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해부 - 위대한 석학 22인이 말하는 심리, 의사결정, 문제해결, 예측의 신과학 베스트 오브 엣지 시리즈 3
대니얼 카너먼 외 지음, 존 브록만 엮음, 강주헌 옮김 / 와이즈베리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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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물을 보는 것이 "눈"이지만, 자기 자신을 볼 수는 없는 것이 눈이기도 합니다. 인간은 생각하는 능력을 통해 만물의 영장이 되었지만, 정작 자신이 어떻게 해서 그런 생각을 할 수 있게 되었는지는 알지 못합니다. 현재는 많은 이들에 의해 비합리적인 사유 쳬계로 간주되고 있는 창조론이, 인지 발전 초기 단계에 거의 진리처럼 받아들여진 건, 어떻게 보면 "생각이라는 정신 작용의 신비성, 불가해성" 때문이 아닐까 여겨지기도 합니다. 작은 원자 속에 갇혀 있던 에너지를 해방시켜, 자신이 터잡고 사는 행성 전체를 몹쓸 곳으로 만들 능력까지 갖추게 된 인간인데, 반경 몇십 센티미터도 채 안 되는 머리 속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까맣게 모르고 있다는 건 정말 역설이 아닐 수 없습니다.



<베스트 오브 엣지> 시리즈를 읽을 때마다 느끼는 건, 일단 책이 참 예쁘게 만들어졌다는 사실이고(책덕후라서 저는 어쩔 수가 없네요 -그래서 일 년을 기다려 한 권씩 완성되어 가는 콜렉션을 보며 뿌듯해서 정신을 못 차립니다), 다음으로는 페이지를 넘겨갈 때마다 "머리가 꽉 찬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부담스럽다기보다, 지성도 우수하고 나이도 더 드시고 아마 인격이나 품행도 원숙의 극치를 달리실 여러 석학들이 등장해서, 내가 평소에 막연하게나마 궁금해해왔거나(생각이 "엣지"하지 못했기에 명제화하질 채 못했을 뿐), 마땅히 궁금해 했어야 할 내용을, 자상하게, 권위 있게, 현학적이지 않으면서도 체계를 갖춰, 그러면서도 잘 모르시는 건 솔직히 잘 모르겠다며 인정하는 태도(전 이 시리즈에서 이런 게 좋더라구요)로, 독자의 참여를 유도하며 설명해 주시는 내용이 너무도 흥미롭습니다. 이 책은 엣지 파운데이션이 내는 "베스트 오브 엣지"의 세번째 책입니다.

뇌신경과학, 인지이론, 진화심리학, 그리고 심리학에 기반을 둔 행동경제학(행태경제학)에서 이뤄지고 있는 진보는, 우리 일반인들이 상상할 수 있는 범위를 훨씬 초월합니다. 수학과 통계, 미분방정식과 복소 해석 변수 체계들이 난무하는 첨단의 성과를 우리들이 이해하려면, 다시 상아탑으로 돌아가서 책과 씨름하거나, 머리 속에 갖춰지지 않은 회로, 근육을 짜 넣기 위해 얼마나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할지 모릅니다. 엣지 시리즈의 최고 미덕은, 이런 어려운 내용들을 최대한 우리들 대중이 이해하기 쉽게, "낮은 데로 임하는(down to the earth)" 매너로, 과연 그런 학문적 발견들이 우리 삶을 앞으로 어떻게 바꿔 놓을지를 가르쳐 주고, 아득히 먼 지평선을 고개들어 바라보게 하며, 일상의 각박함에서 조금이라도 풀려 나, 당장의 좀스러운 이해 관계에서 벗어나 먼 미래를 통찰할 수 있는 작은 빛, 그러나 우리가 오랜 동안 잊고 있었던 그 섬광, 예지의 한 자락을 우리 머리 속에 살포시 놓아 주는 듯합니다.



