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을 말해줘
존 그린 지음, 박산호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4년 10월
평점 :
절판


<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의 최대 미덕은, 물론 감동적인 이야기 구조의 창조에도 있습니다. 아직 한창 나이들이고, 더군다나 학교 최고, 아니 그 지역 일대에서 최고 킹카로 소문난 남자애가, 얼토당토 않게만 느껴지는 암에 걸려서 곧 죽을 운명이라니, 세상에 이처럼 부당한 일이 어디 있을까요? 살 만큼 산 늙은이들 중에, 남에게 몹쓸 짓을 한 극악무도한 치들도 많을 텐데 말입니다. 천도(天道)라는 게 있으면 그런 것들을 먼저 데려가야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대체 그 생떼같은 소년에게 무슨 죄가 있다는 건지요. 그래서 소설 제목은, "인간에게는 무슨. 잘못은 그저타고난 별자리에나 있었을 뿐인가보지." 같은 냉소적, 체념적 어구를 달았던 것이었습니다.

 

이 소설 <이름을 말해줘> 역시, 존 그린의 진짜 재능이 어디 있었는지를 확연히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전작이 이야기상 그 이상으로 비극적일 수 없는, 대단히 부조리한 스토리를 다루고 있었고, 뻔히 예견할 수 있는 주인공의 죽음이란 결말을 영리하게 예비하는 데에 성공했다면, 이 작품은 그 비결을 고스란히 살려 가며, 전작에서 심각하게 상처 받은 마음을 능수능란하게 어루만져 주고 있었습니다. 그 비결이란 바로 누구도 따라할 수 없는, 존 그린만의 천재적인 말솜씨와 재치입니다.

 

영미소설의 진짜 매력에 대해 우리 국내 독자들은 간혹 오해하는 바 있습니다. 물론 그들은 고급 문예를 이끌어가는 선두 주자이고, 이미 동양의 그것을 역전한 지 오래인 문예, 그 전통의 어드밴티지를 입어 그 깊이와 우열 면에서도 (솔직히) 우리의 것을 넉넉히 앞지릅니다. 그들 역시 그들만의 정서와 느낌에 갇히는 바 없지 않을 텐데도, 이를 달성하고 남은 힘만으로 지구 반대편의 우리들에게까지 이처럼이나 보편적인 공감을 전달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이 존 그린의 예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들의 진짜 강점은 쉴새없이 터져 나오는 고급의 유머와 해학에 있습니다. 물론 이 작품에서 존 그린 특유의 말장난은, 전작에서만큼은 돋보이지 않습니다. 전작의 경우, 감당이 안 되는 최루적 상황이, 현란한 유머와 극명한 대비를 이루는, 일종의 호조건이 갖추어져 있었습니다.

 

반면, 이 작품 <이름을 말해줘>는 어떨까요? 주인공 소년(결국 전작처럼 초점은 남주에게 놓인다는 것 역시, 아직까지는 눈에 띄는 설정상의 한계이자 여성 독자들의 불만일 것입니다)이 천재형 두뇌를 가진 것으로 나오기에, 또 저들 문화권에서는 재담(才談)의 만발이야말로 정신의 우월성을 입증하는 하나의 증거로 보기에, 이 소설에서 어느 정도 말의 향연이 펼쳐질 지야 독자들이 그 마음의 준비를 잔뜩 하고 있었기 때문이겠습니다.

 

냉정히 말해 약간 쉬어가는 작품으로도 보입니다. 존 그린의 작품은 이처럼 비정상적으로 잘 돌아가는 두뇌를 가진 인물을 등장시키는 편을 선호하죠. 전작에서는 비록 조연이나 플롯의 핵심에 기여하는 (노년의) 네덜란드 작가가 나왔었고, 이 작에서는 보시는 대로 (어린) 남주 자신이 그런 인물입니다. 본디 장유유서의 개념이 없는 그들이지만, 여튼 우수한 두뇌의 힘을 빌려서건 (그렇지는 못하나) 순수한 마음의 원활한 작동에 기댄 재치의 발휘이건, 날카롭고 재치있는 언사의 대결 역시, 언제나처럼 그의 작품에서 중요한 볼거리를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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