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박도봉의 현장 인문학
김종록.박도봉 지음 / 김영사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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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으로 가라, 거기에 답이 있다."


이 책은 인문학자 김중록 선생과, 정말 맨손으로 일어서서 현재는 시총 3700억원에 육박하는 중견 기업(정확하게는 상시근로자 수, 자산총액 면에서 중소기업이죠)을 일궈 낸 입지전적 CEO인 박도봉 알루코 그룹 회장 사이의 대담 형식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 나라에서 나온 담론이랄까, 혹은 출간된 책들의 꾸밈새를 보면 인문학은 인문학대로 자기 이야기만 하고, 경영자의 입장에서라면 그보다 더했으면 더할 배타성, 심지어는 적개의식으로 역시 자기 할 말만 하는 풍토였습니다. 지금까지 독자로서 저는 이 두 진영(?)이 서로 터놓고 대화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는데요, 그런 의미에서 이렇게 서로 접점이 없어 보이는 두 분야에 몸담은 인사들이 흉금을 연 토론을 펼치는 모습은 신선하고 유익하게까지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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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계층화 사회가 고착화되어 더 이상인 신분 상승의 가망이 없어 보인다는 데에 많은 이들이 동의하고 있는 게 한국의 현실입니다. 특히 인문학자 김중록 선생은 유럽의 프레카리아트 론까지 언급하며, 불가능한 걸 가능하다는 듯 젊은이들에게 부담 주고 압박하는 작금의 기성 세대에 대해 많은 비판을 가합니다. 이 대목에서, 박 회장은 "땀이 혈통이다"라며 개인의 노력은 어느 시대 어떠한 상황에서도 유효한 자본 투입이요 성공과 실패의 결정 인자라는 취지의 주장을 폅니다. 시작부터 두 분은 첨예한 논쟁을 펼칠 여지를 앞다퉈 만드는 듯 보입니다. 한쪽은 개인의 노력은 더 이상 유의미한 변수로 기능 못한다는 쪽이고, 다른 쪽은 아니 아무것도 내세울 것 없는 인생이었던 자신이 이만큼이나 출세하지 않았으냐고, 다른 먼 방증이 아닌 자기 자신을 논거로 내세웁니다. 한쪽은 인문학 전반의 확고하게 지지받는 쳬계적 담론을 제출하고, 다른 한쪽은 추상적이고 막연한 추론이 아닌 살아 있는 실례, 경험을 하나 하나 풀어 놓습니다. 귀추가 주목되는 용호상박의 대결이 아닐 수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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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록 선생의 "질문(이 책 내내 아무래도 김 선생은 질문하는 자, 도전하는 목소리란 입장에 설 수밖에 없죠)"에도 저는 여태 못 들어 보던 내용이 많이 발견되더군요. 사실 신분 고착화라는 게, 몇몇 비뚤어진(그리고 자질이 부족해서 현재의 위치를 못 지켜 나갈 것 같은) 이들의 이상한 에피소드가 대중 앞에 극적으로 부각되어서, 저는 이게 대한민국 일반의 사정이라고 확장하기가 많이 무리라고 보거든요. 이번에 모 기획관의 사고만 해도, 모르겠습니다, 앞으로는 저 말이 섬뜩한 실제로 다가와 듣는 이 다수(아무래도 잘사는 사람보다야 못사는 이가 많을 테니)에게 저주의 위력을 발휘할지 모르겠지만, 사실 제가 아는 사람들에게 의견을 물어 보면 픽픽 웃는 이들이 절대 다수였거든요. 너무 실상을 과장한다는 거죠. 자식 생각도 하자면 이쯤에서 계층 이동의 문이 쾅 닫혔으면 하는 그 개인의 바람이, 주사 끝에 말도 안 되는 사고를 친 결과라는 쪽이 중론입니다. 그러고 보면 자신의 위치를 지키려는 입장에선 "뭘 그렇게까지..." 같은 실소를 자아내고, 더 이상 못 쫓아갈 것 같다며 한숨을 내쉬는 쪽에서는 과민 반응이 나오는 게 당연하고... 고위 공무원 한 사람의 목을 날린 걸로 귀착난 과정을 보면 저는 그 말이 많이 과장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여튼 김중록 선생은, 지금 한국의 상황은 신분상승과 역전이 불가능하다는 편이며, 그 근거도 여태 듣던 것과는 매우 다른 양상의 다양한 표본을 거론합니다. 