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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사춘기 고민 상담소 - 성장욕구와 매너리즘 사이에 낀 직장인들을 위한
최현정 지음 / 팜파스 / 2015년 6월
평점 :
"사춘기"라는 게, 마음이 어느 한쪽으로 확실히 자리를 잡아야 할 상황에서 그렇지 못하고 왔다갔다 하는 현상을 두루 가리키는 대유입니다. 평생 직장의 신화가 무너지고, 임원으로 승진하여 느긋한 관리직으로서의 여유를 누리기는커녕, 당장 내일의 자리 보전도 걱정해야 하는 지경으로 내몰린 직장인들에게, "사춘기"는 10대 시절에도 겪어 보지 못했던 수준으로 당사자를 괴롭히는 갈등과 불안정의 근원으로 작용합니다. 봄 춘(春)이란 단어가 주는 한편의 희망과 낭만과는 전혀 무관하게, 좌불안석 직장인들이 오늘도 마음에 두는[思] 바는 살벌하게도 진퇴의 여부이며, 스잔한 인생의 가을[秋]에 버려지는[捨] 걱정입니다. "버틸 것인가, 아니면 버릴 것인가?"
이상과 현실이 맞지 않을 때, "아직 내 나이가 이 정도로 젊은데 어딜 가서 뭘 못하겠어!"라며 호기롭게 사표를 던지는 상상은, 때로 안 먹어도 사람 배를 부르게 하는 낭만과 흥분을 부릅니다. 하지만 거리에 빈 몸으로 던져진 후엔, 후회와 미련이 당사자를 엄습하리라는 게 저자의 의견입니다. 구체적인 퇴사 후 계획이 있고 없고를 떠나, 사표는 그저 마음 속으로만 쓰고 간직하는 게, 경우를 가리지 않고 온당한 선택이라는 게 거의 확정된 결론입니다.
일 못한다고 다그치기만 할 게 아니라, 그럼 어떻게 해야 바람직한 업무 수행인지 구체적으로 지시해 줬으면 좋겠다는 게 많은 부하직원들이 현장에서 깨지고 난 뒤 갖는 마음이겠습니다. 어떤 상사는 이처럼 무력화된 부하의 심리에 파고들어, 이후 뭘 하든 자신의 뜻대로 조종하려 드는, 일종의 소시오패스 기질을 발휘하곤 하는데, 이게 물론 아랫사람을 키워 준다거나 건전한 인맥을 형성하려는 노력이 아님은 자명합니다.
여기서 저자는, "여튼 살아남기 위해 적극적으로 이런이런 시도를 해야한다"며 다소 야멸찬 팁을 제시한다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가능하면 "상황이 이러이러하지 않아요?"하고 독자를 말 없이 다독이는 쪽입니다. "희망쌤"이라는 별명에 걸맞게, 솔직히 답이 없는 상황을 무리해서라도 타개하려 들기보다, 의욕을 북돋워 주면서 주위와 원만하게 타협해 나가라는 취지로 해석됩니다.
저자의 현실적인 이런 기조는 책 한참 뒤인 p142에서도 이어집니다. "한번 열외가 되면 일종의 주홍글씨가 찍히는 셈인데, 프로스포츠에서 2군으로 밀려나는 것과 비슷하다고 규정합니다. 못하는 선수를 후보군으로 보내면 그 선수를 며칠 간은 콜업하지 못합니다. 이때 선수에게 자신감마저 떨어지고 나면, 사실상 그는 거의 영원히 응달에 머물러야 하는 처지가 될 수 있습니다. 여기서도 저자는 "결국 낙오하면 당신 손해!"같이 매몰찬 독촉을 하기보다, 문장 어딘가에서 묻어나는 따스한 도닥임을 베풀어주는 게 특징입니다. 하긴 코너에 몰린 이들에게 살벌한 콜드 터키 요법을 강행하기보다, 이처럼 따스한 말 한 마디로 어깨를 풀어주는 게 훨씬 현실적인 처방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무작정 "당신은 괜찮아!"를 주입하는 게 능사는 아닙니다. 냉정하게 자신을 객관화해서 관찰하고 점검하지 못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자신에게 돌아올 뿐이라고 지적하는 건, 이 희망쌤의 태도라고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예컨대 p184를 보십시오. 일단 다니던 회사 밖으로 나와 재취업을 시도할 때, 지원자는 철저히 "그 회사의 채용담당자" 입장에 서서(역지사지) 전략을 짜야 한다고 충고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상대의 입장과 질문을 가상 설정하여 자신에게 던졌을 때, 그 나오는 대답이 (스스로 생각해 봐도) 뭔가 시원시원하지 못하고 부정적이면, 현실적으로 그 분야 구직은 단념하라는 겁니다. (구인) 시장이 냉정히 평가하는 바에 거슬러 무리한 대시를 해 봐야, 결국 상처입는 건 자신 아니겠습니까. 이래서 다시 처음의 충고("사표는 마음 속에만!")로 돌아가는 거죠. 희망쌤의 조언은 이렇게 현실적인 내용을 담고 있으면서도 말투가 다정하다는 게 가장 눈에 띄는 특징입니다.
협상의 정석적 스킬을 다 발휘해서 상대하는 데도 끊임없이 갑질만 일삼으며 사람을 피곤하게 하는 경우가 있다면서, 이런 경우 그 사람 자체와 일을 분리해서 다루라고 합니다. 영어에서 흔히 하는 말투로 "Not personal."이라는 거죠. 이때 무력감과 패배감이 자신을 휩싸게 방치하지 말라는 게 저자의 충고입니다. 이런 걸 보면, 현실적으로 직장인 대다수를 차지할 "일 못하는 대리들"을 저자가 얼마나 많이 상담해 오셨고, 그 속을 훤히 꿰뚫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른바 힐링의 대가라고 하겠습니다.
"스트레스는 해소하는 게 아니라 관리하는 것." 이런 말도 참 현실적으로 들립니다. 그 사람이 처한 환경이 어느 정도 불변 상황인데, 받는 스트레스가 설사 일시 해소되었다 한들, 다음날이면 또 같은 프레셔가 당사자를 짓눌러 오지 않겠습니까?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도 있지만, 스트레스와 싸우려 드는 것만큼 가망 없는 계획도 없다는 게 저자의 입장입니다.
멀티맨이란 말이 좋아 멀티맨일 뿐, 사실 처량하고 고달픈 처지입니다. "감초 같은 조연" 역시 능력과 수고에 비해 제 대접 못 받는 현실을, 그 말 안에 스스로 품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겠고 말입니다. 저자는 명성 "희망쌤"답게, 조연으로 부지런히 뛰다 보면 언젠가는 주연으로 올라설 수 있다고 어깨를 토닥이고 있군요. 그 말씀이, 냉혹한 현실 속에서 얼마나 위력을 발휘하건, 이런 따뜻한 조언이 많은 회사원들에게 추운 어깨를 감싸 주는 바람막이 구실을 해 줄 것은 분명합니다. 물론 찬바람을 헤치고 험한 거리를 개척해 나가는건 결국 당사자 본인의 몫이겠지만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