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의 혁명 - 우리는 누구를 위한 국가에 살고 있는가
존 미클스웨이트 외 지음, 이진원 옮김 / 21세기북스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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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저자 두 분의 경력만 보면, 이런 주제를 놓고 이뤄지는 담론에 썩 잘 어울릴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저널리스트들은 보통 거대 담론을 두고 논의를 펴 나가는 일이 드물며, 그보다는 구체적이고 시사적인 현안에 대해 심도 있는 각론(各論)을 전개하는 편에 능하기 때문이죠. 그러나 이 책은, 그런 예상을 뒤집고, 방대한 예시를 들고 세계사적 호흡으로 주제를 조망하는 내용으로 독자를 압도했습니다.

 

제목 <제4의 혁명>은 두 가지 고민과 모색으로 "어떤 정부여야 살아남을 수 있고, 유용하게 기능하며, 국민을 만족시키고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답하고 있습니다. 제4의 혁명이 있다면(혹은, 있어야 한다면), 제1~제3의 혁명을 전제로 한다는 의미일 겁니다. 저자(들)의 정의(定義)에 의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영주들에 의해 지배되던 소규모 분립 공국을 넘어서, 강력한 군주, 정부가 통제하는 중앙 집권 체제의 등장 2) 이런 강하고 큰 정부에 대한 염증과 반감으로 들어선, 작고 자유방임적인 정부 3) 20세기 중반에 등장한, 시혜적이고 폭 넓은 간여를 사명으로 하는 "복지국가"를 위한 정부. 이렇게 세 단계가, 앞에서 맞이한 세 차례의 "혁명"을 통해 들어선 정부들입니다. 그리고 이 세 단계에는 각각, 그 "혁명"을 이끈 사상적 지도자들이 있었습니다. 1혁명에서의 토머스 홉스, 2혁명에서의 존 스튜어트 밀, 3혁명에서의 베버리지, 그 외 복지국가의 이론적 옹호자들... 아마 저자들은, 앞으로 필연 도래할 제4혁명에서, 능률적이고 주어진 소임을 보다 잘 수행할 신개념 정부의 이데올로그이자 선구적 주창자로서 본인들을 자랑스럽게 상정하고 있지 않았을까 저는 추측합니다.

 

혁명의 도래는, 그 혁명을 필연적으로 부른 기존 체제의 비능룰성과 모순성을 전제로 합니다. 기존 시스템이 잘 돌아가고 있다면, 유혈사태와 혼란이 필수 수반될 혁명이 일어날 이유가 없습니다. 저자들의 진단은, 지금의 정부가 중병(重病)에 걸려 있으며, 혁명 아니고서는 이 병폐가 치유될 가망이 없다는 쪽에 가깝습니다. 그 혁명이란 게, 반드시 폭력적 수단을 통해 일어나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정부 기능의 담지자들이 알아서 "껍질이 깨지는 아픔"을 감수하고 혁신을 수행한 결과이든, 혹은 "더 이상 분노를 참지 못하고(책에선 이 표현이 자주 나옵니다)" 국민들이 전복을 추구한 결과이든, 이 "제4의 혁명"은 그 도래가 필연적이라는 게 저자들의 주장입니다.

 

이 책에는 대단히 방대한 사례의 예시가 나옵니다. 일단 우리도 뉴스 외신란을 통해 자주 접했듯이, 사천만 인구가 거주하는 미국 캘리포니아 주의 파산, 정부 기능 정지 사태는, "(현)정부의 실패"의 확증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증거로서 자주 쓰이고 있습니다. 더 놀라운 건, 이 캘리포니아 주 정부는 한때 가장 이상적으로 작동하던, "작으면서도 강한 정부"의 모범적 예였다는 사실입니다. 저자들의 미려하고 적확한 문장은 이 점을 더 실감나게 전달하고 있는데요. "초기 전체 상원의원이 대표하던 인구 수보다, 지금 1명의 상원의원이 대표하는 인구 수가 더 많다"는 문장이 그 좋은 예입니다. 쓰는 비용의 규모는 큰데, 수행하는 기능은 비효율적이고, 과거 업무의 잔재만을 반영하여 쓸모도 없는 기구만 잔뜩 유지한 정부가, 국민(주민)과의 소통도 제때 이루지 못하고 있다는 주장입니다.

캘리포니아뿐 아니라, EU의 거대한 실험 역시 도마 위에 오릅니다. 금융 정책을 규제하는 당국은 나라마다 제각각인데, 이 거대한 권역이 단일 통화를 쓴다는 게 "광기" 아니면 뭐냐는 게 저자들의 주장입니다. 저자들은 현재의 EU 집행부야말로, 관료주의의 병폐와 퍼주기식 복지를 동시에 수행하는 실패의 표상이라고 진단합니다.

 

저자들의 객관성을 판단할 수 있는 하나의 기준은, 얼마나 "스스로를 객관화하여 볼 수 있는지"의 능력입니다. 서구권 저자들이, 자신들의 지난 발전사를 스스로의 역량 덕분으로 돌리지 않고, 중국이나 터키(오스만 제국)의 잘 정비된 관료제에서 그 입은 혜택을 상기할 수 있다면, 이는 독자에게 충분한 객관성을 그 저술이 담보하고 있다는 믿음을 주기에 충분합니다. 그 반대의 예라면, 마치 뚱녀가 터질 듯한 뱃살을 거울 앞에 비추고서도, "내 몸무게가 어때서?"라고 어이 없는 강변을 일삼는다든가, 학력과 직업 경력 등 아무것도 내세울 바 없는 초라한 자신에 깊고 절망적인 열등감을 느낀 나머지, 자격증, 증명서까지 실재하는 남의 아이덴티티를 "이건 사기야!"라고 중상모략 절규하는 촌극에나 비길 수 있겠습니다. 지가 구리면 남도 구린 줄 아는가 보죠. 그렇게 살면 피곤하고 상처 투성이인 현실에 당장 싸구려 위안을 줄 수는 있겠죠.

 

저자들은, 서구권이 제1의 혁명 당시, 세계에서 가장 세련된 관료제를 중국에서 차용해 왔음을 인정하고 높이 평가합니다. 신분제의 고착화를 막기 위해, 과거 제도를 통해 가장 우수한 인재를 준별해 왔고, 이는 국민들로 하여금 끊임 없는 독서와 진정한 자기 계발에 힘쓰도록 촉진하는 동인이 되었다는 거죠. 저자들은 지금 제4의 혁명을 맞이하는 시점에서, 중국 공산당이 시행하고 있는 인재 양성 제도와 당원 선발 시스템이, 정부에 얼마나 활력과 높은 효율을 불어넣고 있는지에 대해 강조합니다. 저자들은 이어, 얼마 전 타계한 헨리 리(리콴유)가 싱가포르라는 성공적인 도시국가에 대해 남긴 치적에 대해서도 상세한 리뷰를 행하고 있습니다.

 

제4의 혁명이 불러 올 정부는 그러나 딜레마 역시 안고 있습니다. 정부 조직을 채워 나갈 조직원들에게는 항상적 지위 보장이라는 급부가 주어져야 소신껏 일을 해 나갈 텐데, 부단한 혁신 요구(이에는 수시 조직 개편을 위한 내외부적 개입, "수술"이 필수적입니다)를 어떻게 만족시켜 나갈 것인지, 작으면서도 강한 정부라는 상충적 목표를 어떻게 동시 수행해 나갈 것인지의 문제가 그것이라 하겠습니다. 보다 구체적인 각론을 전개해 나갈 저자들의 다음 저작이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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