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력적인 장腸 여행 - 제2의 뇌, 장에 관한 놀라운 지식 프로젝트 매력적인 여행
기울리아 엔더스 지음, 배명자 옮김, 질 엔더스 삽화 / 와이즈베리 / 2014년 11월
평점 :
품절


장, 우리의 소화를 담당하며 모든 양분의 소화와 이를 통한 공급의 중추적 기능을 맡아 하는 기관은, 근래의 연구에 따르면 제 2의 뇌라고까지 평가된다고 합니다. 제 2의 뇌라는 평가는, 비유적인 의미에서도, 그리고 기술적인 차원에서도 공히 타당합니다. 이미 여러 분야의 전문가, 또 저술가들이 입을 모아 내어 놓는 평가이므로, 심지어 자계서 최신간 여럿만 읽은 독자라고 해도 그 대략의 내용에는 익숙할 정도 아닐까 짐작합니다.

 

1980년대부터 유독 한국인은 국민 소득 수준이나 식생활 패턴과도 무관하게, 장 관련 질환을 자주, 그리고 일찍이도 앓아 왔음이 통계에서 드러납니다. 대단히 흔한 과민성 장 증상부터 해서, 보유자의 물리적 생존을 위협하는 대장암까지의 다양한 고통과 질병들이, 촘촘한 스펙트럼을 그리며 우리의 일상에 (불쾌하고 불길한 의미로) 가까이도 둥지를 틀고 있었습니다. 국가나 개인이나 가파른 성장 곡선을 그리며 성취해 온 물질적 자산의 축적 경과는 누가 봐도 놀랍지만, 그 과정에서 경제 활동 인구 개개인이 자신의 육체와 정신(특히) 양면에 쌓아 온 스트레스가 엄청났다는 사실도 알 수 있습니다.

 

이때부터 우리는, "왜 머리가 고생하는데 장이 아픈 것일까?" 같은 소박한 의문을  의학 전문가 아닌 문외한 수준에서 이미 제기해 왔다고 봐도 됩니다. 이에 대한 어느 정도 정리된 답이 최근에서야 쉬운 포맷으로 대중에게 전달되는 셈이겠구요. 그런데, 아무리 의료인의 수준에서 명료해 보이는 답도, 일반인이 쉬이 이해한다는 건 좀 무리한 기대에 가깝습니다. 이 일을, 놀랍게도 아직 20대 중반의 나이인 어느 전문가(라고는 하나 통념으로는 그저 의대생 취급이나 받으면 충분한 이)가 시도하여 세상에 내어 놓았네요. 그게 바로 이 책입니다.

 

"매력적인 장 여행"이란 두 가지 의미를 지닙니다. 하나는, 그토록 많게, 정체와 기능상의 비밀을 간직하며 보이지 않는 차원에서 우리의 의식을 조종해 온 "장"이라는 녀석이 꽤 매력적이라는 뜻입니다. 뇌 못지 않게 장도 매력적이란 말이야!라고 외치는 저자의 모습이, 책을 읽다 보면 눈 앞에 선히 떠오르는 것 같습니다. 다른 하나는, "장 속을 여행한다는 그 자체"가 즐겁다는 뜻이겠습니다. 어렵고 낯선 분야를 이해하는 데에, 불친절한 저자가 가이드로 동행한다면 그 여행은 하나도 매력적이지 않고, 여행이라기보다는 고역에 가까울 것입니다. 이 책은, 본래의 목적이자 과제인 여행이 너무도 즐거울 뿐 아니라, 안내를 맡은 가이드가 너무도 매혹적이라, 그 매력이 두 배가 되는 여행을 우리에게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장의 기능과 구조에 대해 그간 여러 준(準) 의학 서적(대중서), 그리고 (위에 적었듯) 심지어 자계서에서조차, 문외한들도 이해 할 수 있는 좋은 설명을 시도하고는 있었지요. 그러나 대부분의 책들은, 그런 시도가 성공하기 위한 첫째 조건인 "눈높이 맞추기"에서 미흡한 모습을 드러내었습니다. 이 책이 최적인 이유는 사실 달다른 데 있지 않습니다. 저자의 자격과 능력, 그리고 "태도"가 최상의 조건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저자는 대단히 총명하고, 허세 없이 우리 독자들의 눈높이에 최대한 그 시선을 맞추려는 노력을 하고 있는데, 그건 바로 그녀의 나이가 아직 어리다는 사실이 크게 한몫하지 않았을까 하는 짐작입니다. 제아무리 우수한 두뇌를 지녔다 해도, 이 분야가 순수 기억력이나 퍼즐 해결 능력, 혹은 자연과학으로서의 화학에 대한 흥미만으로 쉽게 초심자에게 다가올 수 있는 성격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자신도 공부하면서 아마 힘들었다 보니, 그 "초심"을 잃지 않고 독자들에게 가식 없이 접근한다는 생각으로 의도를 잡았고, 그 결과물이 이처럼 쉽게 재미있으며, "매력적인" 결과물로 빚어진 것 아니었을지요.

 

책을 다 읽고 실천적으로 정리하고 받아들인 교훈이 많습니다. 나의 체질에 비추어 어떤 음식을 더 가려 먹고 더 챙겨 먹어야 할지, 일상의 자세는 어떻게 잡아야 할지, 막연히 "이게 좋다"는 식이 팁이 아닌, 원리를 알고 이해해야만 실천에 옮길 수 있는 고마운 지식들이 많았습니다. 또 하나 배운 점이 있다면, 자신이 다루는 모든 분야에서 이처럼 모종의 "매력"을 찾으려는 마음가짐, 태도가 있어야, 자신의 영역에서 대성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자성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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