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칸 힙합 2 - 닥터드레에서 드레이크까지 아메리칸 힙합 2
힙합엘이 지음 / 휴먼카인드 / 2015년 6월
평점 :
절판


집필진 참여자분들은 스포츠에 대해 아주 관심이 많으신가 봅니다. 1권에서도 닥터 드레와 작업을 함께하거나 그가 양성하거나, 혹은 프로듀싱에 깊이 관여한 뮤지션들을 두고, "믿고 쓰는 레알산"으로 비유한 적이 있습니다. 최고 명문 클럽인 레알 마드리드 출신 선수들이라면 따로 검증 절차를 거칠 것 필요가 없다는 의미에서, 우리 국내 축구팬들끼리 널리 쓰는 우스개 관용어죠. 이 2권에서도 DTD라는 말이 등장합니다. "내려갈 팀은 내려간다"가 길다며 "내팀내"로 쓰던 걸 그예 더 줄여 DTD라고까지 압축한 유행어죠. 여기에 다른 모듈까지 붙여 "DTD는 과학입니다."도 인기를 얻었습니다. 사실 이 말은 저 본의를 전달하는 것 외에, 특정 감독(최초 발언자로 잘못 알려진 분)을 조롱하는 의도로도 크게 퍼져서 마구 응용하긴 좀 조심스러운데, 마침 이 책은 "디스질을 그 핵심 팩터로 삼는" 힙합 음악에 대한 책이기도 하니, (저자들의 본래 의도와는 무관하게) 주제와 잘 어울리는 느낌도 들긴 합니다.

이 2권의 첫 챕터 제목을 어구 DTD를 넣어서 잡은 건, 아마도, 뮤지션으로서 뜨기 위해 기본기를 얼마나 연마해야 하고, 타고난 재능의 조건이 어느 정도 중요한지의 문제가, 힙합 음악이라고 해서 전혀 사정이 다르지 않다는 걸 저자들이 강조하기 위한 의도 아니었을까 짐작합니다. 책에 그런 말은 없지만, 한국에서는 그닥 기량이 출중하지 못한 데도 어쩌다 대중들의 주목을 집중적으로 받고, 이후 예능 출연 등을 통해 이미지 관리를 잘해서 롱런하는 연예인들이 왕왕 있죠. "실력으로 봐선 벌써 내려갔어야 할 이들이 안 내려가고 버티는 개탄스러운 현실"이, 이 힙합 씬에서는 벌어지지 않는다는 점을 암시합니다. 힙합 장르가 그만큼 예인(藝人)으로서 진입 장벽이 높은 바닥이라는 뜻도 됩니다.

이 챕터에서는 일곱 명의 "반면교사, 혹은 실패자"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제가 그 중 주목해서 읽은 건, 1990년대 초 미국은 물론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어 "검고 귀여운 아이돌"로 자리를 굳혔던 크리스크로스의 사례입니다. 히트 곡 하나 내고빤짝하다 잊혀진 스타를 영어로는 "원 히트 원더"라고 합니다. seven-day wonder라고 해서, 수명이 길지 못하고 금세 활력이 시드는 현상을 비꼬는 말로예전부터 쓰던 표현을 변형 응용한 거죠. 크리스크로스는 흑인이지만 흑인의 발성을 내지 않고, 요새 에미넴이 10대로 어려진 듯 유쾌하고 감각적인 랩을 즐겨구사하던 "아이돌의 전형"이었습니다. 근데 힙합이야말로 아이돌의 설 자리를 용납하지 않는, 오로지 실력으로만 승부를 보는 분야임을 증명하듯, 정말 그 초기 음반 몇 이후로는 어디 갔는지 보이지도 않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책에서 소개하는 그들 듀오의 짧은 후일담도 참 씁쓸한 내용이라, 한때 좋아했던 팬으로서 마음이 영 그렇더군요. 다른 음악 장르를 다룬 분석서나 역사서는 보통 성공한 뮤지션들의 화려한 퍼레이드만 명예의 전당처럼 꾸미는 게 보통인데, 이 책은 Hall of Shame도 이처럼 공간을 할애해서 소개하고 있는 점이 특이했어요. 덕분에(?) 그들의 근황도 알게 되고 말이죠.

