실하게 줄글 형태로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비록 주 무왕이 소위 천명을 받들어 역성 혁명에 성공했지만, 많은 이들은 여전히 불만을 품었던 것 같습니다(이 이슈 관련해선 역시 <백이열전>을 참고해야겠죠). 원문을 보니 其後世貶帝號 號爲王이라는 대목이 있던데(이래서 신동준 선생님 책이 좋습니다), 전에 "제"라고 부르던 걸 주나라부터는 "왕"으로 낮춰 불렀다는 뜻입니다. 원문에 (폄)이라고 되어 있어 반감 수위가 높았다는 게 짐작 가능하며, 식자층의 불만이 대단했다는 점도 추측 가능하죠.

주 무왕의 말 중 "하늘이 주나라를 보우한 덕분에"란 대목이 있어서 원문과 대조해 봤습니다(애국가 가사 일부와 겹치기도 하므로). 定天保인데요. 이 구절을 김 교수님은 좀 다르게 옮깁니다. "분명 하늘이 보우하신다면". 가정법이죠. 定 자를 어떻게 새기느냐에 따라 달라진 것 같습니다.

신동준 선생님 번역이 빛나는 대목이 또 나오는데요. 夷羊(이양)을 어떻게 새기느냐의 문제입니다. 김 교수님 책엔 문자 그대로 해석하여 "큰 사슴"이라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신동준 선생님은 <사기집해>를 인용, 이를 "괴물"로 옮기시는데요. 바로 뒤에 해충의 피해가 나오므로 이 번역이 더 적절하다고 생각됩니다.

무왕이 동편에 조성한 후 떠난 곳은 洛邑(낙읍)인데, 한참 후 견융의 침입으로 주 평왕이 도읍한 곳은 雒邑(낙읍)입니다. 이 둘은 발음도 같고 서로 통하는 한자이므로 동일한 지명으로 이해하면 될 것 같습니다. 어느 책에도 이 점을 지적한 대목이 없어서 독자로서 제가 그냥 써 봤습니다.

p140에 보면 小醜(소 추)라는 단어가 나오는데요. 이를 신동준 선생님은 "미천한 것"으로 옮기십니다. 저는 酋長으로 생각했는데 아니더군요. 아들에게 자네라는 말을 써 가며 밀강공의 어머니가 주 공왕에게 세 여자를 바치라고 권하지만, 아들은 듣지 않다가 결국 화를 당하는 고사입니다.

비운의 주나라는 난왕 때 또다시 동주와 서주로 갈리는데, 이 부분 역주를 보면 "동주는 하남, 동주는 공 땅에 도읍"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사기색은>을 인용하신 친절한 설명입니다. 다만 앞의 "동주"는 문맥상 "서주"의 오타가 아닐지 조심스럽게 의문을 제기해 봅니다.

주 무왕이 자신의 조부인 고공단보(소위 "태공") 시절부터 그토록 긴 공덕을 쌓아 세운 나라였건만, 발톱을 날카롭게 세운 진(秦)나라에게 기어이 동과 서가 모두 망하는 모습을 보며 비감이 서렸습니다. 한나라 때 정국이 안정된 후 그 후손을 찾아 봉사하게 했다고 하니, 한 왕조가 넉넉하고 합리적인 통치 방식으로 백성들에게 인심을 얻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秦 본기>로 넘어가서요, 지난 번 <사기열전> 2권 리뷰에서도 언급했지만, "백세후"라는 단어는 임금의 죽음을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이 동의어 관련해서 이 책 p189 이하 역주에선 불교 용어까지 총망라하며 아주 자세히 설명하십니다. <사기>라는 역사서를 즐겁게 읽는 외에 이런 특별한 교양 사항까지 익히는 유익함이 따르는 좋은 예입니다.

"결초보은" 이란 고사성어가 있죠. p188의 역주에는 이것 관련 자세한 설명이 있습니다. 관심 있는 분들은, 신동준 선생님이 역시 번역한 <춘추좌전> 1권(한길그레이트북스 제74권. 이 책도 한문 원문이 모두 실려 있습니다) p506 중간 부분을 참고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궁금해서, 제가 소장한 책을 일부러 찾아 봤네요).

p203에는 진 애공 관련하여 오왕 합려, 오자서의 기사가 언급됩니다. 역시 <열전> 1권의 해당 파트와 함께 읽는 편이 유익합니다.

p206엔 "여공공"이란 통치자가 언급되는데, 이 사람 이름은 厲共公으로 씁니다. 역시 한문 원문 대조가 가능한 책에서 누릴 수 있는 편의입니다.

<진시황 본기>로 넘어가면, p230에 장신후 노애의 반란이 나옵니다. 이는 물론 <열전> 1권의 "여불위 열전"을 찾아 보셔야 하는데요. 제가 재밌게 읽은 건 그것보다는 저 "노애"의 이름자와 관련된 사항입니다. 본디 노애는 거대한 그것의 크기로 조태후의 사랑을 받은 "가짜 환관"인데요. 이 이름이 홍석보 선생의 <열전>에는 "노애"로 적혀 있다가, 정범진 전 성대 총장님 책에서부터 "규애"로 표기되었고, 그 당시 조선일보 어느 칼럼에서도 이를 "규애"로 적은 걸 본 기억이 있습니다. 그런데 김 교수님 책, 그리고 이 신동준 선생님 책에는 다시 "노애"로들 표기합니다. 두 분 다 이에 대해서는 주를 통해 딱히 언급이 없으셔서 그냥 그런 줄 알고 넘어갔습니다.

p233 이사의 죽음(이사열전), p236 화양태후 (여불위 열전)에 대한 언급도, 이 <본기>뿐 아니라 <열전>의 해당 기사를 함께 읽어야 정확한 이해가 가능하겠죠.

