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 이빨 - 최신 원전 완역본 아르센 뤼팽 전집 10
모리스 르블랑 지음, 바른번역 옮김, 장경현.나혁진 감수 / 코너스톤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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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 dans mon potager foisonne le lupin.
(그리고 나의 텃밭에는 루핀 꽃이 만발하다네)

조제마리아 드 에레디아의 시 한 소절로써 이 아주 긴 장편은 마무리됩니다. 이 시인은 19세기에 활동한 프랑스 고답파에 속하는데, 모리스 르블랑은 이 사람으로부터 (자신은 비록 산문가였지만) 스타일이나 표현 방법에 있어 큰 영향을 받습니다. Lupin(뤼팽)이란 캐릭터 이름은 물론 그가 존경했던 에드가 앨런 포우의 피조물 "오귀스트 뒤팽(A. Dupin)"에서 따왔다는 게 정설이지만, 우리는 이 작품 <호랑이 이빨>을 다 읽고 나서야 그 어원 한 구석에 다른 사연도 있었음을 알게 되네요. (루피너스[=루핀] 꽃이 흐드러지게 핀 모습을 감상하시려면 여길 클릭하십시오)

낭만적이고 목가적인 풍경으로, 여태 나온 중 뤼팽이 가장 정열적으로 사랑한 여인과의 항구적 결합으로 이 작품은 마무리됩니다만, 그런 지어낸 듯한 감상적 결말이 애써 독자에게 주려는 인상과는 대조적으로, 전체 줄거리는 뭔가 비극적이고 애상적인 느낌을 기어이 어느 한 구석에 남기고 맙니다. 참 이상합니다.

뤼팽은 참 유쾌한 사람입니다. 물론 그렇게 재능이 뛰어나니 성취한 일도 많고, 가공할 적수들을 통쾌하게도 사지에 몰아넣거나 법의 심판을 받게 헸으니 즐거울 만도 합니다.  하지만 그의 능력에 비해 그가 차지한 부의 크기나 영토는 너무나도 좁고, 잔인한 악당들, 무능한 경찰들 등 너나 할 것 없이 이 뤼팽의 명철함과 우월함을 시기, 질투하기에 바빠, 세상은 그가 마땅히 받아야 할 인정과 평판의 지극히 적은 부분을 그에게 허용합니다. 거기까지는 뭐 괜찮은데, 이 뤼팽은 그 보상을 엉뚱한 데서 취하려 듭니다.

이 작품 결말부에는 뤼팽이 총리 발랑글레(이분 <황금삼각형>에 이어 또 나옵니다)와 협상하여 자유를 얻어 내기 위해, "자신이 직접 개척, 정복했다는" 모리타니 왕국을 프랑스 정부에 넘겨 주겠다는 제안이 나오는데, 이런 터무니없는 설정은 물론 미스테리 본 줄기와는 아무 관계도 없습니다. 베베르 부국장의 흉계에 넘어가 교도소에 갇혔으니, 이런 극단적인 방법으로 최고 권력자와의 협상을 통해 감옥 문을 나설 수 밖에 없다는 건데, 이 수법은 이미 <813>에서 한 번 써먹은 터라 식상하고, 이런 최후의 카드는 한 번 이상 쓰이는 게 매우 곤란합니다.

아무튼 이 작품에서 뤼팽은 평소보다도 몇 배 더 즐겁고, 그 달성한 위업은 몽테크리스토 백작과 앨런 쿼터메인의 그것들을 합친 것보다 더 큽니다. 하지만 그는 이 작품에서 유독 자주, 위기에, 그것도 치명적인 위기에 빠지고, 판단 착오를 빈번히 범하며, 사건의 진상도 (종전과는 달리) 두 번에 걸쳐 더듬거리며 알아냅니다. 그렇다고 적수가 이전의 그들보다 더 무시무시한 자(들)이었냐면 그것도 아니고... 제스처는 더 요란해졌지만, 내실은 많이 빈곤해졌습니다. 아마 르블랑이 이 작품의 구상을 깔끔히, 치밀한 사전 작업 통해 설계한 게 아니라, 도중에 여러 번 변덕을 부린 끝에 간신히 마무리지은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입니다. 시작은 정말 거창했는데, 그렇게까지 꼬인 미스테리라면 천하에 없는 작가라도 연착륙시키기 힘들 것입니다.