이에도 충분히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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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가 하면 박회장님 역시 연배가 좀 많으신 편이란 점에서, 노력 만능론을 제기하기에는 지금 젊은 세대에게 약빨이 덜 먹힐 우려가 없지는 않아요. 역으로 보면 박회장님이 청춘을 보낸 8, 90년대에는 민주화 면에서는 문제가 많았어도, 아무 배경 없는 개인이 자기 힘으로 일어서기에 기회는 많은 사회였다는 뜻이거든요. 참 이상하죠. 민주화가 되면 신분 상승도 더 활발해져야 하는데, 물론 다른 요인이 여럿 개입해서이겠지만 어째 두 추세가 trade-off 관계란 말이에요. 한 개의 문이 열리면 다른 문은 닫힌다는 식이라고 할지, 원. 이 박회장님 같은 경우는 90년대에 거의 자기 기반은 확실히 닦고 난 상태였고, 지금 같은 도약을 이루는 데에는 외환위기 이후 문제의 그 기업을 인수하고 나서입니다. 외환위기 이후 알짜 기업이 초헐값에 매물로 나온 게 엄청 많았습니다. 이때 착실히 기회를 챙기고 내실을 다진 기업인들은 인수합병으로 대박을 치는 경우가 많았는데, 박 회장님도 그런 분들 중 하나인 것 같습니다. 제가 이 책을 대략 일주일 전부터 읽기 시작했는데, 분량도 아주 많지는 않고 내용의 대부분은 결국 회장님의 회고담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완독에 제법 시간이 걸렸습니다. 회장님의 그 갖은 고초(유난히 박 회장님은 개인적 시련이 많은 분이더군요. 심지어는 취미로 삼는 활동 중에서도 생명의 고비를 넘기는.. 이 역시 회장님 본인 말씀마따나 남다른 도전 정신, 오기 등이 작용한 발로겠습니다. 평범한 코스도 유별나게 위험 선호적인 분들이 있고 이런 분들 중 많은 이가 결국 성공하더라구요. 다는 아니고 마음자세가 긍정적인 분들이라야)를 술회한 대목, 그리고 알루코 그룹(사실 주식 투자를 하기 때문에 낯선 이름이 결코 아닙니다)의 현황에 대해 좀 더 자세히 들여다 보느라 그렇게 된 것 같아요.


여러 대목에서 두 분은 부딪힙니다. 가령 "복지" 문제만 해도, 박 회장님은 복지는 필연이라고 인정 하면서도, 생산성 없는 퍼주기 식 복지는 반드시 망한다고 선을 긋습니다. 제가 아는 기업가들 중 백이면 거의 백이 "도덕과 사업은 아무 관계 없고, 오히려 한쪽이 흥하면 다른 한쪽은 주저앉아야 하는 부(負)의 상관 관계 -공분산이 마이너스? ㅋ"라고 주장하는 편이죠. 백이면 거의 백입니다. 박 회장님은 남 얘기 하듯 하시지만, 결국 본인이 주변에서 겪어 본 예로 거의 틀림 없다는 쪽이죠. 두 분 다 의견이 일치하는 대목이 있다면, 베트남의 기회의 땅이라는 정도? 그 역시 한분은 먼 예전 공자와 성현들이 편 담론에서 현상을 설명하는 단서를 찾고, 다른 분은 금수저 흙수저. 혹은 남녀 차별이 다 뭐냐, 베트남을 보면 자신의 미래를 스스로 개척하려는 모든 바람직한 징조를 다 볼 수 있다는 쪽입니다. 자신도 마찬가집니다. 환율이 2000원대까지 폭등하는 마당에 무슨 수출이 되겠습니까. 직원들에게는 내가 집을 팔아서라도 월급은 주겠으니 계속 공장만 돌릴 수 있게 하자고 설득하고, 은행은 은행대로 바로 여신 환수가 안 들어오게 최대한 공감대를 유지하고, 이렇게 노력하니 그간 R&D에 부은 실적이 드디어 보람이 생겨, 대기업 부품 구매 담당자들로부터 "제품이 이렇게 좋은데 그동안 뭘 하고 있었냐"며 오히려 타박 아닌 타박을 받기도 했다는 거죠. 남들 다 쓰러져 나가자빠질 때 이 기업은 도약의 발판을 다졌다는 것. 아, 그러나 돌이켜 생각해 보면 멀쩡한 나라 하나를 절딴내 놓은 어느 정치인이 참...에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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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첫 대목의 제언으로 돌아옵니다. 누구에게나 문제가 있을 테고, 여간한 경우가 아니고서야 그에 알맞은 답도 마련되어는 있습니다. 그걸 발견하느냐 못하느냐가 개인의 역량에 따라 차이가 있을 뿐이죠. 공자님도 주자도 모든 학문의 궁극을 "실(實)"에서 찾을 것을 가르쳤으며, 무슨 조선 후기에 들어와서야 실학이니 실사구시니 하는 말이 비로소 유행한 게 전혀 아니죠. 허황되고 앞뒤 안 맞는 공리공담은 개인의 신세도 망치고 나라의 앞길도 그르치게 마련입니다. 답은 현장에 있고, 현장에 기꺼이 임하려는 열정적인 개인의 자세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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