p240에선 드디어 황제, 폐하 등 명칭의 유래가 나옵니다. 이사 등이 박식한 배경으로 통일 군주의 위엄을 세우려 드는 대목인데, 역시 우리 독자들이 관심 깊게 읽어 볼 가치가 있습니다.

p280의 역주에 보면, 악질 환관 조고의 입을 빌려, 천자가 짐이라고 칭하는 건 "조짐"에서 온 것이라고 강변하는 대목이 있는데요, 종래 홍석보 선생님 등의 책에는 이를 "궤변"으로 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신동준 선생님은 이를 두고 "비록 조고의 말이기는 하나 탁견이다"고 평하십니다. 이 대목의 원문은 固聞不聲인데, <열전>의 해당 파트에는 但以聞聲 羣臣莫得見基面라고 되어 있습니다(<사기열전> 중 이사열전). 역시 원문에는 조짐兆朕이란 말 자체는 없습니다만, 전문가들은 일종의 언어 유희이기도 한 "조짐"으로 새기는 데 동의하는 것 같습니다.

p288, 자영(3대 황제)의 정체에 대해서 다른 학자들은 그닥 언급이 없는데, 신동준 선생님은 각종 고증을 통해 자세히 설명하셔서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p290에 보면, 三晉이 아닌 三秦의 유래가 나오는데, 雍, 塞, 翟 땅을 가리킨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때부터 항우의 이름이 슬슬 언급되기 시작하죠. p291에 보면 가생의 <과진론>이 전문 인용되는데, 신동준 선생님은 여기 대해 후세의 가필설을 제기합니다. 역시 <가생열전>과 함께 읽을 가치가 있습니다.

<항우 본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읽은 독자가 많을까요? 신동준 선생은 이에 대해 "성공학과 반대되는 개념으로, '실패학'의 전형이 라는 점에서 연구할 가치가 있다"고 하십니다. 왜 그는, 남들보다 압도적인 유리한 조건을 지니고도 결국 모든 것을 잃고 말았나? 이 물음에 대해 거의 모든 답, 전형적인 해당 사항을 지니고 있는 위인이란 거죠. 그러나 그는 낭만적이고 귀족적이며 인간적인 면모를 유감 없이 드러내 보인 까닭에, 후세의 문학가들로부터 가장 사랑 받는 소재가 되기도 했습니다. 우미인의 고사나 그 유명한 사면초가 등에 대해, 신동준 선생님 특유의 명쾌한 비평으로 여러 다른 견해가 소개되니 해당 역주를 꼼꼼히 읽어 볼 만합니다. (예를 들어 "사면초가"가 아닌 "사면 제가"였다는 일본인의 주장 등)

p344에 보면 범증이 항우에게 화를 내며  "어린아이와는 대사를 논할 수 없다!"고 화를 내며 개탄하는 대목이 있는데(이때 그냥 항우가 유방을 잡아 죽였으면 천하가 자기 것이죠. 마치 장개석이 모택동을 못 죽이고 그냥 보낸 것처럼), 원문은 竪子, 즉 더벅머리라는 뜻입니다. 이 비슷한 게 <역생열전>에서 유방이 역생더러 외치는 욕설 중에 竪儒라는 게 있는데, 이걸 신동준 선생님은 "어린 선비놈아!" 로 옮깁니다(열전 2권 p396).  라는 글자가 젊은이를 비하하는 말 같긴 한데, 문제는 역생이 바로 다음 대사에서 "나이 든 사람을 앉아서 맞이해서는 안 되오"라고 꾸짖는 대목이 나온다는 겁니다. 독자로서 이 점은 여전히 수수께끼입니다. 참고로 김 교수님 책엔 "어린"이 빠져 있습니다만, 그것만으로는 의문이 해결 안 되네요.

<고제 본기>로 넘어가면, 그의 이름이 정확히 季가 맞느냐는 논의부터 해서, 태공(유방의 부친)이 아들 딸린 과부를 첩으로 맞은 후 또 아들을 봤다는 둥 재미 있는 견해들이 역주를 통해 제시됩니다. 이 역시 정범진 총장님 책 등 여러 번역서에서 취하는 편제지만, 신동준 선생님 책이 가장 내용이 풍성하더군요.

pp.364~365 각주에 보면, 유방의 약속 파기를 교묘하게 장량과 진평 탓으로 돌린다는 신동준 선생님의 날카로운 고증이 있습니다. 유방은 이 외에도 자기 친자식을 마차가 빨리 달리기 위해 밖으로 밀어버린다든가, 소하, 장량 등의 코칭을 받고 급하게 태도를 바꾼다든가 하는, 온갖 희극적(혹은 비정해서 비극적)인 모습을 다 드러냅니다. 시간이 없어 꼭 한 파트만 챙겨 봐야 한다면, 이 <고제 본기>를 선택해야만 할 만큼 재미있죠. 정사서가 이렇게 재미있어도 될까 싶을 만큼.

사기만 독특하게, 제위에 정식으로 오른 적도 없던 여태후를 따로 본기에 편제했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여태후 역시 남편에는 많이 못 미쳐도 건국에 큰 공헌을 한 걸물이니만치 흥미로운 기사가 많죠. 척 부인을 "인체(사람돼지)"로 만든 고사라든가... 휴,...

문제, 경제, 무제 본기는 반고의 <한서>, 그 중에서도 <창읍왕 열전> 같은 대목과 함께 읽으면 재미가 더합니다. 사마천이 직접 모신 군주에 대해 어떤 시선으로 대하는지가 포인트죠. 이 책 말미에는 <보임안서>가 따로 부록으로 실려 있는데, 다른 역본에는 없는 귀한 자료입니다(김원중 선생님 책에는 <書>의 부록으로 편집되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