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개봉한 동명 영화의 원작 소설입니다. 물론 홍보대로 소설의 작가는 데니스 루헤인이고, 그의 평소 컬러대로 잔인하고 현실감 나는 묘사에다 보스턴 슬럼가의 약육강식 살풍경이 잘도 재현되어 있어, 이런 소재에 거부감 있는 독자를 제외한다면, 소설의 흡인력은 상당한 편이라 여겨집니다. 말미에 적당한 반전까지 있으니 끝까지 읽어나간 이들에겐 합당한 지적 보상도 부족하지 않게 주어지고요.
영화에서는 밥, 나디아 두 주인공 외에 커즌 마브의 비중이 큰 편이었는데, 소설을 보니 에릭 디즈가 마브보다 더 짙은 인상을 남기는 구조더군요. 밥은 우리가 잘 아는, 특히 한국인들이 좋아라하는 <인셉션>에서 강렬한 연기를 펼친 톰 하디가 맡았습니다. 만약 영화를 안 보고 이 원작을 펼친 독자라면, 밥에 대해 다소 흐릿한(물론 결말을 접하고 나선 전혀 그런 채로 남을 수가 없겠으나) 이미지만 중반까지 이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썩고 칙칙한 뒷골목에서 평생 살을 부비다 생을 마칠 것 같은 분위기를 풍기고, 교도소 복역 경력까지 있는 건달치고는, 그 매너가 주위 사람들에게 너무 고분고분한 것 아닌가, 뭐 이런 느낌이 소설 종반에 이르기까지 독자의 뇌리를 떠나지 않는 게 당연합니다.
나디아.. 작중 에릭이 평한 대로, 보스턴에서 흔한 이름은 아닐 것 같습니다. 쿨한 듯 사려 깊은 듯하면서도 한순간의 광기에 자신을 맡겨버리는 무책임함, 역시 사악한 환경적 굴레로부터 몸을 빼겠다는 결의가 전혀 보이지 않는, 될대로 되라 식의 생활 태도.... 이런 그녀에게 밥은 숙녀에게 베풀 수 있는 최상의 예의를 (자기 딴엔) 갖추려 합니다. 동기는... 쉽게 말하자면 "마음을 동하게 하는 이성"을 보아서일 수도 있고, 아니면 뭔가 먼 과거로부터 그를 사로잡고 있는 부채 의식, 강박이 슬쩍 끼어들어서일 수도 있습니다. 나디아 역은 요 몇 년 간 이런저런 영화에 주연 혹은 주연급 조연으로 잘 팔리는 북구의 여인 누미 라파스가 맡았습니다. 둘 다 각자의 역에 근사하게 어울립니다.
에릭 디즈는 스스로 인정했듯 정신 상태가 정상이 아닌, 살인과 강도, 갈취로 생계를 잇고 도박으로 한탕을 노리는 구제불능의 악당입니다. 이 자가 이 더럽고 부패한 뒷골목에 모습을 드러냈다는 건, 가뜩이나 불안정하고 한순간에 피비린내가 온 도시의 공기를 훅 감쌀 것 같은 분위기를 더욱 질 나쁜 단계로 몰아간다는 뜻입니다.
이 슬럼은 현재 체첸계 갱스터가 주도권을 장악한 상태입니다. 소설 속에 그런 언급은 전혀 없지만, 몇 년 전 벌어졌던 보스턴 마라톤 대회 테러 사건의 발생 경위와도 간접으로 깊은 연관을 맺고 있습니다. 체첸 인들이 기질 사납고 잔혹한 폭력을 불사한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는데, 소설은(그리고 영화도) 이 점을 유감 없이 생생히 묘사하고 있습니다.
다 읽은 분들은 눈치 챘겠지만, 다분히 아이러니한 결말 때문에 이 스토리는 장편보다는 단편에 더 어울리는 플롯을 가지고 있습니다. 루헤인은 본디 <애니멀 레스큐>란 제목으로 단편을 발표했었고, 이후 보스턴 슬럼의 음울한 색조를 배경으로 강화하여 제목도 바꾸고 확대 개작한 겁니다. 이 장편 1장 소제목이 "강아지 구조"인 것도 그런 내력이 있어서구요. "드롭"의 의미는 여럿이 있겠으나 일단 이 소설에선 "드롭 바"가 첫째 의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