뤼팽이 그토록 판단을 그르칠 만한 여자라면 대단한 매력과 미모를 지닌 재원일텐데, 왠지 모르게 전작의 베로니크만큼도 강한 인상을 남기지 못했습니다. 007에게 본드걸이 있듯, 이 협객에게도 매 작품마다 그에 어울리는 다양한 여인들이 등장하는데, 이 르바셰르만은 선명한 이미지가 남지 않더군요. 그토록 똑똑하고 착한 여인이, 왜 늙은 괴짜 가스통 소브랑이나, OOO 같은 인간에게 아무 쓸데없는 헌신과 애정을 보인 건지... 제가 언제나 지적하는 바대로, 행동의 동기가 충분히 설명되지 않고 "정신이상" 따위로 마무리되고 만다는 게 고질적인 문제입니다.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Levasseur는 국립국어원이 정한 원칙대로라면 "르바쇠르"가 맞지 않을까요? 이 이름은 장 자크 루소가 여러 사생아를 낳게 한 어느 여성 세탁부의 이름과 같아서 특별히 좀 지적하고 싶습니다.

그렇다고 이 작품이 그저 범작이기만 한 건 아닙니다. 가스통 소브랑이 뤼팽의 거소까지 감연히 찾아들어와(원래 그 자리에는 르바셰르가 있기로 기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 주장을 입증할 증거가 하나도 없지만, 진실이라는 가장 확실한 무기에 기대어 당신과 의논을 하려 합니다."라고 말하는 장면은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뤼팽의 입장엑서, 자신을 포함한 무고한 이들을 여럿 해치고,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의 애정을 독차지하고 있는 걸로 보이는(나중에 드러나지만 이는 착각이었습니다) 남자의 말을 귀담아 듣는다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었지만, 그는 특유의 통찰력과 직관(여러 번 이 덕목을 강조하더군요)을 발휘하여 소브랑의 말이 참임을 알게 됩니다. 소브랑 역시, 상대인 뤼팽이 자신의 말을 곡해할 수밖에 없는 입장인데도 명석한 판단력으로 진실은 진실대로 인정해 줄 줄 아는 뤼팽에 크게 감복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이는 캐릭터들 사이에 대단히 깊이 있는 소통 모습을 창조해 낸 것으로서, 르블랑의 역량을 높이 평가해 주어야 마땅한 대목들이었습니다.

이해가 안 되는 건 뤼팽의 그 다음 결정이었습니다. 소브랑의 말을 믿건 안 믿건, 그들을 유치장에 보내는 게 자신의 행동 반경도 넓히고, 두 사람을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보호하며, 마주르 반장의 입지도 배려해 주늕동시에 공권력과의 상호 협력을 더 튼튼히 하는 선택 아니었을까요? 고의로 사람을 해치는 대신 교묘한 배후 조종으로 같은 목적을 달성한다는 건, 크리스티 여사, 퀸의 작품에서도 이후에 등장합니다만, 이 작품이 그에 영향을 주었는지는 회의적입니다. 이 작품이 그런 컨셉을 효과적으로 완성하지 못했다고 보이기 때문입니다. 범인의 정체와 행적 역시 말끔히 설명 안 되는 부분이 너무 많은데, 다만 스포일러가 되겠기에 더 이상 적지는 않겠습니다.

마치 관객들을 앞에 두고 실시간으로 벌이는 통속극처럼, 플롯의 전개에 일관된 원칙이 없고 너무 들쭉날쭉인 모습이 아쉬웠습니다. 물론 읽어나가는 중에는 재미있는데, 다 읽고 나면 참 허전합니다. 마지막 순간의 (la derniere minute) 뜬금없는 변덕, "사람 살려!"를 처량하게 외치다가 무대에서 "나는 그 자를 고발합니다(Je l’accuse)"를 화려하게 되뇌는 배우가 되는 뤼팽, 도대체 거부할 수 없는 제안(choses qu’on ne refuse pas)은 그저 받아들여야 한다면서도, 한순간에 헌신짝처럼 버리고 "간지"를 택해 버리는 쾌남. 여튼 그의 매력은 이 작품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지만, "아프리카의 왕"을 자칭하는 그의 모습은 뭔가 슬프게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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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혈 2015-03-24 0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평에 쓰려다가 깜빡 잊었는데, 이 소설에서 르블랑은 캐릭터 작명에서 우스운 센스를 보여 줍니다. 마즈로의 본명은 ˝알렉상드르˝인데, 물론 아버지 뒤마의 이름이죠. 이폴리트의 아들 이름은 ˝에드몽˝인데, 이는 몽테크리스토 백작의 본명입니다. 그런가 하면 뤼팽은 호텔에 묵을 때 ˝르코크˝라는 가명으로 예약을 하는데, 이는 포우의 뒤팽보다 조금 뒤에 출현했고, 홈즈보다 앞서 나온 에밀 가보리우의 캐릭터와 이름이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