남부 힙합이라니 이건 뭐 얼핏 듣기만 해도 형용 모순 같고(왜인지는 미국 역사의 배경을 생각해 보십시오), 웨스트/이스트 코스트가 있을망정 거기에 타 방위를 하나 더 끼워 넣는 건 마치 서편제/동편제 외에 남편제라는 듣보잡 장르를 들이대는 꼴입니다. 하지만...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힙합이 메인스트림에 포함된 이후(심지어 커머셜 힙합이 따로 생긴 마당에), 남부 힙합은 자신만의 개성과 스타일을 확고하게 정착시켜, 이제는 시장의 첨단 유행을 선도하는 귀한 손님으로 이 바닥에서 대접 받는 위상입니다. 좀 다른 이야기입니다만 170년 전 남북 전쟁 당시 중앙정부에 항거한 반란군 남부 세력이 독립하며 내건 깃발 "남부연합기"가 최근 인종 테러 사건 관련 새삼 주목을 받게 되어, 나치 문양처럼 그 사용이 법적 제재 대상으로 추락할 듯한 움직임을 상기해 보십시오. 이건 그만큼 남부에서 (종래에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흑인들 고유의 문화와 정체성이 성숙기에 접어 들어, 어느 정도 보편성까지 획득해 가고 있다는 증좌입니다. 여기에 히스패닉 인구의 폭발적 증가도 크게 기여한 요인 중 하나입니다.

"의외로 대학까지 졸업한 고학력자"라고 재밌게 소개된 릴 웨인의 음악 역정이 담긴 p116 이하 10장의 내용을 보십시오, 그 제목은 "남부 꼬맹이의 3차 성징"으로 되어 있습니다. 저는 이 책의 매력이, 이런 인문적 스타일, 레토릭이 서술 맥락 곳곳에 자연스럽고 적확히 끼어들고 있는 그런 여유, 필력, 너른 시야에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자의 자평대로 어딘가 G드래곤을 연상케도 하는 그의 부상과 롱런 과정은, 역시 실력과 대체 불가능한 감각(feel)이야말로 장르 불문하고 뮤지션의 성공 비결이 아닌가 하는 결론을 다시 내리게 돕더군요. 아울러, "전혀 아닌 것 같았던" 남부 힙합도 결국 저렇게 장사가 되는데, 그렇게나 기능도 빼어나고 열의도 엄청난 "코리언 힙합"은 왜 (비보이 경연대회 등을 제외하면) 본바닥에서 대우가 그 모양인가? 이런 의문이 다시 들었습니다. 결론은, 특히 예술에선, 모방보다는 창의가 중요하다는 것. 우리 색깔(어느 방향이 되었든)이 이제는 나올 시점이 되었다는 것.(.....)

이 책(특히 1권)에서 비프음(?)으로 가려진 ni**az (with attitude) 등은 (NWA로 꽤 유명하지만 한국에선 도통 모르는 분도 많죠), 원어가 nigga입니다. 비하적 표현이고 강도가 그 중에서도 좀 쎄기 때문에 아예 저 표기로 굳었습니다(당사자들이 자청헤서 저 표현을 쓰면 그만큼 더 반항적 느낌을 풍깁니다). "씬"도 참 자주 나오는 표현인데, 구태여 옮기면 "(이) 바닥" 정도가 되겠습니다. "디스"는 diss라고 아예 독립적 표기를 쓰는 게 더 낫고, disrespect보다 disparage가 그 어원에 가깝지 않을까 하는 게 제 개인적 생각입니다. 저자들의 느낌과 개성이 잘 드러나서 더 매혹적인 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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