1960년대 후반에 자고 일어나 보니 갑자기 스타가 된 배우라면 누가 있을까요? 대니얼 길버트의 설명으로 유추해 보자면("평소에 진지하게 연기 수련을 다졌으며, 스타가 된 그 주에 각종 잡지의 표지 인물로 등장했다"), 아마도 더스틴 호프만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추측해 보았습니다. 이 배우가 수수께끼처럼 제시한 개념은 "빅 옴바사"입니다. "정서 예측"이라고 보다 구체화된 술어로 치환해도, 감이 퍼뜩 오지는 않을 것 같은데요. 쉽게 말해서 "A와 같은 행동을 하면 내 기분이 B와 같을 듯하다"고 미리 두뇌가 룰을 정하는 패턴을 말합니다. 이 명제가 옳다는 보장은 전혀 없고, 오히려 많은 이들은 "기분에 의해 좌우되어 합리적 의사 결정을 저해하는 어리석음"으로까지 규정해 왔습니다. 일본 문예에서 유행어로 널리 쓰이는 "그저 기분 탓인가" 같은 표현 역시, 특별히 합리적 성향이 강하거나 감정을 잘 절제하는 이가 아니라도, 우리 평범한 사람들 역시 "기분에 좌우되어서는 안 된다"는 강박 관념을 갖고 산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빅 옴바사"의 위력은 생각보다 강력합니다. "생각보다 강력하다"는 말은 첫째, 기대 이상으로 이 정서 예측 기제가 무서운 영향력을 발휘한다는 뜻이며, 둘째, 치밀한 조직적 사고 과정을 거친 결론보다, 때로는 이 정서 예측이 더 유효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기분"은 그저 기분일 뿐일까요? 오랜 시간 동안 치열한 현장에서 몸으로 부대끼며 많은 일을 겪어 온 사람은, 직감적으로 턱 다가오는 "기분"에 의해 주식 매도, 선물 옵션 계약 따위를 척척 처리합니다. 옆에서 보면 미친 짓 같은데, 내가 프로그램 짜서 열심히 수동으로 보정하고 도출한 해(解)보다 훨씬 정확합니다. 길버트 교수님은 아주 적확한 비유를 들고 계십니다. "우리는 명백한 평행 속성을 지닌 두 직선이, 먼 끝에서 만나고 있을 것 같은 착시 현상을 늘상 경험한다. 그렇다고 헤서 착시 현상을 제거해 주는 정밀 외과 수술을 받아야만 할까?" 일단 교각살우의 고사처럼, 사소한 결점 하나를 고치려다 다른 좋은 점들이 더 많이 망가질 위험이 있으며, 무엇보다 생각만으로도 몸이 오싹해지는 수술을 구태여 치러 내야 하느냐는 생각이 듭니다. "그 수술 진짜 싫어!" 같은 정서, 느낌, 과연 오류이고 비합리성의 징후이기만 할까요? 우리가 올랜 세월에 걸쳐, 특정 경험이 기분상 들뜨게 한다거나 반대로 진저리쳐진다는 식으로 느끼게 된 건,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 깊숙한 곳에, 비합리적인 듯 보일 뿐 본질적 유효성, 합리성을 더 단단히 갖춘 인과 구조가 들어 있다는 뜻입니다. 단지 우리 인간이 그를 미처 발견 못하고 있었을 뿐.



진리 앞에 겸손해지자는 충언과 권유를 지성인들에게 던지면서, 동시에 일반인들에게는 "당신들은 생각만큼 그리 멍청하지도, 감정적이지도 않는 사람들입니다!"라며 따뜻한, 그러면서도 진정성 있는 격려를 보내는 이 책은, 세상이 꼭 보이는 대로인 것만도 아니며, 반대로 때로는 너무도 빤해 보여 오히려 사실이 아닌 것만 같은. 그러나 엄연히  그 정당성을 지니는 진실도 존재한다는 점을 우리에게 일깨워 줍니다. 읽으면 읽을수록 머리가 좋아지는 느낌, 석학들이 일방적인 훈계, 교리 주입이 아닌, 우리와 눈높이를 맞추며 소크라테스처럼 "같이 생각해 보자."고 어깨를 토닥여 주는 글들, 대화들. 빨리 네번째 권이 나와 주었으면 하는 바람만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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